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il-in-paris



- 고회장 또 라면이냐? 징하다 징해 

이경이 주방에서 라면을 끓여나오는 남순을 발견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손을 내저었다 

- 누가 라면가게 사장 아니랄까봐.. 하루종일 라면만 끓이고도 또 먹고 싶냐? 

질리지도 않냐 진짜. 
이경이 투덜투덜 거리는데 주방에서 버럭 정호가 소리친다 

- 야 이새끼야 테이블 정리 안하고 자꾸 떠들래?! 

- 야 내가 지금 노냐? 

- 닥치고 좀 하라고! 밤새도록 가게 정리할래? 

네네. 누가 사장인지 모르겠네 진짜 

정호가 다시한번 성질을 부리자 이경이 투덜거리며 행주를 주섬주섬 들고 일어선다 

제법 큰 소리가 오고가는데도 남순은 아랑곳하지 않고 구석 테이블에 앉아 라면 먹을 채비를 한다 

- 야 오정호! 고회장도 노는데 왜 나한테만 그래?! 

- 고남순은 지금까지 주방 뒷정리했고! 넌 왜 홀 담당이 홀 정리를 안해?! 

이것들이 진짜..... 
먹는데 시끄럽게.... 

남순은 인상을 찌푸리며 아직도 옆에 서서 정호와 대거리하던 이경을 확 노려본다 
쓰나미 시절이 올라오는가 싶어 이경이 움찔한다 

- 넌 언제까지 고회장이라고 부를건데? 

졸업을 한지가 십년이 지났는데 
이경은 여전히 남순을 고회장, 이라고 불렀다 
그렇다고 차라리 지훈처럼 깍듯이 형이라고 존대를 하는 것도 아니고 
이건 뭐 놀리는 것도 아니고 뭐하자는 건지 
꼬박꼬박 고남순.이라고 부르는 정호에 비해서는 대우해준다고 생각해야하는건가 

- 아니 뭐... 고회장이 고회장이지... 

- 내가 회장이었던게 십년도 넘었다 이새끼야.. 
자꾸 손님들이 이상하게 보잖아 니가 자꾸 고회장이라고 불러서 

- 그럼 뭐 고사장이라고 부르나? 고사장니임~? 
야 싫어 무슨 수능 고사장도 아니고 그냥 고회장 해 좋잖아 사장보다 회장 

어휴 또 나왔다 저놈의 넉살 

하여간 사고치고 다닐 때도 막판엔 꼭 저놈의 넉살 때문에 완전히 미워하기 어려운 놈이었다 

남순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라면 그릇을 가지런히 놓고 젓가락을 꺼내든다 

정호가 설겆이를 마쳤는지 손을 닦으면서 주방에서 나온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의자를 내리고 닦고 있는 이경을 찌릿 노려보며 버럭 한다 

- 야! 넌 영업도 끝났는데 왜 셔터부터 안내리냐! 손님 들어오면 니가 라면 끓일거야? 

아 이자식들은 뻑하면 진짜.... 

남순은 막 집어들던 젓가락을 또 내려놓는다 

시끄러워서 먹을 수가 없잖아.. 

남순의 속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하는데 
아는지 모르는지 투덜거리며 셔터를 내리는 이경을 바라보던 정호가 
털썩 남순의 앞자리에 앉는다 

- 송금일이 내일인가? 

- 음 매월 25일이니까 내일 맞지? 

- 아 이번달은 좀 모자랄거 같은데... 미리 연락해놔야하나... 

- 뭐 투자한건데 한달쯤 좀 모자라면 어떠냐; 다같이 부담하는건데 

하여간 이새끼는 빚지는 걸 죽도록 싫어해서....너도 참 피곤하게 산다... 

남순은 입만 열면 도통 철들 생각을 안하는 정호가 
의외로 책임감이 굉장히 강하고 고집이 세다는 생각을 한다 
에고... 정샘 진짜 고생하셨다.. 이새끼 사람 만드느라... 
스승의 은혜는 한이 없어라 - 라고 노래하고 싶어지는구만 
세찬의 몫은 쏙 빼놓고 남순은 인재만 떠올리며 혼자 흥얼거려본다 

남순이 라면을 먹으려다 말고 갑자기 노래를 흥얼거리자 
정호가 이게 미쳤나 하는 표정으로 남순을 바라본다 
눈길을 깨달은 남순은 큼큼.. 헛기침을 하고는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말을 잇는다 

- 근데 얼마나 모자라냐? 우리 이번달에 장사 그래도 괜찮지 않았냐? 

- 한 오만원? 

문을 닫고 들어오던 이경이 대신 대답한다 

애매하다 오만원. 
어쩌지 

남순은 또 젓가락을 내려놓고 얼굴을 긁적였다 



그러니까 삼사년 전 쯤이었던가 
지훈이 정호, 이경과 남순, 흥수를 한자리에 불러모았다 

그때 지훈은 혜성같이 등장한 신인으로 막 각광받으며 
몇 편의 상업영화에 조연으로 연달이 출연하면서 몸값이 오르고 있던 무렵이었다 

한번 촬영에 들어가면 얼굴 보는 일은 커녕 연락도 잘 안되는데 
그걸 몇개씩 연달아 겹쳐서 하고 있었던지라 
지훈이 주목받을수록 만나기는 더 힘들어졌다 

그런 지훈이 갑작스럽게 연락을 해서는 
알 수 없는 주소를 불러주며 몇날 몇시까지 모이라는 일방적인 통보를 하고 끊어버렸다 

투덜거리면서 모인 넷 앞에 
기다리고 있던 지훈이 봉투 두 개를 내밀었다 

- 이게 뭐냐? 

눈만 끔뻑이고 있던 네명을 대표해서 남순이 물었다 

- 우선 봐봐요 

지훈이 영 설명해줄 낌새가 아니어서 
남순은 콧등을 한번 긁적하고 봉투를 집어 들었다 

통장과 도장 
그리고 약도. 

안그래도 이게 뭔 상황인가 싶어서 시선 고정을 못하고 있던 넷의 시선이 
좀 전의 몇배로 데굴데굴 얽힌다 

이게 뭔 상황이야? 
몰라 

다들 눈빛교환만 하고 먼저 말을 꺼내지 않자 
지훈이 한숨을 푹 쉬고는 남순이 멍하니 쥐고 있던 약도를 뺏아든다 

- 그러니까 

- 내가 알아봤는데 여기가 제일 목이 좋은거 같더라고 

목? 
뭔 목? 

나머지 넷의 눈빛이 또다시 격렬하게 얽히다가 흩어진다 
다들 답은 모르는 눈치다 

지훈은 이것까지 다 설명해야하나 싶어 답답하다 
좀 눈치 좀 있어봐라 이자식들아 

- 이걸로 같이 가게 얻어서 해보자구요 
라면 잘 끓인담서요 특별한 날에는 라면 먹는거라고 아주 사람 세뇌까지 시키더만 
니네도 언제까지 아르바이트만 할 수는 없잖아 

넷의 시선을 다시 테이블 위 통장과 약도로 모인다 

- 그래서 이게.... 

남순이 검지손가락 끝으로 통장을 가리키며 지훈에게 손짓한다 

- 내가 매일 가서 같이 일할 수는 없겠지만 나도 멤버로 좀 껴달라는 의미에서 
첫 투자금은 내가 내는 걸로 하고.. 

지훈이 멋쩍게 덧붙인다 
남순이 통장을 펼쳐보니 꽤 큰 금액이 찍혀있다 

- 이걸 다? 

남순이 황당하다는 듯이 묻는다 

- 에 뭐 나야 지금 숙소 사니까 돈 들 일도 없고.. 이전부터 같이 하자고 하고 싶었는데 그땐 돈이 모자라서 

- 됐어 이새끼야 니 돈을 내가 왜 받냐? 

정호가 버럭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고 하다 이경에 이끌려 바로 자리에 도로 앉는다 

하여간 저놈의 성질머리 하고는.... 

- 그러니까 아까 말했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투자라고 

지훈이 이럴 줄 알았다는 듯 말을 잇는다 

- 첫달 장사 해보고 수익의 10%든 아니면 백만원이든 오십만원이든 정해놓고 
나한테 매달 보내주는 걸로 하자 나도 손해 보는 거 없고 

지훈의 말에 할 말이 없어진 정호가 내키지 않는 얼굴로 외면해버린다 
솔직하지 못한 표현에 익숙해진 나머지 넷은 다시 테이블 위에 집중한다 

그래도 역시 이런 식으로 받는 건 좀 멋쩍다 

아무도 선뜻 나서지 않는데 지훈이 어렵게 다시 말을 꺼낸다 

- 좀 받아주라 나도 할만하니까 하는거고... 어디 정붙일데도 필요하고... 
나 아무때나 가도 라면 끓여주는 데가 하나쯤은 있으면 좋겠어서.. 그리고 

- 늬들이 내 가족이잖아 이제 

닭살스런 멘트에 다들 닭이 되어버린 듯한 -_- 기분으로 서로 외면만 하고 있는데 

그래도 제일 오지랖이 넓은 남순이 에라 모르겠다 앞에 놓인 통장을 집어든다 

- 그래 알았다 고맙게 받을게 여기 여대 앞이지? 장사 잘되겠네 
대신 계약서 지금 쓰자 매달 백만원씩 할까? 

흔쾌히 먼저 받아준 남순이 고맙다 
지훈은 싱긋 웃으며 짐짓 진지한 태도로 덧붙인다 

- 돈은 매달 꼬박꼬박 받을테니까 걱정마시고. 

- 오케이 

- 대신 투자금 다 받을 때까진 라면 무제한 공짜인 걸로 

지훈과 남순이 만담같은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고 분위기가 조금 부드러워진다 

- 그럼 나도, 나도 하는거지? 

이경이 끼어든다 

- 라면은 고남순이 끓이면 되겠고.... 요리는 내가 좀.. 해 

- 야 오정호 내가 왜 라면 담당이야 여름에 불 옆에서 라면 끓이면 얼마나 더운 줄 알아? 

- 라면은 니가 젤 잘 끓인다매 

- 진짜 라면만 파는 건 아니지? 나 라면만 먹고는 못 살아 

- 이이경 넌 할 줄 아는 음식도 없는 게 좀 조용하지? 


그리하여 기나긴 토론-_-과 대화-_- 끝에 
지금의 <꽃미남라면가게> 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키가 훤칠한 남정네들이 운영하는 라면가게라니 
그냥 인스턴트라면을 끓여주는게 다 인데도 가게에는 늘 손님이 넘쳐났고 
덕분에 홀서빙을 맡은 이경은 차라리 요리를 배울걸 그랬다며 징징 거릴 정도로 바빴다 

개점 초반, 라면의 정석은 아무것도 넣지 않은 기본 라면 뿐이다! 라고 외치며 
치즈니 달걀이니 이런건 라면의 순수성을 더럽히는 행위일 뿐이라고 
기본 라면 외 메뉴 개발을 전면 거부한 남순 때문에 잠시 트러블이 있었지만 
남순의 1차 라면의 난은 흥수가 가게 구석으로 끌고가 약 5분 정도 대화 -_- 를 나눈 뒤 순조롭게 진압되었다 
(감히 무슨 대화가 오고갔는지는 아무도 물어보지 못했고 남순은 그후 얌전히 새 라면 메뉴 개발에 몰두했다) 

처음 자리를 잡을 때까지 월 50만원씩 송금하던 것이 장사가 자리잡게 된 후로 
월 100만원으로 올려 갚기 시작했고 그동안 송금에 문제는 없었는데 
아무래도 방학이라 그런지 이번달은 약간 매상이 떨어진 모양이다 


남순은 불어가는 라면을 깨닫고 잠시 고민을 접기로 한다 

- 야 그거 정 모자라면 내 월급에서 까 

- 헐 고회장 진짜? 

이경이 존경스럽다는 눈빛으로 다가와 막 라면을 집어드는 남순의 어깨에 팔을 올리며 앉는다 
아 귀찮은 자식 진짜 

- 회장이라매 내가 그러니까 내가 몸빵한다고 

남순이 어깨를 털어 이경의 팔을 치워버리고 다시 라면에 코를 박는다 
좀 먹자 먹어 


- 근데 대체 우리 언제까지 모른 척 해줘야하는거냐? 

정호가 짜증섞인 목소리로 묻는다 

막 입으로 라면을 가져가려던 남순의 젓가락이 멈칫 한다 

지난 몇년간 지훈은 간혹 라면 가게에 들러 
정말 본인이 처음 얘기했던 대로 라면을 주문해 먹고 가곤 했다 
덕분에 배우 이지훈이 자주 드나드는 가게로 소문이 나면서 매상에도 꽤 도움이 된 편이었다 

대개 라면을 먹은 날은 
정호와 이경이 꼼짝없이 지훈과 한강 고수부지에 앉아 맥주를 마시는 날이었다 
술도 못하는 셋이 앉아서 맥주 한캔씩 비우다 보면 
이게 뭔 곤욕인가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창백하게 지친 지훈이 아무말도 없이 맥주한캔을 두시간에 걸쳐 홀짝거리는 걸 
역시 묵묵히 바라보기만하다가 입 안이 텁텁해지는 일을 몇번이나 겪은 후 

이것도 한두번이지 진짜, 뭔 말을 하던가 
그 자식은 대체 왜 이러는거냐 

정호가 결국 폭발한 날 역시나 *우리의 흥수 형님*께서 출동하셨고 
괜히 남순까지 끌려가 거의 무릎꿇은 자세로 
네네 알겠습니다 지훈이가 먼저 얘기하기 전에는 입 꾹 다물겠습니다. 모드로 전환 \-_-/ 해서 벌써 삼년이 지났다 

남순은 버릇처럼 콧등을 찡긋하고 큼. 헛기침을 한 뒤 다시 라면으로 시선을 돌린다 

- 흥수가 말하지 말랬으니까 아직이다 

그리고 제발 나 라면 좀 먹자 


- 근데 박흥수는 어떻게 안거래? 지훈이 하경이랑 그런거? 

이경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간다는 듯 허공에 대고 한 질문을 
막 라면을 입에 넣으려던 남순이 무심히 대답한다 

- 척하면 척이니까 우리 흥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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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멘붕의 8화를 쓰고 나서 속에서 부터 열이 나서 덜덜덜 떨면서 바로 자버렸는데 
자러가면서도 이걸 쓴 나도 멘붕인데 이 새벽에 이걸 읽어주는 냔이들은 얼마나 멘붕일까 싶어서 
진짜 너무 미안하더라;;;;;;;;;; 

오늘도 9화를 쓰려고 끄적이긴 했는데 아직도 확 모드 전환이 안되서 
완전 이상한 번외편을 남기고 가 
이게 뭐냐고 너무 욕하지 말아줘;;;;; 나의 의식의 흐름이랄까;;



Posted by april_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