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ool/you - 외전

[학교2013] 그건 너 외전 3. ring (episode requested)

april_m 2013. 3. 13. 16:26





남순은 가게 중앙에 오도카니 앉아 커피를 홀짝이고 있는 경민을 힐끔 바라본다 
제 남편이 하는 어엿한 카페를 두고 굳이 라면가게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는 건 무슨 마음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가게 문을 닫고 마감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경민이 새침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고 물을 새도 없이 뒤따라들어온 이경은 
제 라면 가게니 있는 게 당연한 남순을 보고 흠칫 놀라더니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버린 경민에게 다가가 소근거렸다 

- ... 고회장 있으니까 좀 있다 얘기해 하여간 오해라고 

다 들린다 이 새끼야 

대답하지 않는 경민을 몇번이나 돌아보며 나가면서도 
결국 저에게는 인사 한 마디 안 하는 이경을 보며 
남순은 이것들이 왜 내 가게에서 저 지랄일까 싶어졌다 

그러면서도 예전에 함께 라면가게를 할 때처럼 
경민을 위한 커피를 내리고 있는 저를 보면 습관이 정말 무섭다 
남순은 막 내린 커피를 들고 아까부터 동상처럼 앉아 있는 경민에게 건넸고 
무표정한 얼굴로 컵을 받아든 경민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아주 천천히 커피를 홀짝이는 중이었다 

차라리 뭔 말을 하던가.. 
이 새끼는 오늘따라 왜 이렇게 마감이 느려 

남순은 뒷머리를 한번 긁적하고 경민에게 멋쩍게 묻는다 

- ... 무슨 일이냐? 

제가 묻고도 한참 정적이 흘렀다 
말하기 싫으면 말아라, 싶어 도로 부엌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그제야 경민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 반지, 안 끼고 있잖아 
- 허? 

남순은 황당하다 
물에 손을 자주 집어넣어야하는 일인지라 
이경이 반지를 손에 끼는 대신 목걸이에 걸고 다니는 건 저도 아는 사실이다 
설마 경민이 몰랐을리가 없다 
일하러 와서야 손에서 빼서 내내 고이 걸고 있다가 마감만 하고 나면 바로 끼는 그 반지를 
설마 사정을 모르지도 않으면서 근무중에도 끼지 않았다고 뭐라고 하는 건가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 설마 그, 반지 말이냐? 

확인차 묻자 경민이 대답 대신 입을 꾹 다문다 

- 이이경이 그거 얼마나 애지중지하는지 너도 알잖아 그거 혹시라도 상할까봐 안 끼는.. 
- 알아 그건 나도 

괜한 오해를 받고 있는 녀석이 안타까워 변명을 몇마디 하려니 
경민이 퉁명스럽게 말한다 

알아? 근데 왜 이래? 

남순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수학문제라도 만난 듯 초점을 잃는다 
원래 사람이 어렵고 여자는 더 어렵다지만 남경민은 정말 모르겠다 
이런 애랑 어떻게 사는 거냐 이이경 존경한다 

할 말을 잃은 남순을 두고 경민은 다시 차가운 표정으로 커피를 홀짝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된다 
어지간하면 그냥 두려고 했는데... 궁금하다 대체 왜 이러는지 
남순은 아주 오랜만에 호기심.이라는게 생긴다 

- 그럼 뭐가 문제야 반지가? 

말이 없던 남순이 갑자기 묻자 경민은 조금 놀란다 
눈을 들자 카운터 근처에 앉아 있는 남순이 심각한 표정으로 저를 보고 있다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것 같다 

- ... 반지가 없으니까 여자애들이 자꾸 들이대잖아 

잠시 망설이던 경민이 내키지 않는다는 듯 대답한다 
남순의 눈이 커진다 

- 왜 엄연히 임자있는 남자한테 들이대는 거야 그 기집애들은 

다시 열이 받는지 입술을 잘근 씹으며 고요하게 중얼거리는 경민에게서 
남순은 문득 일진 시절 진정한 고수를 만나야 느낄 수 있었던 살기를 본다 

결과적으로는... 이경이 아니라... 반지를 안 끼고 있는 이경에게 들이댄 여자애들에게 화가 났다는 건데... 
근데.. 결국 반지를 안 낀 건 이경이니까 이경에게 화가 나는 게 맞는 건가? 
생각을 거듭할수록 헷갈린다 

- ... 이이경이 뭘 잘못한 건 아닌거지? 

한참을 생각하던 남순이 무심결에 묻는다 
경민은 조금 억울한 듯 입술을 삐죽 내민다 
남순은 망설인다 

이걸 말을 해줘야하나.... 

그때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성급하게 문이 열리고 이경이 들어선다 
어찌나 급하게 마무리를 하고 왔는지 셔츠 단추를 다 채우지도 못하고 아직 반지는 목걸이에 걸린 채다 
남순이 황급히 눈짓으로 신호를 보낸다 

야 반지 끼라고 반지 

그제야 이경도 제가 반지를 끼고 있지 않은 걸 발견하고 화들짝 놀란다 
등지고 앉은 채로 돌아보지도 않는 경민의 뒤에서 황급히 반지를 끼고 
한 템포 늦게 경민에게 다가간다 

- 경민아, 

이경이 막 말을 붙이려는데 경민이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이경과 남순을 번갈아 한번씩 보더니 나가버린다 
어쩐지 이 상황에 남순이 더 뻘쭘해진다 
잠시 멍해있던 이경은 한숨을 푹 쉬고 남순에게 손짓을 남긴 채 따라나선다 

저거 저래서 오늘 괜찮을까 모르겠네... 
괜히 남의 가정사가 걱정된다 
내 코가 석자인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계속 말이 없는 경민의 눈치를 
한번 보고 두번 보고 이젠 대놓고 보는데도 알아차렸다는 티도 안 낸다 
이경은 경민의 눈치를 보다보다 눈이 돌아갈 지경이다 

왜 하필 오늘인가 말이다 
다른 날은 잘만 넘어가더니 
왜 하필 오늘 저렇게 토라져버렸는지 모르겠다 

결혼 1주년이 곧 다가오지만, 역시나 작년 결혼 때처럼 바쁜 경민 때문에, 
그리고 함부로 가게문을 닫을 수 없는 제 사정 때문에 
결혼할 때 약속했던 1주년 기념 여행 같은 건 엄두도 못 냈다 
신혼여행도 그때 사정에 맞춰서 짧게 다녀온 게 영 마음에 걸려서 했던 약속이었는데 
그나마도 또 못 지키게 되어 미안한 마음에 
1박 2일로 기분이라도 내자고 결혼식 후 묵었던 호텔도 예약하고 준비도 한 참이었다 

이제 곧 마감을 해야겠다 생각할 때쯤 하교길인지 찾아와 주문하고 있던 여학생이 저에게 웃으면서 사장님은 여친 있으세요? 라길래 
여친은 없고 부인이 있는데요 하고 웃으면서 대답하자 농담인 줄 알았는지 까르르 웃으며 자리 비면 말씀해주세요 하는 광경을 
퇴근을 일찍 해서 저와 함께 가겠다고 찾아온 경민이 보고 말았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억울하다 
정말로 저가 뭘 하기라도 해서 이러는 거면 이해나 하겠다 
물어보지도 않는 손님들에게 일부러 저는 유부남입니다, 그러니 저에게 웃거나 사심 품지 마세요 라고 
먼저 밝힐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말이다 
손님이 웃으면서 주문하기에 저도 웃으면서 응대한 것이 무에 그리 문제란 말인가 
아직도 저를 믿지 못하는 건가 싶어 조금 섭섭해지려고 한다 

이경은 왼손 약지에 낀 반지를 무심코 엄지로 쓰다듬는다 
혹시라도 스크래치라도 날까봐 집에 두고 다니려고 했다가 그래도 지니고 있으려고 차선책으로 목에 거는 걸 택했다 
저 고집불통 기집애가 반지가 저라고 생각하라기에 생각할 수 있는 최선으로 애지중지했더니... 
진짜 내일부터는 스크래치가 남든 말든 중앙에 작게 박힌 다이아몬드가 상하든 말든 
설겆이할 때도 막 넣고 뜨거운 기계 만질 때도 막 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울컥한다 

기집애가 간도 크게... 
어디서 이렇게 비싼 걸 사와서 사람 곤란하게 진짜... 

경민이 무슨 마음으로 이걸 샀는지 아니까 함부로 다룰 수도 없다 
이경은 힐끔 경민의 왼손 약지를 바라보고 티나지 않게 한숨을 쉰다 

좀 풀어라 남경민 
내가 오늘 할 말이 있단 말이야 







백미러로 운전하고 있는 이경을 살짝 본다 
입술을 꾹 다물고 있는 게 이젠 화가 난 모양이다 
화를 내기 전에 풀었어야 했는데 저도 화가 나면 어디서 멈춰야할지 잘 모르겠다 
첫 연애 때 미친 듯이 싸웠던 이유도 그게 팔할이었다 
적당한 때 풀지 못하고 계속 화를 내는 저를 이경도 혈기가 왕성한 시절이라 받아주거나 풀어주지 못했다 
그래도 다시 만난 후로는 제가 도를 넘을라치면 이내 이경이 풀어주곤 했는데 오늘은 그러지 않을 모양인지... 

경민은 저도 모르게 또다시 입술을 깨문다 

하필 오늘, 이라서 더 멈추질 못하겠다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분도 더 깊이 빠져들었다 

운동을 해라 Fit 한 상태를 유지해라 옷은 이걸 입어라 머리는 이렇게 잘라라 등등 
끝도 없는 제 요구에도 불구하고 투덜거리면서도 다 들어주는 이경을 의심한 건 아니었다 
다만 그렇게 제 눈에 잘생겨 보이는 이경이 다른 여자들 눈에는 어떻게 보일까 생각하면 불안해졌다 

이런 마음을 알면 이경은 니가 입으란 대로 입고 니가 하란 대로 했는데 뭐가 문제냐고 화낼지도 모른다 
저도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이경이 남들 눈에 멋있게 보였으면 좋겠어서 온갖 잔소리를 다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누가 멋있게 보고 들이대기라도 할까봐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고개를 돌리자 운전대를 잡고 있는 왼손에 끼워진 반지가 눈에 들어온다 
저걸 그냥 끼고 있으면 좀 괜찮으려나... 
애초에 왜 가게를 여대 앞에 내서.... 

이경이 왜 근무할 때 반지를 끼지 않는지 저도 잘 알고 있었다 
제 왼손 약지에 끼워진 가느다란 금반지와는 다른, 백금에 작은 다이아몬드가 박힌 반지. 
그건 경민이 이경에게 선물한 프로포즈 링이었다 

만나는 5년 동안 이경의 대부분의 수입을 싹 쓸어담고 제가 근무하면서 모은 돈을 합쳐서 집도 구했고 
이경이 번듯한 카페 사장이기도 하고 
저도 이제 부모 간섭없이 인생을 살 수 있는 나이,라고는 하지만 
역시 집에다 이경과의 결혼을 알리고 처음 이경이 집을 방문하던 날은 긴장이 되었다 

아무리 33세의, 말씀으로는 이제 아무나 데려가줬으면 좋겠는 딸,이었어도 
처음 이경의 신상을 들은 부모님이 썩 탐탁지 않아 하신 것도 사실이었고 
그런 분위기를 이경이 와서 겪고 죄인처럼 되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그렇다고 부모님 인사를 드리지 않고 결혼을 할 수 없는 노릇이었고 
결국 긴장해서 한숨도 못 잔 채로 이경의 방문일은 오고 말았다 

그러나 경민이 걱정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처음에 약간 긴장하는가 싶었던 이경은 
어머니에게는 어머님, 어머님 하며 애교로 녹여버렸고 
끝까지 만족한 기색이 없었던 아버지에게는 
경민과의 인생을 십년 계획으로 짜온 문서를 드리며 걱정되시겠지만 따님 주십시오,라고 설득했다 
그게 술이 약한 이경이 술김에 낸 용기였는지 아니면 미리 준비했던 것이었는지 상관없이 
경민은 그 말에 감동해서 부모님의 허락이 떨어지든 아니든 난 이 남자랑 결혼,한다. 라고 결심해버렸다 

프로포즈 링은,그런 마음의 표현이었다 
네가 나와 함께 하는 인생을 그려줬으니 
나도 내 마음을 네게 준다. 라는 

저희 힘으로 최대한 간소하게 결혼식도 예물도 간단히 하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허락을 받은 상견례 이후 양가 부모님을 보내드린 후 
그제야 긴장이 풀려 노곤해진 몸을 끌고 잠시 쉬러 들어간 카페에서 
나란히 서로의 몸을 기대고 있다가 문득 경민이 생각난 듯 말했다 

- 손, 줘봐 
- ...? 

피곤해서 반쯤 눈을 감은 채 내민 이경의 손에 
그때까지 제 주머니 속에서 기다리고 있던 반지를 꺼내 끼워주었다 
차가운 느낌에 그제야 손을 바라본 이경이 의아한 얼굴로 저를 바라보았다 

- ... 일 캐럿은 아니야, 그건 나중에 돈 벌면 해줄게 

내내 생각했지만 뭐라 해도 오그라들 것 같아서 고작 꺼낸 말이 그거였다 
제 말에 이경의 표정이 더 복잡해졌다 
아무 말도 없이 반지를 물끄러미 보고 있는 이경 때문에 경민의 마음이 쪼그라들었다 

- 난... 준비 못 했어 
- 괜찮아 
- 그리고 못해줘 이번엔 이런 거 

이경의 경제 사정을 제가 빤히 다 아는데 그런 돈 없다는 것쯤은 더 잘 안다 
그래서 예물도 예단도 생략하고 반지도 커플링으로 대체하기로 한 거였다 
그러니 제가 했던 말 그대로 이경에게 해주고 싶었다 
상관없다는 듯 고개를 젓는 경민을 가만히 보던 이경이 제 머리를 끌어안고 중얼거렸다 

- ... 이런 건 내가 하는 거잖아 다이아 반지 주는 남자 아니면 안 할거라며 결혼 
- ... 누가 하면 어때 둘 중에 한 명이 하면 되지.. 

그때 아무 말도 없이 저를 한참 끌어안고 있던 이경이 
결혼 후에도 결혼 반지 대신 항상 저 반지를 지니고 다니는 의미를, 알고 있다 
농담처럼 한 그걸 나라고 생각해,란 말에 얼마나 소중히 하고 있는지도 

경민은 드러내지 않고 작게 한숨 쉰다 
화를 풀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이미 이경이 화가 난 거면, 그것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하필 오늘, 
오랜만에 너와 둘이 시간을 보내기로 한 날에 
나의 못된 성질머리 때문에 





침묵 속에 차를 주차장에 세웠다 
기어를 올리고 브레이크를 올렸는데도 서로 미동도 하지 않는다 

- ... 안 내리냐 

이경이 피곤한 목소리로 묻는다 
경민은 굳은 얼굴로 대답 없이 앉아 있다 
이경은 문득 짜증이 나려고 한다 

- ... 뭐가 문제야 대체 
- ... 
- 내가 어쨌으면 좋겠냐? 카페 접을까? 아니면 일일이 말이라도 해? 저는 결혼했습니다 저에게 말을 걸지 마세요, 그래? 
- 누가 그러래? 
- 그러면 어쩌라는 거냐고 매번 이렇게 화낼거야? 나 좀 믿으면 안되냐? 
- .. 안 믿어서 그러는 거 아니잖아 
- 그럼 왜 그러냐고 대체! 오늘까지 꼭 그래야겠어? 
- 오늘이니까 그런다 왜! 넌 오늘까지 꼭 나한테 그런 거 들켜야겠어? 
- 그런 거라니! 뭐가! 내가 뭘 어쨌길래! 내가 무슨 바람이라도 피웠냐? 어? 

버럭 소리를 질러버렸다 
아차 싶다 
아무리 화가 나도 소리는 지르지 않기로 약속했었는데 
하지만 그때 화가 나면 왜 화가 났는지도 솔직하게 말해주기로 약속했었다 
그러니 약속을 먼저 어긴 건 저 고집불통 기집애 쪽이다 
저건 어쩜 결혼을 해도 변하질 않냐 
저놈의 성질머리, 정말 

제가 뭘 위해 오늘을 준비했는지 갑자기 맥이 탁 풀린다 
다 귀찮아졌다 그냥 집으로 가버릴까 싶어진다 
아, 집에 가도 이 고집불통이랑 같이 있어야한다 

결혼 1주년인데, 
결혼이 귀찮아지다니 
서글프다 

이경은 한숨을 푹 쉬고 운전대에 머리를 파묻었다 고개를 돌려 경민을 본다 
계속해서 차가운 표정으로 앉아 있다 

- ... 집에 그냥 갈래? 

경민의 눈이 살짝 흔들린다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것 같다 
그래도 여전히 말은 없다 

대답이 없는 경민을 바라보다 답답해서 고개를 떨군다 
감정없이 굳어버린 것 같던 얼굴과 달리 
불안정하게 치마 끝을 꼭 쥐었다가 풀었다가를 반복하는 경민의 손이 보인다 
저러다 치마 찢어지겠다 싶게 못 살게 굴고 있는 손에 끼워진 반지가 눈에 들어온다 
저에게 끼워줬던 것과는 다른, 그저 평범한 금가락지 

어휴 이 솔직하지 못한 기집애 
그냥 말로 할 것이지... 꼭 이렇게까지... 
타이밍을 놓치면 끝까지 가버리는 게 이 여자의 단점이다 
그걸 멀리 가지 않게 붙들어야하는 게 이 여자를 선택한 저의 숙명이고 

- ... 화내서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그냥 그러지? 

이경의 한숨섞인 말에 경민이 놀란 듯 바르르 떤다 

- ... 뭐... 너도 화냈잖아 

막판까지 한마디도 안 져야만 과연 남경민이다 
이경은 피식 웃어버린다 

- 그래, 내가 소리질렀다. 그건 미안, 근데 진짜 아까는 니 오해다 
- ...오해.. 안 했어.. 그냥 
- 그냥 뭐 
- ... 

경민이 뭔가 큰 결심이라도 한 듯이 숨이 크게 들이쉰다 
그리고 단숨에 말을 뱉어버린다 

- .. 너한테 들이대는 걔가 싫었던 거지 
- ... 그럴 줄 알았어 

기껏 고백했더니 이경이 제 머리를 쓱쓱 쓰다듬는다 
에이 진짜, 귀찮다는 듯 고개를 털어버리자 이경이 가볍게 볼에 뽀뽀하고 문을 연다 

- 그럼 이제 끝난 거다? 기분 푼 거야? 







누구든 농담이라고 말해줘 지금 이 상황을. 

경민은 얼굴이 화끈거려서 견딜 수가 없다 

기분이야 아까 전에 풀렸지만 아직도 화내던 여운이 남아서 쭈뼛거리며 따라온 방 앞에서 
이경이 갑작스럽게 저를 공주님 안기로 안아들 때부터 불길함을 예감했어야했다 
그때까지 저가 한 게 있어서 내려달라고도 못하고 수줍게 안겨서 들어왔더니... 

이거 뭐야? 

아직 저를 내려놓지 않고 있는 이경을 쏘아보니 
싱글싱글거리며 저를 본다 

- ... 놀리는거야...? 
- 아닌데? 일부러 준비한건데? 별로야? 

좋아하는 건 파스텔톤 아니면 모노톤, 깔끔하게 떨어지는 선 
실용성이 우선이고 단순함와 깨끗함을 지향하고 장식이 많은 건 질색을 하는 경민이 
제일 싫어하는 게 뭐든 과한 것 ... 인걸... 모를 리가 없는데... 

핑크빛 하트 풍선이 동동 떠다니는 객실 안에는 
불이라도 날까 무서울 정도의 향초가 밝혀져 불을 켜지 않아도 밝았다 
급기야 붉은 장미가 뿌려진 침대를 발견하는 순간 경민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이건... 너무 과해...! 

- 싫어?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경이 저를 놀리려는건지 진심으로 좋아할거라고 생각한건지 모르겠다 
진지하게 저를 응시하는 게, 어쩌면 제가 정말 좋아할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래.... 장미 백송이도 사서 온 남자니까.... 
오래 전 생각이 나서 경민은 작게 고개를 흔든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누가 그랬더라.. 

- 내려줘 이제 

저를 안고 있는 팔이 약간 흔들리는 것 같아서 
아아 내 남편도 이제 나이를 먹었어, 라고 엉뚱한 생각을 하며 말한다 
이경은 경민의 말을 들어주는 대신 으차, 하고 고쳐 안더니 싱글싱글 웃으며 이마를 맞대온다 

- 힘들잖아, 내려줘 
- 너 정도도 못 들까봐? 매일 새벽에 운동은 누구 좋으라고 시키는 거더라..? 
- .. 이상한 소리 하지 말구 

불퉁하게 대답하는 경민의 입에 이경이 가만히 입맞춘다 

- 이 고집쟁이야, 내가 사랑한다구 너 

꼭 안해도 될 한 마디가 더 많다 
제가 사랑하는 이 남자는 
그러니까 제 남자겠지만 

- 나도 그렇다구 이 바보야 

경민도 이경의 목에 팔을 감으며 대답한다 
경민의 대답에 이경이 진하게 키스하며 경민을 조심스레 침대 위에 내려놓는다 
입술을 뗀 이경은 침대에 앉은 경민의 앞에 무릎 꿇고 앉아 가만히 경민을 바라본다 

- 눈 감아봐 
- ...? 

의아해진 경민이 고개를 갸우뚱하지만 
재촉하는 이경의 눈에 우선 눈을 감는다 

대체 뭘 하려고...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다가 곧 흐르는 정적에 감은 눈을 뜨고 싶은 걸 꾹 참고 기다리는데 
갑자기 살며시 제 손을 잡는다 
그리고 조심스레 반지를 뺀다 
놀라 움찔하니 한 손으로 제 눈을 가린다 

- 아직이야 

만류하는 목소리에 잠잠해지자 이번엔 다시 제 약지에 반지를 돌려놓는다 

- 됐어 이제,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눈을 떠보니 
기대와 불안에 찬 얼굴로 이경이 저를 올려다보고 있다 

- 일 캐럿은 아니야, 그건 나중에 돈 벌어서 해줄게 

그제야 경민은 제 손가락을 본다 
있어야할 자리에 있는 그 반지가, 바뀌었다 
이경에게 제가 주었던 그것과 같은 디자인의, 작게 빛나는 보석이 박힌 반지를 보는 순간 
울컥, 눈물이 흘러버린다 

- ... 넌 왜 이럴 때마다 우냐 

이경이 경민이 옆에 앉으며 눈물을 조심스럽게 닦는다 
훌쩍이며 경민이 묻는다 

- .. 이거 무슨 돈으로 샀어? 
- 허? 

설마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던 이경이 당황한다 
그래도 경민은 알아야겠다 
제가 주는 용돈 외에 이경이 따로 챙기는 건 없으니 
아무리 작은 보석이라지만, 이런 걸 살 돈이 생길 리가 없는데 
대체 무슨 돈으로 이걸 산 건지, 혹시 빚이라도 낸 건지 

- ... 그걸 꼭 들어야겠냐 
- 무슨 돈으로 샀냐니까, 

이경이 산통 다 깼단 표정으로 뒷머리를 벅벅 긁는다 

- 담배 끊었다 왜! 식사도 옆집 가서 먹고 가끔 차 안 가지고 뛰어도 다니고 

그냥 주면 좀 받을 것이지 구질구질하게 그런 건 왜 묻고... 
중얼중얼 투덜거리는 이경이 사랑스럽다 
제가 프로포즈를 했고, 이경은 하지 않았단 게 그저 그땐 상황이 되는 사람이 하면 되지 였는데 
역시 저도 받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루에 한 갑 넘게 피우는 골초였던 이경에게서 
사귀는 내내 끊으라고 해도 꿈쩍도 않던 담배 냄새가 결혼 후엔 사라져서 
요즘 줄였나, 설마 끊었나 속으로 기특하게만 생각했었는데 
설마 이걸, 이 조그만 걸 위해서 그렇게 끊기 힘들어했던 걸 포기했다니 
경민은 다시 눈물이 날 것 같다 

코 끝이 빨개져서 눈물을 참고 있는 경민을 보던 이경이 묻는다 

- 마음에 들어? 
- ... 뭘 이런 걸 샀어.. 비싼데... 나 없어도 되는데.. 

너무 좋은데 말을 못하겠다 
이경은 가만히 제 손에 끼워진 반지를 가리킨다 

- 이게 너라며, 너도 나 껴야지 

그 말에 다시 눈물이 흘러버렸다 
소리도 안 내고 도르르 눈물만 흘리고 있는 경민을 가만히 제 품에 안는다 

- 넌 참... 어째 맨날 우냐... 누가 너보고 독하다 그러든 

너였거든요... 

훌쩍이면서 왼손을 들어 반지를 다시 본다 
이경이 제 손을 들어 가만히 옆에 갖다댄다 

- 빼면 죽는다, 
- ... 넌 뺄 거 잖아.. 
- 일할 때도 낄까? 나야 괜찮지 반지가 아까워서 그러지 
- ... 

대답을 망설이는 경민을 보던 이경이 피식 웃으면서 
장미 꽃잎 위로 확 밀쳐 눕힌다 

- 그건, 나중에 고민하고, 우선은 급한 거 부터 

블라우스에... 꽃잎 물드면 안 되는데... 

문득 제 흰 옷에 짓이겨진 꽃물이 들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가 
장미 향에 취해 이내 사라져버린다 

모르겠다 우선은 급한 것 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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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한 건... 급한 건... 음..... 나도 우선 급한 것 부터. 

이것도.. 어느 베이리의 댓글의 요청에서 시작했고.... 
불꽃같은 투경은, 아마 결혼해서도 불꽃 튀게 싸우고 풀고 하지 않았을까 해서, 

아,., 자꾸 이거 쓰다보니까 연애하고 싶어 ㅠ 현실에 이런 남자는 없겠지...?;;;; 
내가 쓰고 내가 좌절하는 이 악순환은 뭔가요 정말 슬퍼 ㅠㅠ 
그러나 이것을 읽어주는 냔들에게는 즐거움이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