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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타][선우x나나] Monster

april_m 2013. 9. 29. 21:36




(of SunWoo) 




튀어오르듯 도로에서 벗어난 차가 주차장 벽에 부딪히기 직전 요란한 파열음을 내며 아슬아슬하게 멈춘다 
놀라 달려나온 주차장 직원에게 쥐고 있던 차키를 던지고 할 수 있는 한 가장 빠른 걸음으로 걸어간다 
혹시라도 네가 없을까 하는 불안감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자꾸만 마음이 앞서서 발이 꼬일 것 같은 걸 간신히 다음 스텝으로 균형을 잡아 걷는다 


딸랑, 



카페 문을 열고 뛰어들다시피 들어선다 
카페에 있던 사람들이 급하게 열린 문 쪽으로 힐끔 시선을 던졌다가 놀란 듯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신분이 노출되는 것 따위, 사람들의 웅성거림 같은 건 지금 중요하지 않다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던 검은 선글라스를 벗어 입고 있던 까만 수트 자켓 주머니에 꽂아넣는다 
식은 땀이 흘러 안 주머니 속 손수건을 꺼내고 싶어져 손이 움찔 한다 
그보다 목을 조여오는 가느다란 넥타이를 당장이라도 풀어버리고 싶지만 간신히 참는다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스멀스멀 치고 올라오는 이 불길한 예감같은 건 
보지도 느끼지도 못한다는 듯이 


나는 침착한 표정을 유지하면서 카페를 둘러본다 

그리고 

여전히 날 보며 쑥덕대는 사람들 중에, 단 하나 
미동도 하지 않고 테이블 한 모서리를 응시하고 있는 너를 발견한다 

눈동자가 보이지 않는 까만 선글라스를 쓴 너의 얼굴은 꼭 지옥에라도 다녀온 것 처럼 차갑다 
선글라스에 일부러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장식이 없는 짧은 까만 드레스는 끼어들 틈 하나 없이 냉정하고 
까만 너의 하이힐은 금새라도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가버릴 것처럼 까닥까딱 인내심 없이 흔들리고 있다 

이렇게 술렁이는 공기가 너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는 것 같다 
내 쪽을 돌아볼 생각도 하지 않는 너를 향해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헤치고 걸어간다 


"김나나." 


작게 속삭이는 나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너는 비로소 느릿하게 고개를 들어올린다 
여전히 짙은 선글라스에 가려진 네 눈은 보이지 않는다 


"앉아." 


검붉은 네 입술이 열리고 냉정한 허락이 떨어지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네 앞에 앉을 자유를 얻는다 
자리에 앉는 나를 따라 너의 고개도 내려앉지만 여전히 네가 무엇을 보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다 
네 앞에서 침묵하는 나를 두고서 너는 피곤한 듯 느릿하게 고개를 두어번 꺾는다 
섣불리 말을 꺼냈다간 혹시라도 주어졌을지도 모를 기회를 놓칠까 망설이는 내가 마치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나른하게 앞에 놓인 커피잔을 들어올린 너는 붉은 립스틱 자욱을 남긴 채 내려놓는다 


"점심은, 먹었어?" 


나는 억지로 말을 꺼낸다 
여느 때와 똑같이, 
하루를 점심에야 시작하는 널 만나면 
언제나 가장 먼저 물어봤던 그 질문을 

네 붉은 입술 한쪽이 비웃듯 올라간다 
그럴 때조차 네 창백한 얼굴은 마치 이 세상에 없는 어떤 존재처럼 빛난다 
차라리 그 조소가 언어의 형태로 공격해주길 바란다 
적어도 그렇다면 나는 그 화살을 기꺼이 받아내고 
너는 늘 그랬듯이 천사처럼 내 상처를 돌보아줄테니 
널 지배하고 있는 악마가 그 모습을 드러내길 그래서 지나가버리길 
우리가 늘 그래왔듯이 

하지만 

너는 그저 고개를 돌려버린다 


"잘 지냈어? 얼굴 좋아보인다." 


또다시 억지로 용기를 끌어내 너에게 말을 건다 
네가 아무리 날 무시한다고 해도 이대로 널 그저 놓아버릴 수는 없으니 
그게 어떤 형태이든 네가 나에게 반응하기만 한다면 나는 너를 다시 붙잡을 수 있다고 
그저 그 기회가 필요한 것 뿐이라고 
필사적으로 널 두드린다 


"연락, 하지 말라고 했던 것 같은데." 


지금껏 만났던 네 안의 어떤 악마도 이렇게 순식간에 내 뼛속까지 차갑게 만들지는 못했다 
이젠 차라리 보랏빛으로조차 보이는 네 작은 입술은 가차없이 세계의 종말을 알린다 


"하지만," 
"난 분명히 이야기했어 
 하나," 


이 '마지막'을 막을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내 자신이라도 바칠 수 있다 
넌 내 전부라고, 네가 가버리면 나는 죽어버릴 거라고 내 모든 걸 꺼내 너에게 고백하면 
너는, 천사처럼 내게 웃어주던 너는, 한번은, 단 한번만은 돌아봐주지않을까 

마침내 닿은 너의 연락에 나는 약간의 희망을 걸었는데. 

평소보다 더 차가운 너의 목소리가 말한다 

하나. 

라고 



"하나,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폭력을 쓸 경우" 
"..." 
"둘, 어떠한 이유에서건 너로 인해서 내가 쓸데없는 관심의 대상이 될 경우" 


네 눈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넌 나의 어디를 보고 있는 걸까 
나의 눈을 보는데도 저렇게 냉정하게 말할 수 있는 걸까 
널 향한 내 절박함 같은 건 네게 더이상 아무것도 아니게 된 걸까 
난 아직도 널 놓을 수가 없는데 


"두 조건 모두 해당돼, 삼진아웃까지 갈 것도 없이 그냥 아웃이야 너. 
 분명히 말했지 내가." 


분명히 말했다 
처음 그곳에서 널 가졌을 때 

유학에서 돌아와 막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기 위해 경영 수업 중이었던 그때, 
몇몇 거래처 사람들과 갔던 2차 술집의 복도에서 너와 마주쳤다 
겨우 몸을 가리다시피한 화려한 옷에 짙은 화장을 한 여자들 사이에서 
허름한 차림으로 막 빈 방의 테이블을 정리하고 있던 너는 
차갑게 굳힌 도자기 인형처럼 질린 표정으로 나의 놀란 눈을 마주했다 

왜였을까 
내 존재에 일말의 관심도 두지 않았던 너에게 끝도 없이 빠져들었던 건. 

널 보기 위해 일부러 그곳을 찾기도 했다 
너는 번번이 아무것도 보지 않았고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다는 듯 멍한 무표정을 하고 
웃음과 자기 자신마저 팔고 있는 아가씨들 사이를 오가며 
방을 정리하고 심부름을 하고 아가씨를 데리고 왔다가 데려가곤 했다 

보통이라면 그 술집의 마담이나 웨이터들이 해야하는 일을 
대체 네가 왜 하고 있는 건지 궁금했지만 
너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묻지 못했다 
그저 처음 마주친 때 내비친 질린듯 창백해진 얼굴 이후 
단 한번도 나를 알고 있다는 티를 내지 않고 마치 나를 투명인간인 듯 대하는 
또는 스스로가 투명인간인 것처럼 흘러다니는 너를 보기 위해 한달에도 몇번이나 그곳으로 찾아갔다 

얼마나 시간이 흐른 뒤였더라 
네가 나의 존재를 인지했다는 걸 알려준 건 
나와 마주치면 고개라도 까딱했던 건 
그건 아마 그 술집의 모든 아가씨들이 나에게 거절당하고 
너를 좇는 나의 눈빛을 그 곳의 모든 사람이 알아챈 후 


욕심이, 생겼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떠오르지 않는, 
지금은 완전히 사라져서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너의 미소를 

그건 어쩌면 나의 탓인지도 모른다고 

나는 억지로 이유를 만들어내 너를 귀찮게 했다 

귀찮게. 

그래, 

너는 매우 나를 귀찮아했다 
자신의 인생에 개입해오는 나를 
하찮은 벌레라도 되는 것처럼 한 손으로 튕겨내버렸다 


그럴수록 미친 놈처럼 네게 매달렸다 
그건 절대 틈을 보여주지않는 어려운 수학 문제 같은 너에 대한 승부욕이었을까 
아니면 절대 가질 수 없을 것 같은 너를 향한 소유욕이었을까 


그리고 난공불락처럼 보였던 네가 
마침내 내게 함락되어주던 그 날. 
넌 분명하게 말했다 


"하나, 어떤 경우에도 폭력을 쓰면 끝이야." 
"그럴 일은 없어." 

자신만만한 나의 대답에 너는 픽,하고 코웃음을 쳤다 
날 믿지 않는 너의 반응에 나는 조금 발끈했지만 
네가 나를 허락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모든 실망을 덮어버렸다 
나는 그 사소해보이는 조건보다 더 한 것도 할 준비가 되어 있었으니까 

"그게 다야?" 
"그리고," 
"그리고?" 
"어떤 경우에라도 너로 인해 내가 쓸데없는 관심의 대상이 되는 건 사절이야." 


넌 언제나 나를 우스워했다 
상속자, 후계자, 20대 젊은 경영인 
그리고 
결혼하고 싶은 남자 Top 10 같은 낯뜨거운 타이틀 같은 것들. 

어떤 유수의 매체에 실렸건, 그게 진실을 담고 있던 확대된 날조 기사이건 상관없이 
넌 모든 사람에게 지나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내가 동물원의 원숭이라도 된 듯이 비웃었다 

내 옆에 서 있는 이상 너는 그 관심의 레이더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장담할 수 없었지만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의 문제 때문에 당장의 너를 놓칠 수는 없었던 나는 그저 너의 말에 수긍했다 
안일한 나의 마음을 알아차린건지 너는 다시 한 번 다짐했다 

"네 옆에 서는 일, 그래서 쓸데없는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일 따윈 없어야 해 
 그런 일이 벌어지면 그대로 끝이야." 

그 순간 내가 너에게 너의 어머니와 같은 길을 걷게 했다는 걸 나는 왜 그때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네가 그렇게 말한다고 해도 언젠가는 내 옆에 세우겠다고 나는 게으르게도 낙관했다 
나는 그때 뭐라고 대답했어야 옳은 걸까 
너를 내 옆에 어떻게든 세워서 양지로 데려가겠다고 했어야했을까 
그랬다면 너는 내게 뭐라고 했을까 
기껏 내민 손을 거둬버렸을까 - 그게 나는 두려웠는데 

이미 세상의 시선에 상처받을대로 받은 너에게 
나로 인해 조금이라도 더 관심이 더해질까봐 
약간의 가능성이라도 막기 위해, 나는 늘 조심했다 
언론은 얼마나 통제했던가 
주변은 또 어떻고 


그렇게 해도 너는 금새라도 폭발할 것 같은 시한폭탄 같았다 
누군가 나를 알아보고 곁에 있는 너를 힐끔거리기만 해도 
너의 눈은 순식간에 영점 이하로 차가워졌고 
그러면 나는 언제나 커다란 잘못을 저지른 어린아이가 되어버렸다 

 
그러다가도 변덕스러운 네게 천사가 찾아와 
나를 향해 더없이 상냥한 미소를 지어주는 아주 가끔의 순간을 위해서 
나는 일상 전체를 통제하며 살았다 

그걸로 충분했어 

너는 내 전부였으니까. 

그런데 



나는 막 커피잔을 향하는 탁자 위 네 손을 잡는다 

"김나나" 

절박한 내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너는 귀찮은 벌레라도 쫓는 듯 진저리치며 손을 털어낸다 


"손대지 마." 


심지어 넌 반대쪽 손으로 무심하게 내가 잡았던 손을 쓸어내기까지 한다 
내 존재가 더럽기라도 한 것처럼. 


"여러 번 말하게 하지마 너 머리 좋잖아." 


너의 비웃음이 내 심장을 갈라놓는다 


시작은 아주 사소한 균열. 

새벽까지 계속된 회식이 끝난 뒤 
새벽 늦게야 가게 문을 닫는 네가 보고 싶어져 가게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나는 
쓰레기 봉투를 낑낑대며 지고 나오는 너를 
가게에서 마지막으로 나오는 듯한 완전히 술독에 빠졌다 나온 남자가 
덥석 뒤에서 덮치고 치근덕거리는 장면을 목격했고 

그리고 

다음은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기억나지 않는다고 해도, 
모른다고 할 수는 없다 

실시간으로 떠돌아다닌 찌라시 
그리고 누구라도 명백하게 나란 걸 알 수 있는 이니셜 기사 


새벽 술에 취한 그룹의 후계자가 
지나가던 선량한 시민을 폭행했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술집 호스티스가 있다. 라고 


내가 채 경찰서에서 조서를 다 꾸미고 나오기도 전에 
그 이야기는 진실이 되어 이미 세상을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추문. 


그렇게 불렸다 

너를 구하려고 했던 나의 결단은 
정당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행동은 


나의 명예 
너의 명예 

그런 건 없었다 

진실 
약간의 진실 
그리고 대부분의 거짓 

추측과 각색 

그건 곧 진실이 되어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어디서부터인지 알 수 없으니 
바로잡기 위해 무엇을 해야할지 알 수도 없었다 

지나갈 소문.이라고 생각했다 
진실은 밝혀진다고 

그게 어떤 의미인지 깨달은 건 며칠 뒤 
언론과의 대응 때문에 바빠서 그다지 이상하게 생각하지 못했던 
유난히 조용했던 너로부터의 문자를 받은 뒤 


'아웃.' 


단 두 음절. 


그제야 너와의 약속이 기억났다 
그러나 이미 너와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진실이고 뭐고 
언론 대응이고 뭐고 
널 찾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 했던 지난 열흘 

그리고 마침내 너로부터의 연락 


단 한 번의 기회 
단 한 번의 변명 


그러나 너는 내 이야기 같은 건 들을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절망에 빠져 고개를 떨구자 지루한 듯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고 있는 네 손톱이 눈에 들어온다 
한번도 저렇게 손질된 걸 본 적이 없다 
날렵한 모양에 까맣게 칠해져있는 정돈된 손톱.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날카로운 칼인 것처럼 보인다 

너는 나를 이대로 죽이기라도 할 셈인가 


나는 그대로 의자에서 미끌어져내려 네 앞에 무릎을 꿇는다 


"못하겠어" 


카페 안이 웅성거린다 
이제는 더이상 조심하려고 소리를 낮추지도 않는다 
어쩌면 휴대폰이 등장하지 않았을까 
사진이 찍히고 있는 건 아닐까 
주목받는 걸 싫어하는 너는 나의 돌발 행동에 움찔한다 


"나나야, 제발." 


너에게 자비를 구하며 나는 경건하게 네 무릎에 손을 올린다 
내 손에 닿은 네 몸이 아주 약하게 경련한다 
너는 동요하는 걸까 
나는 애써 그 떨림에 모든 걸 걸어본다 


"단 한 번뿐이었어, 다시는 없어, 믿어줘." 


긴 침묵이 흐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나는 아직도 보이지 않는 선글라스 너머 네 눈만을 간절히 올려다본다 

가늘게 떨리던 네 몸이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순식간에 멈춘다 
그리고 프로그래밍된 동작인 것처럼 아주 천천히 선글라스를 벗는다 

마주한 너의 눈은 
차라리 보지 말았어야하는 지옥을 목도한 것처럼 
그대로 내 심장을 갈갈이 찢어버린다 
나를 향한 단 하나의 감정도 남아 있지 않는 듯 유리구슬처럼 공허하고 
어쩌면 그렇게 무릎까지 꿇은 나를 동정하는 듯 흔들린다 


"그만둬" 


너는 공개적으로 시험점수를 발표하는 선생님처럼 잔혹하게 통보한다 
먼지를 털어내듯 치마를 탁, 터는 네 손길에 너에게 닿았던 내 손은 힘없이 떨어진다 
간결한 움직임으로 한번에 자리에서 일어선 너는 차가운 시선으로 나를 내려다본다 


"정선우 답지 않아, 일어나." 


냉정한 너의 말에 모든 남은 힘을 끌어모아 겨우 자리에서 일어선다 
자꾸만 다리가 후들거려서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지만 너의 눈에 염력이라도 있는 걸까 
나를 쏘아보는 네 눈빛에 사로잡혀 나는 꼭두각시처럼 못박힌 듯 꼿꼿이 선다 


낯설다 



그건 언제도 본 적 없는 너. 


밀랍인형처럼 굳어 있던 너도 
악마에 씌기라도 한 것처럼 못되게 굴던 너도 
천사처럼 내게 안겨왔던 너도 

그 무엇도 아닌 


한번도 본 적 없는 너 


나는 한기를 느낀다 


핏방울이 맺힌 것 같은 핏빛 입술이 움직인다 


"난 네가 이제 무서워" 
"너를 둘러싼 모든 세상이, 그 세상의 모든 시선이 무서워" 
"그게 날 미치게 해" 


너의 말에 내 입술은 의미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벙긋거리기만 한다 
내가 괴물이라도 된 것처럼 닿기를 거부하는 너의 몸짓에 내 손은 허공을 헤매다 멈춘다 
지금 내 앞에 있는 너는 이미 멀리, 아주 멀리, 세계의 끝에 서 있다 

가만히 나를 보던 너는 손에 쥐고 있던 선글라스를 도로 쓴다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던 눈동자는 그대로 검은 벽 뒤로 사라진다 
너의 창백한 얼굴이 더 낯설어진다 


사라진 너의 시선이 느껴진다 
안쓰럽다는 듯 나를 빠르게 훑은 시선에 
아무런 감정도 담겨있지 않아 나는 비참해진다 

멍한 나를 보던 너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 목례를 한다 

우리가 다시 만났던 그날 처럼 
질린 표정으로 
그 하얀 얼굴로 

답례는 바라지 않는다는 듯 
최소한의 움직임 



또각 

또각 


낯선 소리가 멀어진다 

네가 마지막으로 구두를 신었던 게 언제가 마지막이었더라 
나는 이 순간 엉뚱한 생각을 떠올린다 



그리고 서서히 
눈 앞이 캄캄해진다 


네 구둣소리가 완전히 사라지자마자. 











 




+
 


(of NaNa)



비틀,


거리는 것도 이제 익숙하다


까만 방
창을 온통 가린 커튼 틈새로 겨우 새어 들어오는 빛을 따라
침대 옆 탁자를 더듬어 약통을 집어든다

이것없이 살 수 없게 된 건 언제부터였는지


아마도 

너 없이 살 수 없게 된 그때로부터.



약통 뚜껑을 열고
달캉,하고 허전한 소리를 내며 통 안에 남아 있던 
몇 알뿐인 약을 손바닥에 털어내 단숨에 입 안으로 쓸어넣는다

약이 쓴 맛을 내며 녹기 전에
급하게 개수대로 달려가 수도꼭지를 틀고 물을 마신다
억지로 약을 넘기고 털썩, 자리에 미끄러지듯 무너져내린다
겨우 쓴 맛 때문에 필사적으로 달려온 스스로가 우습다



조금 전까지

죽어도 상관없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으면서

그래서


신경안정제와 수면제 사이의 끊어진 시간만으로 며칠을 지나왔으면서


이대로 
끝나버리기만을
바랬으면서.


그 죽음에의 바람보다
당장의 고통이 더 두려운 걸까
본능은.


멍하니 고개를 돌리자
희미한 빛에 방 한 켠의 전신 거울에 자신의 모습이 비친다
무의식 중에 터벅터벅 기어서 거울 쪽으로 다가간다

아무렇게나 입은 옷에 그대로 드러난 앙상하게 마른 몸
지우지 않은 채 며칠이나 지나서 잔뜩 번진 화장
헝크러진 머리

멍한,

눈빛.



천천히 떨리는 손을 들어
차가운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만져본다


단단하게 휘감고 있던 갑옷이 조각조각 부서져내린 뒤
허물이 벗겨지듯 드러낸 문드러진 속살

잔뜩 번져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저 화장은
며칠의 과음과 오랜 불면으로 인한 지친 안색을 감추기 위한 것

입술 한켠에 남아 있는 립스틱 자욱을
불결한 것을 치우기라도 하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닦아낸다


미친 년.



멍한 표정의 스스로를 향해
자조적으로 읊조린다


널 받아들인 순간 세상이 날 지칭한 그 이름.
널 떠나보낸 이제는,
스스로도 받아들여야할 이름.

널 가지려고 할 때
그리고 
널 놓고 나니 또다시

나에게는 벗어날 수 없는 이름.



'못하겠어'



내게 매달리던 너는.

영원히 이 사실을 몰라야만 한다
나라는 괴물을.
끝까지 몸이 잠겨버린 이 시궁창같은 세계를.


'단 한번뿐이었어, 다시는 없어, 믿어줘'

그 말.
그 다짐을.
나는 믿지만.


아니 어떤 믿을 수 없는 다짐이라도
또다시, 백번이라도 기꺼이
네가 하는 말이기만 하면 나는 믿겠지만


'아가씨가 더 잘 알잖아요'

반박할 수 없었다
나를 향한 연민마저 묻어나는 그 다정한 비수를 피할 수 없었다


'선우가, 이전과 달라요. 아가씨는 왜인지 알죠?'

너는 달랐다 
달라졌다 나를 만난 뒤로
나는 그걸 알면서도 묵인했다
너를 놓아줄 수 없었다 나는 절대로


'선우가 제자리로 돌아왔으면 해요'


제자리.
네 옆이 내게 허락된 자리가 아니듯,
내 옆은 네 자리가 아니란 걸 나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저 네가 돌아가야할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했을 뿐.


'이런 말 해서 미안해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런 식은 무례하다는 말도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말도

그녀는 진심으로 너를 걱정하고
나를 안쓰러워하고 있었으니까


사랑,
널 향한 사랑으로 가득한 두 눈.
내게는 한번도 주어지지 않았던 그 애정어린 시선

나는 뜬금없이 너에게 질투를 느꼈다


'오기 부리지 말고 받아줘요
... 내가 아가씨에게 못할 짓 하고 있다는 거 아니까.
이런 식으로라도 사과하게 해줘요.'


보상이라던가 댓가라는 말 대신 사과,라는 단어를 고른 
세심한.... 쓸모없는 배려.
나를 향해 내밀던 우아한 손.
한번도 누군가를 상처입힌 적 없을 그 상냥하고 선의에 가득찬 손


차라리 
세상이 나에게 늘 그래왔듯이
나를 조롱하고 모욕했다면
그랬다면


나는 절대로 그 손 앞에 무릎 꿇지 않았을텐데.



그 대신
너의 어머니는 애원했다

나를 향해 애원하던 너와 똑같은 눈을 하고

자신의 아들을,
내가 사랑하고
그녀가 사랑하는 너를,

괴물로 만들지 말아달라고.
더이상 더럽히지 말아달라고.



너는 저 멀리 빛나는 별.
탄탄대로를 걸어온 촉망받는 2세 경영인이자
반듯한 신념의 재단 이사장.

온갖 잡지에 등장하는 너의 이름에
너는 무심했고
나는 비웃었지만


그것이 너와 나의 간격.

너는 기꺼이 날 네 옆에 세우려고 했지만
나는 번번이 귀찮아하는 도도한 표정으로 거절했다
너는 너의 가진 것을 거추장스러워하며 미안해했고
나는 그 사과를 코웃음 치며 받아들였다


그건 

그저 

나의 허세.


너는 모두가 꿈꾸는 프린스 차밍.
네 옆에 서는 걸 거추장스러워할 여자가 세상에 있을까.
네가 가진 조건의 절반만 내게 주어졌어도
나는 망설이지 않았을테다

하지만
신데렐라는 없어.
꿈을 꿀 나이는 지났잖아.


심지어,

난 신데렐라도 아닌
겨우 신데렐라의 드레스 자락을 건드린 쥐.


모두가 그렇게 말했다
꿈꿔서 안되는 걸 가지려는 정신나간 쓰레기쥐.
감히 닿을 수 없는 별을 지상에 끌어내리려는 발칙한 시궁창의 존재


하지만
너만 내 곁에 있어준다면

내가 영원히 양지로 나올 수 없다고 해도
언젠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인어공주가 되어버린다고 해도



미친 년.

널 가지려고 하는 나에게 비웃음처럼 돌아온 이름.
세상으로부터 그 말이 들려올 때마다
널 놓지 않기 위해 난 괴물이 되었다

언젠가 태양을 향해 너무 가까이 날다보면 날개가 떨어져버리는 순간이 올거란 걸
누구보다 명징하게 알고 있었던 건 바로 내 자신.
태양처럼 빛나는, 내가 쥐고 있는 너라는 보석의 가치를 잊기 위해서는
잔혹해져야했다 너에게도 나에게도

신경안정제가 없이는 살 수 없었지만
잠시도 잘 수 없는 날들이 계속되었지만
그렇게 끝도 없이 내 속은 문드러져갔지만
누군가로부터인지조차 셀 수 없는 화살을 받아내면서
나는 기꺼이 차가운 표정으로 모두를 깔아보고
너에게 천사처럼 웃어보였다

너에게 나는 천사이자 악마.
너는 기꺼이 웃으며 나를 그렇게 불렀지
오늘은 천사.
내일은 악마.
라고


누구라도 그건 거짓이라고 증언할 나의 말들을
너는 모두 귀한 진실인 것처럼 끌어안았다
너는 나의 미친 칼부림에도 조금도 상처나지 않는 다이아몬드.
그러나 나는 그렇게 널 상처입힌 나를 용서할 수 없었다


너는 알았을까.
아니 몰랐을까 끝까지.


몰랐어야 했다 너는.

그리고 나는 알았다.
전날의 너인 것이 명백하고,
전날의 나인 것이 명백한 그 기사를 보는 순간,
때가 왔다는 것을.

내가 아니었다면
너는 평생 그런 어두운 세계는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악의로 가득찬 이야기는 듣지 않아도 좋았을 것이다


추문에 휩싸인 널 구하기 위해
애원하려 찾아온 너의 어머니가 아니었어도
우리의 마지막은 이미 오고 있었다


나는 그저 빛나는 옥을 가리는 한 점의 티.
나의 존재는 너를 더럽힐 뿐.

나의 현재 - 술집 호스티스, 엄마의 가게와 함께 물려받은, 부정할 수 없는 호칭.
나의 과거 - 일진과 수많은 소문들 그리고,
나의 시작 - 조폭과 마담의 숨겨진 자식

제대로 된 호적에도 오르지 못한 애초에 시작부터 달랐던 나란 얼룩이
단 한번도 헛디딘적 없는 네 인생에 감히 함께 할 수 있을거라고 잠시라도 믿었다면
그 벌을 이제야 받고 있는 거겠지

그러나 어떤 벌을 받더라도
더이상 인간이 아닌 존재가 된다고 해도
나는 그 순간 너를 갖고 싶었다 
기꺼이 어떤 댓가를 지불하고서라도


그리고 이건


그 댓가일까



나는 괴물.
이토록 뒤틀리고 흉측한.
단단한 갑옷으로 가둬뒀던 그 안에는
스스로조차 통제할 수 없는 존재만이


나와 함께 있으면 이 세계가 널 침식하고 말거야
나는 너를 이 어둠으로 끌어들이고 말거야
너는 나로 인해 세상으로부터 상처입게 될거야
그런 나와 함께,
너마저 너의 빛나는 세계에서 배척받는 괴물이 되게 할 수는 없어.


... 네 곁에 머물 수 없어.




서서히 조금 전 먹은 약이 몸에 퍼지기 시작한다
무겁고 둔한 기운이 신경을 지배한다

이번이, 마지막일까.


겨우 침대로 기어가 몸을 들어올리기 전, 약기운에 지고 만다
걸쳤던 팔이 스륵 미끌어지면서 몸은 도로 바닥으로, 
그보다 까만 어둠 사이 더 까만 세계로 떨어진다

끝없이

네가 없는,
끝이 어디인지 알 수도 없는 어둠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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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라도 [학교]부터 계속된 나냔의 글을 읽어준 냔들이라면 눈치챘을지 모르지만 
환경이라던가 부모님이라던가 하는 이유로 헤어지게 만드는 걸 병적으로 싫어하는 편인데...
하지만 현실로 생각하면 나나랑 선우는..... 이루어지기 참 많이 힘든 커플이다.... 그런 막막함이 늘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