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타][나나x선우] 날 울리지마.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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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나짱!
금새라도 꺄르르 웃음이 터질 것 같은 끝자락을 달고 있는 높은 톤의 목소리가 뒷통수에 날아와 꽂힌다
다리미를 쥐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간다
미간이 꿈틀하지만 애써 알아차렸단 티를 내지 않으려고 돌아보지 않는 사이
다리미를 놓고 뒤로 숨어버릴 타이밍을 놓쳤다
망설이는 틈 사이로
다다다 뛰어온 발소리가 탁, 하고 나나의 옆을 파고 든다
- 나나짱 왜 아는 척 안해? 나 나나짱 완전 크게 불렀는데에?
-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던 거 같은데...
건조한 목소리로 웅얼거리며 잡힌 팔을 돌려 빼낸다
- 이렇게 막 잡지도 말라고 했던거 같고
- 으응 미안미안 근데 나나짱
- ....
언제 팔을 놓치기라도 했냐는 듯 금새 도로 팔짱을 끼어온다
이렇게 친근한 태도는 여전히 불편하다
어떻게 어느 누구에게나 당연하다는 듯이 파고들 수 있는 걸까
거리를 둬보려고 여러번 무시도 하고 경고도 했지만 도무지 통하질 않는다
나나는 한숨을 쉬며 그제야 아리를 돌아본다
눈을 반짝이며 나나를 바라보고 있는 아리의 입술이 금새라도 말해버리고 싶다는 듯 달싹인다
지금 당장 물어봐줘! 라고 외치고 있는 눈빛에 나나는 귀찮다는 듯 툭, 말을 내뱉는다
- ... 뭔데
하나도 안 궁금하고 넌 그만 좀 꺼져줬으면 좋겠다는 듯 건조하기 이를데 없는 목소리인데도
아리는 대단한 허락의 말이라도 떨어진 듯
등 뒤로 숨긴 한쪽 손에 들고 있던 아이패드를 들이민다
- 이거이거, 나나짱 맞지?
힐끗 눈짓으로만 화면을 바라본 나나의 눈이
아리가 가리키고 있는 사진을 확인한 순간 아주 약간 커진다
그제야 발견한다
잊고 있었던 시간의 흔적
여전히 화면의 나나를 가리킨 채 대답을 기다리는 아리의 눈이 반짝거리는 걸 느끼면서도
차마 손을 거두지 못하고 천천히 아리의 손에서 노트패드를 받아든다
- 맞지? 거기 옆에 있는 거 나나짱이지?
아리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그저 화면에 띄워진 이미지를 바라본다
분명 오른쪽 비스듬히 찍힌 건 자신이 베이스를 메고 있는 모습.
키보드를 치며 마이크에 입을 가져다댄 설찬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찍힌 건 세이와 아주 작게 보이는 자신
그리고 자신보다 멀리 흐릿한 실루엣의 선우가 보인다
잊고 있던 그날의 기억이 확,하고 살아나서
나나는 잠시 눈을 깜빡, 깜빡, 한다
누가 찍은 걸까
어느새 찍혔던 걸까
아니 언제쯤이었을까 이 사진이 박제한 순간은
이상하게 보일거란 생각을 하면서도
애써 사진에서 그 순간을 읽어보려고 한다
설찬에게 초점이 맞춰져있긴 하지만
세이의 얼굴이 조금 일그러져있단 건 알 수 있다
아니 그렇게 보인다..
보지 않아도 그랬을 거란 걸 안다
자신이라는 걸 겨우 알아볼 수 있는 그 뒤의 작은 얼굴도
아마 일그러져있었을 거다
그리고
멀리 실루엣의 조금 비스듬히 고개 숙인 그 얼굴도
결코 언제나와 같은 냉정한 평정심 같은 건 유지하지 못했을 거다
모두의 시선이 엇갈렸던 순간
어디서 이걸 발견한 걸까
궁금하지만,
- ... 아니야 나.
애써 시선을 거둬들이며 아리에게 무덤덤히 돌려준다
지나치게 오래 들여다봤을지도 모르겠다
의혹에 가득차 눈으로 묻는 아리를 외면하고
도로 돌아서서 다리미를 잡는다
- 진짜? 진짜 아니야? 나나짱이랑 완전 닮았는데
- ... 귀찮게 할거면 가서 화장이나 고쳐.
다시 돌아볼 생각이 전혀 없어보이는 대답에
아리는 웅얼거리며 다시 화면을 확대해본다
- ... 아닌데 암만 봐도 나나짱 맞는거 같은데... 진짜 아니야?
- .......
- .... 히잉..... 윤설찬 이랑 드디어 끈이 닿았나 싶었는데 .....
역시, 피하길 잘했다
나나는 눈에 띄지 않게 심장을 내려놓는다
절대 이 맹랑한 꼬맹이에게 설찬과 연계점을 들켜서는 안된다
- 진짜? 진짜 몰라?
끈질기기도 하지.....
- ... 차라리 그 사진 올린 사람한테 물어보지 그래....
그냥 무시해버렸어야하는 건데
그래도 자신도 좀 궁금하긴 하다
대체 자신도 보지 못했던 저 사진을 어디에서 구한건지
- 아 몰라.. 누군지 알면 벌써 연락해봤지 ...
원래 팬픽으로 완전 유명한 블로그인데 완전 희귀템만 가뭄에 콩 나듯 올려주거든
절대 설명도 안 붙이고 그런단 말이야~ 누군지도 모르고.. 밀키웨이는 진짜 너무 신비 컨셉이야~
... 밀.. 키.. 웨이....
뒤돌아선 나나의 미간이 심하게 찌푸려진다
심은하 이게 진짜.......... 아직도 못 끊었냐......
친구,라고 선언할 땐 언제고
설찬이 활동에 복귀해 학교를 떠난 후 은하의 팬질은 다시 시작되었더랬다
그래도 친구인데 민폐를 끼칠 순 없지! 라면서 선택한 활동명이 밀키웨이.
그정도 글빨에 꾸준히 글을 써서 올리는 팬심이면 한번쯤 정체를 드러낼 법도 한데
누구인지 어떤 신상인지 절대 밝히지 않고 오로지 블로그를 통해서만 업로드하는,
베일에 쌓여 있는 게 오히려 더 호기심을 부채질하는,
그 긴 맨인블랙 활동 기간 동안 단 한번의 눈돌림도 하지 않은,
기획사에서마저 연재물에 대해서 언급하는 팬픽 작가
차마 사람들에게 밀키웨이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고 밝히진 않았지만,
이쪽 바닥에서는 꽤나 유명한 이름이란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물론 은하에게 탈덕은 없어도 휴덕의 기간은 있었다는 것도
일상생활에서는 누구도 설마 은하가 밀키웨이란 걸 짐작도 못하게
완벽한 일코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도.
그정도 취미 생활정도야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고
지난해 맨인블랙 활동 중단 후에 잠잠하길래
이제 나이도 있으니 완전 접을 때가 온건가 했더니만....
- 근데 이거 무슨 공연 같은데 대체 뭐지? 본 적 없는데
본 적이 있을리가.
야심차게 준비했던 여신의 키스,는 그 회 방송으로 막을 내렸으니 말이다
여신의 키스, 그날의 대결은 칼라바의 승리였다
그렇지만 칼라바도 올포원도 알고 있었다
그건 그저 - 새삼스럽게 스타임을 깨닫게 된 - 설찬의 힘이란 걸.
맨날 80만 맨홀이니, 내가 스타니, 해도 그게 썩 와닿지 않았는데
압도적인 표차를 보는 순간 이게 대한민국 아이돌이구나. 알았다
무대에 섰던 칼라바 전원이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날의 공연은 최악이었다는 걸.
모두 노래할 상태가 아니었고
아무도 무대에 몰입하지 못했고
어쩌면 누구도 그날 무대에 정작은 서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연주를 마쳤고 노래를 끝냈지만
무대 아래에서 아무도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속이 시원하기는 커녕
하지 못한 말이 쌓여 답답하기만 했다
그리고 결과 발표의 순간이 왔을 때,
모두에게 납득되지 않는 결과를 받아들고
물론 그렇게 어마어마한 투자와 비장의 무기를 준비하고도 진 올포원의 충격도 컸겠지만
칼라바 멤버들의 충격은 더 컸다
최선을 다하지 않고도 얻은 승리.
날 울리지마.로 졌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
그건 이긴 것이 아니었다
이겼지만 오히려 무력하고 허탈하기만 했다
그날 이후 나나는 다시는 공개적으로 노래하지 않았다.
아마 다른 아이들도 그렇지 않았을까
다시는 그날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던 걸 보면.
어쨌든 그날은 칼라바의 승리였고, 여신의 키스는 석연찮은 이유로 그대로 종영되었다
그 뒤에 자존심이 상한 마준희네가 있다는 말도 들려왔다
MSG에서 나서서 이 기회에 피디를 찍어내려고 힘을 썼다는 말도 있었다
테이프까지 수거해갔다는 소문이 날 정도였으니
재방은 커녕 온라인에서 파일 하나 돌지 않았고
그대로 팬들 사이에서는 전설의 방송으로 남았다
그걸 그때 겨우 초딩이었던 아리가 봤을리가 없다
- 윤설찬, 내가 찾아내고 말거야! 회사 들어오면 볼 수 있나 했는데 바로 잠수 타버리고!
요 맹랑한 꼬맹이 좀 보게
제 옆에서 칭얼거리는 아리의 목소리가 거슬린다
한참 어린게 자신에게도 꼬박꼬박 나나짱 이라면서 말 놓는게 참 철없구나 싶었는데
이젠 까마득한 선배도 제 친구인양 막 대하네...
여신의 키스 방송 때 자신이 만들었던 옷을 보고
설찬의 기획사에서 코디로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해왔더랬다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옷 만드는 건 계속 해볼까도 싶었고
그리고 어쨌든 늘 이상적인 몸의 상대가 있다는 것도 끌렸고 해서 발을 들여놓은 채
벌써 7년이란 시간이 지나가버렸다
딱히 옮기고 하는게 귀찮아서 어쩌다보니 MSG 전속 코디처럼 되어버렸고
이제는 나나가 어떻게 이 회사에 들어오게 됐는지 기억하는 사람들도 거의 없었다
아리는 나나가 실장으로 승진한 뒤 처음 어레인지한 여자 아이돌 그룹의 멤버였다
처음부터 하도 윤설찬 윤설찬 하길래 아예 자신이 설찬과 연관이 있다는 걸 숨겼지만
자신과 같은 나이인 설찬에게 반말을 하는 걸 보니 어쩐지 거슬려서
처음으로 한마디 해본다
- 윤설찬이... 한참 나이 많지 않나?
- 겨우 일곱살 차이인데 뭘! 결혼하면 그건 나이 차이도 아니랬어!
겨우 일곱살이라
맹랑한 건 알았지만 직접 확인한 건 오랜만이라 피식 웃음이 나버린다
윤설찬이 이거 들으면 또 호들갑 떨면서 저는 스타라느니 스타의 삶은 피곤하니 어쩌니 진저리를 치겠지
그 말을 할 설찬은 지금 한국에 없다
작년 맨인블랙의 MSG와의 계약이 끝난 뒤 맨인블랙은 무기한 활동 중지에 들어갔고
몇몇 멤버는 군입대를 하기도 하고 개인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었지만
이미 솔로로도 성공적으로 데뷔해서 활동하고 있던 설찬은 정작 순식간에 주변을 정리하고 사라졌다
설찬의 흔적을 찾기 위한 팬들의 노력은 비상했지만
아직까지 설찬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마, 앞으로도 알아내긴 어려울게다
설마 (본인 주장으로) 우주 대스타 윤설찬이 그런 곳에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할 테니.
아리는 안타깝게도 설찬이 활동을 중지하기 전에는 연습생으로 내내 눈도 못 마주치다가
활동을 중단한 직후에 데뷔를 하는 바람에 설찬과 얽힐 일이 거의 없었던지라
조금이라도 설찬에 관한 이야기가 사무실에서 나오거나
약간의 단서만 발견해도 어떻게든 흔적을 찾아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약간이라도 자신이 설찬과 연관되어 있다는 걸 들키면
설찬에 대한 정보를 내놓으라고 들들 볶일게 분명하다
심지어 설찬이 어디있느냐라고 묻기라도 하면....
나나는 혹시라도 이상한 점을 들켜서
아리에게 꼬투리라도 잡히지 않을까 조심하면서
아리가 꾹꾹 누르고 있는 아이 패드의 이미지를 넘겨다 본다
멀어져 잘 보이지도 않는 그 얼굴이
꼭 금새라도 울 것 같아서
갑자기 명치 끝이 콱하고 조여온다
저 날,
차라리 우리가 졌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우리는 여전히 함께 노래하고 있었을까.
우리는,
함께 노래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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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영한지 거의 한달이 다 되어가는데 이런 뒷북...
전에 쓰던 것도 마무리 못했는데... 이건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일단 나나의 이야기가 생각나버려서.
솔직히 몬스타에서 젤 맘 쓰이는 커플링이 선우 나나 인 사람이 나냔 하나는 아니었잖아? 나만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