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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타][나나x선우] 날 울리지마. 8(下)

april_m 2013. 9. 5. 22:17








또각또각 또.. 피익 .탁 


순간 발목이 꺾일 뻔 한 걸 휘청 하고 균형을 잡는다 
오랜만에 신어서 그런지 높은 굽의 구두가 영 어색하다 
예전엔 이런 거 어떻게 신고 다녔었는지 모르겠다 
뛰어다닌 적도 있었던 것 같은데.... 

게다가 계단 

어휴... 절로 한숨이 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이 삐빅 하고 메세지 도착을 알린다 


"왔어?" 


아아 나 미쳤나봐 겨우 문자에 왜 이래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려는 걸 깨닫고 
억지로 정색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답문을 보낸다 

"이제 공연장 입구" 

일단 저 계단을 내려가야한단 말이지... 
눈으로 대강 계단 갯수를 세어본다 
무슨 공연장을 이렇게 깊게 만들어놨는지... 
일단 내려간다 치고 나중에 올라올 일이 걱정이다 


짧게 숨을 들이마시고 마침내 결심을 하고 내려 가려는데 
그새 또다시 문자가 도착한다 

"있다가 보고 웃지마 ㅠㅠ" 


풋, 


결국 겨우 감췄던 웃음이 튀어나와버렸다 

대체 어떻게 하고 있길래 울음, 표시까지 해서 보냈는지 
설마 지난번에 봤던 사진보다 더 이상한 건 아닐테지 

몸에 조금 남아있던 긴장이 날아간다 
날듯이 걸어 계단을 내려간다 
공연장 문을 열려고 하는데 
문득 유리문에 비친 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세이가 사준 크림색 원피스에 
차분히 반으로 묶어 넘긴 생머리 
아직까지 조금 미소가 남아있던 얼굴이 서서히 굳는다 
낯선 모습을 보니 다시 몸이 긴장된다 

... 입지 말 걸 그랬나... 

망설여지는 건 다 이유가 있는 건데 
유리문에 비친 제 모습을 다시 살핀다 

그날 집에 와서도 내내 너무 예쁘다를 연발한 세이 때문에 세뇌된 건지 
아침 일찍 세이가 어디론가 나가버린 뒤 
침대에 이 옷을 꺼내놓고 한시간 넘게 고민하다 
조금만 더 고민하면 늦을 것 같은 시간이 되어버려서 그냥 입고 나왔는데 

... 저야말로 선우가 웃을까 걱정이 된다 

자신을 따라 고개를 갸우뚱 하는 낯선 여자를 보다 
그저 한숨을 쉬고 몸으로 밀어 문을 연다 
유리문을 열고 다시 안쪽 문을 열자 
사람들이 가득한 로비가 갑작스럽게 탁.하고 펼쳐진다 

생각해보니 예전에 회사에서 데뷔시켰던 아이돌 그룹의 쇼케이스가 
이 공연장에서 있었던 것 같다 
그새 이름을 바꿔서 같은 곳이라고 연결하지 못했는데 
오는 내내 어딘가 낯익다고 생각했더니만.. 
로비를 보니 겨우 이 곳에 와본 적이 있다는 게 떠올랐다 

아무리 신인그룹 쇼케이스 장소였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기자들도 왔었고 팬들도 꽤 들었고... 
물론 자신이야 일하느라 거의 대기실 쪽에만 있어서 정확하진 않지만 
거의 4~5백석정도 되는 규모였던 걸로 기억한다 

쭈뼛거리며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로비로 들어선다 
큰 공연장,이란 생각을 갖고 봐서 그런지 사람들이 더 많은 것처럼 보인다 
적어도 공연장이 텅 비면 어쩌나 하는 걱정 같은 건 안해도 될 것 같지만.. 
그냥 클럽에서 가끔 노래하는 취미생활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렇게 큰 규모의 무대에 설만큼 인기가 있는 걸까 
순간 조금 의아해진다 

너무 과소 평가했나... 

정선우,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그래도 꽤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 어? 실장님! 

생각지도 않은 익숙한 목소리가 생각에 잠긴 나나를 깨운다 
누군가 자신을 알아볼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나나는 
채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목소리 쪽을 돌아본다 

스타일리스트팀 막내인 세현이 손에 소품을 잔뜩 들고 역시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 ... 여기서 뭐해? 
- 저요? 일하죠 근데 실장님 오늘 휴가 아니세요? 

손에 들고 있던 스타일링 소품을 들어보이며 대답하는 세현은 
그새에도 나나의 옷차림을 훑어보는 눈길을 숨기지 못한다 
나나는 안그래도 어색했던 옷차림이 신경쓰여서 
슬쩍 옷을 가리며 소심하게 대답한다 

- .. 난 여기 공연.. 
- 아아... 그러셨구나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세현이 
무엇을 어떻게 이해한건지 나나는 도무지 모르겠다 

- 근데.. 일이라니 무슨? 
- 저기 그 
- 김세현! 

헐레벌떡 뛰어온 우민이 세현이 다급하게 부른다 

- 여기서 뭐해! 안에서 지금.... 어....! 

이건 또 무슨 상황인가 싶어서 껌뻑껌뻑하고 있던 나나와 눈이 마주친다 
동시에 당황해서 나나를 저도 모르게 훑어본 우민이 
세현처럼 혼자 뭔가 납득한 듯 눈을 깜빡한다 

- 공연 보러 오셨어요? 
- .. 아.. 그렇긴 한데.. 우민씨가 왜 여기.. 
- 아 네 네 지금 들어가요 

대체 뭘 보고 뭘 납득한건지 어리둥절해진 나나가 
제대로 묻기도 전에 우민이 급하게 전화를 받는다 

- 야, 지금 대기실에서 찾고 난리야 빨리, 
  실장님 공연 잘 보세요 나중에 뵈요 
- 아... 응...?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세현의 팔을 끌어당겨 
후다닥 대기실쪽으로 사라지는 뒷모습을 보면서 
나나는 뭔가 석연치 않은 혼란에 휩싸인다 

뭐지.. 이건.. 
지금 뭔가... 
내가 모르는 무슨 일인가가 벌어지고 있는 거 같은데... 


- 나나야! 

헉. 

채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누군가 양쪽에서 나나의 팔을 확 잡는다 

- ... 민세이... 심은하? 

아침에 쪽지만 남겨놓고 자신이 일어나기도 전에 나가버린 세이와 
며칠 전 세이와 제 방에서 한참 놀다가서 오늘까지 문자 한통 없던 은하가 
각각 나나의 팔 한쪽씩을 붙잡고 
미묘하게 싱글거리는 표정으로 웃고 있다 

이 두 사람이 여기는 무슨 일... 
아, 아니 그보다 내가 여기 있을 거라는 건 어떻게.. 

묻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머리가 터질 것 같다 
순서를 찾지 못한 질문들이 혀끝에서 맴돌다가 
자기들 끼리 먼저 튀어나오려고 싸운다 
결국 아무런 의미있는 소리도 만들지 못하고 어버버 하고만 있는데 
양쪽에서 팔짱을 끼고 있던 두 사람이 서로 눈짓을 교환하더니 
씩 웃고는 나나의 팔을 잡고 있는 손에 힘을 준다 

- 왜 이래! 
- 쉿, 조용히 해 

사람들의 시선을 느낀 세이가 낮게 그러나 강하게 말한다 

- 오늘 같은 날, 협조 좀 해줘 

오늘 같은 날? 
오늘이 뭐! 
오늘이 뭔데! 


양쪽 팔이 붙들려 꼼짝 못하고 어디론가 끌려간다 
대기실 쪽으로 가는가 했는데 객석 맨 앞쪽으로 통하는 작은 문으로 쓱 들어가더니 
어두운 복도를 한참 이리 꺾고 저리 꺾고 
여기가 어딘건지 방향 감각을 잃을 때쯤 
어두컴컴한 공간에 도착해서야 겨우 팔을 풀어준다 

주변을 둘러보니 까만 천과 합판으로 세워진 벽, 
무슨 가건물처럼 보이는 쇠파이프로 된 기둥 
그리고 희미한 빛이 어디선가 위에서 스며들고 
그 빛에 겨우 세이와 은하의 표정이 보인다 

- 뭐야 
- 쉿. 

절대 말해주지 않겠다는 듯 검지 손가락을 들어 입에 갖다대고 제스쳐를 취하더니 
눈을 깜빡 감고 검지를 나나 앞에서 흔들어보인다 

- 잠깐만 여기 앉아 있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뒤쪽을 바라보니 
스툴형의 까만 의자가 하나 놓여있다 

- 무슨 일인데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설명을 들어야겠단 생각에 
의자로 가는 대신 세이 쪽으로 한발 다가선다 
그런 나나를 보고 안되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 흔든 세이는 
한숨을 폭, 쉬더니 나나의 어깨를 뒤로 가볍게 밀친다 

어... 어엇...? 

애가 뉴질랜드에서 양고기만 먹고 운동만 하나 왔는지 
체형은 예전이랑 별로 달라진 게 없어 보이는데 
세이의 의외의 힘에 훅 하고 뒤로 밀려서 얼결에 의자에 앉아버린다 

앉아 있는 나나에게 다가온 세이가 
가만히 어깨를 눌러 일어나려는 걸 저지한다 

쪼끄만 게 힘만 세네.... 
하기사... 예전에도 아버지 부하들을 가방이랑 이빨로 제압한 적도 있었지... 
근데 대체 나한테 왜 이래? 

의문 가득한 눈으로 올려다보는 나나를 
진지하게 내려다보면서 세이가 말한다 

- 나나야, 눈 감아봐 
- 어? 
- 눈 감고 양 백마리만 세, 백마리 셌는데도 별일 없으면 다시 백마리 
- 무슨 말이야 대체 

일어서려고 하는 나나를 꾹 눌러 앉힌 세이가 힘주어 강조한다 

- 잠깐이면 돼, 잠깐, 눈 감아 

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또다시 등장한 절대 눈을 깜빡이지 않고 저를 뚫어지게 보는 세이의 진지함에 
얼결에 고개를 끄덕인다 
세이의 얼굴이 환해지더니 확하고 나나를 끌어안는다 

- 나나야 
- 어...? 
- 화이팅. 

오늘 내내 정신이 하나도 없다 
앨리스가 토끼굴에 빠진 날도 저처럼 이런 기분이었을까 
얼떨떨해진 나나에게서 떨어진 세이가 
순간 엄한 표정을 지으며 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 눈. 감으라니까 

미심쩍지만 일단 눈을 감는다 
안그래도 어두웠던 시야가 완전히 깜깜해진다 

- 숫자도 세야지 

옆에서 세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 

양 한마리 
양 두마리 
양 세.. 

들은 대로 천천히 양을 센다 

양 백마리... 

다 셌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니 심지어 사람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제야 겁이 조금 난다 

무슨 일인지 진짜 그냥 물어봐야겠다 싶어서 눈을 뜬다 
내내 눈을 감고 있다 막 떠서 그런건지 
어두운 공간이 제대로 인지가 안된다 
게다가 저를 거기 앉혀놓은 세이도 보이지 않는다 

- 민세.. 헉. 

세이를 부르려는 찰나 덜컹, 하고 바닥이 움직인다 
반사적으로 의자 뒷쪽을 꽉 잡는다 
주변을 둘러보니 착각한게 아니라 정말 바닥이 천천히 위로 올라가고 있다 
놀라 위쪽을 올려다보니 희미한 빛이 들어오는 어둠뿐 
어디론가 빨려들어가는 것처럼 천천히 어둠으로 다가선다 

이제와서 뛰어내릴 수도 없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의자만 붙들고 있는데 
덜컹. 
하고 올라가던 바닥이 갑자기 멈춘다 


멀리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눈을 몇번인가 깜빡거리자 주변이 서서히 눈에 익는다 

제 왼편에 세워져있는 기타 두 대 
중앙 뒤편의 드럼 세트 
커다란 기타와 베이스 모니터 
세팅된 2단 키보드와 
반짝이고 있는 애플 맥북의 푸르스름한 로고 


... 무대? 


하얀 천의 막 너머로 들리는 소리는 
아마도 공연을 기다리는 관객의 웅성거림 
자신도 지금은 저기 앉아 있어야했던 건데 

당황해서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하는 순간 
팟, 하고 뒤쪽의 핀 조명이 켜진다 

그리고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버린다 

두 개의 핀 조명 
막 위로 떠오른 두 개의 그림자 

마침내 시작될 공연을 기대하는 관객의 떠나갈 듯 큰 함성소리가 
그 소리가 마치 아주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소리 처럼 
그저 귓가를 간지럽힐 뿐이다 

나나의 모든 신경은 한곳에 쏠려있다 
또다른 그림자를 만들고 있는 


선우. 



블랙진 위에 
언젠가 자신이 선우에게 입혀봤던 그 검정 셔츠 
그리고 


저걸 아직, 갖고 있었나 

자신 조차 잊고 있었던 거친 비늘 같은 표면의 자켓. 


웃지마. 
라고 문자를 받았지만 
웃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이상해 


나나는 지금 꿈을 꾸는건가, 문득 생각한다 


마치 자신과 선우가 바뀐 것만 같다 
한번도 어울릴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단정한 원피스 차림의 자신과 
어울리길 바랬지만 자신과의 거리만큼 멀거라고 생각했던 거친 옷차림의 선우 
서로가 서로의 위치를 바꿔서 선 것처럼 
어쩌면 이렇게 또다시 다른 모습으로 마주보고 있는지 

선우는 멍하니 저를 바라보고 있는 나나를 보고 
미소 짓더니 안고 있던 기타에 손을 얹는다 


다라랑. 


기타 소리에 놀라 어깨가 파르르 떨린다 
그래도 눈을 돌릴 수가 없다 


[ 나 정말 꿈인 줄 알았죠 ] 


나즈막한 목소리에 가슴이 콩닥거리며 뛰기 시작한다 


[그대 내 눈을 봐요 사랑스러운 그대] 


노래를 하면서도 저를 계속 바라보는 선우는 웃고 있는데 
그 눈에 휘말린 나나는 울컥 눈물이 솟을 것 같다 
물기가 어려 시야가 흐릿해질 것 같아서 
살짝 고개를 저어 털어낸다 


[가슴이 뛰어서.. 숨이 막혀서..] 


잠깐이라도 잃을까 두려워서 고개를 금새 들었는데도 
긴 시간이 지난 듯이 무엇을 놓쳤을까 아쉽다 


[...그냥 웃죠] 


잠깐, 연주가 멎고 
시간이 멈춘 듯이 정적이 흐르고 
찬찬히 나나를 보던 선우가 따라하라는 듯 살며시 웃는다 
여전히 가슴 한켠이 울컥, 뜨거운 채로 가만히 웃어 답한다 

나나의 미소를 보고 나서야 
선우는 비로소 다시 노래를 시작한다 


[나만의 별이 되어줄 수 있나요 세상 끝까지 그대를 지키죠 
 그대.. 나를 봐요 그대...] 


잠시 침묵 그리고, 

  
[나 이제 고백하죠] 


금새라도 무슨 일인가가 벌어질 것 같은 긴장감 
별이 폭발하기 직전처럼 


[ 사랑해 ..] 


나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내내 무릎 위에 꼭 쥐고 있던 손으로 입을 막고 만다 


[ 사랑해 ] 


말에도 흔적이 있다면 
노래가 어떤 궤적을 그린다면 
진심이 질량을 갖고 있다면 

그건 아마 아주 가느다란 은빛 실 

약해보이지만 끊어지지 않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그 가느다란 실이 
나나에게 넘실거리며 다가와 살며시 선우에게로 옭아맨다 


[ 사랑해 ] 


어둑한 공간에 파앙 하고 금빛 가루를 펼치며 폭발하는 
그 말에 사로잡혀 움직일 수가 없다 


[ 사랑해 ] 


또다른 말이 나나와 선우 사이를 단단하게 연결한다 


[ 사랑해 ] 


저 말이 몇 번이나 반복된 걸까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걸까 
지금 막 너머에는 공연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이 자리가 사실은 공연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잊어버렸다 

[ 사랑해 ] 


오직 이 공간에는 
너와 
나 만이 


[ 사랑해 ] 


울어버릴 것 같아 이젠 정말. 
나나의 시야가 눈물로 흐릿해지기 직전 


[사..랑.. 해] 


마지막으로 또렷한 선우의 눈빛을 마주한다 
그리고 마지막 고백이 
천천히 여운을 남기며 공간으로 흡수된다 


쿵쿵따다닥 


귀를 찢는 드럼 소리와 함께 조명이 꺼진다 
동시에 두 사람의 그림자가 사라진 막 위로 연주만큼 현란한 영상이 뒤덮인다 

화려한 밴드의 연주와 
기대에 찬 관객들의 함성 소리가 공간에 가득차서 
귀가 먹먹할 지경이지만 

나나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그저 가만히 기타를 내려놓고 다가오는 선우만 보일 뿐 



- 저 자식은 고작 저거 하자고 남의 노래를 가져간거야? 

무대 뒤에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던 설찬이 
멀리서 그 모습을 보여 궁시렁 거린다 

- 좋다.... 너무 좋아 그치 

두 손을 꼭 모은 채 둘을 보고 있던 세이가 
자신이 더 감격한 듯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런 세이를 힐끔 본 설찬은 뭔가 마음이 불편한 듯 
어색하게 잔뜩 힘이 들어간 어깨를 으쓱한다 

- 야, 저거 원래 완전 상큼한 댄스 곡으로 하려고 했던 거 거든 
  기껏 남의 곡 가져가서 어디 딱 지 같이 느끼한 가사를 붙여가지고... 
  하여간 유치하긴..... 
- .... 기껏해야 플로라 줬을 거잖아... 그리고 니가 처음 만들어왔던 노래 가사보다 훨씬 낫거든 

기껏 둘의 모습에 젖어 있으려는데 자꾸 궁시렁대는 설찬에 짜증난 세이가 
결국 목소리를 낮춰 으르렁댄다 

- 야, 그게 무슨.... 
- 조용히 해.. 지금 나나 울잖아 

아니! 내가 지금! 나 좋자고 이래? 
어! 
니가! 
뭔데! 

라고 말하고 싶지만 ... 그랬다간 진짜 맞을지도 모르겠다...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나서 버럭 항변 해보려다가 째릿 째려보는 세이의 눈에 움찔한 설찬은 
금새 웅얼거리며 목소리를 줄이고 만다 

- ... 왜 무대 위에서 저러고 있는 거야 안 나오고 

아직도 의자에 앉은 나나와 그 앞에 무릎을 꿇은 선우가 
움직일 기척도 없이 그대로 멈춰 있다 

- 에이씨.. 전주를 언제까지 끌라는 거야 대체 
  야 정선우 야! 야! 

한껏 소리죽여 선우를 부른다 
팔을 마구 흔들어 겨우 주목을 끌자 
그때야 설찬의 존재를 알아차린 선우가 고개를 끄덕인다 


저 자식은 저만 멋있는 척 하면 단가 

영 심기가 뒤틀린다 
힐끗 옆을 보니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감격에 차 두 손을 모으고 있는 세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와 더 불편해진다 

다리가 풀렸는지 휘청이는 나나를 부축해서 
천천히 상수 쪽으로 들어오는 선우를 째려본다 

에이씨.. 한마디 하던가 해야지 
들어오기만 해봐라 


- 야, 정서.... 
- 잠깐만 


기껏 말 꺼내려는 찰나 선우가 한손을 들어 저지한다 
우씨 저 자식이 

공연이고 뭐고 버럭하려고 했지만 
상수 구석, 무대가 보이는 자리에 놓인 의자에 
완전히 넋이 나간 나나를 선우가 살며시 내려놓는 게 눈에 들어온다 

어후.. 진짜.. 

막 치밀어오르려는 걸 꾹 참고 선우에게 다가가 속삭인다 

- 1분 준다, 마무리 하고 나와 


후다닥 무대로 뛰어나간 설찬이 키보드 앞에 선다 
기타와 드럼으로 시작된 음악에 키보드 연주가 더해지자 
풍성한 사운드가 공간을 압도하고 
사람들의 환호성이 다시 한번 커진다 

뒤쪽을 힐끗 본 선우가 
여전히 조금 멍한 나나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나나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선우를 올려다본다 
입술이 몇번인가 떨어졌다 붙었다 한다 
소리를 내려는 건가 하지만 
무대의 연주가 너무 커서 들리지 않는다 

조심스럽게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한가닥 넘겨준 선우가 
가만히 나나에게 다가가 귀에 대고 속삭인다 

- 나나야 

몸이 움찔하는게 느껴진다 

- .. 끝까지 봐줘, 여기서 


나나의 대답을 듣지 않고 무대 위로 뛰어나간 선우가 
베이스 기타를 메고 자신의 자리에 선다 
마침내 꽉찬 사운드가 완성된다 

완전한 여덟마디 


그리고 연주가 끝남과 동시에 
막이 떨어지면서 네 명의 연주자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된다 

끝없는 환호성이 거친 파도처럼 밀려온다 
무대 옆에 앉은 채인 나나조차 휩쓸려갈 것처럼 
온 몸을 울리는 소리 

마지막 포즈 그대로 서서 잠시 숨을 고르던 설찬이 
마침내 마이크를 잡고 외친다 


- 30 seconds to Mars 의 데뷔 공연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인용된 곡은 사랑해 by 김우주 
 



+
 

[ 3일 전 ]



- 뭐라고? 진짜야?
- ... 그게 뭐라고 내가 거짓말을 하겠냐?
- 우와.. 우와...

흥분한 세이가 앉은 자리에서 발을 동동 구른다

- 그래서? 나나가 받아줄 거 같대?
- 몰라, 그 자식 괜히 삽질하는 거 아닌가 몰라.. 남의 곡까지 뺏어 가서

시큰둥하게 설찬이 걸치고 있던 선글라스를 고쳐 쓰면서 대답한다

하여간 번거로운 자식이다
아니 그렇게 고백을 하고 싶으면 그냥 딱! 나 너 좋아! 이렇게 하면 되지
아니면 그냥 들이대던가 어? 그도 아니면 확 뽀뽀를 해버리거나
마음이 가는 대로 그러면 간단할 걸 복잡하게 사는 티를 꼭 내요 하여튼

어휴 


덕분에 복잡해질 일정을 생각하니 머리가 아프다

- 근데 지금 들어가도 준비는 되는 거야? 너무 급한 거 아냐?
- 뭐 난 천재니까 음하하

하여간 못말려, 하는 표정으로 세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 야, 못 믿어?
- 아냐 믿어믿어. 그래서 나나랑은 어떻게 하겠단 거야?
- ... 뭐... 콘서트 날 어떻게 하겠다는데 아직 못 들었어 
내가 일단 재현 형이랑 얘기해서 셋리스트랑 짜라고 했는데
.. 그게... 여기 어디 있을텐데... 


아이패드를 넘겨 비행기 타기 전 다운받아놨던 문서를 연다

- 보자... 에이..씨.. 이자식...
- 왜?
- ... 오프닝으로 해놨네... 

궁시렁 거리는 설찬 옆에서
궁금한 듯 아이패드의 문서를 넘겨다보던 세이가
갑자기 뭐에 짜증이 났는지 설찬의 등을 내려친다

퍽.


풀 스윙으로 맞은 설찬이 컥컥거리며 앞으로 엎어진다
그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얼른 일어나 고쳐 앉는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행히 옆좌석 노부부는 숙면 중인 듯 하고
아무도 자신이 방금 가오 떨어지게 엎어졌단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 것 같다

그제야 자신을 씩씩거리며 보고 있는 세이에게 
작은 소리로 버럭한다

- 아 왜!
- ... 그거 뭐야
- 뭐?
- 걔 이름이 왜 들어가있어?

그제야 확인해보자
세이가 작사해서 넣은 듀엣 곡의 듀엣 파트너로
아리의 이름이 올라가있다

아니 저기
이거 내가 듀엣하는 곡도 아닌데

그리고 내가 넣은 것도 아니고 재현 형이 넣은 거 같..

변명하고 싶은 게 산더미인데
이미 토라질대로 토라진 세이가 들어줄 것 같질 않다

어휴...

서울 도착하자마자 재현 형을 찾아서 족쳐야지 생각한다
이사 됐다고 대접해주느라 너무 오래 풀어준게다... 
소속 가수의 안위를 위협하는 결정을 이렇게 막! 딱! 넣어서 어?! 이래도 돼?!

뉴질랜드 있는 동안도 어떻게 번호를 알았는지
일방적으로 아리에게서 오는 메세지 때문에 
세이가 삐져서 얼마나 힘들었는데...

진짜 주변 사람들이 다 왜 이러냐! 도움도 안되고!

머리를 벅벅 긁으며 쿵 하고 창가에 머리를 박는다
설찬이 그러거나 말거나 뚱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세이가
갑자기 주먹을 불끈 쥔다

헉.

맞으려나 싶어서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린 설찬은 안중에 없는 듯
세이가 결심에 찬 목소리로 혼잣말을 한다

- 결심했어
- ... 뭐... 뭘...?

설찬이 얼결에 묻는다

- 내가 나나 팍팍 밀어줄거야
- ... 어?
- 내가 우리 나나, 좋은 사람 만나게 도와줄거야 나처럼 한.눈.파.는. 남자 만나지 않게
- 야, 그건

진짜 해도해도 너무 한다 싶어서 항변하려고 몸을 돌리는데
세이는 이미 결론을 내린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몇번이나 크게 끄덕인다

그리고 확, 큰 눈동자를 도르르 굴려 설찬을 노려본다
움찔 물러서는 설찬을 보고 입을 삐죽 내민 세이가 통보한다

- 한국 도착하면, 나 나나네 집 갈거야
- 어? 그럼 나는?
- 넌 니네 집, 나는 나나네 집. 각자 갈 길 가는 거야 오케이?

하나도 오케이 아니다
대체 이게 무슨 말인지

당황한 설찬을 버려두고 
세이는 의자 아래 내려뒀던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
뭔가 끄적끄적 그리기 시작한다


설찬은 한숨을 쉬며 아이패드의 시간을 확인한다
아직도 인천 공항에 도착하려면 4시간이나 남았다
힐끔 세이를 건너다보니 팔랑팔랑한 원피스 같은 걸 그리고 있다
도저히 저랑 다시 놀아줄 것 같진 않아서 
그냥 눈을 감고 몸을 뒤로 뉘인다


좀 있으면 화 풀리... 겠지..?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빨리 한국 가서 상황 정리해버리든가 해야지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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