[응답하라1994][해태x윤진] Forget Me Not. 12 (2/2)(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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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가, 훈이를 딱 붙잡고 니 방금 뭐했어! 하는데 갑자기 혁이가 막 우는기라"
"그래서?"
"니가 와 우노 하니까 갑자기 훈이도 같이 울어삐는데,"
"아이고 형제가 우애가 좋구만"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거 몰래 꺼내먹자고 충동질한 게 혁이고 꺼낸 건 훈이고 뭐 형제가 합작해서 벌인 짓인기라"
"그려서?"
"아-들은 펑펑 울제, 아 아빠란 사람은 아-들 달래느라 바쁘제, 우야겠노 내만 나쁜 사람 되고 그냥 넘어갔지, 날 잡아가 제대로 혼내야하는데."
아쉬운 듯 나정은 테라스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컵에 담긴 와인을 한모금 홀짝한다
옆에서 끅끅 소리를 내면서 웃던 윤진은 슬쩍 나정을 바라본다
".. 근디, 니 언제까지 여그 있을라 그르냐?"
나정이 제 몸 하나쯤은 충분히 들어갈만한 트렁크를 끌고 돐지난 아기를 들쳐업은 채 윤진을 찾아온 게 벌써 일주일 전이다
거실에 풀어놓는, 끝도 없이 나오는 짐에 너 대체 언제까지 가려고 이걸 다 싸왔냐고 물었을 때
그냥 뭐, 다 필요한기다. 하고 얼버무린 것 부터 수상쩍긴 했었다
지훈, 지혁 두 형제를 외갓댁에 맡기고 막내 지후만 달랑 안고 내려온 나정은 그날 이후 마치 원래 여기 살던 사람처럼
편하게 늘어붙어서 도통 집에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재준이는 잘 지내냐? 니 여그 있어도 괜찮대?'
영 칠봉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것이 수상하여 넌지시 묻자 나정은 싸늘히 굳은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싸우기라도 한 건가, 이게 싸우고 집을 나온다는 드라마 속 상황인가 싶어 꼬치꼬치 캐묻자 그제야 등장한 사연이라는 것에
차마 티를 내지는 못했지만 윤진은 이 복받은 년, 하고 속으로 한참 웃었다
'넷째 갖자고 하길래'
'어?'
'딸을 꼭 낳으셔야겠다고 덤벼서 확 발로 주 차삣다'
'... 그냥 하나 더 낳어.. 그래 원헌다는디'
'... 와 딸인 줄 아나? 가 지금 생기지도 않은 딸 이름도 지어놨다, 소희.라고 한단다. 원더걸스 소희! 내가 진짜 남사시러버가,'
성나정에게 꽉 잡혀사는 김재준 성격에 저런 용감한 발언을 했단 말인가, 하고 조금 놀랐다
설마 나정이 그걸 알아차리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 그렇게 생각한 거겠지 그래..
좋아하는 아이돌 이름 한번 딸한테 붙여보겠다고 말 꺼냈다가 어딘지 모를 부위를 차여 나가떨어졌을
재준에 대한 묵념을 잠시 하고 있는데 나정이 아무리 생각해도 다시 화가 나는지 부르르 했다
'그래 좋으믄 지가 낳아가 이름을 붙이든가, 누가 낳아준다카드나, 누구 맘대로 소희고 소희가'
... 드라마 보고 아들 이름 지은 니가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디..
라는, 단번에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소회는 소리내 말하지 않고 꾹꾹 삼켰다
아무리 저에게는 사소해보이는 이유라도 부부에겐 심각한 문제일 수도 있다는 것.
처음에는 며칠이면 풀리고 돌아가겠거니 하고 내버려두었지만
이게 어느새 일주일이 되어가니 윤진은 제가 나서서 오히려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와, 니 내 여 있는 거 싫나? 귀찮나?"
"아니이, 나야 좋지, 좋은디, 니 아-들 안 보고 싶냐아, 느그 엄니는 뭔 고생이시냐 니 여그 와있어서"
심각한 표정으로 묻는 나정에게 윤진은 고개를 절레, 흔들어 보인다
나정과 함께 있었던 지난 일주일 동안 윤진은 정말 많이 웃었다
서로 '니는 아직도 그라고 있냐, 성격 못 고쳤냐' 핀잔을 주면서 투닥투닥 하다보면
마치 십여년 전, 함께 매일을 보냈던 오래 전으로 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이제는 조금 겁이 났다
언젠가, 그게 오늘 일지 내일일지 모를 가까운 시간에 나정이 서울로 돌아가고 나면
나정의 큰 목소리와 지후의 데데거리는 옹알거림이 사라진 고요한 공간에 혼자 남겨지면
과연 자신은 그 허전함을 견딜 수 있을지,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누군가와 함께'하는 일상에 익숙해지는 것이 두려웠다
애써 친해졌던 '고독'이 일주일만에 너무 낯설어져서 다시 가까워질 수 있을지, 겁이 났다
차마, 그 이야기를 다 하지 못하고, 윤진은 그저 나정의 아이들을 핑계댄다
윤진의 말에 나정은 고개를 격하게 흔든다
"그 악동들 안 보고 지내가 속이 다 시원타, 니 봤제, 화상통화할 때마다 정신 나가기 직전인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하는 나정의 말에 윤진은 풋,하고 웃는다
나정의 말대로 매일 아침 안부 인사 겸하는 화상통화는 거의 제대로된 통화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외갓댁에 맡겨진 게 아이들의 에너지를 더 증폭시켰는지 아니면 오래 못본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그렇게 드러난 것인지
서로 말하려고 꽥꽥 소리지르다가 여전히 에너지 넘치는 동일에게 한대씩 꿀밤을 맞고 나야 잠잠해졌다
"그랴도 담에는 같이 와야, 훈이랑 혁이 나도 오랜만에 보고프다"
"... 시즌 끝나믄 재준이랑 같이 다시 올게, 가-들 아빠 있어야 겨우 컨트롤 된다"
"훈이는 벌써 학교 갈 때 되지 않었냐? 훈이가 아빠 많이 닮았으니 키도 크겄네, 그래도 또래보단 얌전허지 않어?"
".... 아빠 닮아가 얌전하기는 개뿔, 니 가-들 아빠랑 아-들 모이가 하는 짓 보믄 기절한다, 지옥문이 열린다는 게 딴 게 아니라니까"
진저리치는 나정을 보고 윤진은 다시 소리없이 웃는다
괴로워하는 그 모습도 어쩐지 부럽기만 하다
언젠가는 돌아갈, 지겨운 일상이 있다는 게 어떤 행복인지 나정은 알고 있는 걸까
아니,
윤진은 살짝 열렸던 입술을 다문다
말을 하지 않아도 나정은 아마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고 그 행복을 최선을 다해 지키고 있을테다
그걸 굳이 짚어준다는 게 어쩐지 자신의 자격지심인 것 같은 생각에, 성급하게 달싹이는 입술을 애써 잠재운다
투덜투덜 거리고 있는 나정이 건강하게 빛나서 윤진은 그저 가만히 웃는다
서글픔이 끝에 묻어나고 마는 미소를 알아채고 나정은 푸념을 멈추고는, 물끄러미 윤진을 본다
"매일 이라고 지낸기가"
"그치 뭐"
"... 이래 바다 보고 혼자 무슨 생각 했노"
차분히 묻는 나정의 말에 윤진은 가만히 제 앞에 놓여있는 컵을 집어든다
검은 밤바다를 아득히 바라보고 있던 윤진은 나직이 읊조린다
"... 무슨 생각을 허겄냐, 아 맛있다, 아 날씨 좋다, 아 오늘은 많이 걸어서 힘들다... 뭐 그런 생각허지"
"......"
"그라고 있으믄.. 말여.. 나정아, 어쩔 땐 저 바다가 엄청 멀고, 나는 엄청 작아서,
힘들다, 하는 말이 너무 하찮게 파도에 휙, 밀려갈 거 같은 생각이 들어,"
나정은 차분하게 밤바다만 응시하고 있는 윤진을 빤히 바라본다
확실히 해윤의 말 대로 윤진은 '괜찮아' 보였다
적어도 지난 일이년 전의 불안감은 많이 옅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어째서 그만큼 멀어진 것 같은 걸까
눈 앞에 앉아 있으면서도 어쩐지 다른 공기를 마시고 있는 것 같은 윤진에게
문득 생각난 이름을 올리려다 해윤과의 약속을 떠올리고 억지로 삼킨다
대신, 윤진과 함께 먼 바다를 바라본다
파도소리만 철썩,하고 멀리 들리는 바다는 검게 물들어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구분되지 않는다
빨려들어갈 것 같은 어둠,을 윤진은 매일 바라보고 지내온 걸까.
나정은 문득 윤진이 지나온 고독을 느끼고 울컥, 눈물이 솟는다
그때 온통 까만 어둠 사이로 반짝, 하고 불빛이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그건 등대였을까 아니면 위치를 알리는 배의 신호였을까
나정은 까만 어둠에 강렬하게 존재를 알리며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그 불빛을 보며 생각한다
윤진에게는, 지금, 저 불빛이 필요하다고.
"윤진아"
"응?"
"내일 꽃구경 가자"
말없이 바다를 보고 있던 나정이 갑자기 생글거리며 윤진에게 말을 걸어온다
꽃이라면 지금 저희가 있는 아파트 앞에도 지천으로 피어있건만 새삼스럽게 꽃을 보러 가자는 나정의 말에 의아한 듯 눈썹을 살짝 치켜올린다
윤진이 그러거나 말거나 나정은 꽤나 진지한 얼굴로 떼를 쓴다
"내 벚꽃 축제 기간 지나가 내리왔다 아이가. 벚꽃 다 지기 전에 함 가서 느긋하게 좀 보자,
내 서울 올라가믄 아-들 한테 치이가 꽃구경 엄두도 못 낸데이, 내 훈이 낳고 꽃구경 한번도 몬 갔다"
윤진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린다
내일은 토요일, 주말이다 보니 아무리 축제 기간이 지났어도 나정이 원하는 벚꽃 나무가 늘어선 거리에는 사람이 북적일게 뻔하다
아무리 제가 괜찮아졌다고는 해도 되도록이면 사람이 많은 곳에 가는 건 자제해왔던 터라,
하지만 그런 이유를 말해서 나정을 걱정시키고 싶지는 않은 마음에 뭐라 바로 거절을 못하고 머뭇거린다
"... 그냥 집 근처에서 보믄 안되냐?"
"아, 쫌! 여기까지 왔는데 제대로 꽃도 못 보고 올라가믄 내 홧병난다, 같이 가자아. 내일? 알겠제?"
단호하게 윤진의 말을 끊으며 눈을 맞추는 나정에게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나정은 그제야 배시시 웃는다
"아, 좋다, 내일 빨리 되믄 좋겠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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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시내는 대체 어딜 간 것이여..?'
정작 그렇게 졸라서 나왔으면서 삼십분도 채 걷지 않고는 나정은 또 무슨 급한 일이 있는지 아이를 들쳐업고 후다닥 사라졌다
'여기서 조금만 기다리라 알았제? 금새 올게'
연고도 없을 이곳에서 무슨 전화를 받았길래 저렇게 급하게 가는 건지 궁금했지만,
그저 나정이 업고 있는 지후에게 까딱까딱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나정이 말했던 그 자리에 앉아 기다린 게 어느새 이십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팔랑, 하고 연한 분홍빛 꽃잎 하나가 치맛자락 위로 떨어진다
윤진은 무의식중에 위쪽을 올려다본다
살랑,하고 바람이 불었던지 꽃잎 몇개가 살며시 흩날리고
살짝 흔들린 가지에 가득 피어난 벚꽃이 하얗게 하늘을 가리고 있다
사람들 소리를 차단하려고 귀에 꽂고 있던 이어폰 줄을 가만히 만지작한다
후룩, 바람이 불고
한창 때를 지나 지고 있는 벚꽃잎이 후두둑 하고 한꺼번에 떨어진다
마치 눈처럼.
멍하니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사이 듬성듬성한 파란 하늘을 보고 있던 윤진은
그대로 내려앉는 꽃잎을 맞는다
마치 눈처럼.
마치 언젠가의 눈처럼.
멍하니 바닥으로 흩날리는 벚꽃잎을 보고 있던 윤진은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선다
아무래도 나정의 볼일은 길어지는 모양이다
사람들 사이에 있다보니, 단단해졌다고 생각한 마음이 말랑해져버리는 것 같아서
그래서 아마도 벚나무를 보고도 눈이라고, 아니 그 어느날을 떠올려버린다는 생각에
윤진은 우선 이 자리를 피해야겠다고, 조금 차분히 있어야겠다고 생각한다
휘 둘러보자 벚나무가 양쪽으로 주욱 늘어선 길 건너편으로 노랗게 유채꽃이 핀 들이 보인다
듬성듬성 유채꽃 사이로 걷는 사람들이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이 길을 따라 걷고 있는 이곳보다는 한적해보인다
윤진은 휴대폰을 꺼내, 돌아오면 연락달라고 간단히 나정에게 문자를 남기고 천천히 길을 건넌다
노란 들판 끝에 연결되는 탁 트인 하늘을 보자 조금 숨통이 트인다
윤진은 크게 심호흡을 하고 귀에 꽂고 있던 이어폰을 빼서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인파의 소리가 멀리 들려오고 바람이 유채꽃을 흔들고 지나간다
부르르,
주머니에 넣어뒀던 휴대폰이 흔들린다
윤진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길가쪽을 바라본다
"어, 왔냐?"
- 니 지금 어딘데?
그렇게 멀리 걸어 온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목을 쭉 빼고 봐도 삐죽 키 큰 나정의 모습은 보이질 않는다
"나 안 보여? 여그 유채꽃 핀데, 도착혔으면 내가 도로 가랴?"
- 있어봐라, 유채꽃밭이라고? 거기 그대로 있어라, 알겠제?
나정은 제 할 말만 하고 뚝 끊어버린다
윤진은 끊겨버린 휴대폰을 내려보다 여전히 나정의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길을 한번 건너다 본다
뭐지...?
고개를 갸우뚱한 윤진은 다시 한번 전화를 걸어볼까 하다가
그저 휴대폰을 주머니 속에 넣고 천천히 가던 길을 걷는다
길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 같지만 연락이 오면 되돌아가도 충분하겠지, 생각한다
쏴아하고 바람에 유채꽃이 흔들리는 소리에 마음이 차분해진다
가만히 서서 눈을 감고 소리를 듣는다
하아, 한숨을 쉬고 아무래도 길쪽으로 돌아가야할까 생각하는데 누군가 뒤쪽에서 윤진을 부른다
"저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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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여간 거기 말고 그 옆에 유채꽃 핀데 보이제? 거기에 자리 잡고 있어라,
"뭔 소리여 갑자기!"
뜬금없는 통보에 당황해서 저절로 사투리가 튀어나와버린다
버럭,하고 소리지르는 통에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자 그제야 휴대폰 수화기에 손을 대고 다급하게 묻는다
"아니 갑자기 왜 장소를 바꾸라는겨?"
- 아 몰라, 여자 마음을 내가 우예 알겠노, 일단 얼른 가라, 얼른
"야! 야! 김성균!"
성균은 호준의 부름에 대답없이 전화를 뚝 끊어버린다
뚜뚜뚜 - 하는 신호만 남긴 휴대폰을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보다 이내 포기한다
'이 자식, 진짜.....'
어젯밤에 늦게까지 술을 마셔서 일어나기 거부하는 저를 억지로 깨워서 씻기기까지 해서
굳이 꼭 벚나무 아래 꽃잎 잘 보이는 곳으로 자리를 잘 잡으라고 먼저 보내더니만
기껏 도착해서 자리를 잡으려고 돗자리를 펴자마자 이제 와서 유채밭이라니.
대체 성균이 말하는 '여자 마음'이 어느 분의 마음이려나
저희 집에 있는 여자 몇 분을 떠올리고 고뇌해보지만 딱히 답이 나오지 않는다
성균은 정말로 어제, 금요일 오후 아내와 세 아이들을 포함하여
동준, 해윤네 식구까지 싹 데리고 호준을 찾아왔다
성균네 다섯 명, 동준네 셋, 해윤네 셋까지 총 열 한 명의 사람이 한꺼번에 들이닥치자
방이 몇개나 되어도 숙식을 포함한 모든 생활을 거실에서만 해결하던 호준의 집이
주인이 집에 든지 처음으로 왁자지껄해졌다
아빠들의 성격을 쏙 빼닮은 녀석들이 한 집에 하나씩은 있게 마련이고
그걸 시작으로 서로 이게 너랑 비슷하네, 그때 넌 좀 찌질했네, 하면서 옛날 이야기들이 하나둘 튀어나왔고
호탕한 성격의 성균 아내와 성격 좋기로는 빠지지 않는 동준의 부인, 그리고 친화력은 뒤지지 않는 해윤의 부인까지
이야기에 합류하면서 안그래도 뛰어다니는 아이들로 정신없는 와중에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졌다
덕분에 호준도 오랜만에 정말 많이 웃고 떠들었다
문제라면, 성균이 갑자기 아침에 꼭 꽃놀이를 가야겠다고 우긴 것.
오전에 천천히 일어나서 느즈막히 점심을 먹고 식물원이나 좀 이르지만 등산이나, 뭐 이런 스케줄을 생각하고 있던 호준은
뜬금없는 꽃구경 제안에 고개를 갸우뚱하고 반대의견을 내려고 했지만
채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대로 세 남자들에게 잡혀서 테라스로 끌려나갔다
'서울 가도, 올해 꽃구경은 물 건너갔다, 여기 온 김에 때우고 가게 해도'
'그려, 여기 내려오는 것도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냐, 또 시간 못 빼'
'어지간하면 성균이 말대로 하자, 제주도는 지금 한창 꽃 필 때 아이가'
똘망똘망한 눈으로 은근히 종용하는 성균과 간절히 고개를 끄덕여 동의하는 동준, 해윤이
너무 절실해 보여서 얼결에, 아니 사실은 술김에 고개 끄덕여 수락하긴 했지만,
그래, 뭐 다 알겠는데.
왜 열두명이나 되는 대 인원의 자리를 저 혼자 맡아야 하는 걸까.
애들 준비 시키고 여자들은 준비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근데 늦게가면 자리가 없을 거고 등등의 핑계를 대면서
일단 너 먼저 가서 자리 잡고 있으라고 등 떠밀려 선발대로 나오긴 했는데
손에 들고 있는 돗자리 네 개를 내려다보자니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 일단 벚꽃은 됐고, 유채꽃이란 말이지.
'니가 제주도는 유채꽃이라며'
하던 성균의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래 분명 제가 그 말을 하기는 했지만, 그게 유채꽃 아래 앉을 수 있다는 말은 아니었단 말이다
대체 빽빽하게 들어선 유채꽃 사이 어디에 앉을 자리를 잡으라는 건지,
어떻게든 자리를 잡아보려고 쭉 둘러보며 유채꽃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걸어가지만
역시 그늘이 없어서 그런지 벚나무 길보다 훨씬 적은 사람만 듬성듬성 보일 뿐이다
게다가 점점 햇살이 강해지고 있다
유채꽃은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벚꽃 같은 나무가 아니어서 마땅히 앉을 그늘이 없으니 아무래도 안되겠다고
전화를 하려고 휴대폰을 꺼낸다
뚜르르 -
이놈은 어째서 전화를 안 받어.
좀처럼 통화가 연결되지 않는 성균을 탓하면서 초조하게 주위를 스윽 둘러보다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하고 그대로 멈춘다
'전화를 받을 수 없어...'
기계적인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뭔가에 홀린 듯이 귀에 대고 있던 수화기를 내린다
휴대폰을 든 손으로 무의식중에 눈을 비빈다
다시 보아도
백미터쯤, 떨어진 곳에
흔들리고 있는 유채꽃들 사이로
윤진의 얼굴이 떠올라 있다
이건 꿈인 걸까
아니 어제 술을 너무 마신 나머지 급기야 환상을 보는 걸까
그토록 찾으려고 할 때는 희미한 흔적도 보이지 않았던 그녀가 어째서 이토록 갑작스럽게 나타나 생생하게 웃고 있는 건지.
꿈 속에서 늘 무표정하게 눈물을 흘리며 제 손을 외면했던 모습이 오히려 더 현실인 것처럼
지금 제가 보고 있는 윤진의 모습을 믿을 수가 없다
상냥한 미소를 옅게 띄우고
살짝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윤진의 모습을
낯설게 바라보던 호준은
마침내 윤진의 이름을 소리내 부르려다 멈칫한다
그제야 윤진이 고개를 끄덕하며 손짓하는 시선의 끝에 선 누군가를 알아차린다
늦었나.
윤진의 손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렸던 남자는 다시 돌아보고는 윤진의 말을 들으면서 끄덕끄덕한다
뭔가 한참 설명하던 윤진은 고개를 끄덕이는 남자를 보고 마무리하듯 생긋 웃는다
그 웃음에 호준은 심장이 욱신한다
이미, 늦었나,
이미, 늦은 거였을까.
=
"저기요"
"네?"
"올레 3코스 쪽으로 가려면 이 길 따라 가면 되나요?"
간편한 차림에 배낭을 멘 남자가 묻는다
윤진은 남자의 말에 잠깐 제가 걸었던 길들을 떠올린다
3코스,
3코스라면.
조금 불안하게 내려다보는 남자를 슬쩍 본다
아직 앳된 티가 남아있는 얼굴이 초조하게 답을 기다리고 있다
어쩐지 아주 먼 날에 저렇게 초조하게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던 누군가의 얼굴이 겹쳐보여서,
윤진은 저도 모르게 생긋, 하고 웃는다
"잘못 오셨네요, 3코스는 전혀 다른 방향인데,"
"아... 네..."
남자의 얼굴에 낭패감이 번진다
올레길이 유행하자 소문만 듣고 무작정 찾아온 뜨내기 손님이 늘어나면서
윤진도 종종 이렇게 길 잃은 관광객의 질문을 받곤 했다
그나저나 3코스라면...
"김영갑 갤러리 가는 길이세요?"
"아..! 네!"
어떻게 알았냐는 듯 남자가 반색한다
윤진은 지난 겨울 바람을 맞으며 시간을 보냈던 자그마한 폐교의 사진들을 떠올린다
바람 소리가 들릴 것 같았던, 바람의 움직임을 박제해놓은 것 같던 푸르고 노란 사진들.
윤진은 고개를 끄덕인다
"일단 큰 길로 나가셔서 이백미터쯤 오른쪽 길 따라 내려가다보면 주차장 나오고 길 건너면 정류장 있거든요,
거기서 버스 시간표 한번 보세요, 자주 오진 않지만 그래도 걸어가는 거 보다는 빠를 거예요 근처까지 가는 버스 있으니까"
윤진의 손짓을 따라 이렇게 저렇게 가는 길을 확인한 남자는 몇번인가 고개를 끄덕이며 혼자서 중얼, 가는 길을 외운다
남자가 되뇌이는 길을 가만히 들으며 맞다 아니다를 확인해준 윤진은 마지막에 용기를 돋우듯 생긋 웃는다
"좋은 시간 보내세요, 갤러리 좋아요"
"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남자는 윤진에게 몇번이나 고개를 숙여 인사하면서 뛰어간다
저만치에 서서 불안한 듯 바라보고 있던 여자가 남자를 보고 급하게 손을 흔든다
여자에게 급하게 달려간 남자는 흔들고 있던 여자의 손을 붙잡는다
남자가 여자에게 뭔가 속삭이고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여자의 얼굴에 불안감이 사라진다
손을 잡은 채 윤진이 말했던 방향으로 걸어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부러운 듯 한참 바라보다
윤진은 제 빈 손을 문득 내려다본다
허전한 빈 손에
따뜻했던 감촉은 아주 멀다
아주 멀리 낯설다
한때는,
나도,
우리도.
비어 있는 손을 허공에 살짝 쥐었다 놓는다
윤진은 부질없는 스스로의 행동에 덧없이 한숨을 쉰다
"저기요"
손을 내려놓고 도로 큰 길로 걸어가야겠다, 생각하는데 또다른 남자의 목소리가 나직하게 저를 부른다
오늘따라 유독 길을 잃은 사람이 많네, 생각하면서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버린다
어째서,
그가 여기 있는 걸까
조금 거칠한 얼굴을 하고
기억보다 훨씬 나이를 든 것 마냥 어른 같은 표정에
꿈 속에서 보았던 환한 웃음이 아닌 슬픈 미소를 띄고서
그 또한 믿을 수 없다는 듯 흔들리는 눈으로 윤진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윤진은 저도 모르게 멈칫 반발짝 뒤로 물러선다
호준은 윤진이 물러서는 걸 보고는 한발 훌쩍 앞으로 다가선다
두 눈이 정확하게 마주친다
호준은 집어삼킬 듯이 간절하게 눈으로 윤진의 존재를 확인한다
저를 천천히 훑는 그 눈에 사로잡혀 꼼짝할 수가 없다
지금 제가 어떻게 보일까, 문득 생각한다
혹시나, 잘 못 지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건 아닐까
혹시나, 동정하는 건 아닐까, 하고
겨우 윤진의 존재를 확인했는지 천천히 돌아와 다시 눈을 맞추는 호준의 얼굴은 안도하는 듯 차분해진다
그제야 윤진은 살며시 안도의 숨을 내쉰다
잘 살아서, 다행이다
어떻게든 건강하게 이겨내서
이렇게 다시 만날 때 '괜찮다'라고 말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윤진은 그 어느 아직 추운 봄날의 목련에게 감사한다
오히려 조금 마른 듯 보이는 건 호준의 쪽이다
거칠하게 푹 패인 뺨에 윤진은 마음이 아프다
어떻게 살았을까, 건강해지길, 행복해지길 바랬건만.
문득 윤진의 눈동자에 물기가 어릿하게 비친다
호준의 모습이 흐릿해지려고 해서 윤진은 황급하게 고개를 숙인다
두어발짝쯤 떨어져있던 호준이 한 발 더 다가선다
호준의 신발이 고개 숙인 윤진의 시야 안에 들어선다
그리고 쑥, 하고 손을 들이민다
?
윤진은 의아하게 고개를 든다
호준은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미묘한 표정으로 악수하듯 손을 내민다
"손, 호준이어라"
담담한 호준의 말에 윤진은 심장이 쿵,한다
"이름이 뭐예요?"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한다
그는 여전히 저를 잊고 있는 걸까
언젠가처럼, 잊고 있는 채로 또다시 다가오는 걸까
자신은 그 반복을 견딜 수 있을까
겁먹은 듯 불안하게 올려다보는 윤진을 안심시키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망설이는 윤진에게 다시 손을 내밀며 살짝 흔들어보인다
윤진은 잠시 호준을 바라보며 의미를 찾아 헤매다가 살며시 호준의 손을 악수하듯 마주 잡는다
"조, 윤진... 이예요"
제 이름인데도 오랜만에 내뱉는 음절이 낯설어서 윤진은 머뭇, 더듬는다
윤진의 손을 잡고 있던 호준의 손에 불끈, 힘이 들어간다
꼭 쥐어오는 따뜻한 온기에 흠칫, 손을 내려다본다
그 언젠가처럼, 강하게 맞잡은 두 손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나직한 호준의 목소리에 고개를 든다
확신에 차 단단한 눈이 저를 바라보고 있다
꼭 잡은 두 손에 파르르 떨리는 긴장이 전해진다
"아주 긴 이야기예요, 어쩌면 평생 걸릴지도 모르는"
호준은 가만히 나머지 손을 뻗어 윤진의 비어있던 손을 끌어당긴다
잠깐, 촉각을 세워 제 손 안에 가둔 작은 두 손을 만지작한다
불안감이 용기를 덮어버리지 못하도록
이 따스함이 마지막 남은 구원의 끈인 것처럼
"들어줄래요?"
쏴아, 하고 바람이 분다
노란 유채꽃을 흔들며 지나온 바람이 윤진의 머리칼을 흩어놓는다
휙,하고 날린 머리에 윤진은 잠깐 고개를 흔들어 바람을 피한다
호준은 한 손으로 윤진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가만히 넘겨준다
제 머리칼을 세심하게 쓸어넘기는, 익숙한 손길에 윤진은 스륵 눈이 감고 싶어진다
이 시간이 영원히 계속되기만을
이 손길이 떠나지 않기를
"혹시 내가 잊어버리면, 그땐"
살짝 떨리는 목소리가 윤진을 다시 불러온다
살며시 치켜뜬 눈이 마주친다
호준은 좀더 강하게 손을 잡는다
"그땐 윤진씨가 내게 말해줘요"
탁,
윤진은 멈춰있던 시계 바늘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을 느낀다
애써 돌로 괴어놨던 초침이 똑딱, 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추억이라 봉인했던 시간이 무너진 둑에 터져나온 물결처럼 두 사람 사이에 흘러내려 휘돌아감는다
"윤진아"
간절하게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쭈뼛,하고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아련하게 호준을 올려다보던 윤진은 바르르 떨리는 손을 가만히 호준에게서 빼낸다
허전해진 손을 그대로 허공에 든 채, 호준의 눈은 절망한 듯 까맣게 침잠한다
정말로 이건, 거절일까 하는 두려움으로 고개를 숙여 저를 보는 호준에게 얼굴을 보여주는 대신
윤진은 팔을 뻗어 호준을 그대로 안아버린다
호준의 허리를 끌어안아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로 윤진은 마법단어라도 말하듯이 겨우 작게 속삭인다
"응, 호준아,"
가슴을 울려 들리는 이름이 주문이라도 되는 것처럼 마법이 풀린 듯 비로소 호준은 허공에 멈췄던 팔로 살며시 윤진의 몸을 끌어안는다
마치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두 사람의 몸이 하나처럼 찰싹 달라붙는다
꼭 안긴 채로 숨만 쉬고 있는 윤진의 머리카락을 호준은 가만히 쓸어내린다
새액,하고 깊은 한숨에 윤진의 등이 몇번인가 더 크게 오르락내린다
순간 몸을 옅게 떤 윤진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든다
올려다보는 윤진의 눈이 일렁이다 별처럼 반짝인다
호준은 그 안으로 빨려들어갈 것 같은 아찔함을 느낀다
윤진의 고개가 살랑 끄덕이고, 붉은 입술이 꽃피듯 살며시 벌어진다
".. 그럴게, 몇번이라도"
몇번이 반복되더라도
당신이 나를 잊어도
내가 당신을 잊더라도
우리가 서로를 잊는 날이 온다해도
몇번이라도 계속해서.
당신이 나의 것이고
내가 당신의 것인 이상,
세상이 우리를 갈라놓는다 해도
다시는,
나를 잊지 말아요.
나를 잊지 말아요.
나를,
잊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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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났다! 클리셰 덩어리에 오락가락 휘청휘청한 이야기, 끝까지 읽어준 냔들 고마워 ㅠㅠ
'해태야_멜로하자_욕망폭발글'은 이걸로 일단 마무리.
+
아, 약간의 농담이지만 - 호준이가 거칠한 얼굴인 이유는 전날 술을 죽도록 마셨기 때문이야. 진짜로.
사이다 네 셋째 지후의 이름은 2009년 1월 방송된 모 드라마의 '지후선배'로부터.
그리고 제주도 본사 인력 이전은 다음과 넥슨을 모티브로 한 거야
++
그리고, 이건 그냥 덧붙이는 이야기..
1) 나는 해피엔딩이 좋아.
행복하게 해줘ㅠㅠ 라는 냔들의 댓글에 응 나는 해피엔딩이 좋아 라고 답하고 싶었지만 결말까지 겨우 꾹 참았어
'긴 이야기가 있어요 들어줄래요?' 는 처음부터 생각했던 마지막 장면이었지만
그래서 결국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썼지만
이걸 해피엔딩으로 생각해줄지, 마음에 들지는 잘 모르겠어 사실..
2) 사실 불편한 건 해윤(쓰레기)과 재준(칠봉) / 정작 나정과 해윤이 미묘한 관계였다는 건 해윤의 부인은 모르고 있고 사실 나정은 지금 자기가 누구를 사랑하고 그 사람과 사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해윤의 부인과도 언니 동생하면서 잘 지내고 있다,는 설정이었어. 나정이 해윤을 협박한 건 확 밝혀버리면 새언니 가 좋아하겠다 그자? 였고 앞으로 불편해지는 건 어쩔래 하는 협박.
여기서 사이다,로 썼지만 만약에 어느 쪽이 되든 나머지의 부인은 분명 나정만큼 좋은, 쿨하고 여장부인 사람일 거라고 생각해 이상형이란, 끌리는 사람이란게 쉽게 바뀌지 않으니까. 사실은 빙그레의 다이다이를 보고 나니 여기 여자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좋은 여자들... 이란 생각에. (할 수 있다면 동준-진이의 이야기도 쓰고 싶지만.. 능력 부족이로고-_-)
3) 그래서 호준네 집에 모인 애들이 왁자하게 떠들고, 나중에 나정까지 합류하는 외전을 덧붙임으로 쓰려고 했으나..... 그러면 오늘 내로 못 올릴거 같아서, 오늘 해태의 러브라인이 정리되는 방송이 나올 듯 하여 그 전에 올리고 싶은 마음에... 어쩌면 그 외전은 다음에?
4) 시작은 이적의 거짓말거짓말거짓말, 이걸 쓰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노래는 윤하의 괜찮다.
그래서인지 굉장히 어둡고 아픈 이야기가 되어 버려서 - 사실 12화 부터는 치유되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는데 여전히 냔들은 아파해줘서.. 아아 나는 역시 아픈 글만 쓰는 사람인가 하는 자책. 그래도 아이들은 행복해졌으리라 믿고 싶어.
5) 설정을 모아두는 노트를 뒤적여 보니 모티브,에 이런 게 있네 - 물망초, 눈, 제주도, 거대한 연극
6) 야구가 몇번 등장한 건 그냥 개인적으로 좀 좋아해서 넣었어 사실 그런 개인적인 취향들이 몇개 있어. ㅋ
7) 초반에 이야기가 영 진행되지 않았던 건 저런 모티브들을 되도록 눈에 띄지 않게 넣으면서 쌓고 싶었기 때문. 괜찮았나?
8) 나정이는 미안했을 거야 그게 나정이는 몰랐던 탓이라고 해도. 성균이도 미안했을 거야. 윤진을 다그쳤던 건 윤진이 떠난 이후의 호준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니까. 그래서 빨리 밝히고 서로 잘 풀어나가길 하는 마음이었을테니까. 성균은, 알다시피 똑바로 말하는 사람이잖아. 하지만 미안했을 거야 누구보다 그 모든 일이 일어난 후에 자신의 탓이 아닐까 하고. 그런 아이들이니까
그래서 그 둘이 서로 연락해서 제주도의 모임을 작당했다는 설정. 쓰지 않았지만 그런 일이 있었어 보면 짐작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이것도 따로 쓰려고 하다가 패스.
9) 손 잡는 것, 눈을 바라보는 것, 솔직하게 말하는 것, 의지하는 것, 대화하는 것. 그게. 관계의 기반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그런 일을 할 수 없을 때가 있어. 예전엔 왜 그냥 말하지 않아? 라고 답답해 했는데 - 어느 순간 아아 그럴 수 없을 때가 있구나. 이해하게 되었어 차마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때. 그리고 그 말 할 수 없음이 결국은 모든 비극을 불러올 때. 그걸 알면서도 침묵해야할 때.
용기 가 필요해. 그럴 때 몇번이고 다시 말하기 위해서는.
10) 어설프지만 스스로는 조금 도전인 글이었어. 이런 글 써본 적도 없고 이런 구조도 그랬고. 조금 복잡하게 감정이나 상징이 얽혀있었고.
늘 기다려준다고, 마음이 움직였다고 말해준 냔들 고마워. 정말로 고마워. 그게 아니었다면 아마 포기해버렸을거야. 끝을 보지 않았을거야 아마. 난 그냥 없어졌을지도 몰라 모른 척하고 이 세계를 접어버리고. 고마워. 나는 어쩌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조금은 생각했어.
즐거웠어 그동안, 매우매우.
덕분이야,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11) 그리고, 딸기우유는, 연말을 맞아, 즐거운 마음을 팍팍 충전하여, 딸기우유빛으로 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