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2013] 그건 너 외전 1. episode requested
햇살이 비치는 창가 쪽 소파에 앉아 지훈이 제 팔뚝만하기는한가 싶은 조막만한 아기를 안고 앉아 젖병을 물리고 있다
이제 겨우 태어난지 6개월을 갓 넘긴 지훈과 하경의 딸이다
흥수는 지훈의 옆에 앉아 그 장면을 부럽게 바라본다
- 딸, 이쁘냐?
- 어휴 죽어요
아이에게 젖병을 물리고 어르면서 대답하는 지훈이 그저 부럽다
지훈의 팔에 고이 안겨서 눈을 감고 젖병을 쪽쪽 빨고 있는 게 살아있는 인형같다
하경와 지훈을 쏙 빼닮아 눈도 큰 것 같으니 눈을 뜨면 얼마나 더 예쁠까 싶다
- 이러다가 눈 뜨고 꺄르르 하는데.. 어디서 이런 게 나왔나 싶어요 밤샘 촬영을 하고 와도 웃는 거 한번 보면 피로가 사라진다니까요
- ... 그래... 좋겠다...
이럴 걸 알면서 여긴 왜 따라왔을까...
흥수는 후회한다
휴일 아침, 강주가 출산 후 바깥 출입이 어려운 하경을 보러 간다고 나섰다
성훈을 데려가는데다 갖고 놀 장난감에 이런 저런 짐도 많은 것 같아 혼자서 무리겠다 싶었고
쉬는 날인데 혼자 집에 있기도 씁쓸한데 지훈도 마침 집에 있다길래 겸사겸사 같이 오긴 했는데
염장질 당할 걸 알았으면 오지 말걸 그랬다
수심이 가득한 흥수를 보며 지훈이 의아한 듯 말한다
- 성훈이도 어렸을 땐 그랬을 거 잖아요
- .. 그랬지... 아마 그랬을거야...
- 왜요? 요즘은 안 그래요?
- .....너도 아들 키워봐라 걷기 시작하고부터는 매일이 시한폭탄이다...
흥수의 말에 의아한 듯 마루에서 블록쌓기에 몰입하고 있는 성훈을 본다
저렇게 얌전히 떼 한 번 안 쓰고 노는 애가 무슨 시한폭탄...?
- 얌전한데요 오늘은
- .... 아.직.은. 이지..
흥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 작년에 김장하는데 잠깐 눈 뗀 새 배추 절임통에 들어가서 놀고 있더라고
그때 강주가 배추 몽땅 도로 꺼내서 새로 절이느라 고생한거 생각하면 아들이고 뭐고 진짜...
게다가 요즘은 어찌나 새벽까지 안 자고 뛰어다니는지 재우느라 죽겠다
애들은 왜 시간 맞춰 안 자는 거냐? 부모는 시간 맞춰 일어나서 출근해야하는데
- 그....글쎄요....
형님 정확하게 화난 포인트가 어딘 겁니까...
지훈은 할 말을 잃는다
우유를 다 먹었는지 가르랑거리는 서연을 능숙하게 안아들고 등을 톡톡 쓰다듬어 트림시킨다
지훈에게 안겨 꼬물락거리는 서연을 보며 흥수는 다시 한 번 부러운 눈을 떼지 못한다
- 딸이라 좋겠다...
- 그래도 나중엔 아들이 아빠랑 친구한대요
- ....그 나중이 오긴 올런지 모르겠다...
지훈의 위로 아닌 위로에 흥수가 침울하게 대답한다
가만히 서연의 작은 손에 제 검지손가락을 쥐어준다
겨우 붙잡은 부드러운 작은 손을 느끼니 더 부럽다
아... 진짜 딸 하나 더 있으면 좋겠는데...
흥수가 아쉬움에 한숨 쉬는데 하경과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강주의 비명이 들린다
- 박성훈!
깜짝 놀라 돌아보니 언제 부엌에 들어갔는지
테이블 위에 있던 케첩통을 거꾸로 들고 스스로를 향해 흔들어 발사하고 있는 성훈이 보인다
흥수가 한달음에 달려가 케찹통을 빼앗지만 이미 옷과 손, 얼굴이 케첩 범벅이다
그보다 부엌 바닥이 온통 케첩으로 난리다
.... 결국 사고를 치는구만....
아들, 그렇게 해맑게 웃어도 수습이 안될 거 같은데 말이다...
- 성훈아빠!
강주가 저를 저렇게 부를 때는 굉장히 화가 많이 난거다
흥수는 조용히 성훈을 번쩍 들고 화장실로 사라진다
아들, 너 언제 아빠 편 되줄거냐? 응?
=
- 씻기고 나와
아직도 목소리에 찬바람이 쌩쌩 분다
흥수는 한숨을 쉬며 성훈의 옷을 벗기고 욕조에 담근다
어린애치고 물을 좋아하는 성훈은 금새 기분이 좋아진 듯 꺄르르 웃으며 물장구 친다
.... 너는 금새 잊어버려서 좋겠다....
- 아들,
- 네?
- 너 아빠가 밖에서 장난치랬어 말랬어?
동그랗게 눈을 뜨고 저를 올려다보는 성훈을 보자
네살짜리가 뭘 안다고 이런 소리를 하나 싶어 한심해진다
눈을 깜빡거리는 성훈을 보던 흥수는 다시 말한다
- 아빠가 엄마 속상하게 하면 된다 그랬어 안된다 그랬어?
- ... 안돼요....
엄마,란 말에 아까의 화난 강주 얼굴이 생각났는지 성훈이 금새 침울해진다
장난친 게 찔리기는한가 보다
오는 내내 침묵을 지킨 강주 때문에 저도 압박감에 죽을 것 같았는데
이 어린 것은 오죽했으랴 싶기도 하다
- 근데 아까 성훈이가 그거 갖고 놀아서 엄마가 속상했을까 아닐까?
- ... 속상해요...
- 그럼 나가서 엄마한테 잘못했어요 하는 거다?
- 네..
알아듣고 있는 건지 아니면 아주 가끔 나오는 흥수의 낮은 목소리가 무서운 건지 성훈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도 말을 하면 즉각 알았다고 하는 게 기특해서 흥수가 조금 풀린 목소리로 말한다
- 성훈아.... 오늘 아저씨 집에서 본 애기 이쁘지?
- 응
- 성훈이도 그런 동생 갖고 싶지?
- 응
- 성훈이가 엄마 말을 잘 들어야 그런 동생 생겨, 그러니까 엄마 힘들게 하면 안돼 알았지?
니가 말을 잘 들어야... 니 엄마가 기분이 좋아서... 동생 가질 생각을 할 거 아니냐...
아들아... 우리 좀 잘해보자....
흥수가 고개를 끄덕이는 성훈의 머리를 사정없이 흐트러트린다
조금 밝아진 흥수의 목소리를 알아챘는지
성훈은 대강 대답하고 다시 물장구를 치기 시작한다
어이구 우리 아들 금새 기분 좋아지는 건 딱 지 엄마 닮았네
흥수는 피식 웃으면서 욕조에 떠있는 장난감을 들어 그대로 물에 투척한다
- 피융! 폭격이다! 적들이 나타났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선장님!
성훈이 가장 좋아하는 해적선 놀이다
흥수가 저와 놀아주려는 걸 알았는지 성훈이 신이 난다
- 저쪽! 저쪽!
- 앗 저쪽에 적들이 있군요! 알겠습니다! 이얏 죽어라!!
- 꺄아아!
성훈과 신나게 물을 튀기며 놀고 있는데 갑자기 욕실 문이 벌컥 열린다
헉.
잔뜩 화가 난 얼굴로 강주가 저를 내려다보고 있다
- ... 애 씻기랬더니 지금...
이걸 하면 욕실이 온통 물바다가 된다는 걸 잠시 잊었다
강주의 화난 표정에 흥수와 성훈이 순식간에 동작그만 상태로 꿀먹은 벙어리가 된다
흥수는 강주를 못 본 척하고 조심조심 성훈을 꺼내서 샤워기로 씻기기 시작한다
그런 흥수를 보던 강주가 말한다
- 내가 진짜... 아들 둘을 키운다! 애가 둘이야! 못 살아!
빨리 씻겨서 나와! 애 감기 걸리기 전에!
=
낮에 외출도 했고 목욕할 때 활개 치고 놀아서 피곤했는지 성훈은 평소보다 일찍 잠들었다
겨우 성훈을 재운 흥수는 슬며시 침대로 파고든다
아직도 화가 안 풀렸는지 등을 돌리고 있는 강주의 모습이 보인다
이런 걸로 등까지 돌리고 그러냐....
슬쩍 강주에게 팔을 올려놓자 움찔 하더니 팔을 피해 앞쪽으로 몸을 둥글게 만다
아직 안 자면서.. 단단히 삐졌나보네...
흥수는 강주에게 다가가 뒤에서 끌어안는다
- ... 이거 놔...
- 화났어?
강주는 대답 대신 흥수의 팔을 툭 털어버린다
제가 잘못하긴 했지만 이정도는...
흥수는 한번 더 강주를 끌어당겨 품에 안고 어깨에 입맞춘다
- 화 내지마
- ... 몰라
안긴 몸이 딱딱하게 굳어있다
- 성훈이한테 잘 얘기했으니까 이제 안 그럴거야
- .... 네살짜리가 한 약속을 믿어...?
- 너 닮았으니까 약속도 잘 지키겠지
성훈이가 너 닮아서 머리도 좋고 착하잖아 지 엄마도 끔찍하게 생각하고, 너랑 똑같이 에너지가 넘치는 걸 어쩌냐
- ... 뭐래
강주의 몸에서 긴장이 풀리는 게 느껴진다
약간 부드러워진 강주를 조심히 돌려 눕힌다
- 너 이러면 나 못 자는 거 알면서 자꾸 이럴래?
흥수가 저를 안고 중얼거리자 강주가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 ... 애 좀 잘 보라니까...
- 그러게 잘 봐야 되는데...
- 부엌에서 칼이라도 만졌으면 어쩔 뻔 했어.. 냄비라도 떨어지거나..
그래서 놀랐구나...
- 그러게... 내가 잘못했네 우리 부인 속상하게 하고 나쁘네 내가
흥수의 넉살에 강주가 풋,하고 웃어버린다
하여간 말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풀려서 흥수의 품에 살짝 안긴다
그런 강주를 만지작거리던 흥수가 조용히 말한다
- 우리, 딸 하나 더 낳을까?
- ... 또 그런다...
딸 있는 집에만 다녀오면 딸 타령이다
좋은 아빠 노릇을 잘 하면서도 아쉬움이 남는지 틈만 나면 저를 괴롭혀댄다
성훈이 하나만도 건사하기 힘들어죽겠는데...
- 딱 너 닮은 딸 하나만 더 있으면 좋겠는데
- .. 이제 겨우 성훈이 어린이집 보내는데 그걸 다시 하라고?
- 딸은 아들만큼 안 힘들대 응? 강주야 성훈이도 혼자는 외롭잖아
어휴... 이 딸 덕후....
만약에 낳는다쳐도 그러다 나중에 시집은 어떻게 보낼래?
- 응? 자기야 내 소원 한번만 들어주라
어쩐지 오늘은 끈질기다
쉽게 포기하지 않으려는지 본격적으로 강주를 간지럽히기 시작한다
대답없는 입술을 몇번 톡톡 건드리더니 등을 쓰다듬던 손이 슬쩍 내려간다
점점 깊어지는 입맞춤에 오랜만에 짜릿한 기분이 든다
아이참 이 남자... 딸이 그렇게 좋으니...?
- 응?
한 번 더 재촉하는 흥수의 말에 강주가 그제야 체념한 듯 말한다
- ... 그게 뭐 마음대로 되나...
강주의 대답을 들은 흥수는 기다렸다는 듯 씩 웃는다
어둠 속인데도 만족스럽게 이제 됐다는 듯 키득,하는 게 느껴진다
그러더니 갑자기 강주를 확 눕히고 올라탄다
강주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제 귓가에 다가온 숨결이 속삭인다
- 그러니까 노력을 해야지, 지금부터
===========================
몇몇 냔들이 보고 싶다고 한 부분을 섞어서 써봤어...
외전은 툭툭,이렇게 개연성없이, 쓰여질 것 같음..... requested를 쓰는 날도 있고, 그냥 생각했던 다른 이야기를 쓸 수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