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ool/you (j&h)
[학교2013][지훈x하경] 그건 너. 4
april_m
2013. 1. 26. 14:30
어두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니 더 깊은 어둠에 잠겨있다
달칵
불을 켜도 휑한 기운은 사라지질 않는다 피곤한데 잠이 올 것 같질 않다
지훈은 소파위에 가방과 겉옷을 던져두고 천천히 냉장고 쪽으로 걸어간다 물을 막 마시려는데 전화 벨이 울린다
*인재샘*
액정에 뜬 이름을 확인하고 지훈이 황급히 전화를 받는다
- 샘! - 어 그래 지훈아 - 어쩐 일이세요 - 고맙다 또 이런 걸 다 보내고. 안보내도 괜찮은데 - 아녜요 못 찾아뵙고 그런 것만 보내서 죄송해요 - 너 바쁜거야 대한민국이 다 아는데 뭘 찾아오고 그래. 네가 잘되서 선생님은 정.말. 기쁘다
이 분은 항상 이런 식이다 본인이 뭘 해줬는지는 기억하지 않고 내가 어떻게 움직였는지만 기억한다 그때 인재가 자신을 믿어주지 않았다면, 자신보다 더 열심히 길을 찾으려 동분서주하지 않았다면, 지훈은 아마 그곳에서 주저앉아버렸을지도 모르는데. 예의 또박또박한 어조로 자신을 칭찬하는 인재의 목소리에 고개를 까딱 하면서 강조하고 있을 인재의 얼굴이 떠올라서 지훈은 새삼 울컥하는 마음을 다스린다
- 에이 샘 이정도로 이러시면 어떻게 해요 저 이제 더 잘 될건데~ 제가 월드스타 되서 샘 세계 일주 시켜드릴게요
자신의 눈에는 여전히 고등학생으로만 보이는 지훈의 넉살에 인재는 피식 웃고 만다
- 아이구 그래 장하다 우리 지훈이 - 헤헤 - 아 그래 영화도 잘 봤어 고생했더라 - 샘도 그날 오셨으면 좋았을걸요 애들이랑 오랜만에 다 같이 만났는데.. 너무 늦어서 힘드셨겠지만.. - 강샘도 너 칭찬하시더라 - 엣... 그래요...?
지훈이 데뷔 시절부터 어지간한 인터뷰마다 하도 인재에 대한 감사와 애정을 말하고 다닌 통에 지훈의 팬이라면 '정인재 샘'은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었고 덕분에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네 이름을 대고 내가 그사람이다, 하면 눈빛이 달라진다고 인재는 종종 지훈에게 웃으면서 말하곤 했다 다만 워낙 어려보이는 인재의 신상이 팬들 사이에서 털리면서 -_- 이것은 잠시 스캔들 비슷한 해프닝으로 이어지기도 했고 (난 선생님이고 넌 학생이야~!) 덕분에 지훈은 한동안 인재를 찾아가는 대신 세찬의 선물까지 푸짐하게 골라서 택배로 보내는 편을 택했다 인재가 직접 말한 것은 아니지만 이녀석이 어디서 엄연히 임자있는 유부녀랑 스캔들이냐며 세찬이 펄펄 뛰었다는 소문이 졸업 후 학교와 거의 연이 없는 지훈의 귀에까지 들려왔기 때문이다
- 그으~래 너 설마 진심으로 제자를 질투하는 선생님이라고 생각한건 아니지?
지훈의 마음 한구석이 뜨끔하다
- 후후 섭섭하셔서 그러신거야 너 너무 내 얘기만 했잖아 - 아 그거야.. - 고3 때 언어영역 점수 올려준게 누군데 그 얘긴 쏙 빼먹냐고 그러시더라
그거야 샘이 부탁하셨으니까.. 들어주신거구요...
지훈은 목구멍 끝까지 올라오는 말을 꿀꺽 삼킨다 어쨌든 고3 내내 왜 내 언어영역 내공을 너에게 써야하는지 모르겠다고 툴툴거리면서도 본인이 맡아서 성적을 못 올린 학생이 없다며 끝까지 지훈을 챙긴 강샘이었다
- 지훈아 니네는 다 우리 부부의 자식같은 존재야 알지?
꼭 끝이면 진지한 목소리로 마무리하셔서 찔끔 울리고 마는 정인재 샘 필살기 납시셨다
- 우리 세인이 만큼이나 니네는 우리 부부한테 중요해 - 네 샘 알아요 - 밥 잘 챙겨먹고 다니고 - 네 샘 다음에 찾아뵐게요 - 그래 이왕이면 학교로 와서 나 위신 좀 세워주라
웃음기 섞인 인사를 마지막으로 전화를 끊는다
혼자 남겨진 방은 여전히 휑하지만 아까처럼 쓸쓸하지는 않다
세상에 자신을 낳아준 부모가 있다면 지훈에게는 자신을 발견해준 부모가 또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정샘을 만나지 못했다면 자신의 인생은 어찌 되었을지 과연 졸업이나 할 수 있었을런지
=
마침내 졸.업.식.
유일하게 대학에 진학한 지훈을 두고 정호는 여전히 마음에 안든다는 듯 축하도 부정도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니가 노력한다고 뭐가 달라지냐 - 핏대 세웠던 때와 달리 내색은 안하지만 제법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았고 이경은 이제 너 대학간다고 우리 잊고 그러면 안된다 ㅠㅠ 라며 징징거리는 시간이 늘었다
- 근데 국문과는 뭐하는데냐? - 정샘 나온데 아니가? 지훈이 니도 나중에 국어쌤 될라고? 이야
변기덕이 뒤에서 종알종알 갈구는데도 지훈은 그저 손에 받아든 졸업장이 감격스러워서 뭐라 답을 하지 못한다
대학이라봤자, 서울에서 간신히 통학이 가능한 지방대학,이지만 지훈이 고 3 한해 동안 보여준 노력은 놀라웠고 당연히 기술관련 학과에 진학해서 바로 취업을 하겠거니 했던 초반의 목표와 달리 처음 목표했던 성적보다 훨씬 잘나온 언어 + 사탐 영역 점수를 받아들고 한 진학 면담에서 지훈은 담임 선생을 기함시키는 고집을 부렸다 결국 '이 학생은 정선생님이 끼고 도셨으니 알아서 하십시오' 란 말과 함께 인재에게 인수인계되고 말았다
- 국문과. 가려구요 - ... 왜? - ... 샘이 왜라고 하시면 안되죠 -_- - 어 .. 그렇긴 한데 ...
당황한 인재가 말을 잇지못했다 결국 자신도 아이에게 꿈 대신 현실을 택해야한다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그냥요.. 샘.. 그냥... 거기 가면 좀 인간답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 ...... - 제가 진짜... 책이니.. 이런거 안 읽고 살았고... 지금껏 읽은 거라고는 수능 준비하면서 본게 다긴 한데요 그래도 거긴 뭔가 다른 게 있을거 같아서요..
다른 것은 없다는 걸 인재는 안다
국문과의 취업률 수치가 눈 앞에서 아른거린다
등록금은... 나중에 사회에 나와서 갚아야할 학자금은 또 어떻고...
인재는 간절한 제자의 눈을 바라보고 다시 한번 망설인다
- 샘 무슨 생각 하시는지 알아요 그리고 저도 그거 고민 안한거 아니예요
또렷한 지훈의 말에 인재는 네가 생각한 것 보다 더한 허들이 네 앞에 놓일 거라고 애써 말리고픈 이율배반에 사로잡혀 아무 말도 건네지 못한다
- 샘. - .... - 이 꿈을 저는 샘한테 받았어요... 저한테 이거 포기하라고 하지 마세요...
인재는 그 말에 더욱 입술을 꾹 다문다 고생길이 훤 한데 내가 널 거길 어떻게 보내니 한번 더 말려 보고픈 마음에 지훈을 바라보지만 단호한 눈빛에 마음을 접는다
- 집에서는 아시니? - .... - 그래도 말씀은 드리고 도장 받아와 그럼 원서 도장 찍어줄게
그제서야 경직됐던 지훈의 표정이 풀린다 그렇게 어디라도 국문과라면 좋다. 라고 집어넣은 원서 중 하나가 걸렸고 마침내 이지훈은, 생각지도 못한, 국문과 대학생이 되었다.
어수선한 졸업식이 끝나고도 여전히 교실을 떠나지 못한 아이들이 여기 저기 보인다 잊으면 안된다 연락 자주 해라 남자애들 끼리 모여 거칠게 투닥거리고 있는데
- 야 이지훈!
깡주가 버럭 소리친다
뭐... 뭐야...
놀란 지훈이 쳐다보자 강주가 척척척 자신 앞으로 걸어오더니 어깨에 턱 하니 팔을 올리고 엄포 놓듯이 말을 잇는다
- 너 우리 쏭한테 잘해라~? 쏭이 널 위해서 해준 은혜를 잊은 건 아니겠지? 쟤가 지 수시도 바쁜데 너 때무... 읍... 왜 이래.. 쏭~ 이거 놔~
말을 쏟아내는 강주의 입을 황급히 틀어막은 하경은 하하하...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눈인사만 하고 자리를 급하게 떴다
은혜? 그래 은혜는 은혜다 은혜를 잊으면 인생이 망가질 때도 의리만은 잊지 않았던 이지훈 답지 않지
지훈은 결심한 듯 급히 강주와 하경의 뒤를 따라 교실을 뛰어나갔다
누군가 달려오는 소리에 하경이 뒤를 돌아보다 지훈을 발견하고 예의 새침한 표정에 왜? 라는 듯 바라봤다
- 헉.. 헉.. 무슨 걸음이 이렇게 빠르냐 - ... - 고맙다고 - ...
아, 별로. 라는 듯한 하경의 표정에 지훈은 조금 긴장하지만 그래도 쌩 돌아 가버리지 않고 뭔가 기다리는 듯한 하경의 태도에 좀더 용기를 내 보기로 한다
- 내가 알바해서 첫 월급 받으면 꼭 은혜 갚을게
꽤나 용기낸 말이었는데 하경은 물끄러미 지훈을 바라본다 오히려 옆에서 강주가 그래 당연히 그래야지 라며 호들갑이다
뭐라고 대답은 안하나 하고 지훈이 초조해지려는 찰나 하경이 쑥 하고 손을 내민다
응?
지훈이 알아듣지 못하고 하경을 바라보자 하경은 딴청 피우듯 말한다
- 핸드폰. 너 내 번호 알아? 은혜 갚을려면 연락을 해야지.
그제야 알아들은 지훈이 주머니를 뒤적여 핸드폰을 내민다 하경은 빠르게 번호를 입력하고 통화 버튼을 누르더니 전화가 걸려온 자신의 핸드폰을 확인하고는 다시 지훈에게 돌려준다
- 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지훈이 잠시 벙찐 사이 하경은 다시 강주의 팔짱을 끼고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복도 끝으로 사라졌다
=
역시 4년제 대학을 간다는 건 무리였던건가
첫 학기를 마치고 밀어닥친 등록금의 무시무시한 압박에 지훈은 도망치듯 휴학을 하고 군대에 가기로 결정할 수 밖에 없었다
겨우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군대라니 갈길이 멀고 멀구나 떠나면서도 지훈의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첫 군입대자의 환송회는 지나칠만큼 거대했다 처음으로 연락이 불가한 곳에 떨어져지내야한다는 불안감이 더욱 친구들을 부채질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자식들 그렇게 혼자 들어가는 내 마음도 좀 생각을 해주지 싶다가도 에헤라 그래 늬들도 나 없으면 불안하겠지 싶어 내가 보고플게다 하고 며칠을 - 이 상태로 정말 훈련소에 들어가면 환골탈태라도 하는 걸까 싶을 정도로 - 술독에 빠질 듯이 환송회에 끌려다녔다
입대 전 마지막 밤 역시나 마지막으로 남은 순수오이지-_- 멤버들과 막잔을 기울이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 인재샘 *
힝~ 샘이 나 안 잊고 전화 주셨어 ㅠㅠ 지금껏 괜찮았는데 갑자기 울컥 눈물이 나온다
- 샘 ㅠㅠㅠ - 어 그래 지훈아 취기 가득해 뜬금없이 징징거리는 목소리에 인재가 조금 당황한 듯 지훈을 불렀다
- 새엠~ ㅠㅠㅠ - 그래 지훈아 내일 입대지? - 네 ㅠㅠ 저 가요 ㅠㅠ - 그래 가서 몸 조심하고 밥 잘 챙겨 먹고 건강하고 - 네 ㅠㅠ
자꾸 칭얼거리게 된다 정샘에게는
- 잘 다녀오고 휴가 나오면 연락하고 - 네 샘도 건강하세요
지훈은 짧은 인재와의 통화를 끝내고 다시 술판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제야 새삼스레 - 내일이 입대인데 - 가라앉은 기분이 영 올라오지 않는다 지금껏 술판에 잊고 있었던 새로운 곳에 대한 두려움이 솟아오른다
문득 생각난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송하경. 그 까칠한 뒷모습은.
그래 내가 은혜 꼭 갚는다
졸업식 때 큰소리 쳤던 것과 달리 막상 입학 후엔 너무 다른 학교 환경에 적응하느라, 왕복 몇시간씩 걸리는 통학 시간에 지쳐서, 무엇보다 주말에도 끊임없이 계속된 아르바이트 때문에 한번도 하경에게 연락하지 못했다
하경은 집도 잘 사니 등록금 걱정도 없을거고 가고 싶다고 노래노래를 하던 서울대에도 붙었겠다 ... 아씨 그래 군대도 안가도 되고... 자신 따위는 생각도 안 나겠지 싶은 생각이 드니 괜히 억울한 기분이 된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하경의 번호를 검색해본다 결국 한번도 못 걸어봤네 아직도 이 번호 쓰려나 지훈은 몇번인가 괜히 문자를 썼다가 지웠다가 해본다 어차피 내일 군대 가는데 뭐 지금 문자 하면 무책임한 놈이라고 하겠지
[잘 지내라]
헉
술김에 전송 버튼을 눌러버렸다
지훈은 잠시 긴장된 마음으로 곁눈질로 자신의 핸드폰을 관찰하다 아무런 답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작게 한숨 쉰다
그래 번호를 기억이나 하겠어 이상한 문자라고 생각하겠다 으윽.
=
- 이지훈 - 이병 이.지.훈. - 편지다
지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편지를 받으러 걸어나간다 편지라, 훈련소 때도 한 장 없던 편지인데 갑작스럽게. 누가 보낸 걸까 아무리 헤집어봐도 적절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 정호는.... 아니고... 이경도.... 아닐거고... 자리에 앉아 뭔가 진득하게 쓰고 있다는게 세상에서 제일 안어울리는 두 이름을 떠올리곤 황급히 지워버린다 설마... 고남순...? 아 그래 뭔가 닭살스런데다 오지랖으로는 세계에서 다섯손가락 안에 꼽힐 만한 인물이니 어쩌면 고남순이 애들 불러모아서 뭔가 써보냈는지도 모르겠다
- 너 여자친구 없다고 하지 않았냐? - 이병 이.지.훈. 예! 없습니다! - 근데 이거 뭐냐?
빙글빙글 웃으며 하사관이 자신에게 봉투를 건넨다
연한 분홍빛의 아무런 무늬도 없는 단정한 편지 봉투 그리고
익숙한 예의 그 냉정한 글씨체가 눈에 들어온다
송. 하. 경.
===================================================== 칭찬은 이지훈도 대학을 가게 하지만 베이리들의 칭찬은 나냔을 미친 듯이 글 쓰게 했다 ㅠㅠ 세상에 나는 내가 이렇게 긴 글을 이렇게 짧은 시간에 쓸 수 있는 사람인 줄 몰랐어;; 냔들아 대단하다!
내가 더 빨리 얘네 좀 행쇼 하는거 보고 싶어서 진짜 빨리 몰아 썼어ㅠ 드디어 썸탈 수 있게 되는 건가 ㅠ 내가 쓰는데 내가 모르겠다;;;;
즐거워해주길 바래 ㅠ
+ 왜 정인재 샘이 2013년에 25이나 26쯤 된 초임교사라고 생각했을까 나냔을 오늘에야 정인재 샘 나이가 31이라는 걸 알고 화들짝 놀라 고민하다가 아무리아무리 생각해도 마흔에 첫 애를 임신하는 건 너무한 거 같아서; 뱃속에 있던 아이가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것으로 바꿨다고 한다;;
나중에 다시 찾아보는 냔이 있으면 당황할까봐 설명 남겨 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