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ool/you (j&h)
[학교2013][지훈x하경] 그건 너. 6
april_m
2013. 1. 28. 20:30
열람실 문을 살짝 열고 들어서자 조용한 열람실 오른쪽 창가의 늘 앉는 자리에 하경의 뒷모습이 보인다 지훈은 조용히 다가가 슬쩍 빈 자리에 앉는다 인기척을 알아챈 하경이 옆자리를 보고 지훈을 발견한다
- 왔어?
작은 목소리로 하경이 말한다 지훈은 고개만 까닥이고 가방 속 대본을 꺼낸다
대본.
갑자기 만사가 귀찮아진다 이 짓을 언제까지 해야하는 걸까 하경이 일부러 구해다준 영문 대본이 오늘따라 더 버겁다
지훈이 가방에서 꺼낸 대본을 펼쳐볼 생각도 없이 한숨을 내쉬자 다시 책을 보고 있나 싶던 하경이 슬며시 팔짱을 낀다
- 지훈아 나 커피 사줘
귓속말로 속삭이는 하경을 바라보자 하경의 큰 눈이 반짝거리며 눈웃음 짓고 있다
알고 있었구나.
온몸에 기운이 빠져나가버린 것 같았던, 그래서 분명 함께 저녁을 먹고 하경을 바래다주고 집에 돌아가서 무사히 씻고 잠들었는데도 다음날 아침 어제 일이 꿈이었나 아니었나 얼떨떨하기만 했던 고백일 이후에도 지훈과 하경의 관계는 별로 달라지지 않아서 오히려 놀랐다
언제나처럼 만나서 공연을 보고 식사를 함께하고 지훈의 그날 공연이나 앞으로의 스케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지훈에게 도움이 될만한 책이나 대본을 하경이 건네고 하는 일상. 연락이 좀더 잦아졌고 눌러왔던 애정 표현을 참지 않고 할 수 있다는 것 외에는 이전과 그다지 달라지지 않아서 지훈은, 그동안 하경이 자신을 위해 얼마나 많은 걸 해왔나 새삼 깨달았다
이전과 가장 달라진 점이 있다면 바로 이것,
친구로 지내던 시절엔 민망하면 화를 내는 하경을 놀리다 맞은 적도 있었는데 여자친구인 하경은 정말 같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애교스러웠다
갑자기 뭘 사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풀죽어 있던 지훈이 결국 웃어버릴때까지 큰 눈을 깜빡거리며 마치 어느 영화에 등장한 고양이 같은 표정을 하고 바라보기도 했다 특히나 지훈이 오디션에 떨어진 날이면 어김없이 하경은 속상해하는 지훈에게 전에 없던 애교를 부리곤 했다
바로 지금처럼.
- 그럴래?
지훈은 하경의 손을 잡고 조심스레 열람실을 빠져나온다
- 아, 나 이거.
하경은 복도 끝에 있는 자판기를 가리킨다
- 다른거 먹어도 되는데 - 아냐 날도 춥고 이젠 밖에 나갔다 오기도 귀찮아
또다시 하경의 눈이 곱게 접힌다 지훈은 마음이 짜르르 떨린다
연애를 막 시작한건 막 여름으로 접어들려는 봄 끝무렵이었던지라 늘 밖에서 만나도 괜찮았지만 날이 추워지고 보니 밖에서 하경을 오래 떨게 할 수는 없었고 그때 하경이 도서관에서 만나자고 제안했다
- 나도 명색이 학생이니 공부해야하고 너도 오디션 준비 해야하니까 같이 하면 좋잖아
사고로 인한 첫 주역 데뷔 이후, 제법 자신감이 붙은 지훈은 이곳 저곳 오디션 문들 두드리기 시작했고 자주 미끄러졌지만, 그래도 꽤 무게있는 조연이나 독립영화의 배역들을 따내기 시작했다
하경은 말한대로 지훈의 오디션이 있을 때 마다 배경을 이해할 만한 관련 자료나 외국 작품일 경우에는 영문 대본을 건넸고 지훈은 덕분에 오랜만에 고3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으로 공연과 알바가 없는 날에는 꼼짝없이 하경 옆에 앉아 자료를 공부해야만 했다
연기를 업으로 삼으리라 했지만 어떻게 인물을 연구해야하는지 알지 못했던 지훈은 하경이 구해준 자료들을 토대로 캐릭터를 분석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쌓아가는 법을 찾아냈고 오디션의 성공률도 그에 따라 꽤 진전이 있었지만 그래도 오늘처럼 낙방하는 경우가 단숨에 붙는 경우보다 더 많았다 그러니 지갑이 가벼운 것이 당연지사.
그래도 더 좋은 것을 사주고 싶은데.
가벼운 지갑이 아쉽다 지훈이 망설이자 하경이 지훈의 팔을 잡고 끌어당긴다
- 나 밀크커피
지훈이 주머니를 뒤적여 동전을 찾아내 하경의 커피를 뽑아준다 여전히 썩 기분이 나아지지 않은 지훈이 다시 한숨을 쉰다
- 괜찮아?
하경이 지훈의 팔을 살짝 두드린다 하경의 눈이 걱정스러운 듯 조금 처져있다
- 아 이번엔 좀 기대했는데
지훈은 짐짓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웃어보인다 하경은 가만히 지훈의 팔을 쓸어내린다
- 그 사람들이 못 알아본거니까 분명 다음 기회가 올거야 더 굉장한 일이 있을거야 그 사람들이 나중에 다 후회할 정도로
조근조근한 하경의 말에 그게 언제가 될지도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지훈은 괜찮아진 듯한 기분이 된다
- 그러니까 오늘 우리 라면 먹을까?
하경이 다시 생긋 웃으면서 말한다
- 그러니까, 라면.은 뭐야? - 강주가 그랬단 말야 특별한 날엔 라면 먹는 거라고
아아, 그 라면 부심을 누가 전염시켰는지 알겠다 이 라면 귀신들 같으니-_- 지훈은 머리가 아파온다
그래도. 그래, 네가 좋다면 나는 좋아.
=
사람들이 많이 왕래해서 꽤나 시끄러운 커피 전문점 구석 소파에 앉아 하경은 보고 있던 책에서 눈을 떼고 시간을 확인한다
지하철 역 앞에 있는 곳이라 그런지 들고 나는 사람이 많아서 썩 집중이 되지 않는다 하경은 결국 펜을 내려놓고 쓱 주변을 둘러보다 막 커피 기계에서 에스프레소를 뽑아내던 지훈과 눈이 마주친다
금새 끝나
지훈이 입모양으로 하경에게 말한다 하경은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주고 다시 펼쳐놓은 책으로 시선을 돌린다
지금이 다섯시니까 20분쯤 있으면 지훈의 아르바이트가 끝난다 하경은 이미 두시간쯤 앉아 있어서 굳은 몸을 비틀면서 작게 기지개를 편다
- 어, 하경아 여기서 뭐해?
누군가 자신에게 아는 척을 하고 생각지도 못한 인사에 하경이 놀라 고개를 든다
- 너 휴학하고 공부한다고 하지않았어?
꽤 오래 연락을 하지 않았던 학과 선배가 털썩 앞자리에 앉는다
- 아 네 약속이 있어서 잠깐 - 공부는 잘 되니? - 뭐 그냥 그렇죠...선배는 여기 어쩐 일로..? - 아 남자친구랑 공연 보기로 해서
얼버무리는 하경에게 호탕하게 웃으며 대답한다 바람끼만 아니었으면 선배로는 후배들 밥도 잘 사고 성격도 좋은 사람이었다 하경은 조금 긴장을 푼다
- 아 그래 너 그러고 보니까 요즘 연애는 하니?
뜬금없는 선배의 질문에 하경의 볼이 약간 발그레진다
- 헛 하나보네? 누구냐? 천하의 설대 경영 얼음공주 송하경이 사귀는 사람이? 우리 학교야? 치대? 의대? 법대?
선배의 놀랍다는 듯한 질문에 하경은 당황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어보인다
- 뭐야 설마 우리과는 아니지? - 아녜요 우리 학교 사람 - 그럼 유학생? 설마 직장인이야?
어느 쪽도 아닌데
하경은 조금 귀찮아진다
- 아녜요 그런거 학생이예요 연극하고. - 설마, 농담이지?
선배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하경도 따라 표정이 굳는다
- 농담 아닌가보네? 니가 뭐가 모자라서 그런 사람을 만나니?
하경은 할말을 잃는다 아직까지 아무에게도 지훈과 만난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지만 설마 이런 반응을, 생각해서는 아니었다 정호와 이경을 포함한 애들에게 말하기 조금 민망했고 그래서 흥수와 만나는 강주에게도 말하지 못했고 그렇게 미루다 보니 시간이 흘렀을 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하경은 앞의 선배가 말하는 내용보다 혹시나 자신이 정말로 이 선배가 말하는 것처럼 지훈이 부끄러워서 말하지 못했던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울컥 미안하고 겁이 난다
- 정신 차려 너 그러다 진짜 정들면 어쩌려고 그러니? 그런 아무것도 아닌 애 만나봐야 도움 안돼
나름대로 하경을 신경쓴다는 듯한 선배의 말에 결국 발끈한 하경이 한마디 쏘아 붙이려는데 바로 뒤에서 우당탕, 쏟아지는 소리가 난다 물컵이 떨어지고 얼음이 바닥에 쏟아진다 선배의 구두에도 물이 튀었던가보다
- 뭐예요 이거!
날카로운 선배의 지적에 누군가 급하게 다가와 선배에게 티슈를 건네고 바닥을 닦는다
- 죄송합니다
익숙한 목소리
투덜거리며 구두를 닦는 선배는 보이지 않고 그 목소리만 또렷하게 들린다 머리 숙이고 있을 그 목소리 하경은 차마 돌아보지 못한다
저벅저벅
재빨리 바닥을 훔치고 컵을 도로 챙겨 든 발소리가 뒤로 사라진다
- 하경아, 어머 얘 하경아
선배가 자신의 어깨를 흔든다
- 너 왜 갑자기 넋이 나갔어?
하경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다 그리고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깨닫는다 잠시라도 지훈을 부끄럽게 생각한 스스로에게 화가 나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자신이 너무 바보 같다 하경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선다
- 선배. 저 가요. - 어, 그.. 그래
갑자기 단호해진 하경의 표정에 선배는 당황한다
- 그리고 선배. 그렇게 함부로 얘기하는 거 아니예요.
하경은 가방에 대충 짐을 쓸어넣고 이미 지훈이 사라져버린 카페 밖으로 뛰어나간다
=
갑자기 사라진 지훈을 찾지 못해 거의 울 것 같아졌을 때 하경은 한참 떨어진 골목 모퉁이에서 지훈을 발견했다
반갑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서 하경은 바로 달려가지 못하고 자꾸만 걸음이 늦어진다 다가가보니 지훈의 손에는, 발성 때문에 끊겠다던 담배가 불을 붙이지도 못하고 구겨진 채로 쥐여있다
- 지훈아
조심스런 하경의 말에도 지훈은 시선을 피한다 아직까지 어떤 얼굴로 하경을 봐야할지 모르겠다 자격지심이 튀어나올 것 같아서 혹시라도 생각지 못한 말로 하경을 상처입힐까봐 그리고 자신이 정말로, 아무리 생각해도 아무것도 아닌 놈이라서
지훈은 차마 하경을 바라볼 수가 없다
- 나 좀 봐
고개를 돌리고 고집스럽게 허공을 바라보는 지훈의 두 뺨을 손으로 감싸며 하경은 억지로 그와 두 눈을 맞추려고 노력한다
- 나 봐 지금. 응?
물기가 섞인 듯한, 하경의 목소리에 마음이 약해진 지훈이 느리게 고개를 숙여 일렁이는 하경의 눈을 바라본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으려 하지만 억지로 내색하지 않는다
- 나 똑바로 봐
하경은 절대로 울지 않겠다는 듯 살짝 미소를 띄고 지훈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단호히 말했다
- 너, 대단해.
지훈이 움찔 벗어나려고 하자 하경의 손이 더욱 힘이 들어간다.
- 기억나? 우리 고 3 때 내가 너 외우라고 요점정리 노트 줬을 때 너 그거 일주일만에 다 외워왔잖아 정리만 일주일동안 한건데 너 일주일만에 외워왔잖아 그걸 다 - 그거야 니가 그때 그것도 못하냐고.. - 그래 내가 그랬어 그것도 못하냐고. 왜냐면 난 못하니까. 그거 누구도 못하니까. 절박한 이지훈만 할 수 있는 거였으니까.
간절한 하경의 눈에 빨려들어갈 것 같아서 지훈은 물러서려고 했던 것도 잊고 아무 대답도 못한 채 멍하니 하경의 얼굴을 바라보기만 한다
- 난 엄마가 닦아준 길, 그대로 왔어 다들 내 길 정해졌다고 했을 때 내 미래를 남들이 논할 때 나 그게 진짜인 줄 알았어 근데 넌 아니었어 너 안 그랬어 다 니 세계를 한정지을 때 넌 계속 거기 있을거라고 할 때 넌 그 세계를 깨고 나왔어 네 선택으로 네 노력으로. 그리고 지금도 계속 움직이고 있잖아 넌 달라 넌 네 인생을 바꿨어 다 늦었다고 할 때도 포기 안 했어
하경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난 절대 널 놓지 않아
- 그러니 절대로, 절대로, 그런 말 하지마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 말, 절대로 하지마
하경의 간절함에 빨려들어가버린 지훈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제야 긴장이 풀린 하경이 쓰러지듯 지훈에게 폭 안겨온다 얼결에 하경을 받아 안은 지훈은 그제야 하경이 미세하게 떨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얼마나 긴장을 하고 있었던 걸까
지훈은 문득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하는 하경에게 고맙고 미안해서 울컥 화가 나려고 한다 그런 지훈을 알아차렸는지 하경은 지훈에게 안긴 채로 작게 말한다
- 나는 지금 너한테 투자한거야
지훈이 물음표 가득한 얼굴로 하경을 내려다보자 그제야 조금 기운을 차린 듯한 하경이 말을 이어 나간다
- 나는 나중에 엄청 우량주가 되서 투자금 백배 불려줄 이지훈이라는 가치주에 투자한거야 그러니까 나중에 백배로 돌려주면 돼 넌 분명히 그렇게 될 거니까 그러니까 당당하게. 스스로를 못 믿겠으면 네게 투자한 날 믿어. 그리고 난.
하경이 수줍게 덧붙인다
- 니 몸만 와도 좋아. 니 전체가. 좋아. - ... 그건 내가 해야하는 대사거든
지훈은 민망함을 감추려고 작게 투덜거린다 이렇게까지 날 믿어주는 사람이 세상이 또 있을까 나조차도 믿지 못하는 내 가능성에 전부를 걸어주는 사람이.
지훈은 떨리는 손으로 하경을 꼭 끌어안았다 내가, 이 손을 먼저 놓는, 이 눈을 배신하게 되는 일은 절대로 없다.
========================================== Q. 떡밥을 모두 회수하는 건 불가능하다는게 사실인가요? A. 네.
이걸 쓰면서 세상의 모든 작가와 드라마 작가와 시나리오 작가를 존경하기로 했어 진짜 열심히 던진 떡밥을 회수하고 다시 분위기를 깔고 있는데 과연 이걸 다 어떻게 수습하지? ㅠㅠ 싶은 생각 뿐이야; 냔들이 알아차릴 수는 있을라나; 분명히 초 다크다크하게 시작했는데 쓰다보니까 애들이 너무 밝아졌어;;;ㅠ 마지막으로 풀린 메이킹영상을 보고 지훈이가 너무 활짝 웃고 있고 -_- 하경이는 너무 시크해서 잠시 감정선이 깨졌지만; 그래도 난 여전히 지훈 배우가 <보통의 연애> 한재광 역 같은거 하면 잘 어울리는 마스크라고 생각해서 꾸역꾸역 그냥 맘대로 쓰는데... 너무 캐붕인가도 싶고;; 쩝 가벼운 몸살을 앓고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 이야기에 취해서 그런게 아닐까 싶다는... 마지막에 쓴 니 전체가 좋아. 저 장면은 거의 2화? 쓸때부터 써놨던 거거든... 저런 식으로 감정 엄청 쎈 장면들만 생각나고... 그 중간에 빈걸 채워서 쓰고 있는거라.. 그 감정을 계속 가지고 있어야하니까,, 에고... 빨리 써버려야지 감정 털어내고 좀 가볍게 살거 같은데 하아.... 날 위해서라도 빨리 쓸게... 혹시라도 설정이 섞일까봐 다른 냔들 글도 못 읽고 있어서 그것도 너무 아쉬워 ㅠ 빨리 써버리고 몰아 읽어야지!
계속 무거워서 미안 - 또 더 무거울거라서 미리 미안; 그래도 기다려준 냔들아 고마워 +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저 선배가 했던 말은 내가 실제로 들었던 이야기 였어. 그때 내 옆에 남친이 있었던 건 아니어서 그냥 혼자 듣고 말았지만 그래도 나는 하경이와 달리 그 선배에게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하지 못했고.. 그래서 그게 참 오래 미안했더랬어 헤어지고 나서도 말야 조금 이상한 말이지만 오늘 하경이의 입을 빌려서 - 그 사람에게 미안하다고 말한 기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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