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록콜록
연기가 자욱하다
아 이 새끼들 진짜 불 하나 제대로 못 피우고
숯을 피우고 있던 정호가 힐끗 흥수를 눈짓으로 가리키더니 고개를 흔든다
손으로는 숯을 던져넣고 있는 흥수의 눈은 불이 아닌 먼 곳을 향하고 있다
대체 뭘 보고 있나 싶어 시선을 따라가보니 테이블이 있는 테라스를 향해 오픈된 주방이다
아니, 주방에 서 있는 강주다
이 새끼가 진짜....
빈정상한 남순이 탁 소리가 나게 고기를 내려놓는다
- 야 이 새끼야 작작하고 불이나 제대로 피워 누가 이강주 잡아먹냐 어?
남순의 핀잔에 흥수가 불안한 눈을 하고 겨우 불 쪽을 내려다본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세상에 저 혼자 아빠 되는 줄 알겠네...
정작 임신 4개월의 당사자인 강주는 입덧 한번 없이 임신 초기를 지나 이제 위험한 때는 지났다며 팔랑팔랑거리고 잘만 다니는데
흥수는 출발하기 며칠 전부터 혹시나 강주에게 무리가 될지도 모른다며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러더니 도착한 후에도 계속 이렇게 안절부절이다
대체 뭐가 그렇게 걱정인가 싶다
- 남순아! 불 붙었어?
주방에서 큰 소리로 강주가 묻는다
남순은 아직도 불이 붙지 않은 숯들을 확인하고 고개를 젓는다
저봐저봐 당사자는 저렇게 신났구만 어휴
그때 차 한 대가 미끄러져 들어온다
- 정샘 오셨다!
- 진짜? 샘!
건물 안에 있던 지훈이 뛰어나온다
건물에서 약간 떨어져 주차한 승용차에서 인재와 두 아이들이 내린다
- 삼촌~
- 어, 재인아, 삼촌 기억하네?
인재의 둘째, 아들이 달려와 지훈에게 안긴다
간간이 집에 놀러가 놀아준 걸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다
지훈이 반갑게 안아올린다
세찬이 트렁크에서 짐을 들고 뒤늦게 올라온다
- 오셨어요 샘
- 그래 지훈아, 불러줘서 고맙다
- 아녜요 결혼식 때는 정신없을 거 같아서... 일부러 먼 데까지 와주셔서 감사해요
- 샘 얘가 너무 유명해서 그래요 부담갖지 마세요
- 오랜만이다 이경아, 잘 지냈지?
인재가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펜션을 한번 훅 둘러본 세찬이 퉁명스럽게 말한다
- 그래서 우리는 어디서 묵어야 되냐?
- 아 이쪽이요, 별채 따로 잡아놨어요 이리 오세요
지훈이 바로 옆에 붙은 별채로 안내한다
여전히 재인을 한 쪽 팔에 안은 채다
지훈이 세찬과 인재를 안내하는 걸 보던 강주가 하경에게 속삭인다
- 이지훈, 원래 저렇게 애 좋아하니?
- 응? 아.. 그러더라 정샘 댁 가면 나올 때까지 재인이 안고 있고 그래
- ...야 너 고생 좀 하겠다.... 축구단 꾸리자고 그러는 거 아냐?
얘가 결혼하더니 못하는 소리가 없어 아주
의미심장하게 웃는 강주에게 하경이 괜히 짜증을 낸다
- 그나저나 너 프로포즈는 받았어?
- 아.... 받은 거 같은데...
그걸 프로포즈라고 봐야겠지...?
- 좋겠다 이지훈은 제대로 했지? 어떻게 하든?
- ..뭐... 그냥... 근데 그러고 보니 넌 프로포즈 어떻게 받았는데? 얘기 못 들은 거 같다?
강주의 얼굴이 구겨진다
- .... 못 받았으니까
에? 저 박흥수가? 설마
지금도 저와 함께 있는 강주를 계속 보고 있는 흥수가 프로포즈를 안 했을리가
하경은 믿을 수가 없다
- 진짜?
- .... 몰라 자기는 했다는데 난 못 받았으니까 무효야
강주가 순식간에 침울해져서 하경은 더이상 묻지 않는다
잠시 샐러드를 손으로 툭툭 뜯던 강주가 다시 묻는다
- 그나저나 회사에선 이제 괜찮아? 좀 조용해졌어?
- 아.. 뭐 그럭저럭
가끔 찾아오는 외부인들에게 <저사람이 그사람> 이라고 은밀한 지적을 당하는 것과
캐스팅 관련 회의에서 지훈의 이름이 나오면 갑자기 정적이 흐르는 류의 불편함이 있긴 하지만
시상식에서 제 이름이 까발려진 다음 날의 소동에 비하면 모두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수준이다
공개적으로 누가 애인인지 밝혀졌다고 출근을 안하자니 그게 더 웃긴 것 같아서 회사에 가긴 했는데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팀장에게 호출 당했다
침묵이 흐르는 회의실에서 이걸 언제까지 견뎌야하나 싶은 생각이 들 때쯤 팀장이 마침내 말했다
- 진짜야?
- 에?
- 진짜 송피디냐고 어제 이지훈이 말한 사람
- ....네
- 그럼 촬영할 때도 이미..
- 네
- .........
침묵을 견디다 못한 하경이 먼저 말을 꺼낸다
- 제가 이지훈씨랑 만나서 PD 입봉한 건 아닌데요
- 알지 그걸로 뭐라고 하는게 아니잖아 지금
- ... 그리고 제가 누굴 만나든 그건 제 사생활이지.. 제가 그걸 회사에 보고할 의무나...
진지한 하경의 항변에 팀장이 피식 웃어버린다
- 송피디한테 뭐라고 하는 거 아니야 그냥 놀라서 그러는 거지 축하할 일이잖아 이거
- 네....
- 근데 이지훈 좀 대단하대 공개적으로 그렇게. 한동안 좀 시끄러울텐데 휴가 쓸래? 작품도 끝났고 당장 급한 거 없잖아
- ...제가 뭘 잘못한 것도 아니고.. 일도 있구요..
- 그래 그럼
팀장이 힘내라는 듯 하경의 어깨를 툭툭 친다
- 저 문을 나서면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 각오해
팀장의 말대로 그 회의실 문을 나서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선영에게 탕비실로 끌려가서 똑같은 절차,
아니 몇배로 상세한 심문 후에 '선배가 그럴 줄은 몰랐어요!' 투정을 받아주느라 머리가 터질 뻔 했다
(선영의 마음을 풀어주는데는 두 번의 식사, 그것도 한번은 지훈을 낀 식사가 필요했다..)
그런 절차가 며칠동안 몇 번이나 더 남아있었다는 게 문제다
거기다 사무실에 오가는 모든 사람들이 저를 한번씩 훑고 가는 건 물론이고
건물 전체가 일부러 일을 만들어 올라오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을 하고 왔다갔다 하는 바람에
일주일 정도는 아예 업무에 집중할 수가 없어서 오기부리지 말고 팀장이 말할 때 휴가를 쓸 걸 그랬나 하고 후회했다
그에 비하면 이정도는 다닐만 하지..암...
하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샐러드에 넣을 채소를 다듬는다
샐러드볼에 가득차게 채소를 담고 뒤에서 샐러드 소스를 만들고 있던 강주를 부른다
- 여기
- 응 줘
샐러드볼을 강주에게 넘기는데 균형을 잃었던지 강주가 받다말고 휘청하고 그릇을 놓칠 뻔 한다
- 아앗!
비명 소리와 함께 간신히 샐러드볼을 받아낸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하경의 눈은 더 커진다
- ....다행이다
- 이거 놓쳤으면 큰일날 뻔 했어 진짜
하경과 강주가 안도하며 웃는데, 숯불 옆에 서 있던 흥수가 뛰어들어온다
- 괜찮아?
- 어? 응 나는 괜찮..
흥수가 다짜고짜 강주의 손에서 샐러드볼을 빼앗아 내려놓는다
그리고 강주를 번쩍 들어올린다
- 조심하라고 그랬지? 무슨 일 생기면 어쩌려고 그래?
- .... 저기.. 미끌어질뻔 한 거 나 아니야 샐러드볼이지
- 하여간 조심하란 말이야 안에 가만히 앉아있어 누구 심장 떨어지는 거 볼래?
흥수는 정말 놀란 듯이 강주를 안아들고 집 안으로 들어가버린다
강주는 안겨 들어가면서 흥수의 뒤통수를 손짓으로 가리키며 하경에게 미안하다는 듯 입모양으로 사과한다
얘가 좀 별나 미안
하경이 피식 웃으며 손을 흔든다
벌써 저래서 진짜 애 낳고 나면 어쩌려고 그러냐...
- 근데 아들이래 딸이래?
- 흥수는 딸 바라는 거 아니야?
지훈과 이경이 테라스 테이블로 그릇을 나르면서 말한다
- 딸이래?
지훈이 하경을 바라보며 묻는다
하경이 조금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 ... 비밀인데.... 아들이래
- 에? 근데 왜 비밀이야?
- ... 박흥수가 너무 딸이길 바래서 말 못했대...
잠시 강주를 안고 들어간 쪽을 바라보며 동시에 같은 생각을 한다
아들이면... 질투하는 건 아니겠지 설마...?
=
이경이 테이블 세팅중인 경민에게 다가가 슬쩍 말을 건넨다
- 우리도 하자 결혼
속삭이려고 하는 모양인데 너무 잘 들린다
- 아직 안된다니까
경민이 귀찮은 듯 이경을 피한다
- 그냥 하자니까, 다이아 사줄게, 얼마면 돼?
- 그거 사고 손가락 쪽쪽 빨고 살게?
- 니가 그거 사주면 한다며
- 그런 건 나중에 내 돈 모아서 사면 돼
- 그럼 왜 안 한다는 건데
- 그러니까 아직 안된다니까
실갱이가 길어지자 언성도 높아진다
- 아 그러니까 언제 되는데 대체! 넌 나랑 할 생각이 있긴 하냐?
결국 이경이 먼저 소리를 버럭 지른다
좋은 날 왜 저러나 싶어 이목이 집중된다
경민이 눈치를 보더니 화를 꾹 눌러참는 표정으로 이경을 구석으로 데려간다
- ... 너 나 빈손으로 데려갈거야?
- ... 내가 가진 게 뭐 있냐? 다 니가 가져가면서
사귄지 삼개월쯤 지났을까, 이경의 씀씀이를 보고 경악한 경민은
이경에게 통장을 내밀며 모든 수입을 입금하라고 - 아니면 헤어지자고 협박했고
결국 이경은 그 이후로 경민에게 모든 수입을 바치고 용돈을 받아 살고 있었다
- 그러니까 그 통장에 연결해서 만든 적금이 내년 만기란 말이야
- 근데?
- 그거랑 내가 모은 돈이랑 합쳐야 전세라도 구할 거 아냐 언제까지 월세 살래?
생각지도 못한 말에 이경의 눈이 커진다
- 그러니까 기다리라구
경민이 새침하게 다시 테이블로 돌아간다
그 뒤를 조르르 좇아온 이경이 속닥속닥 확인한다
- 진짜지? 그때까지만 기다리면 되는거지? 다이아 없어도 되는거야?
저 빙신 진짜......
지켜보던 친구들이 동시에 한숨을 쉰다
그놈의 다이아가 뭔지 진짜 돈 모아서 해주고 싶다
말 한마디에 쪼르르 저렇게 딱 붙어가지고 진짜...
너 남경민한테 꽉 잡힌 거 아직도 모르겠냐
앞날이 창창하다
=
- 야 고기 좀 빨리 구워라
테이블 세팅을 마친 나머지 멤버들이 고기를 굽고 있는 남순을 재촉한다
그나마 정호만 옆에서 묵묵히 고기를 뒤집어 주고 있다
저것들이... 불 옆에서 고생하는 건 나구만...
고기를 확 태워버릴까 생각하는데 인재와 세찬이 나온다
- 남순아 고생이 많다
- 아녜요 샘
인재의 말 한마디에 남순은 곧 고분고분해진다
열심히 구워야지 음..
- 근데 2학년 2반 리유니온이라더니 이게 다냐?
세찬이 툭, 던진다
- 기덕이랑 다른 애들은 밤에 오기로 했어요 일 끝나고
- 니네는?
- 저희야 저희가 사장인데요... 문 닫고 싶으면 닫고..
- 지금은 알바들이 하고 있어요 좀 불안하지만 하루니까
- 그러고 보니 정호야 니 함박스테이크 진짜 맛있다며? 선생님도 나중에 가도 되지?
인재의 말에 정호가 멋쩍게 웃는다
라면가게가 궤도에 올라 투자금을 회수하고 수익이 쌓이고 있던 얼마 전 옆 가게가 문을 닫았다
그 공간을 보던 정호가 언제까지 라면가게만 할 수는 없으니 확장해보는게 어떻겠냐고 했고
지금은 가게를 확장, 했다고 해야할지 나누었다고 해야할지
공간을 틔우고 3개로 나눠 남순의 라면가게, 정호의 함박스테이크 가게, 이경의 테이크아웃 커피점으로 운영중이었다
그중에서도 정호의 함박스테이크는 부드러운 육질에 독특한 소스로 최근에 주목받는 맛집으로 블로그에 등장하곤 했다
- 세계 일주 시켜준다더니 고작 펜션이냐?
뒤쪽에 어물쩡 서있던 세찬이 핀잔을 준다
지훈이 억울하다는 듯 대답한다
- 결혼 준비하느라 다 써서 아직은 무리예요 샘
- 애한테 왜 그래요 괜찮아 지훈아 여기 좋아 고마워
- 지 입으로 한 말 짚어준건데, 없는 말 한 것도 아니고 왜 그럽니까
- ... 아휴 정말.. 애 질투하지 말라니까요;..
- 샘 담에 꼭 해외여행 시켜드릴게요
- 그래, 이지훈, 이왕이면 세인이, 재인이는 떼어놓고 가고 싶구나
세찬의 말에 인재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웃는다
테이블에 앉아 그릇을 만지작거리던 세인이 쪼르르 달려온다
- 지훈이 삼촌, 언제 먹어요?
- 응? 금새 될거야 세인이 배고프구나?
지훈이 우쭈쭈하며 세인을 안아준다
- 야 가서 고기 구워진거 있으면 좀 가져와봐
- ... 내가?
- 그럼 여기서 누가 가냐?
누가.... 음..... 갈 사람이 나 뿐인가?
이경은 주섬주섬 일어나 접시를 들고 고기를 굽고 있는 남순에게로 다가간다
힐끗 보니 세인 주변에 몰려들어 이쁘다 똑똑하다 우쭈쭈하느라 정신이 없다
갑자기 이경의 몸이 부르르 떨린다
저거...어디서 많이 본 장면인데....
이 기분은 뭘까 고민하면서 접시를 내미니 힐끗 저를 보고 남순이 고기를 뒤집는다
.... 생각났다
- 고회장 저거 낯익지 않냐
- ... 뭐가?
- 난생 처음 보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들어가서 본능적으로 실세를 찾아내는 저 눈치와 모든 사람을 제 편으로 만드는 친화력
뭔소린가 싶다
이경이 가리키는 쪽을 보니 인재의 딸 세인이 보인다
애가 이쁘구만 참하게 생겼고 뭐가?
- 근데?
- ... 지수 같지 않냐? 불여시..?
이건 또 뭔 헛소린가 싶어 쳐다보니 이경의 눈이 진심으로 저에게 동의를 구하고 있다
그 꼬맹이한테 어지간히 당했구만 이 상황에서도 그런 생각을 할 정도면
피식 웃으면서 대강 대답한다
- 꼬맹이랑 비슷하다고?
이경이 고개를 끄덕인다
- 그렇게 치면 그런 거 같기도 하다만, 그게 나쁜 건 아니지 않나?
- 아니야... 아주 굉장한 여우가 될 느낌이 와 으.... 끔찍하다...
진저리를 치며 말하는 이경을 보며 남순은 갸우뚱한다
그런 걸로 치면.. 너 지금 더한 여우한테 간 빼먹히고 있는데...
- 여우면 어떠냐 인재샘 딸이면 착할텐데
- 야, 지수가 안 착해서 맨날 여우짓해서 내 돈 울궈먹는게 아니야 심지어 날 돕는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그거야 니가 지수한테 꼼짝을 못하니까 그렇고....
어째 알면서 맨날 또 당하냐 너는
- 근데 아직도 꼬맹이냐?
- 어?
- 너 지수 아직도 그렇게 부르냐고
- .... 꼬맹이를 꼬맹이라고 부르는데 뭐가
이경의 눈이 수상하다는 듯 가늘어진다
한국에 돌아온 지수는 자연스럽게 라면가게를 찾았고 남순은 가타부타 말없이 라면을 끓여주었다
그 횟수가 잦은 것도 아니고 딱히 무슨 대화가 오가는 것 같지도 않아서 지켜만 보는 중이었지만
뭐라고 꼬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분위기가 달라졌달까...
흠.....
저를 바라보고 있는 시선을 무시하고 덤덤하게 고기를 구운 남순은 접시에 담아 건넨다
- 가져가
=
- 그럼 이제 누가 더 오니?
- 기덕이랑, 아 민기도 온대요 지난번에 방송국에서 만났거든요
- 혜선이는 시댁 제사라서, 둘째 임신한 건 아세요?
- 아, 나리 소식은 아세요?
- 소식은 몰라도 얼굴은 자주 보지
- 엇, 샘도 보셨구나
- 요즘 안 보면 대화가 안되잖니 <성녀의 유혹> 나도 이제 아줌마라서
- 학교 다닐 때 생각하면 진짜 매치 안 되요 복수극의 히로인이라니
- 그러게 난 진짜 누군지 기억 안 나는데
- 이름도 바꿨잖아 전수진으로
- 그러니까 이이경 니가 기억하는 애가 경민이 말고 있냐고
- 이게 진짜
- .... 너 지금 강주한테 손 들었냐....
- 아하하... 자기야 왜 그래..
평소처럼 이경과 티격태격 중이었는데 갑자기 심각해진 흥수의 말에 강주가 끼어든다
그 말에 남순이 진저리를 친다
- 샘 얘 좀 보세요 샘 앞에서 자기래요 자기 으윽
- 왜! 내가 뭐! 내 자기 내가 자기라고 불렀다 왜!
모든 사람들을 닭장으로 몰아넣고 저에게 안기는 강주를 흥수는 사랑스럽다는 듯 어깨를 감싸안는다
인재조차 할 말을 잃고 그 모습을 바라본다
- 샘... 저희가 왜 그러는지 아시겠죠...
- ... 박흥수 지금은 니가 잘못했다...
세찬이 툭, 말을 던진다
흥수는 그런 세찬의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이 된다
저건 평생 가도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를거다...
남순은 어쩐지 2학년 2반 2학기 첫 종례 시간으로 돌아간 듯한 긴장감을 느낀다
지금 이 상황에서 제가 나서지 않으면 끝나지 않을 것 같다
큼.
남순은 쥐고 있던 물컵을 포크로 가볍게 친다
- 주목.
남순의 말에 테이블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남순을 바라본다
이런 거 진짜 안 맞는데 쩝..
- 어쨌든 오늘 지훈이랑 하경이 결혼 미리 축하하는 모임이니까, 건배 한번 하죠
제 잔부터 채운다. 와인 대신 포도주스지만
남순이 하는 양을 보던 사람들도 각자의 잔에 각자의 음료수를 따른다
잔을 다 채우고는 흥미로운 눈으로 남순을 바라본다
큼.
자꾸 헛기침이 나온다
- ... 건배하기 전에... 선생님께 한 말씀 듣겠습니다
남순의 말에 인재와 세찬이 눈빛을 주고 받는다
서로 미루고 있는 동안 침묵이 흐른다
- ... 그래도 정선생님이 하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저야 뭐
갑작스럽게 십사년전과 같은 존칭으로 저를 부르는 세찬이 당황스럽다
재촉하는 눈빛에 어설프게 잔을 들고 일어선다
인재는 저를 기대에 찬 눈으로 바라보는, 저에게는 몇년이 지나서 이들이 전부 중년이 된다해도 여전히 학생일, 이 아이들을 둘러본다
- .. 너희들이 모두 잘 살아줘서 선생님은 정말, 정말 고맙다..
나쁘지 않게, 여기에 발 붙이고, 서로 사랑하면서, 행복하게 살아줘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 선생님은.
약간 울컥할 것 같다
마음에 늘 걸리던 아이들이 어른이 되고, 행복해지는 걸 보니 제 인생이 헛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때 괴로웠어도 손을 내밀길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반짝이는 눈빛이 언제나 계속되기를
- 앞으로도 잘 사는게 서로를 위한 거야 알지?
지훈이랑 하경이 결혼, 샘이 너무너무 축하해 강주만큼 닭살 커플되서 행복하게 살렴
자 건배!
- 샘 쟤네만큼 닭살 커플이라뇨 저희 죽어요 그러면
인재의 선창에 잔을 치켜 들면서 남순이 투덜거린다
행복하게 서로를 바라보는 아이들을 보다 인재가 세찬에게 눈빛으로 전한다
잘 살았나봐요 우리
그때 놓지 않길 잘했어요
==============
아, 좀 길어졌다.... 오타 등등의 수정은 천천히 할게...
우선은 여기까지야 이걸로 마흔 다섯편이네. 오늘로 지훈이는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했기 때문에... 딱 맞춰 끝낸 것도 신기하다....
흥수, 지훈, 이경은 나냔의 로망들의 다른 단면들이 꽤 반영됐고 경민이 강주 하경이도 동경하는 부분들을 많이 갖고 있어서 마치 정말 내가 세 번의 연애를 하는 기분으로 썼어 나냔의 연애사도 꽤 많이 들어가서.. 힐링도 된거 같아 각 커플별로 다르게 설정해서 쓰려고 했는데... 달랐는지 모르겠네... 쓰다보니 이게 다 비슷해보이면 어쩌지 하는 고민이 들기도 했어 너무 왔다갔다하면서 쓰니까..
한반에서 세커플이나 (세찬_인재 포함하면 네커플이네) 탄생한단건.. 말이 안되지만 그래도 난 해피엔딩이 좋으니까.
모든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냔들이 즐거웠길 바래 나냔은 즐거웠거든 한달 반 정도 꿈 속에서 살았어
사실 일주일 정도로 끝났어야 하는 이 세계가 지금까지 확장된 건 다 읽고 아이디어 주고 핏백해준 냔들 덕분이야 고마워
조금 더 쓸 이야기가 남았지만 그건 완전 외전 느낌이라서...
혹시 더 보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있으면 알려줘 고민해볼게 ㅋ 장담은 못하지만...
+ 그리고 약간의 짧은 뒷이야기 ↓
+
[어느 아침]
1.
때르르르르르르르릉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알람을 끄고 도로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 일어나 이이경
저만큼 졸린 목소리가 저를 깨운다
- ... 더 자자 오늘은 진짜 못 가겠다
어제도 마감하고 열한시를 넘겨 들어왔는데 새벽 여섯시 운동이 웬말인가
녹초다 절대 못 일어난다
눈을 꼭 감고 경민을 향해 꿈틀꿈틀 뻗은 팔을 찰싹 맞았다
화들짝 놀라 눈을 뜨니 경민이 엄한 표정으로 보고 있다
- 너 요즘 배 나오려고 그런단 말야 빨리 일어나, 얼르은
이대로 순순히 일어날 수는 없다 오늘 가면 내일도 가야한다
- 넌 내가 배 나오면 싫냐? 배가 나오면 싫고 배 안나오면 좋고 뭐 그런거야?
섭섭한 기색을 잔뜩 담아 말하니 대답이 없다
할 말 없지? 오늘은 그냥 좀 자자
이경이 경민을 안고 도로 잠들려는데 가슴팍에 폭 코를 박은 경민이 애절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 나야 니가 배가 나와도 좋지... 근데 배 안 나온 니가 쪼금 더 좋은데... 운동 가면 안 돼? 응?
.... 하아.... 진짜
이경은 억지로 눈을 뜬다
이 여우짓에 매번 당하면서 또 당해준다 내가 진짜....
2.
달칵
가게 문 옆에 걸어둔 램프의 스위치를 끈다
이 자식들 오늘도 늦네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옆 가게들을 보고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고는
차에서 좀 전에 시장에서 사온 식재료들을 꺼낸다
라면가게의 부식으로 요리를 할 때와 달리 정식으로 함박스테이크 전문점을 낸 후
정호는 식재료에 부쩍 신경을 써서 아는 곳에 달아놓고 써도 될법하건만
매일 시장에 직접 나가서 재료를 골라오곤 했다
오늘은, 아스파라거스가 좋아서 잔뜩 사버렸다
이걸 함박스테이크에 얹어서 내도 되려나, 삶아야 하나 어쩌나 고민하며
식재료 박스를 가게 안으로 들여놓는다
그리고 가게 문 틈 사이로 던져진 신문을 집어든다
<성녀의 유혹 최종회! 그 결말은? - 히로인 전수진 단독 인터뷰>
스포츠 신문 헤드라인을 보니 문득 나리가 다녀간지 오래 되었단 걸 깨닫는다
TV는 보지 않으니 매스컴에서 각광받는다는 나리의 삶은 알 길이 없다
간혹 와서 일상적인 대화를 잠시 나누는 정도의, 전화 번호도 모르는, 우연에 기대는 사이
상처받은 동물처럼 한껏 웅크리고 있던 어깨가 안정을 찾고 푹 숙여 감췄던 고개를 드는 걸 보면서
아마도 더이상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곧 이 위로가 필요하지 않게 되리라 생각했다
내 빛은 찾았어, 네 빛은 찾았니?
3.
힐끔 보니 가게 문이 약간 열린 게 정호는 이미 온 모양이다
지독하게 부지런한 새끼 같으니
역시나 이경의 카페는 문을 닫았고...
어째 아침에 저렇게 약한지 모르겠다 하기사 학교 다닐 때도 등교하기 힘들어했지..
근데 정호도 그랬는데 어째 이경만 그대로인지 원
남순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라면가게 문을 연다
다라락, 열리는 문에서 뭔가 툭 떨어진다
뭔가 싶어 집어들어보니 끝에 조그만 초콜렛을 단 쪽지다
<아저씨! 오늘도 화이팅!>
피식 웃음이 난다
출근길에 다녀갔나보네, 이 꼬맹이
4.
- 얌...엄...마...
- 쉬잇.. 나가자... 엄마 잔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조심스럽게 제 옆에 있던 온기가 사라진다
강주는 그제야 가늘게 눈을 뜬다
아기 침대에서 칭얼대는 성훈을 어르고 있는 흥수의 뒷모습이 보인다
흥수에게 안긴 성훈이 강주를 보더니 엄마,하고 팔을 뻗는다
- ...자기야
- 깼어? 더 자, 성훈이 데리고 나갈게
- ... 이리 데려와...나 일어났어..
- 좀 더 자, 어제도 늦게 잤으면서.. 오늘 모처럼 휴일인데
제 볼에 살짝 입맞추고 어깨를 토닥토닥 하고서는 성훈을 달래면서 방 밖으로 나간다
강주는 다시 잠으로 빠져든다
아... 일어나야하는데... 근데...
난...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봐....
5.
계단을 내려오자 거실 소파에 앉아 후드를 뒤집어 쓰고 시나리오를 읽고 있는 지훈이 보인다
저렇게 꼭 후드를 쓰고 있어야 어쩐지 집중이 잘된다며 항상 저런 차림이다
손에 쥐고 있는 시나리오를 뚫어질 듯 보면서 중얼거리고 있는 지훈을 가만히 바라본다
목표를 향해 빛나는 눈, 저 눈에 이끌려 여기까지왔다
하경은 조용히 다가가 옆자리에 앉는다
그제야 알아차린 지훈이 귀에서 이어폰을 뺀다
- 벌써 일어났어? 몸 안 좋다더니
하경이 고개를 젓고 가만히 지훈을 바라본다
왜? 라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며 하경의 머리를 끌어안아 제 어깨에 기대게 한다
가만히 안긴 채 하경은 지훈이 다른 손에 든 시나리오를 가리킨다
- ... 재밌어?
- 응? 괜찮은 거 같아 아, 근데 이거 니네 경쟁사껀데 하지 말까?
- ... 그거 우리 애기가 봐도 괜찮을까?
지훈은 잠시 멍해졌다가 이내 눈이 휘둥그레 진다
- 너.. 방금...그 말...
하경이 지훈의 눈을 바라보면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 진짜? 진짜로? 진짜지?
- ... 이런 걸로 거짓말할까 설마...
- ... 우와... 어떻게 해... 우와... 하경아... 너 진짜..
지훈은 하경을 번쩍 안아들려다가 무슨 생각이 났는지 도로 조심스레 내려놓는다
그리고 신기한 듯 하경의 배를 살살 만져본다
- ... 여기 있단 말이지...
- ... 확실한 건 병원 가봐야 알아
- ... 딸이면 좋겠다 너 닮은
하경의 조심스런 자제는 들리지 않는 듯
지훈은 이미 아이의 성별을 결정하면서 하경의 배에 입을 맞춘다
그리고 아차 싶은 얼굴로 벌떡 일어난다
- ... 일 많아서 피곤하면 회사 한동안 쉴래? 아니다 우선 뭐 먹어야지? 뭐 먹을래? 앉아 있어 내가 할게
분주하게 움직이는 지훈을 보며 하경이 픽 웃어버린다
- 너 지금 되게 박흥수 같은 거 알아?
그때 혼자 심각했던 박흥수 말야
샐러드 그릇 떨어진 건데 강주가 떨어진 것마냥 발을 동동 굴렀던 그 박흥수
지훈이 멈칫 하더니 씩 웃는다
- 형이 그때 왜 그랬는지 알겠다
- ... 난 그런 과보호 필요없어.. 한다고 그러면 화낼거야
설마 지훈도 그럴까봐 겁이나 미리 엄포를 놓는다
지훈은 도로 하경의 옆에 앉아 머리칼을 천천히 쓰다듬는다
손이 떨리는 게 느껴진다
흥분이 되는 건지 겁이 나는 건지 모르겠다
잘못 다루면 깨지기라도 할 것처럼 조심스럽게 하경을 안은 지훈이 말한다
- 내가 진짜 잘할게
- ... 지금도 충분해...
- 사랑한다 송하경,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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