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2013][흥수x강주] 그건 너.II.7
사라졌다
불안해서 너 못 만나겠다. 란 폭탄선언을 마치 들어가서 전화해 라고 하듯 무덤덤히 말하고
이게 무슨 의미인가 싶어 어버버하고 있는 자신을 수십번도 더 쓰다듬다 애써 집에 들여보내고서는
그 후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처럼
전화는 불통에 아르바이트를 하던 가게도 그만뒀다고 하고
늘 흥수가 자신을 데려다준지라 흥수의 집이 어딘지 모른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하필 교생 실습 마지막 주라 정신없이 바쁜데
거기다 흥수까지 사라져버리니 강주는 정말 돌 것 같았다
만나면 우선 주민등록등본부터 떼오라고 해서 받아놔야겠다
쓸데없는 다짐을 하면서도 처음 사흘 정도는 그래도 설마 계속 연락이 안되겠어 했다
교생실습을 마치고 아무리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하고 여기저기 찾아도
자신의 힘으로는 숨어버린 흥수를 끌어낼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열흘째 되던 날,
결국 마지막 방법을 써야겠다 결심하고 강주는 오랜만에 남순에게 연락한다
[지금 뭐해?]
=
- 나 지금 알바 중이거든?
삐딱한 자세로 앉아 건너편의 강주를 게슴츠레 쳐다보던 남순이 귀찮다는 듯 말하고 일어서려고 한다
- 안 바쁜 거 아니까 도로 앉지?
역시나 삐딱하게 다리를 꼬고 팔짱을 낀 채로 남순을 쳐다보던 강주가 말한다
안 그래도 오늘따라 장사가 안되도 너무 안된다
텅빈 커피숍에 강주 혼자 덜렁 앉아 있는 걸 깨닫고 멋쩍게 큼 헛기침을 한번 하고 다시 앉는다
- 그러니까 용건이 뭐냐고
- 흥수, 연락 돼?
지 남친을 왜 나한테 와서 찾는다냐
- 요새 며칠 연락 안해서 몰라 왜
- 연락이 안돼
- 바쁜가보지
- 야 -_- 바쁘다고 박흥수가 나랑 연락이 안된다는 게 말이 돼?
- 너랑도 연락이 안 되는데 왜 나한테 와서 찾냐고오
짜증을 버럭 내려는데 강주 표정이 애처롭다
이강주 답지 않게 왜 저래 진짜
마음이 약해진다
- 갑자기 헤어질 기세로 잠수 타잖아 니가 연락해서 왜 그러는지 좀 알아봐 줘
- 아 내가 왜
- 흥수 만나줘서 고맙다며 니가 그랬잖아 그 은혜를 오늘 갚으라고
- 그거야 말이 그렇단거고
귀찮다
휘휘 손을 내젓는다
내가 왜 늬들 연애사에 끼어야 하냐
- 안 해주면 해줄 때까지 나 매일 와서 여기 앉아 있는다?
- 그러던가 나야 매상 올라가고 좋네
무관심하게 대답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남순을 보고 강주는 결국 초강수를 둔다
- 너, 나한테 뽀뽀했다고 소문내버릴거야
- 뭐?
- 만약에 흥수가 나한테 아직 마음 있는 거면 그 얘기 들으면 어떻게 할 거 같냐?
- 말이 되냐 내가 너한테 왜
- 니가 소주 한 잔 반 먹고 그랬다고 그러면 그럴 수도 있다 할 걸
설마 그런 말에 우정이 깨질리야 없겠지만 불편해지긴 할게다
아니 애초에 이런 말도 안되는 소리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명해야되는거냐
이 독한 것... 남 술 못 마시는 걸로 협박하다니... 그렇게까지 이용해 먹어야겠냐.. 그래도 친군데
머리가 지끈거리는 걸 느끼며 남순은 도로 자리에 앉는다
- .... 나쁜 년
- 너 나한테 욕한 것도 이른다
- 양심이 있으면, 니가 지금 한 짓을 생각하고 그런 말 해라....
- 오죽하면 내가 너한테 이러겠냐.. 고회장 도와줘 쫌.. 응?
- 나한테 애교 부려도 안 통한다 -_-
- 그래서, 해줄거야 말거야
- 아씨... 뭘 하면 되는데 내가
=
보아하니 술도 안 마신 것 같은데 어째 저리 취한 것처럼 밍기적거리고 있나
시간을 보니 애 있는 유부남에게는 이미 통금이 가까웠다
앞에 놓인 커피잔은 손도 안 대고
빨대를 접다접다 아예 바스라버릴 기세로 만지작 거리고 있는 흥수에게
퉁명스럽게 말한다
- 박흥수 너 나한테 고백할거냐?
- 네?
그제야 깜짝 놀라 자신을 쳐다보는 표정이 길 잃은 아이 같다
답답한 놈..
- 곧 우리 세인이 책 읽어주고 재워야할 시간이라서 말이다 할 말 없으면 그만 일어나도 되겠냐
세찬이 정말 일어설 것처럼 주춤하자 그제야 흥수가 더듬으며 말을 꺼낸다
- 아... 저... 강세찬 선생님
풀 네임을 부르면 왜 불안해지는 걸까
애초에 인재가 아닌 자신에게 연락이 왔을 때부터 수상했다
아무리 학생 중에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지만
졸업을 하고도 계속해서 잘 살고 있는지 마음 쓰이던 이 녀석들은 특별히 더 아픈 손가락이었다
인재가 발 동동 구르며 이 녀석들을 챙길 때
지 인생 지가 알아서 하게 냅두지 뭘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핀잔을 주긴 했지만
자신도 영 마음이 가는 걸 부인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퉁퉁거리는 자신의 성격 상 인재에게만 살갑게 구는 아이들의 태도가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인재를 통해서 겨우 근황 정도만 듣는 정도였다
그러니 갑자기, 졸업 후 처음으로 자신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았을 때
인재 아니라 강세찬 선생님을 뵙고 싶다고 콕 집어 말하는 용건을 듣고도
무엇 때문에 보자고 하는 건지 짐작이 되질 않았다
돈이 필요한가 이렇게 망설이는 걸 보면
아직도 입을 떼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흥수를 보며 결국 세찬이 먼저 말한다
- 뭐냐?
- 저기.... 저....정인재 선생님... 괜찮으셨어요?
이건 또 뭔 소린가 싶어서 대답없이 물끄러미 바라보자
그제야 말문이 트인 듯 흥수가 쏟아낸다
- 괜찮으셨어요? 저나 오정호 때문에 고생하실 때, 자꾸 저희 때문에 밖으로 다니실 때요
아직도 고등학교 교실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는 것 같은데
이렇게 긴장한 표정은 자신이 교내 봉사는 뭘 시킬지 기다리고 있을 때랑 같은 얼굴인데
니가 드디어 내 마음을 알게 되었구나
앞에 앉은 흥수는 심각한데 피식 웃음이 난다
이게 인재가 말했던 애들 키우는 재미란 걸지도 모르겠다
애들이 성장하고 달라지는 걸 보면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라고 눈을 반짝이며 말했던
내 생각도 좀 해주지 그래요? 라고 투정부리듯 핀잔 줬지만
오늘 누군가 자신의 손을 밀쳐내지 않았다고 달라졌다고 기쁜 듯 말할 때의 인재는
마치 세상을 다 얻은 듯한 표정이어서 지켜보는 자신도 일순 경건해지곤 했다
이게 인재가 말했던 애들이 달라지는 순간인가 싶다
언제까지나 아이인 줄 알았더니 이제 제법 진지한 고민이란 걸 하게 되었구만...
잠시 상념에 잠긴 자신의 대답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흥수를 보며
세찬은 이녀석이 뭘 원하는 걸까 고민한다
너는 지금 내가 비슷한 상황이라고 생각해서 왔는지 모르겠다만,
동질감 느끼지 마라 엄연히 나는 니 선생이다 너랑은 달라
퉁박주는 대신 넘겨짚어본다
- 이강주가 속 썩이냐
세찬에게는 늘 감정없이 퉁명스런 무표정이더니만 그냥 한번 던져본 말인데 순식간에 무너진다
어허 이거 사진으로 찍어놔야 하는데.....
이녀석 제정신 돌아오면 이걸로 한동안 부려먹을 수 있을거 같은데.. 카메라가 어딨..
세찬이 상황에 맞지 않는 엄한 생각이 들정도로
흥수의 울먹거리는 얼굴은 예상치 못했던 만큼 극적이다
- 불안해요... 저렇게 아무 손이나 다 잡아주려고 하고...
상관없다 생각하면 그만인 사람을, 왜 괜찮다고 밀어내는데도 저렇게 잡아주려고 하는 건지
그러다 진짜 크게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나 저러다 제 앞에서 부서져버릴까봐 무서워서요
상처 받는 걸 볼 때마다 제 심장이 덜컥 끊어지는 것 같아요
뭘 그런 걸 신경쓰냐 이 겁쟁아 라고 아무렇지 않게 웃어주고 말려고 했는데
흥수의 목소리가 너무 간절하다
아 상담은 나랑 너무 안 맞는데...
거의 울먹거릴 기세인 흥수를 한번 보고 머리를 벅벅 긁은 세찬은 진지해진 목소리로 입을 연다
- 박흥수, 세상에는 말이다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지 않으면 그 결과가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각자의 인생은 각자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내가 불안하다고 자기 방식대로 못 살게 하면 그 사람이 죽어
- ....그러면 어떻게 해요
- 각자 인생이니까 각각 알아서 살게 그냥 둬야지
너무 간단하게 대답해버리는 세찬이 원망스럽다
그렇게 쉽게 정할 수 있는 문제였으면 굳이 찾아오지도 않았다
불안해서 도저히 두고 볼 수가 없는데 그렇다고 안 볼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져서
며칠을 고민하다 겨우 용기내서 연락을 한 거 였는데
원래 그렇게 살게 내버려두라니
무심하게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세찬을 향해 퉁명스럽게 말한다
- 그게 되요? 선생님은 안 불안하세요?
이놈이 한번 얘기하면 딱딱 알아들어야지...
결국 설명을 다 하게 만드는구만...
낯간지러운 기분이 되는 걸 꾹 참고 시선을 어중간하게 흐리면서 대답한다
- 박흥수, 특별히 얘기해줄테니 잘 들어라
정작 흥수가 진지하게 바라보자 그만두고 싶다
정말 낯간지러운 건 못 참겠는데... 그래도 제자의 인생이 걸린 문제니..
아 역시 선생은 어렵다...
- 세인이 엄마... 그러니까 정인재 선생님은... 내가 되고 싶었던 선생님이란 말이다
나는 그 사람처럼 그렇게 마지막까지 니네 손 안 놓고 그러는거 안되는 사람이거든
....고개 끄덕이지 마라 자꾸 그러면 얘기 안해준다 -_-
저도 모르게 수긍하고 있던 흥수가 황급히 멈춘다
이 녀석 진짜... 이거 얘기한다고 알아는 먹을라나....
- 그러니까 어찌 보면 내가 못 하는 목표를 향하도록 부추긴 게 나인지도 모르는데
그런 나 때문에 그 사람이 상처받고 망가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그게 얼마나 무서운줄 니가 알겠냐
숨이 턱 막힌 표정으로 바라보는 흥수를 향해
이게 어른의 여유다, 라는 듯 씩 웃어준 세찬은 무덤덤하게 말을 잇는다
-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 수는 없어 모든 사람이 그런 꿈을 꿀 수도 없고
꼭 꿈을 꿔야만 올바른 인생을 사는 것도 아니고 같은 꿈을 꿔야 같은 길을 가는 것도 아니야
다만, 그 사람의 꿈이 부서지지 않게 지켜줄 수는 있겠지
모든 사람을 책임지려는 한 사람을 책임지는 건 가능하니까
감동받은 듯한 흥수의 표정에 세찬이 오히려 견딜 수 없이 간질간질해진다
- 물론, 나쯤 되니까 인재씨도 지켜줄 수 있는 거다만
민망함에 자화자찬을 해서 굳이 감동적인 분위기를 깨고 시계를 보니 진짜 귀가해야할 시간이다
이쯤 되면 이 녀석도 뭔가 깨닫는게 있겠지
아직도 멍한 표정인 흥수를 남겨두고 세찬은 자리에서 일어선다
- 지킬 능력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면 연락하시고 제자님
=
아 이 새끼 진짜... 혼자 이 가게 술 다 퍼마시겠네
쯧쯧 혀를 차며 남순은 조심스레 주머니에 넣어뒀던 휴대폰을 꺼내든다
절대적으로 주량에서 밀리는 절더러 어떻게 흥수를 취하게 해서 이야기를 캐내라는 건지
강주의 주문을 듣고 그저 어이가 없었지만
퀭한 얼굴로 나타난 흥수는 앉자마자 안주도 없이, 심지어 남순에게 술잔을 한번 권하지도 않고
그럴거면 잔은 왜 굳이 쓰냐 싶은 속도로 술을 마셔댔다
결국 자신은 치사량 근처도 안간 맥주 한잔으로 버티는 동안
흥수는 대략 정신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이거 원 편하게 미션 수행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하는지
이렇게 넋놓은 친구를 안쓰럽다 슬퍼해야하는지
이렇게까지 강주의 명령을 수행해야하는 이유가 뭔가 싶어서 갑자기 스스로 한심해진다
이것들은 그냥 좋게좋게 좀 만날 것이지 왜 헤어진다 만다 해서 중간에서 날 괴롭게 하는게냐
내가 베이리랑 헤어진지 한달 밖에 안된 거 몰라서 이러나!
이것들을 친구라고 내가 진짜....
취한 흥수를 보며 억울해하고 있는데
기다렸다는 듯 강주의 문자가 도착한다
[그래서 뭐래?]
[좀 있어봐라 아직 안 물어봤어]
[도착한지가 언젠데 아직이야]
문자는 곱게 왔지만 아마 건너편에선 엄청 욕하고 있겠지
귀가 다 간지럽다
내가 이게 뭔 팔자래 진짜
=
고남순, 하여간 이럴 땐 더 느려가지구
강주는 손톱을 잘근잘근 물어뜯으며 울리지 않는 휴대폰만 뚫어지게 바라보다
부르르
카톡 알림 진동이 울리자 마자 잽싸게 확인한다
[이강주 너 요새 사고친거 있냐?]
[뭔 사고?]
[너 못 지켜줄 거 같아서 너 못 만나겠단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아 몰라 니가 와서 직접 듣든가]
[아무리 급해도 나 헤어진 거 알면서 이런 거에 써먹는거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하지 않냐?]
[닥치고 흥수가 하는 말이나 찍어서 보내라 -_-]
대체 무슨 말인지
못 지켜줄 거 같아서 못 만나겠다는게 무슨 논리인지 모르겠다
[너 오지랖 아직도 부리고 다니냐]
[얼씨구 너 학교 애들도 잡으러 다녔냐?]
[너 오지랖 좀 작작해라 내가 들어도 식겁하구만]
.....
[아씨.. 짜증나...]
[왜]
[너 치마 입고 학교 가는 것도 불안해서 싫댄다]
[이강주 너 진짜 나한테 밥 꼭 사라]
[나 완전 짜증나거든 지금]
한참 말이 없던 휴대폰이 마침내 긴 문자를 토해낸다
[너 사고칠 때마다 심장이 떨어질 것 같아서 죽겠단다 널 지켜줄 능력은 안되고 냅두자니 불안해서 죽겠고 그래서 너 못 보겠대]
[이새끼 뭔 미친 소리냐 이거]
[너 사랑한댄다 젠장 -_-]
[제발 부탁인데 이런 건 둘이 직접 얘기해라 좀...]
=
[보는 거 알아 답 좀 해]
지치지도 않는지 계속 보내는 강주의 문자를 확인하고 다시 휴대폰을 엎어버린다
며칠째 술독에 빠진 것처럼 퍼마셨더니 머리가 지끈거린다
무거운 몸을 겨우 일으켜 라면이라도 끓여먹을까 싶어 부엌으로 나가려는데
다시 휴대폰이 알림음을 낸다
[오늘 ** 에서 기다릴테니까 나와 올 때까지 기다릴테니까]
휴...
한숨이 나온다
끈질기기도 하다 이강주는
자신이 저를 왜 피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세찬의 말을 듣고 보니 과연 스스로 강주의 꿈을 지켜줄 힘이 있는 건가
상처받지 않게 막아서줄 방패가 될 수는 있는 건가 회의가 들어서
선뜻 다시 손을 내밀 수가 없었다
불안불안해하면서 보자니 죽겠고 그렇다고 안 보자니 더 죽겠어서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강주는 한동안 안하던 연락을 갑자기 어제부터 끈질기게 해왔다
나 자신없다.... 니가 좀 놔주라...
애써 외면하고 방을 나서는데 다시 알림음이 울린다
무심코 확인한 흥수는 화들짝 놀라 휴대폰을 떨어뜨리고 만다
[안 나오면 이강주 박흥수 애 임신했다고 단체문자 돌릴거야 그래도 괜찮으면 무시하던가]
기집애가 왜 이렇게 극단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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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극단적으로 끊어서 미안 근데 이정도 아니면 흥수가 나오지 않을거 같고... 남은 이야기까지 붙이기엔 약간 길어서;
불쌍한 우리 남순이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