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il-in-paris




- 형, 오늘 또 기사 났던데요? 

아침, 얼굴을 보자마자 매니저 재호가 말을 건넨다 
영화 개봉하고 홍보활동을 시작하면 으례 있었던 일이라 
지훈은 시큰둥하게 반응한다 

- 이번엔 또 뭔데 
- 형님 전에 무슨 짝짓기 프로 나가신적 있으세요? 그거 캡쳐요. 

기억을 더듬는다 
그런 일이 있었던 것도 같다 희미하게 

- 아니 형님 과거는 무슨 양파도 아니고 까도까도 또 나온답니까 그걸 찾아내는 네티즌들도 대단하지만 
뭘 그렇게 많이 하셨어요 슈퍼맨도 아니고 

지훈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어색해진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재호가 멋쩍게 웃으며 말한다 

- 돈 때문에. 
- 네? 
- 돈이 필요해서. 

시큰둥한 대답과 달리 지훈의 시선은 불안정하게 허공을 헤매고 있어서 
재호는 또다시 머쓱해진다 

- 하여간 또 묻히겠죠 뭐 

여전히 지훈은 묵묵부답이고 
재호는 조심스럽게 차를 출발시킨다 




나는 정면돌파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 

너만 내게 와준다면. 

널 위해. 

아니 결국 날 위해. 



- 그거 꼭 해야해? 

오랜만에 하경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진다 
갑작스럽게 일을 닥치는대로 하는 지훈이 하경은 영 이상하기만 하다 

- 어쨌든 인지도는 올라가니까. 돈도 많이 주잖아 

지훈은 앞에 놓인 자켓을 뒤적이며 무심하게 말했다 
자신의 목소리가 높아진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듯이. 
하경은 조금 속상하다 

돈. 

최근에 지훈의 입에서 자주 나오는 단어. 

지훈의 삶은 마치 하루가 48시간인듯이 돌아갔다 
계속되는 아르바이트와 공연 외에도 
우연히 공연장을 찾았던 어느 방송국 사람에게 캐스팅 된 듯한 
하경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뒤 
종종 그런 프로그램에 나가 촬영을 하고 돌아오기도 했다 

차라리 드라마의 단역이라면 하경도 이해 못할 건 아니었다 
그러나 지훈이 주로 불려가는 일은 
큰 키에 훤칠한 외모를 병풍처럼 세워두고 
온갖 황당한 미션을 수행하는 소위 예능 프로그램들이었다 
물론 몇달을 연습하고 공연을 올려야 겨우 받을 수 있는 돈을 
단번에 한두회만 출연하고도 받을 수 있다는 건 하경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훈이 무엇을 위해 저렇게 돈을 목적으로 움직이게 되었는지 
단지 돈을 준다고 하면 아무것도 가리지 않고 출연하게 되었는지 
하경은 이유를 찾을 수 없었지만 혹시 무슨 사정이 있는 걸까 싶어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지훈은 때로 지독하게 지친 얼굴로 하경을 만나러 오곤 했다 
대개는 그런 프로그램을 촬영하느라 1박 2일이나 일주일쯤 다녀온 후였다 

자신의 얼굴을 보고서야 비로소 마음껏 숨 쉴 수 있게 되었다는 듯 
긴장이 풀리고 생기도는 지훈을 보면서 
하경은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는 위태로움을 느꼈다 
정작 촬영을 하고 나면 단한번도 자신의 출연분을 찾아보지 않는 지훈의 무심한 태도도 
낯설기만 했다 

지훈은 하경에게 꼭 좋은 것을 먹이고 싶어했고 때때로 생각지도 않은 선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돈이 어디에서 왔는지 아는 하경은 
내켜하지 않으면서도 닥치는 대로, 애착도 없는 촬영을 하는 것이 자신 때문이 아닐까 싶어 마음이 불편했다 
가끔 몰래 찾아본 지훈이 출연했던 방송에서 영혼이 없는 듯 풀린 눈빛으로 구석에 서있는 지훈을 발견할 때면 더 속상해졌다 
분명 내키지 않는 거다 
지훈이 무엇에 열정을 쏟을 때의 눈빛을 기억하는 한 하경은 돈은 많이 주잖아. 라는 지훈의 말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만 두었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가끔 용기를 내어 하경이 말을 해도 지훈은 썩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러기를 몇달, 또 부딪히고야 말았다 

- 난 이 쪽이 더 좋은거 같은데 

하경이 조심스레 지훈이 아무렇게나 둔 시나리오를 지훈 쪽으로 밀어본다 
지훈이 또? 라는 듯 쓱 바라보고 만다 

하경은 어떻게든 오늘은 지훈을 꼭 설득하고 싶다 
무슨 이유에서건 이 영화에는 꼭 출연시키고 싶다 
본인도 이 작품이 좋다는 걸 알텐데 왜 움직이지 않는 건지 알 수가 없다 

- 이거 별로야? 난 좋던데 

하경이 다시 한번 끈질기게 묻는다 
지훈은 작게 한숨 쉬면서 결국 하경을 바라본다 

- 그러니까, 그거 하면 지금 하기로 한 거 못하니까 

불퉁 화가 나려고 한다 
모르는 여자애들이랑 짝짓기 게임이나 하는 그런 방송 같은거 포기해버리면 되련만 

- 하지만, 

다시 말을 잇자 지훈이 말을 자른다 

- 그리고 그거 학생 작품이라 개런티도 거의 없어 촬영은 거의 한달 동안 풀로 해야하는데 

알고 있다 하경도 
한달을 쏟아부어서 해야하는 촬영,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감독이 지훈에게 제안해 온 역할은 주인공 중 한명이었다 
학교 폭력과 일탈을 다룬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하경은 어딘가 과거의 지훈이 떠올랐다 
마지막 여운을 남기는 마지막 장면을 읽으면서 지훈이라면 이건, 분명 된다. 생각했다 
개런티가 문제가 아니라. 꼭 해야만 하는 작품. 그렇게 생각했다 
설마 그런 바보같은 프로그램 때문에 포기할거라고는, 그것도 그쪽에서 모처럼 역할을 제안해온건데. 

- 그래도 이거 하면 안돼? 그건 네가 안해도 할 사람 있잖아 

결국 떼쓰는 꼴이 되어 버렸다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뭔가를 요구해온 일은 없었던지라 
지훈은 조금 놀라 하경을 바라본다 

- 그래도 당장 생활비도 필요하고... 
- 나, 밖에서 니가 그렇게 웃는 거 싫어 

생각지도 못한 퉁명스런 말에 지훈은 더 당황한다 

- 내가 웃는 게 싫어? 
- 응 싫어 

농담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꽤 단단히 쌓인 모양이다 

- 왜 나한테만 하는 거 밖에 나가서 남한테 써먹어? 기분 나빠 

토라진 하경의 말투에 지훈은 피식 웃음이 난다 

- 속상했어? 내가 남들한테 웃어서? 

지훈이 웃음을 참는 목소리로 물으면서 하경을 끌어당긴다 
여전히 하경은 뚱한 표정이다 

- 하지 말까? 그런 거? 

공연 중에 애정씬이 있어도 공연 후에 찜찜해서 어색하는 건 지훈이었지, 
하경은 한번을 하지 말라던가 별로라던가 기분이 나빠한다던가 하는 일이 없어서 간혹은 얘가 날 좋아하긴 하는건가 싶었는데 
처음으로 질투,란 감정을 드러낸 하경이 너무 귀여워서 지훈은 뭐든 들어주고 싶어졌다 
자신의 팔 안에 하경을 가두고 머리를 살살 쓸어넘기는 지훈의 다정한 목소리가 
뭐든 말만 해라. 하는 티가 팍팍 나서 하경은 조금 마음이 풀린다 

- 응. 하지마. 

의외로 단숨에 말해버린 하경의 대답에 지훈은 그래. 라고 흔쾌히 말한다 

- 그게 그렇게 소원이야? 내가 여기 출연하는게? 

여전히 하경을 안은 채로 지훈은 좀전에 밀어놓은 시나리오를 뒤적인다 
세친구 중 하나, 학교폭력, 일탈, 친구 간의 오해와 반목. 상처. 
어딘가 자신의 고교 시절을 떠올리게 해서 마음이 불편해져서 좋은 시나리오란 걸 알면서도 밀어놓았던 책이었다 

- 네가 잘 할 거 같으니까. 작품도 좋고. 

하경의 자신만만한 얼굴에 지훈은 에라 뭐 어떠랴 싶다 

- 그래 뭐 하자 이거. 애인님이 이렇게 원하시는데, 내가 한 번 한다. 

시원하게 허락하는 지훈이 하경은 조금 기쁘다 
하경도 조심스레 지훈의 손에서 시나리오를 받아 넘겨본다 

- 아 근데 좀 그렇네... 제대도 했는데 다시 교복이라니 

지훈이 민망하다는 듯 중얼거린다 

- 동안이니까 괜찮아 
- .....;; 
- 나중에 선생님 역할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정샘이나 강샘처럼 너같이 말 안듣는 애들 고생하면서 잡으러다니는 역할 하면 
그때 선생님께서 얼마나 너때문에 고생하셨는지 확실히 알 수 있을텐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하는 웃음기 섞인 하경의 응수에 지훈도 웃음이 터져버린다 

- 그나저나 나 촬영 들어가면 얼굴 못 볼텐데, 너 괜찮겠어? 
- 나도 바쁘거든? 잘 지내고 있을테니 걱정 마세요~ 

하기사 하경의 일상은 눈코뜰새없이 바빴다 
지훈을 만나는 것 외에도 학원에 공부에 과외까지 
지훈 못지 않게 바쁜 일상이어서 지훈은 명문대생의 4학년은 원래 다 저런가 궁금하기도 했다 
평소엔 좀 걱정되던 하경의 빡빡한 일정이 이번엔 다행이다 싶다 




한달만의 서울이다 
빡빡한 일정으로 진행된 촬영에 분명 자신은 서울 근교에 있었는데 어디 감금이라도 됐던 것처럼 지냈다 
지난 한달이 너무 급박하게 돌아가서 아직도 멍청하게 지하철에 앉아있어도 되는 지금이 영 적응이 되지 않았다 

마지막 촬영 며칠은 다같이 정신 나간 듯이 찍었던지라 하경과의 연락조차 엄두도 못냈다 
먹통이나 다름없었던 휴대폰을 켜자 기다렸다는 듯이 카톡 알림음이 울린다 

[오늘 저녁 7시 강남 ***에서 동창회 있습니다 - 김민기] 
[야 너 왜 이렇게 연락이 안돼 좀있다 올거지? - 이이경] 
[이새끼 비싸게 구냐? - 오정호] 
[정샘 오신단다 좀 있다 보자 - 고남순] 

아, 잊고 있었다 
5년만의 동창회가 오늘이었던가보다 

정샘이 오신다니 참석을 하긴 해야겠는데 
한달이나 얼굴을 보지 못한 하경의 얼굴이 어른거려서 썩 내키질 않는다 

[도착했어?] 

때마침 하경의 문자가 도착한다 

[어, 지금. 오늘 동창회 가?] 
[아, 나 오늘 일 있어서 동창회는 무리. 그래도 밤엔 시간 될거 같은데 얼굴 보여줄거지?♡] 

에고 필살기다. 

지훈은 일이 있다는 하경의 말에 마음이 가라앉았다가 금새 올라와버린다 
그래 오랜만에 정샘도 뵙고 애들도 보고. 
생각해보니 정호랑 이경이 못 본지도 몇달이다 

[그래 좀있다 전화할게] 

잠시만 앉아 있다 나올 생각이었다 

촬영 기간동안 제대로 씻지도 먹지도 못한 탓에 꾀죄죄한 차림으로 지훈이 동창회 장소에 들어서자 
그간 연락을 하지 못했던 순수오이지 멤버들의 야유와 5년간 전혀 볼 일이 없었던 동창들의 놀라움이 쏟아진다 

- 너 뭐하고 다니길래 꼴이 이러냐? 

황당하다는 듯 아래위로 자신을 쓸어보는 이경의 얼굴을 귀찮다는 듯 한팔로 밀어버리고 

- 인재샘은? 

남순에게 묻는다 

- 곧 오신대 

으쓱, 남순이 대답하고 지훈은 에고 그러면 좀 쉬어야겠다... 라며 구석자리에 아무렇게나 구겨져 앉는다 

이내 지훈에 대한 관심은 사그라들고 오랜만에 얼굴 본 아이들은 서로의 근황을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다 
주로 여자애들끼리 모여 화기애애한 테이블에서도 유독 강주의 목소리가 호탕하게 들려온다 
어휴 여전하구만 

지훈이 고개를 저으며 앞에 놓인 사이다를 집어드는데 익숙한 이름이 등장한다 

- 야 이강주 오늘 송하경은 왜 안오냐? 
- 아 몰라 나 걔랑 연락 안된지 몇달 됐어 
- 헐 니네 우정도 이제 끝이냐? 그렇게 죽고 못살더니만 
- 아니거든~ 하경이가 너무 바쁜거거든~ 

지훈은 발끈하는 강주의 말에 조금 뜨끔하다 
자신과 만나느라 혹시 친구와는 못 만나는 건가 확인해봐야겠네... 

뭔가 엄청 핀트가 엇나간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강주의 다음 말이 더 크게 들려온다 

- 아 진짜 쏭 뭐가 그렇게 바쁜지 모르겠어 
애가 미친거 처럼 일해 과외를 네갠가 다섯갠가 한대 
야 사람이 학교 다니면서 과외 그거 다 하면서 어떻게 사냐? 
오죽하면 내가 진짜 이해가 안되서 물어봤다? 집에서 용돈 안주시냐고 

- 근데? 
- 아 몰라 말을 안해줘 얼굴을 봐야 딱 잡아놓고 물어볼텐데 몇달째 문자만 했어 
- 하경이 원래 유학간다지 않았어? 

또다른 목소리에 지훈의 가슴이 철렁한다 
유학? 

- 분명 작년까진 준비하고 있었거든? 근데 모르겠어 
집에서는 유학가라고 노래를 하시는거 같던데 
니네도 기억나지 하경이네 엄마 
이왕 유학갈거면 같이 갈 사람이랑 결혼해서 가라고 선도 보라고 하셨나봐 
아 근데 벌써 선보는 건 좀 너무 하지 않냐 우리 이제 스물 넷다섯인데 

어우 야 너무한다 결혼이라니 벌써 
여자애들끼리 꺄르르 웃음이 터진다 

- 야 너 어디가? 

벌떡 일어선 지훈에 놀라 이경이 묻는다 
창백해진 얼굴로 지훈은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일어난다 

- 나 좀 먼저 갈게 몸이 안 좋아서 
- 지훈아, 야 이지훈! 





유학. 

지훈은 강주가 말했던 낯선 단어들을 속으로 발음해본다 

선. 
결혼. 
유학. 

하경이 보고 있던, 자신은 읽을 수도 없는 그 책들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다며 굳이 묻지 않았던 하경의 공부 
부쩍 바빠진 하경의 스케줄들. 

준비,하고 있었을까 언젠가를 위해서 
아니, 어쩌면 
그게 아주 먼 미래가 아닐 수 있는 게 아닐까 
지금 당장이라도 떠날 수 있는데 여기 남아 있는 건 아닐까 
강주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꽤 오래 준비한 듯 하다 
아니 지훈이 알기로도 하경의 공부는 일년이 넘었다 
하경이라면 아직까지 아무 결과가 없는 편이 더 이상하다 


하지만 묻지 않았다 
그 긴 시간동안 한번 궁금하지 않았을리가 없다 
꿈꾸는 미래에 대해 털어놓았던 그 편지들 속의 네가 사라진 것도 아닌데, 

하경이 언제부터 그런 이야기를 꺼내지 않게 되었던가 되짚어보던 지훈은 아찔하다 

손에서 놓지 않는 책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한번도 묻지 않았다 

아니 

외면했는지도 모른다 

그게 내가 갈 수 없는 길이면, 널 보내야 할까봐 

널 위해서, 라고 하면서 
나는 결국 나만을 위해 널 붙들어 놓은게 아닐까 
네가 없으면 내가 살 수 없을 것 같아서 
날 지탱하고 있는 건 너여서 
네가 가진 꿈은 묻지도 않고 
날 위해 그걸 묻어버리라고 한 건 아닐까 

하경의 총명한 눈이 떠오른다 

유학, 결혼, 그리고 그 무엇이든. 

지훈은 자신이 하경을 위해 지금 당장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지독한 무력감에 휩싸인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자신이 스스로를 버린다고 해도 
그 단어들의 한 획이라도 제대로 그어볼 수 있을까 
지금의 내가 아니라면 넌 다른 삶을 살았을까 

언젠가 널 행복하게 해주리라 생각했다 
그 마음이 너무 커서 조금이라도 지금 네게 더 해주고 싶어서 
네가 싫어하는 걸 알면서도 닥치는대로 일을 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네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영원히 이 정도에 머문다면 
너의 행복이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있는 것이라면 
지금 당장 해줄 수 없는 일을, 언젠가 해줄 수 있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나 
어떻게 네게 기다려달라고 할 수 있나 


넌 분명 이런 나를 위해 사는 것 말고도 다른 길이 있을텐데 
날 만나기 전까진 그 눈으로 분명 더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을텐데 
그곳으로 갈 수 있는 능력도 네겐 있는데 

나는 널 위해 살아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결국 날 위해서 였을까 

네 꿈과 행복까지 희생시키면서 

난 날 위해서 살아온 걸까. 지금. 결국은. 


지훈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에 빠져 
길을 잃어버린다 




- 형. 

갑작스런 지훈의 연락에 터벅터벅 집 앞 골목으로 걸어나오던 흥수는 골목 구석에 주저앉아 있던 지훈이 부르는 소리에 움찔한다 
지훈이 이런 목소리로 형.이라고 부를 때는 뭔가 부탁할 것이 있거나 본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을 때 뿐이다 

이거 잘못 나온건가. 

흥수는 옆 이마를 잠시 긁적이다가 지훈의 옆에 앉는다 
그렇게 막 살던 시절도 있었던 주제에 술은 감당도 못하는 녀석이 몸을 흔들흔들 가누지 못하면서 자신을 촉촉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 혀엉... 

뭐냐 이 녀석; 

당황한 흥수가 뒤로 몸을 슬쩍 빼는데 
비틀대던 지훈이 앞으로 픽 하고 쓰러진다 
얼결에 흥수가 지훈을 받아 안는 꼴이 되었다 

이 자식 더럽게 무겁네 
지가 나오래놓고 인사불성인 건 또 뭐야 

툴툴거리며 이 녀석을 어찌 해야하나 버려야하나 집으로 데리고 가야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지훈이 술주정인 듯 웅얼거린다 

- 형. 어떻게 하죠. 형도 알잖아요 하경이가 얼마나 똑똑한지 

흥수의 미간이 꿈틀한다 
뭐야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은 했지만 둘이? 
뭔가 풀리지 않던 퍼즐이 맞춰진 느낌이다 
그런데 썩 개운하지 않다 

뭐가 문제야 이 자식은 대체 

- 걔.. 나 같은 놈 때문에 그렇게 살 애가 아닌데.. 근데.. 없으면 내가 죽을 거 같은데 

지훈은 더 말을 잇지 못하고 기절한 듯 잠들어버린다 
흥수는 무방비한 지훈을 어떻게 해야할지 난감하다 

그래도. 살 수는 있겠죠. 형. 





[ 지훈아 무슨 일 있어? 왜 연락이 안돼? 어디 아파? ] 
[ 좀 정리할게 있어서. 몸도 힘들고. 나중에 연락할게. ] 
[ 아.. 그래.. 그럼 기다릴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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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모르겠어 냔들은 이해해줄까? 
이런 이유로 멀어질 수도 있다는 거. 
이제 와서 조금 걱정이 되네. 애초에 이렇게 쓰려고 했던 거지만. 

저 위에 등장하는 하경이 꼭 출연하라고 했던 영화는 영화 <파수꾼>에서 모티브를 가져왔어 
지훈이 정말 영화배우가 되었다면 가장 선택할만한 작품이 아니었을까 해서 - 

읽어주는 냔들 고마워 
냔들 덕분에 끝까지 쓰고 있어




Posted by april_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