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ool/you II (h&k)

[학교2013][흥수x강주] 그건 너.II.1

april_m 2013. 2. 5. 14:00



- 흥수야아 

헉 

갑자기 들려온 자신의 이름이 흠칫 놀랐다 

또다 

어떻게 매번 당할때마다 놀랄 수가 있는지 스스로 민망해하며 마음을 가다듬고 돌아보니 
대합실 벤치 위에 예의 그 인물께서 해실해실 웃으며 앉아 있다 

- 이야아.. 박흥수다아... 

에휴... 

- 이거 먹고 술 좀 깨라 

익숙하다 못해 이젠 아예 습관처럼 흥수가 주머니에서 꿀물 한병을 꺼내 쥐어주고 귀찮다는 듯 역무실로 걸어간다 


- 오늘도야? 

영 좋지 않은 표정으로 들어와 옷을 갈아입는 흥수를 보고 역무원이 웃으며 말한다 
그냥 고개만 끄덕, 긍정하고 퇴근 준비를 한다 

- 오늘은 평소보다 좀 빠르네? 

그제야 시계를 보니 여섯시 이십분이다 
근데 벌써 저 상태라니... 오늘 집에 들여보내기 힘들겠구만 ... 하는 생각에 흥수는 벌써 난감하다 

- 좀 일찍 들어가보겠습니다... 친구가... 

멋쩍게 보고하니 다 안다는 듯 역무원이 어서 가보라고 손짓한다 

- 여자친구를 그렇게 밖에 두고 굳이 십분을 채우고 가라 그러면 얼마나 불안하겠냐 어서 가봐 
- ... 여자친구 아닌데요... 

이미 듣고 있지 않다는 걸 알지만 굳이 덧붙인다 

- 내일 뵙겠습니다 

인사를 마치고 터벅터벅 아까의 장소로 돌아와보니 그새 꾸벅꾸벅 졸고 있다 

어휴 이 진상 진짜..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여자애가 겁도 없이 지하철역에서 술먹고 잘 생각을 하다니... 
그래도 두 손에 빈 꿀물병을 꼭 쥐고 있는 걸 보니 마시긴 한 모양이다 

- 이강주 야 이강주 일어나 

흥수가 귀찮다는 듯 손끝으로 강주를 대강 흔들자 그제야 화들짝 놀라며 깬다 
이럴 때 보면 꼭 눈도 못 뜬 강아지 같다 강아지라서 강주인가 
흥수는 엄한 라임 맞추기를 해보고 스스로 어이가 없어서 고개를 흔든다 

- 박흥수우... 히잉... 

강주가 눈을 뜨자마자 제 팔에 매달려온다 
흥수는 훠이훠이 귀찮다는 듯 강주의 팔을 뿌리치고 묻는다 

- 오늘은 또 뭐냐 
- 그보다, 배 안고프냐? 우리 치맥할까? 

너... 이미 많이 마신 거 같은데... 

흥수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킨다 
지금 벌써 치맥..? 아니 애초에 어디서 이렇게 많이 마시고 온거냐 묻고 싶지만 
오지랖은 지금도 충분한 것 같아서 대신 강주의 가방을 휙 둘러메고 앞장선다 


졸업 후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삶을 살던 순수오이지 멤버들은 지훈의 입대 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줄줄이 군대에 갔고 
다리 부상 때문에 흥수는 대신 집 근처 지하철역에서 공익근무를 시작했다 
규칙적으로 출퇴근을 하는 생활이 마치 학교 다닐 때 같아서 나름대로 할만했고 
말없지만 할일은 하는 요원으로 인식되면서 근무 생활도 별다른 문제 없었다 
어쩌다 전방으로 배치가 된 남순은 낯간지럽게도 편지를 보내왔고 
이건 뭐냐 짜증을 내면서도 그럭저럭 안부 인사 정도는 전하는 - 별일없다 건강해라. - 변화없는 평온한 삶이었다 

이강주라는 폭탄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 어 박흥수다 

근무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어느 오후, 
플랫폼에 취객이 있다길래 아니 뭔 대낮부터 취객이냐 중얼거리며 내려가보니 낯익은 인물이 벤치에 쪼그리고 있었다 
게다가 흥수를 보고는 해실해실 웃으면서 비틀비틀 일어나더니 갑자기 폭 쓰러져 자신의 다리를 붙들고 울기 시작했다 

- 흥수야아 ㅠㅠㅠㅠㅠ 

이... 이건 또 뭔 상황이냐 

흥수는 황당하기 그지 없었지만 
자신을 알아본 강주를 그냥 버리고 올 수도 없어 거의 들다시피 데리고 올라와 
역무실 구석에 앉아 강주의 이야기를 삼십분 넘게 들어준 후에야 겨우 달래서 집에 들여보냈다 


그날 이후 쭉 이런 식이다 

규칙적으로 술을 드시고 찾아와 퇴근하는 흥수에게 매달려 한바탕 그간 있었던 일을 쏟아낸다 
지난 학기에는 매주 수요일이더니 이번 학기가 시작되고는 매주 금요일마다 찾아와 이러고 있다 
방학 때 시도때도 없이 찾아온거에 비하면 그나마 요즘은 날이라도 정해놔서 다행인건지... 
처음에는 그래도 먼저 문자도 보내고 연락도 해서 오늘 시간 되냐 물어 보기라도 하더니만 
요즘은 아예 퇴근시간에 맞춰 대합실에 와 있다가 번번이 저를 놀래키곤 했다 

강주가 쫑알거리는 동안 자신은 그저 주유소 앞 바람 풍선 인형처럼 뭔가 말할 대상으로 앉아 있기만 해도 충분하다는 걸 
이런 자리에 세번째 끌려오던 날에 이미 깨달았다 
그래도 네번째던가 다섯번째였던가 끌려간 날은 내가 벽이나 다름없다는 건 알겠다만 그래도 내가 대체 왜 여기 와있는거냐 싶어서 

- 넌 친구도 없냐? 송하경은 어디 두고? 

라고 물었고 그때까지 흥분해서 떠들던 강주의 얼굴이 순식간에 스위치 내린 것처럼 어두워졌던 적도 있었다 

- 하경이 교환학생 갔어 한국에 없어 

꼭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왈가닥 이강주가 이런 표정도 있나 싶어서 좀 놀라웠다 

- 야 그리고 넌 좀 들어주면 안되냐? 내가 미안해서 매번 술도 사는구만 너도 애들 다 군대가서 할일없잖아 

차라리 그렇게 발끈하는게 이강주답지 

울 것 같았던 강주의 표정을 떨칠 수 없었던 흥수는 언젠가부터 으례 강주가 오는 날이면 꿀물을 주머니에 넣고 순찰을 돌기 시작했고 
퇴근 시간에 강주를 픽업해서... 질질 끌고... 하여간 매번 이렇게 되곤 했다 
퇴근 후부터 이강주 마음이 풀릴 때까지, 
대신 다음날 출근 시간이 있으니 열시반 전에는 일어나는 것으로 암묵적인 약속은 되어 있었지만 
이미 취해서 온 강주를 보면 오늘은 열시반을 넘길 확률이 높아보인다 
강주가 나서기 전에 어디 덜 시끄럽고 자리 편한데로 가서 자리를 잡아야 편히 들을 수 있다 
흥수는 근처 대형 치킨 집에 들어서자마자 강주를 던져놓고 건너편에 편안한 자세로 앉는다 

나도 참 오지랖하고는.. 

스스로 한심하다 생각하면서 아직도 조금 취해있는 강주에게 말을 건넨다 

- 오늘은 또 뭐냐? 
- 어... 어? 주문은? 
- 내가 했어 
- 우와 우리 흥수 좀 짱인데~ 이 누나는 니가 자랑스럽다 

뭐래냐 진짜 취했네 
아 오늘 저거 업어서 데려다 줘야하는 거 아냐.. 
흥수가 아무 말도 없이 강주를 바라보자 그제야 구멍뚫린 풍선처럼 새액새액 하고 쏟아낸다 

- 나... 진짜 재능이 없나봐... 

시작됐다.. 

강주가 이렇게 오는 날이 정해져있는 건 그날이 소위 합평 수업이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논술특기자로 문예창작과에 진학한 강주는 그러나 막상 입학 후에는 시 전공과 소설 전공 사이에서 갈팡질팡했고 
수많은 재능자들 사이에서 자신의 글이 평범한 것 같다며 좌절했다 
특히나 자신이 쓴 글을 돌려보며 서로 비판하는 합평을 힘들어했다 
합평에서는 자신의 재능에 대한 신랄한 이야기를 고스란히 들어야만 했고 
타인에 대해 나쁜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강주는 
자신의 작품을 비평당하는 것만큼이나 타인의 글을 비평하는 것을 특별히 더 괴로워했다 
간간이 하는 얘기를 종합해보면 남에게 싫은 소리 하는 게 아무래도 말이 안 나와서 다른 사람들 합평 때는 한마디도 못하고 
자기 글에 대해서 남들이 비평하는 얘기에는 가슴팍에 스크래치 팍팍 나는데도 그냥 웃으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오는 듯했다 

그냥 수업에서 힘들어하기만 하고 끝나면 상관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렇게 마음에 상처가 쌓이는 걸 강주는 견디기 힘들어했고 
그때마다 이렇게 흥수를 찾아와 마음이 풀릴 때까지 넋두리를 해댔다 

처음에는 얘가 왜 이러나 싶어서 긴장하고 들었고 그 다음에는 말하고 싶으면 말해라 하고 혼자 술을 마셨으나 
곧 그랬다가는 자신도 취한 채로 강주를 데려다주기까지 해야하는 어마어마하게 귀찮은 일이 벌어진다는 걸 깨달았다 
세번에 두번은 끝까지 마시는 강주를 차라리 멀쩡한 채로 데려다주는 것이 편하다는 결론을 내린 후부터는 
강주가 말을 쏟아내는 내내 맥주나 사이다 한잔을 나눠 마시며 이야기가 끝나기를 기다리곤 했다 

문제라면 마음에 쌓인 것이 많을수록 그 시간은 길어지고 넋두리의 강도도 세진다는 점이었다 
다섯시간에 걸친 넋두리를 부리다 큰소리까지 쳐서 흥수가 옆테이블에 사과하게 만들고 
결국 뻗은 강주를 집까지 업어다 데려다주는 엄청난 뒤치닥거리를 해야했던 어느 날엔가는 
급기야 강주의 학교에 찾아가서 그놈의 합평을 꼭 해야하느냐고 항의하고 싶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이정도로 중얼중얼 기운빠진 모습은 
아주 오래 전 잠시 송하경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짧은 기간 이후 처음인 듯 하다 
이상하게도 자신이나 남순에게는 그렇게 거침없이 강했으면서 언제고 합평 이후의 강주는 늘 풀이 죽어 있었다 

거참 이상한 녀석이란 말이야 

흥수는 한쪽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한다 

여자친구도 여러번 사귀어 봤고 심지어 누나도 있으니 여자가 낯설지 않다 생각했다 
그렇지만, 흥수의 주변에 이런 캐릭터는 없었다 
주로 조용하고 소위 여자다운 타입들이 더 많았다 
대개는 먼저 여자쪽에서 먼저 고백해왔고 딱히 싫지는 않으니 사귀긴 했지만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인 무심한 성격을 견디다 못해 떠나가는 패턴의 반복, 
그러니까, 차라리 뭘하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해주면 따라서 하겠는데 내내 가만히 있다가 마지막이 되면 왜 나서서 찾지 않느냐 날 좋아하긴 하느냐 라고 물어보는 바람에 내가 좋아하지 않은 건가... 싶어 우물쭈물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는 식이었다 

강주는 그런 수줍은 여자애들과는 매우 달랐다 
흥수가 싫은 티를 팍팍 내도 나는 이걸 해야겠으니 너는 동참해라! 라는 식이었고 
속상하면 속상하다고 울어 버리고 좋은 일이라도 생기면 앞에 있는 사람의 기분까지 확 띄워놓을 정도로 기분 좋은 티를 감추질 못했다 
감정의 기복이 확연히 눈에 띌 정도로 다르고 우울해했다가도 금새 헤헤 웃는 엄청난 회복력을 갖고 있어서 
흥수는 그저 강주의 변화를 관찰하는 것만도 흥미로웠다 

최대 다섯 시간씩 계속되는 강주의 넋두리를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을 수 있는 것도 어떻게 보면 
강주가 일주일 동안 쌓아놓은 이야기들을 듣는 것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잘 털어놓지도 않을 뿐더러 딱히 감정의 기복이 심하지 않은 흥수에게 강주의 이야기는 
꼭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감정이나 표현이 생생해서 
본인은 속상해서 하는거겠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슬픈 얘기마저 재미있었다 
그리고 순간순간을 묘사할 때마다 바뀌는 다채로운 표정도 신기했다 

자신은 문학이니 책이니 이런 건 잘 모르지만 이렇게 이야기를 재미나게 하는데 왜 그렇게 스스로 재능이 없다고 자책하는지, 
그리고 학교에서는 대체 이런 강주의 글 어디를 못났다고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 그렇게 내 글이 별로면 글보고 뭐라고 하지 말고 차라리 내 심장을 찢으란 말이야 ㅠㅠ 

아, 심장을 찢으란 표현까지 나오다니, 오늘은 단단히 마음이 상한 모양이다 
저런 얘기는 그때 말한 사람한테 직접 했어야지.. 미련한 녀석.. 

이전에는 그저 성격이 활달하구나 오지랖도 넓네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지난 몇개월간 이야기를 들으며 알게된 이강주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주는 게 싫어서 어떤 모임에서건 웃는 얼굴로 오지랖을 떨면서 고스란히 자기가 화살을 받아냈다 
미련스럽게. 
자기 말로는 착한아이 콤플렉스라는데 그건 잘 모르겠고 
그렇게 꾹꾹 참고 있으니 술버릇이 이렇게 안 좋지... 
란 건 확실하다... 
그나마 자신 앞에서만 이러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할지, 아니면 하필 자신 앞에서만 이러는 걸 불행이라 생각해야할지 모르겠다 

쉼없이 이야기를 쏟아내는 강주를 찬찬히 살펴본다 
오늘은 더 길어질라나 
근데 얘 좀 피곤해보이는게 그만 집에 보내야 할 것 같은데.. 

슬쩍 시계를 보는데 강주가 테이블을 쾅 내려친다 

- 하여간 마음에 안든다고! 

헉 너무 큰소리가 났다 

강주는 그제야 그때껏 한마디도 하지 않고 건너편에 앉아있던 흥수의 눈치를 살핀다 
늘 그랬듯 그다지 신경쓰는 것 같지 않다 
무슨 소리를 해도 덤덤하니 들어주는 흥수가 편해서 이렇게 찾아오기 시작한게 벌써 반년이 넘었다 

대학 문예창작과에 진학한 뒤 새 학교에 적응하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자신이 꽤나 활발하고 친화력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학교에서 마음 붙일 친구는 사귀기 어려웠다 
다들 어디서든 글은 좀 쓴다고 날리던 애들이었고 그만큼 자신의 글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했다 
글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미묘한 자존심 싸움이 시작됐고 그게 폭발하는 날이 대개 합평일이었다 
남에게 싫은 소리를 못하는 성격 때문에 합평 일이면 보통 꿀먹은 벙어리가 되기 일쑤였고 
끝나고 나와서는 다들 하하호호 잘만 하는데 자신만 꽁해있는 것 같아서 더 속상했다 
합평은 합평이고 친구는 친구지 라고 아무리 생각하려고 해도 제대로 풀어주지 않은 상처가 쌓일수록 동기들과 어딘가 거리감이 생겼다 

그 와중에 그나마 의지했던 하경은 교환학생을 떠나버렸고 
이건 진짜 필살기다. 라고 생각한 문장을 갈고 닦아 쓴 시가 난도질 당하던 날 
못 마시는 술을 머리 끝까지 마시고 비틀거리며 도착한 지하철 역에서 우연히 흥수를 만났다 
아는 얼굴을 보니 갑자기 울컥해서 그때껏 쌓아놨던 이야기를 눈물콧물 쏟으며 다 해버렸는데 
흥수는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준 뒤 꿀물을 쥐어들리고 집에 보냈다 

학교 다닐 땐 그냥 무게나 잡는 애라고 생각했는데... 
그 무게감이 자연스레 의지가 되기도 하는구나 

몇시간이고 무심한 표정으로 들어주는 흥수에게 다 얘기해버리고 나면 꼭 개운한 목욕을 한 것처럼 가뿐해져서 
저만 계속 얘기하니까 어딘가 불공평하고 미안하다 생각하면서도 합평을 한 날 마음이 상하면 찾아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미안한 마음에 나름 꼭 치킨이나 밥 사주면서 얘기하고 있긴 한데... 
역시 귀찮다고 생각하려나 이런 이야기.. 
어쩐지 벽에다 대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아서 좀 속상해진다 

- 야 너 듣고 있어? 
- ... 듣고만 있으면 된다며 

괜히 시비 걸어보려고 했는데 조용한 흥수의 응수에 할 말이 없다 
그래... 듣고만 있으면 된다고 내가 그러긴 했는데... 

- 그래도 안 듣는 거 같아서 외롭다 뭐 

헉 또 본심이 튀어나와버렸다 
힐끔 흥수를 바라보지만 여전히 미동도 없다 

쳇. 

- ... 다 너 때문이야... 
- 누구 때문이라고? 
- 아닙니다아.. 제가 성격이 나쁜 탓입니다 

흥수 탓 한번 해보려다가 바로 꼬리를 내린다 
가만히 있다가 한번씩 얼굴을 들이대며 묻는 흥수에게는 도저히 강짜를 부릴 수가 없다 그정도 염치는 있어야지.. 

에이 괜히 불러냈나봐 

강주는 또 풀이 죽는다 
그런 풀 죽은 강주를 한번, 시계를 한번 본 흥수가 주섬주섬 강주의 짐을 챙긴다 

- 바래다줄게 가자 
- 아 아냐 나 혼자 갈 수 있어 나 얼굴이 무기고 누가 날 건드릴 리도 없고 

화들짝 놀라 거절하는 강주를 빤히 바라보다 터벅터벅 가방을 들고 나가버린다 

- 야 야 나 진짜 혼자 가도 괜찮은데 
- 미안하면 이건 니가 사고 
- 그거야 당연하고 

허둥지둥 따라나가다 결제를 하려고 보니 오늘도 흥수는 사이다 한잔. 
아 또 미안하다 괜히 

이놈의 술주정 끊어야지 진짜 

매번 다짐하지만 다음주면 또 찾아올 게 뻔해서 스스로도 안 믿긴다 
급하게 결제를 하고 가게를 나서니 
강주의 가방을 어깨에 걸친 흥수가 먼 산을 보고 섰다 

- 미안 가방 줘 내가 들게 

강주가 부랴부랴 흥수에게서 어깨에 걸린 가방을 벗겨내지만 
흥수는 반쯤 내려놓은 가방을 도로 올려멘다 

- 이강주. 

가방을 주는 대신 뜬금없이 이름을 부르자 강주가 물음표가 가득 떠서 주인 보는 강아지처럼 눈을 깜빡깜빡한다 
이럴 땐 영락없이 비맞고 돌아온 강아지 같다 
겁도 없이 바락바락 대들 때는 언제고 털 젖은 것처럼 축 처져서는 원 
강아지에 대입하니 딱 맞아떨어지는 게 우스워서 피식 웃어버린다 
답지 않게 남 생각하느라 무리하는 미련한 녀석. 

- 무리하지 마라 

말없는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던 강주의 이마를 통, 튕기면서 한마디 남기고 
흥수는 먼저 강주네 집 방향으로 저벅저벅 발걸음을 옮긴다 

- 빨리 안오면 버리고 간다 

나 지금 뭔가... 당한거 같은데....? 
벙 쪄있던 강주는 그때서야 부랴부랴 흥수의 뒤를 좇는다 

- 야 같이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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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틈틈이 등장하던 흥수*강주의 옛 이야기가 떠오르는데 
이게 애초에 설정은 지훈 하경 글에서 시작했으니 분류를 대체 어떻게 해야하는지... 고민하다가 
그냥 그건 너, 의 확장판 느낌으로 올려... 
따라서 이 글에는 지훈이도 하경이도 등장하지 않습니다아~ 

지난 댓글 어딘가에 지훈*하경 말고도 다른 커플들로 확장판이 있었으면 하는 말이 있길래 써봤어 확장판도 마음에 들길 바래 :) 
뭔가 흥수나 강주나 서로 좀 신기해하면서 솔직한 커플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처음에 어떻게 둘이 서로 호감이 되었을까 상상해봤어 사귀지는 않고 썸탈 무렵... 

투경과 등등 다른 커플링으로 불타는 창작방에 외로이 지훈*하경 글을 쓰고 있지만 - 
(응 외로워 ㅠ 흥수-하경이나 남순-하경 글 읽으면 몰입이 깨져서 다른 냔들 글도 잘 못읽고 흑 슬퍼라) 
댓글 달아주는 베이리들 덕에 계속 아이디어는 떠오르네 늘 댓글들 고마워 


생각보다 흥수*강주 얘기가 길어져서 넘버링을 새로.. 기본적인 설정은 위에서도 말했듯이 지훈*하경 의 그건 너의 세계에 기반.... 거기도 짬짬이 등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