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둥지둥 뛰어가는 지훈의 뒷모습에 손을 흔들어주고 하경은 다시 벤치에 놓아둔 책을 집어든다
이제 뭐하지...
오늘따라 햇살이 더 밝다
=
난 잘 지내. 로 시작했던 하경의 첫 편지 이후로 지훈과 하경의 편지왕래는 하경이 교환학생을 간 때를 포함해서 군 복무 기간 내내 이어졌다 얼굴을 보고는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글로는 생각보다 전하기 쉬웠고 덕분에 지훈은 하경에 대해 이전에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냉정하다고만 생각했던 하경은 글 속에서는 훨씬 다정하고 풍부한 감정을 드러냈고 군대 에서는 읽을만한 책이 없다,는 지훈의 푸념을 기억하고 때때로 책을 짧은 메모와 함께 보내주기도 했다 그래도 이전에 비해 풍부해졌다는 것 뿐 여전히 속내를 드러내지 않던 하경도 교환 학생 시절에는 외롭고 힘들었던지 간혹 편지를 통해 지훈에게 감정을 털어놓기 시작했고 자신의 감정이나 타인의 감정에 대해 둔했던 지훈은 이렇게 모든 걸 다 가졌다고 생각한 하경도 어둡고 외로울 때가 있구나 싶어 조금 놀라면서도 자신에게 털어 놓아 준 것이 오히려 고맙기도 해서 며칠씩 편지를 고쳐쓰기도 하고 책을 찾아 위로가 될만한 문장을 적어보내기도 하면서 어떻게든 그 감정에 충실히 부응해주려고 노력했다
오히려 어색했던 건 2년의 복무가 끝나고 제대한 후 처음으로 만났을 때였다 지면으로는 그렇게 할말 못할 말 다 하면서 친했는데 막상 얼굴을 보니 예전의 어색함이 되살아나서 한동안은
- 먹자 - 어 그래.
정도의 대화만으로 식사 시간을 다 보내기도 했다
지훈은 제대 후 바로 복학했지만 한 학기를 마치고 다시 휴학했다 마침 시험 준비로 하경도 휴학 중이었고 지훈이 대학로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종로의 학원에 다니던 하경은 종종 대학로에 들러 지훈과 저녁이나 야식을 같이 했다
그래, 대학로.
남들에게 밀하지 못했던 또다른 길을 지훈은 하경에게만 털어놓았다
대학을 간 것만도 무리였고 대학에 입학을 하고 나자 왜 그렇게 인재가 자신을 말렸는지 바로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세상은 팍팍했다 그 와중에.. 연극이라니.
발단은 그저 아르바이트였다 대학로에서 연극을 하던 지훈의 대학 선배가 무대 관리를 포함한 잡일꾼으로 지훈의 아르바이트를 제안했고 마침 희곡 읽기에도 흥미가 생겼던 지훈은 보수는 좀 적지만 제안을 수락했다 작은 극단의 공연이었던지라 때로는 무대 관리 외에도 간혹 단역이나 지나가는 역할로 무대에 서야할 일도 있었다 처음엔 그냥 무대에 서있다 내려오는 소품과 다름없는 역이었지만 제법 키도 크고 마스크도 괜찮은 지훈은 이내 대사가 있는 단역도 맡는 전천후 멀티맨이 되었다
그러다 무대에 관심이 생긴 지훈은 다음 학기를 등록하지 않았고 주변에는 등록금 마련 때문에 알바로 휴학한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일년 넘게 등록금 마련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연극 알바를 전전하는 중이었다 여전히 무대 관리와 단역을 겸하는 멀티맨이었지만 어깨너머로 배우는 연기도 재미있었고 무대에 선 순간의 짜릿함도 잊을 수 없었다
그런 사정을 지훈은 조심스럽게 하경에게 털어놓았다 자신이 생각해도 무모한 이 꿈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지만 하경은 그저 그렇구나 하는 차분한 표정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 말 없이 들어주었고
그 후로 그저 지나갔다 들렀다는 듯이 찾아와 한장면을 출연하는 자신을 위해 2시간 짜리 공연을 보고 꼭 야식까지 사주고 돌아가곤 했다
하경이 오기로 한 날이면 적어도 자신이 출연하는 장면만은 자신이 주인공이 된 듯, 누군가 저 아래서 나만을 봐주고 있다. 그런 자신감이 생겨나서 때로 오버하는 바람에 무대 아래에서 선배들에게 혼나기도 했지만 지훈은 그래도 하경이 자신의 공연에 와주기를 은근히 기다리게 되었다 그리고 하경도 말을 따로 하지 않지만 매번 공연 정보에도 이름이 올라가지 않는 자신의 공연 일정을 확인해 빠짐없이 공연에 찾아와주었다
그리고 오늘.
공연 네시간을 남기고 동선 체크 중에 주연 한명이 무대에 놓여진 소품을 미처 보지 못하고 미끄러져 발목을 다쳤고 당장 올려야하는 공연 때문에 패닉이 된 상태에서 누구 대사 외우는 사람없어? 연출이 외쳤다 뒤에서 소품 준비를 하고 있던 지훈이 쭈빗거리며 손을 들었다 무대를 준비하면서, 나름대로 대본을 외웠고 몇 번이나 공연을 보면서 동선도 숙지하고 있었다 연출은 잠시 지훈을 어찌해야하나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외쳤다
- 야 그래 오늘은 그냥 이지훈으로 가자 로비에 공지하고 너 빨리가서 준비하고 대사 맞춰보고 시간 없어 빨리해!
그렇게 지훈의 첫 주연 데뷔가 시작됐다
공연전 식사를 하기로 한 하경과 함께 하지 못한 건 너무 미안했지만 오늘도 단역인 줄 알고 왔을 하경이 처음부터 끝까지 출연하는 자신을 보면 뭐라고 할지, 지훈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지울수 없었다
오늘은 정말로, 내가, 주인공이다.
=
급하게 분장을 지우고 내일 선배들에게 혼날 것을 각오하고 뒷정리를 내버려둔 채 부리나케 공연장을 빠져나왔는데도 시간이 한참이나 흘렀다
아까 저녁을 함께 하지 못한 것도 마음에 걸리는데 하경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에 심장이 덜컹 한다
오늘 별로... 였나...?
갑작스럽게 올라갔지만 그래도 꽤 잘해냈다고 생각했다 선배들도 별다른 칭찬은 없었지만 큰 사고 없이 끝났다며 내심 대견해하는 눈치였고 처음으로 큰 역할을 해낸 흥분이 아직도 온 몸에 남아 손끝이 찌릿찌릿했다
굳이 자신이 대역으로 선다고 말을 하지않은 건 그만큼 하경을 놀라게 해주고 싶다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늘 이름도 없는 역으로 출연할 때도 하경은 기꺼이 공연을 보러와서 공연 끝난 뒤 지훈만을 두고 이건 잘했고 이건 별로 였고 하는 평을 해주곤 했다 늘 지적으로 시작하지만 그래도 그땐 잘하더라, 라고 하고 덧붙이듯 칭찬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하경답다고 해야할지 칭찬을 하고서는 딴청을 피우면서 더이상 지훈이 말을 꺼내지 못하게
- 이모, 여기 일인분 추가요
라고 외치는 하경이 오히려 더 사랑스러워서 지훈은 빙글빙글 웃으면서
- 뭐야 나 지금 칭찬한거야? 넌 왜 그렇게 칭찬하는 걸 어색해하냐?
라고 놀리다가 맞은 적도 있었다 그럴 때의 하경은 이 가느다란 팔 어디에서 이런 힘이 나오나 싶을 정도로 꽤나 힘이 세서 역시 하경과 강주가 괜히 친구가 아니었다는 생각과 함께 지훈은 괜시리 흥수가 걱정되기도 했다
그래도 이렇게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을 외면한 것은 처음이었다 역시 뭔가 잘못한건가 덜컥 겁이 난다
- 송하경!
가로등 아래 서서 지훈을 기다리던 하경은 힐끗 지훈을 쳐다보고는 다시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린다 잠시 본 얼굴 표정이 굳어 있는 듯 해서 지훈은 불안한 마음에 뛰다시피 하경 앞에 선다
- 무슨 일 있어?
하경은 입술을 꼭 다문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 내가 말 안해서 그래? 아니 갑자기 선배가 다쳐서 올라가게 된거라 창피하기도 하고.. 오늘 좀 그랬지? 별로였지? 대사만 외우는 것도 바빠가지고....
버벅거리면서 지훈이 어떻게든 변명을 해보려고 하는데도 하경은 여전히 반응 없이 발끝만 바라보고 섰다
뭔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반응에 지훈은 더 당황한다
칭찬을 꼭 듣고 싶었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같이 기뻐해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쨌든 이렇게 큰 역할로 무대에 선 건 처음이었으니까 자신에게도 기회가 왔다는 것이, 그걸 해냈다는게 지훈은 기뻤고 그리고 하경이 함께 기뻐해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아까부터 자신을 한번 보지도 않는 하경 때문에 지훈은 속이 탔다
- 그렇게... 별로 였어?
풀이 죽은 목소리로 지훈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정말 별로였던 건가 말을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내가 너무 앞서 나갔던 건가
- ... 분해서 그래...
하경이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로 작게 중얼 거린다
분하다니, 대체 뭐가
벙찐 지훈이 한발 하경에게 다가서자 하경이 멈칫 물러선다 지훈은 하지만 멈추지 않고 하경에게 다시 다가선다
- 괜찮아?
도무지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듯이 조심스럽게 지훈이 손을 들어 하경의 머리를 톡톡 두드린다
그제야 하경이 고개를 든다 금새라도 눈물이 흐를 듯 그렁그렁한 하경을 발견하고 지훈이 놀라 멈칫 했다
- 너 진짜..
울먹울먹 말을 꺼내는 하경에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르겠어서 지훈은 본인이 더 울고 싶어진다 내가 뭘 하면 안 울래?
- 니가 너무 잘하잖아.
응?
- 말도 없이 그렇게 해버리면 어떻게 해 내가 뭐라고도 못하겠잖아 무대에서 너밖에 안보이는데
훌쩍거리면서 칭찬인지 불평인지 모를 말을 내뱉고는 또다시 멋쩍은 듯 시선을 돌려버리는, 여전히 눈물이 그렁그렁한 하경에 지훈은 이렇게까지 무엇을 원했던 적이 있었던가 문득 자신이 넘지 않으려고 버텨온 선이 툭, 끊어지는 걸 느낀다 가깝게 지냈지만, 마음으로 의지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어쨌든 너무 다른 환경에 자신의 깜깜한 미래까지, 지훈은 차마 하경에게 더 다가가지 못하고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었다 정호나 이경과는 다른 의미로,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친구. 그 정도가. 서로에게 좋은거라고. 그런데, 자신 때문에 하경이, 운다. 지금.
- 그래서, 울었어?
지훈이 평소보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다정하게 물으며 다시 하경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만지작거린다
- 나 때문에, 운거야?
한번도 없었던 지훈의 가까운 태도에 하경은 그제야 자신이 평소답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애써 괜찮은 척 도도하게 고개를 든다
- 뭐 그냥.
예쁘다.
지훈은 생각한다
자신을 위해 울었을 때도 이렇게 새침한 얼굴도 환하게 웃어주는 무방비한 표정도
그때서야 아주 뒤늦게 지훈은 자신이 지금까지 하경을, 기쁘게 하고 싶었다는 걸 깨닫는다
자신에게만 보여주는 저 얼굴을 보고 싶었다는 걸
내내 그래왔다는 걸
그냥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이렇게 사랑스러운 하경의 웃는 얼굴을.
- 하경아
지훈은 다시한번 하경에게 좀더 가까이 다가간다
- 하경아
자꾸만 다정하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지훈이,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부드러운 손길과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듯 자신의 옆에서 방황하고 있는 또다른 지훈의 손과 되풀이 할 수록 낮아지는 지훈의 목소리가 낯설어서 하경은 자신도 모르게 오소소 몸에 소름이 돋은 듯 떨린다
원래도 조심스럽고 다정했지만 지금의 지훈은 평소와, 다르다
- 하경아
다시 한 번 하경의 이름을 소중하다는 듯 나직이 부른 지훈은 잠시 숨을 고르는 듯 하경의 눈을 빤히 바라본다
바르르 떨리는 눈썹을 올려다보며 하경은 오히려 자신의 숨이 멎어버릴 것 같다
다음 순간, 지훈의 방황하던 손이 하경의 등을 감싸안는다 하경은 흠칫 놀라지만 어느새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지훈의 눈에 빨려들어갈 것 같아서 엉거주춤 굳어진 채로 시선을 피하지 못하고 지훈을 바라본다
시간이 멈춘 것 같다 공기도 사라진 것 같다 숨쉬는 건 원래 태어날 때부터 자연스럽게 하는 거 아니었나? 하경이 호흡곤란에 빠진 것 처럼 답답함을 느낄 때쯤 그때까지 한순간도 하경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고 꼼꼼히 살피던 지훈이 조심스럽게 하경의 이마에 입을 맞춘다
너무 놀라 눈도 감지 못한 하경을 다시 바라보며 지훈이 작게 속삭였다
- 송하경. 나 너 좋아해. 나랑, 만날래?
지훈의 손이 약하게 떨리고 있다는 걸 하경은 알아차린다
바보.
하경의 눈에서 눈물이 주룩. 흐른다
지훈의 얼굴이 당혹함에 일그러진다
- 미안해
뭔지도 모르고 사과부터 하는, 이지훈. 자신이 그렇게 독설을 퍼부어도 먼저 미안하다고 했던 고등학교 시절 교실이 떠오른다
어쩔 줄 몰라하는 지훈에게 훌쩍 눈물을 그친 하경이 밉다는 듯 쏘아보며 차갑게 말했다
- 그럼, 이때까지 우리 안 만났니? 이제와서 새삼스럽게 뭐래 나 울린거 니가 처음이니까 책임지든가
어버버하고 있는 지훈에게 그때까지 들고 있던 책을 탁, 안기면서 하경은 홱 돌아서서 외쳤다
- 배고프다, 밥 먹으러가자. 오늘은 니가 사 애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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썼다!! 드디어 썼어!!! 흑 ㅠ 나냔이 너무 연껒해제한지 너무 오래되서 이 장면 구상한지는 좀 됐는데 쓰기가 너무 힘들었어 내가 왜 손발이 오그라드냐 왜 ㅠㅠ 심장이 쪼그라드는 거 같아 ㅠㅠ
재미있게 읽어주는 냔들아 고마워 ㅠ 댓글 달아준 냔들도 고맙고 ㅠ 그 마음으로 내가 열심히 쓰고 있어 ㅠㅠ 흑 해피엔딩 쓰고 싶다 진짜 (내가 너무 어두운 냔이라 자꾸 어두운 거만 생각나서-_- 밝은 노래 들으면서 쓰고 있어;;)
냔들을 위한 선물도 사족으로 달아놨어... 안봐도 스토리엔 썩 지장은 없지만 ~ +
[잘 지내?]
바보 이지훈.
얼마나 이 문자를 보내려고 지웠다 썼다 했을지 보여서 하경은 피식 웃음이 나려다 깊은 한숨을 내쉰다
물어볼게 이거 말고 더 많았을 텐데 모르는 번호였으니 누구냐,라고 물어봐도 됐고 어떻게 번호를 알았는지 는 안 궁금했나 아니, 그것보다 왜 갑자기 문자를 보냈는지라도
갑작스런 문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보낼 법한 내용을 모두 제치고 심지어 보낸 질문에 대한 답도 없이
[잘 지내?] 라니.
굳이 물음표를 찍어서 보낸 지훈의 꼼꼼함에, 여전하구나 싶다
아니, 굳이 말하자면 [잘 지내?] 란 문자 자체가... 넌 기억하고 있는 걸까 네가 처음 보냈던 문자도 잘 지내,였다는 걸
하경은 자신이 무슨 생각으로 애초에 문자를 보냈던 걸까 바보 같다 생각하면서 고개를 젓는다
그런 거 보내는 게 아니었는데
아무말도 묻지 않지만 의구심이 가득한 강주의 표정을 애써 외면하면서 전화번호를 받았을 때 그때 그만 뒀어야 했는데
하지만, 확인하고 싶었다
그게 나일까 넌 여전히 날 기억하고 있을까 난 네게, 그렇게 소중했던 기억일까
++
- 아 진짜 짜증나
자리에 털썩 앉자마자 버럭 화부터 내는 강주를 건너편에서 잡지를 넘겨보고 있던 흥수가 무슨 일이냐는 듯 물끄러미 바라본다
- 진짜 속상하게. 그동안 그렇게 이지훈 이름만 꺼내도 스위치 꺼진 것처럼 정신을 놓던 애가 갑자기 이지훈 전화 번호를 알려달라고 하면서 뭐라고 설명도 안하고 하경이는 그렇다치고 이지훈도, 걔도 그때 이후로 한번 하경이 얘길 꺼내지 않잖아 진짜 만날 때마다 조심하느라 불편해 죽겠단 말야
투덜투덜 속상한 마음을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강주를 한참 바라보던 흥수는 책을 옆으로 내려놓더니 손짓으로 이리와 앉으라며 강주를 부른다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터벅터벅 걸어와 자리에 앉은 강주는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고개를 젓는다 흥수는 팔을 뻗어 강주의 짧은 머리를 부스스 흔든다 강주가 귀찮다는 듯 눈을 찌푸리며 흥수를 바라본다
- 속상했어?
진지하게 자신을 응시하는 흥수를 보자 강주는 또 뭔가 진 듯한 기분이 된다 항상 이런 식, 언제나 먼저 알아버린다
- 아 진짜 뭐가 이렇게 어렵냐
여전히 뭔가 풀리지 않은 듯 뚱한 표정으로 강주가 중얼거린다
- 걔넨 진짜 왜 그런대 그냥 서로 솔직하게 말하면 안되나?
우리처럼.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강주는 그날 이후 밥을 먹다말고 누군가 지훈의 이름만 얘기해도 멈칫하는 하경도 어느 순간 진심으로 웃지 않게 된 지훈도 어째서 서로 저렇게 멀리 돌아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