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지훈이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회의실에 들어선다
미리 기다리고 있던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지훈의 눈이 회의실을 휙 둘러보고 실망한다
혹시나 했는데…
- 이쪽이 작년 천만영화 기획자 이상석 팀장님
- 안녕하세요
- 이지훈씨가 직접 나와주다니 영광입니다
- 별말씀을요
자신의 매니저의 소개에 웃으며 악수를 청하는 팀장의 손을 잡으며 지훈도 미소지어보인다
- 그리고 여기는 저희 기획팀 임선영씨입니다
- 안녕하세요…
-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선영의 떨리는 목소리에 지훈이 예의바르게 웃으며 인사한다
- 우선 앉으시죠
- 좀 놀랐습니다 이지훈씨가 해주신다면야 저희는 천군만마를 얻은거나 다름없지만요
- 책이 좋던데요 이렇게 학생을 붙드는 선생님 역할도 꼭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마침 좋은 책이 들어왔으니 해야죠 당연히
-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 자 그럼 앞으로 일정 좀 들어볼까요?
실장이 자리를 정리한다
지훈은 의자에 조금 뒤로 물러앉는다
=
카톡 알림음이 계속 울린다
하경은 눈으로 실례, 인사를 한 뒤 옆에 놓아둔 휴대폰을 들어 카톡을 확인하니 선영의 메세지가 몇 통이나 도착해있다
얘 오늘 팀장님 모시고 기획사 미팅 따라갔는데… 뭔 일 있나
[대박 이지훈이 직접 나옴]
[헐 악수도 했어요 나 손씻지 말아야지]
[빠심 고백하고 싶은거 참느라 죽을 뻔]
[목소리도 완전 좋고 미소 주금]
[책 좋다고 하고 싶대요!!!!!!!!!]
[선배 저 나중에 꼭 현장 데려가요!!!!!!]
[아니 그냥 내가 라인 뛰면 안돼요?]
[팀장님 지금 기분 째지심]
첫 미팅 자리에 배우가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계속해서 올라오는 흥분한 선영의 문자에 하경은 조금 멍해진다
책이 마음에 들었다니... 설마 알아본 건 아니겠지...
그거 우리 이야기 갖다 썼다는 거... 설마...
혹시 싶어 불안하고 널 볼 수도 있었단 사실에 아쉽고 그리고... 어쩌면 안심된다
하경이 아무 말도 없이 움직이지 않자
앞에 앉아 있던 작가가 하경을 조심스레 부른다
- 저... 송피디님?
- 아, 네?
하경이 퍼뜩 놀라 작가를 바라보고는
막 새로 도착한 선영의 카톡을 확인한다
[팀장님이 이지훈 계약하려면 지금 하는 수정고 확실히 잘 나와야한다고 선배한테 전하래요 ㅠㅠ]
- 무슨 일 있어요?
작가가 걱정스레 묻는다
오늘 캐스팅 미팅이라 팀장이 같이 나오지 못했단 말을 미리 흘린 탓이다
하경은 마음을 다잡고 생긋 웃는다
- 일은 일이네요. 이지훈 배우가 시나리오 보고 좋다고 하겠다고 했대요 김 선생님 역
계약까지 안 엎어지고 잘 하려면 우리 수정고 엄청 잘 나와야할거 같은데요?
지훈이라면 아마 투자심의도 무난히 통과하게 되리라
작가의 표정이 한결 밝아진다
하경은 다시 기계적으로 설명을 시작한다
- 그러니까 사심 팍팍 넣어서 혼신을 다해주셔요
아까 어디까지 얘기 했죠? 여기 이부분 개연성이 좀 없는 것 같아요
주인공이 왜 이렇게 움직이는지 설명이 좀 필요할 듯 하구요
=
아무래도 수상쩍다
지훈은 제작사와의 미팅을 허탈하게 끝내고 돌아오는 차에서
가로등 불빛이 반짝이는 도로를 내다보며 속으로 되짚어본다
하경을 보내고 잊기 위해 일에 파묻혀 살던 언젠가
누군가 하는 말 중에 하경이 유학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왜 그랬는지 당연히 결혼을 해서 갔겠구나 생각했다
감히 누구에게 물어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확인받는게, 그래서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결론을 듣는 게 두려웠다
어디선가 잘 살고 있겠거니
하경이 자신이 해주지 못했던 그 길을 씩씩하게 잘 걸어 가고 있겠거니 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열심히 살아서, 더 많은 사람들이 보는 영화에 나와서, 더 좋은 배우가 되는 것,
그래서 하경이 한 말을 증명해주는 것 뿐이라고. 생각했다
뒤늦게 찾아가서 하경의 일상을 흔드는 일 같은 건 감히 떠올려보지도 못했다
그게 하경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아주 오래 시간이 지난 뒤에
하경이 딸과 함께 TV를 보다가 나이들어서도 연기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저 아저씨 엄마랑 아는 사람이다, 라고 웃으면서 말할 수 있게 하는 것.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것 그게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배려다.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시간 동안 아무 말 없이 살아왔다
하지만 그게 옳았던 걸까
갑작스런 하경의 연락과
망설이다 보낸 [잘지내?]란 문자에 다시 돌아오지 않는 답과
자신과 하경이 분명한 인물이 등장하는 시나리오와
이걸 처음 제안한 사람이 누구냐고 묻자 선영이라는 사람이 대답한 팀원 중 한명이라는 '송피디'
그리고 이 모든 혼란의 중심에 숨어버린 하경이 있었다.
그때 널 붙들어야했을지도 모른다는 자책과
그게 널 위한 것이었다는 자위 사이를 오가며 살아왔다
어느 쪽이 옳은 것인지, 그때도 지금도 알 수 없지만
네가 만약 아직도 날 기다려주고 있다면,
만약에 오늘 보지 못한 송피디,가 너라면,
그래서 혹시라도 이게 네가 내게 보내는 신호라면,
저 점멸하는 수많은 빛 중에서 단 하나 의미를 가지는,
내가 널 붙잡을 수 있는 기회가 한번 더 남아 있다는 신호였다면
지훈은 용기를 내기로 결정한다
그때는 말하지 못했던, 그래서 감춘채 하경을 보내야 했던
자신의 뒤늦은 질문에 하경이 뭐라고 답을 하더라도 우선 솔직하게 얘기해보자.
지훈은 주소록을 급하게 넘겨 익숙하지 않은 번호를 찾아냈다
- 어 강주야. 나 지훈이. 잘 지내지? 잠깐 시간 돼?
=
잡아먹을 기세.
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거구나
지훈은 십년만에 처음 보는 강주의 새로운 모습에 등에서 식은땀이 나는 것 같다
벌써 삼십분째 아무 말도 없이 강주는 테이블 건너편에 앉은 지훈을 쏘아보고만 있다
저러다 눈 빠지겠다-_- 싶은 멍청한 생각이 들 정도로 눈도 한번 깜빡이지 않고 자신을 노려보는 강주 때문에
지훈은 시선을 어디에 둬야할지 난감해서 자꾸만 앞에 놓인 컵만 만지작거리다 강주를 힐끔 바라보고 다시 고개 숙이기를 반복한다.
- 그래서? 난 왜 보자고 했는데?
삼십분만에 처음으로 강주가 입을 뗀다
선머슴 같던 고등학교 시절의 모습으로만 강주를 기억하던 지훈은 이렇게 차가운 목소리도 있었던가 싶어서 또 기운이 빠진다
누가 송하경 친구 아니랄까봐... 이런 것도 닮았냐...
- 송하경, 잘 지내?
우물쭈물 하경의 이름을 꺼내는 지훈이 강주는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흥수가 아닌 자신에게 직접 연락이 온 건 아마 난생 처음이 아니었나 싶다
용건도 제대로 말하지 않고 꼭 만나달라길래 올 것이 왔구나 하고 나오긴 했지만
이전과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어보이다가도 한번씩 툭하고 내보이는 하경의 텅빈 얼굴이 늘 마음에 걸렸던 강주는
그게 다 앞에 앉아 있는 이 녀석 때문인 것만 같아서 연락을 받았을 때부터 벼르고 있던 화가 다시 치밀어 오른다
그래도 앞에서 삼십분째 말도 못 붙이고 눈치만 보고 있는 걸 보니
어휴 그래 니가 뭔 죄 냐 싶기도 하다
강주는 우선 지금은 곱게 마음먹기로 결심하고 퉁명스럽게 말을 건넨다
- 쏭이야 잘 지내지 왜?
- 하경이... 지금 어디 있는지 알아?
- 그건 왜.
여전히 불퉁한 강주의 질문이 내가 뭘 그리 잘못했나 부담스럽지만 지훈은 용기를 내서 대답한다
- 이제 좀 솔직해져볼까 하고.
강주는 순간 불쑥 강짜를 놓고 싶어진다
솔직은 무슨! 이제 와서! 그동안 뭘하다 이제!
내가 그동안 얼마나 말하고 싶은 걸 참느라 괴로웠는데
이제야! 이제서야! 5년이 넘게 지나서야!
니가 그렇게 쉽게 물어보면 내가 순순히 대답을 해줄 성 싶었냐!
좀더 괴롭혀줄까 싶은데
지훈을 만나러 간다고 했더니 좀 잘해주라고 신신 당부했던 흥수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아 정말 확 쥐어박기라도 하면 덜 속상할 거 같은데...
...마음에 쌓인건 나중에 천천히 갚아주기로 하자
또 답이 없이 자기 생각에 빠진 강주의 침묵에
안절부절 못하는 지훈을 탐탁치 않다는 듯 쏘아본 강주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덧붙인다
- 너 지금 엄청 실례인거는 알지?
- ?
- 오늘이 무슨 날인지나 알어?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크리스마스!
근데 내가 왜 여기서 너랑 이런 얘길 하고 있어야 하는 건데!
- 아... 미안해
버럭 하는 강주의 기세에 눌린 지훈은 이게 이정도로 화낼 일인가 싶지만 자신도 모르게 사과하고 만다
그런데 더 알 수 없는 질문이 던져진다
- 하경이가 제일 좋아하는 가수가 누구야
이게 뭔 소리인가.. 싶지만 지훈은 기억에 따라 순순히 대답한다
- 성시경.
강주의 얼굴이 더욱 구겨진다
그새 바뀌기라도 했나?
분명 성시경을 좋아한다고 해서 그 아저씨야 나야 라고 유치한 소리를 했던 기억이 있는데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는 지훈에게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강주가 툭 말을 던진다
- 그래 송하경이 제일 좋아하는 가수는 성시경. 그리고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 그럼 송하경이 지금 어디 있겠냐?
속시원히 좀 말해주면 좋으련만 스무고개도 아니고
지훈은 그 말만 던지고 다시 입을 꾹 다문 강주를 바라보고 머리를 열심히 굴린다
그리고는 휴대폰으로 성시경 크리스마스 를 검색 해본다
- ...?
이게 진짜 답이 맞나 싶어 지훈이 고개를 급히 들자
지금껏 지훈이 하고 있는 양을 바라보던 강주와 눈이 마주친다
- 그래 맞아
퉁명스런 강주의 긍정에 고맙단 말도 없이 지훈이 급하게 짐을 챙겨 일어서려는데
강주가 손짓으로 지훈을 부른다
그리고 일어나다 만 엉거주춤한 자세로 다가간 지훈의 명치에 정확하게 주먹을 꽂아넣는다
- 윽
방심하다 맞으면 운동도 맷집도 무용지물이다
- 너 이제 하경이 한번만 더 힘들게 하면 이 정도로 안 끝나
내가 그땐 너 친구고 뭐고 가만 안 둘테니까 그렇게 알어
주먹 맵기도 하다
지훈은 겨우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자리에서 뛰쳐나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고 섰던 강주는 지훈의 모습이 사라진 후에야 자리에 앉는다
에휴 잘 한건가 몰라
아 몰라 이제와 후회해봐야 소용없지 뭐
둘이 제발 좀 잘 알아서 해봐라
소리없는 아우성을 모아모아 기를 팍팍 보내면서
강주는 막 울리기 시작한 전화를 받는다
- 응, 방금 보냈어. 응, 못되게 안 굴었어 걱정마 내가 진짜 친절하게 가르쳐줬다니까? 진짜다 뭐~ 우리 어디서 볼까?
=
크리스마스 이브 공연이라 그런지 꽉 찬 사람들이 나가길 기다렸다가
뒤늦게 공연장을 빠져나오던 하경은
꽤 쌓이기 시작한 눈을 보고 잠시 문 앞에 서서 망설인다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혼자 공연을 보러오는 게 관례처럼 되었더랬고
커플들 틈에 끼어 공연을 볼 때도 노래에만 집중하면 그다지 힘들거나 외롭지 않았는데
오늘은 어쩐지 서글프다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한파인 날씨도 서글프고
혼자 저 길을 앗 추워.하면서 종종걸음으로 지나가야한다는 것도 서글프고
하필 시간 맞춰 내리기 시작한 이 눈까지도 서글프다
내년엔 혼자 오지 말아야지
하얀 눈이 내리는 하늘을 한참 보고 섰던 하경은
마침내 결심한 듯 불쑥 밖으로 걸음을 내딛는다
춥다
그러나 추위보다 하경이 떨고 있는 건 어지러운 머리 때문이다
오랜만에 불러보네요.
라며 앵콜 곡으로 불러준 노래가 공연이 끝난 지금까지 떠나지 않는다
하경은 넘어지지 않으려고 조심하면서 혼자 머릿 속에 맴도는 멜로디를 흥얼거려본다
지금이라도 난,
'좋아.'
노래 속에 없는 가사를 나직이 완성시켜본다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밀려와서 갑자기 몸이 떨린다
너는 왜 그런 답을 보냈는지 원망스럽다
나는 왜 잊었다 생각했던 기억들을 떠올리는지 바보같다
왜 시간이 흐를수록 좋았던 기억만 남는 걸까
분명 너와 싸웠던 적도 네가 싫어졌던 적도 너때문에 아팠던 적도 있는데
왜 이럴 땐 너와 행복했던 순간만 떠오를까
이렇게 갑자기
하경은 울컥하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쉰 뒤
다시 앞을 바라보며 걷기 시작한다
시간이 얼마나 지체되었는지 이미 공연장 로비 불은 꺼졌다
이미 저만치 가버린 사람들을 바라보며
하경은 발걸음을 지하철 역으로 재촉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우뚝 서버린다
저 멀리 모자를 푹 눌러쓰고 목도리를 턱 끝까지 올린 채
자신의 어깨를 치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거슬러 곧장 걸어오는 한 남자를 멍하니 바라본다
이렇게나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나는 여전히 널 그리고 있다니
저런 실루엣에서까지 네 모습을 발견하다니
하경은 도리도리 고개를 젓는다
이젠 하다하다 헛것도 보이다니 오늘은 정말 미쳤나보다
눈을 몇번이나 질끈 감았다 떴는데도
그 실루엣은 사라지지 않고 다가와 하경 앞에 섰다
너다.
눈앞에 서서 하경을 바라보는 건, TV나 스크린 속에서 봐왔던, 지훈.이다.
하경은 지금 이 상황을 믿을 수가 없다
지금 꿈을 꾸기라도 하는 걸까
마음이 잠길 때마다
몇번이나 이런 상황을 떠올려보곤 했다
네가 어느 날 내게 오는 일
그러니 이건, 상상일까
하경은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지훈에게 손을 뻗어 얼굴에 가까이 가져간다
하지만 주머니에서 뺀 손에 내려앉은 차가운 눈을 느끼는 순간 번뜩 현실로 돌아온다
아무 말도 없이 자신을 바라보고만 있는 지훈을 힐끔 본다
서글프게 애써 웃는 너는 꿈이 아니다
하경은 지금 자신을 떠올린다
부끄럽다
널 만나는 상상을 여러 번 해왔지만 이런 모습은 아니었다
이렇게, 혼자, 무방비 상태로, 초라하게 널 만나고 싶지 않았다
삶에 지치고 사랑같은 건 믿지 않는 무덤덤한 나.로는
널 보고 싶지 않다
하경은 자신도 모르게 주춤. 뒷걸음질 친다
갑자기 뒤로 물러서는 하경에 당황한 지훈이 한발 다가서고
다시 하경이 한발 물러선다
꿈이 아닌 건 확실한데
오히려 현실이라고 생각하니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하경은 순식간에 자신이 열여덟,이 되어버린 것 같다고 느낀다
이젠 뭐든 알아버렸다고 생각했는데 그 시간이 다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것처럼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뒷걸음질치던 하경이 순간 균형을 잃고 비틀,한다
미끄러지는 하경의 팔을 지훈이 붙들고 강하게 끌어당긴다
그 반동으로 하경이 지훈의 품에 안겨버린다
모르겠다
널 뿌리쳐야하는 걸까
하지만 다시 네 얼굴을 보는 것도 두렵다
네가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닐까봐
내가 널 바라는 것처럼 날 바라는 게 아닐까봐
넌 그저 잠시 들린 것 뿐인데 내 마음이 혼자 앞서는 것 뿐일까봐
멈칫거리며 망설이는 하경을
절대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이 꽉 껴안은 지훈은
하경에게 작게 속삭인다
- 그거, 너야.
- ...?
- 이지훈을 만든 사람, 여기 날 있게 한 사람, 너야
하경은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다
그게 지훈의 말 때문인지 따뜻한 품 때문인지
온몸을 울려 들리는 다정하지만 확신에 찬 목소리 때문인지 모르겠다
내내 차갑게 얼어있었던 몸이 스윽- 녹는 것 같다
울음을 꾹 참고 있는 하경의 얼굴을 지훈이 조심스레 받쳐올려 진지하게 눈을 맞춘다
- 답이 너무 늦어서 미안해.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한 것도.
난 니가 몸만 와도 좋아, 니 전부가 필요해. 그러니까.
마치 준비한 대사를 읊듯 단숨에 말해버리는 지훈이 낯설다
하지만 하경은 지훈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남겨진 말을 잇지 못하고 숨을 고르는 지훈의 눈에서 불안해하고 있는 열여덟의 이지훈을 발견한다
이렇게나 세련되어지고 능숙해진 서른의 이지훈 뒤에 숨은 열여덟의 이지훈은 지금 하경처럼 거절이 두렵다
다시 자신을 잃을까봐 두려우면서도 용기를 내어 말하고 있는 지훈의 감춰진 불안을 발견한 하경은
목이 메이는 것 같다
- 그러니까 하경아,
지금이라도 괜찮다면,
머릿속에 내내 맴돌던 노래의 마지막 가사가 완성된다
너는 온몸으로 부딪혀 내게 왔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두려워하지 않고 내 전부로 네 마음에 응하는 일.
- 좋아.
하경의 대답과 함께 눈물이 도르르 떨어진다
뺨을 따라 흐르는 눈물을 지훈이 조심스럽게 닦는다
- 울보구나, 너.
슬쩍 놀리듯 웃음기 섞인 지훈의 목소리에 하경이 순간 째릿 한다
누구 때문인데 이게 다
- 널 두 번 울린 사람은 내가 처음일테니까,
아무데도 못가 너 이제.
=
=
냔들이 들으면 날 매우 치겠지만 사실은 8화까지가 생각한 전부였어
해피엔딩 같은거 현실에는 없다고 생각하거든 현실에서라면 9화의 하경처럼 그저 살아가는게 다 겠지.
다시 만나는 일 같은 건, 가상의 세계에서야 좋아하지만 현실이라고 생각하면 오글거리고..
그래서 생각했던 건 딱 헤어지는데 까지. 그다음에 그리워하며 사는 정도로 마무리하려고 했어
그러다 나도 해피엔딩이 쓰고 싶어졌고 이대로 헤어지게 두면 냔들에게 줄 실망감도 무서웠고-_-
덧붙여 사실은 이 둘이 계속 엇갈리는 장면을 생각해둔 에피소드가 몇개 더 있었습니다만,
어제 올린 9화의 댓글을 보고... 얘네가 더 안 만나고 몇화 더 끌었다가는 냔들이 기다리다 지치겠다 싶더라고...
그래서 후딱 써버렸습니다..... 라고 하기엔; 10회만에 현재의 주인공들이 처음 만난 거니까 엄청 오래 걸린건가
나 같은 어미를 만난 걸 원망하렴 지훈아 하경아 ㅠ
그래도 마지막이니까 뭔가 잘 쓰고 싶어서 이리 저리 생각도 많이 하고 그랬는데 생각한 것 만큼 잘 나왔는지 모르겠다...
다 쓰고나니 너무 길지만; (매화 점점 길어지고 있다는게 함정;) 그래도 두개로 나눠 올리긴 뭣해서 그냥 올려...
이 우울한 이야기 읽어줘서 고마워 냔들아
그동안 지치지 않고 거의 일주일만에 다 써버릴 수 있었던건 모두 읽어주고 댓글달아준 냔들 덕분이야
흔하지 않은 커플링인데도 끊임없이 날 자극하는 (외모)케미를 보여준 두 배우에게도 감사 ㅠ
혹시 주말동안 공상에 빠져있다가 뭔가 행복한 에피가 생각나면 돌아올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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