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너, 또다른 엔딩 - 지훈x하경, 29세]
시끄러운 음악이 울리고 있는 파티장 구석 벽에 기대선다
오늘 하루 종일 손에서 놓지 않았던 휴대폰의 카톡 그룹 채팅방을 습관적으로 확인한다
아직까지 새로운 메세지가 뜨지 않은 것을 보니 별일은 없는가보다
하경은 눈으로 자신이 수행을 담당하고 있는 여배우를 좇는다
휴우.
웃고 있는 '그녀'를 찾아내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도착할 때부터 갑자기 비행 스케줄을 바꾸는 바람에 공항에서 몇시간이나 대기하게 만들더니
오늘은 행사장으로 이동하는 중간에 방에 뭔가 두고 왔다며 돌아가야한다고 떼를 써서
결국 레드카펫 행사에 30분 지각하고 말았다
본인이야 그게 꼭 필요했는지 모르겠지만 입장 순서에 지연되면 운영진으로부터 핀잔을 듣는 건 자신이다
또 언제 기분을 바꿔 억지 요청을 할지 몰라서 신경이 곤두선다
하루종일 그녀와 그녀의 매니저에게 불려다니느라
하경은 검은 수트에 하이힐을 신은 전형적인 의전 차림으로 마치 운동화를 신은 양 뛰어다녔다
벽에 기댄 채 남의 눈을 피해 슬쩍 하이힐을 벗고 내려서 발바닥을 살살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문질러본다
그동안 긴장해서 잊고 있었던 온갖 피로가 쏟아진다
올해야 자신이 팀의 막내이고 게다가 하필이면 계열사에서 주관하는 최대 행사의 장소가 홍콩,이라
영어가 능통한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서 행사 의전 - 그것도 배우 안내 담당으로 차출되어 나왔지만
다음 행사 때는 꼭 팀에 신입 사원을 들여서 대신 보내리라 다짐한다
그래도 이제 이 애프터 파티만 끝나면 호텔에 '그녀'를 데려다주고 쉴 수 있다
어쩌면 내일 공항에 배웅한 후에 잠시 자유 시간도 가질 수 있을지 모른다
하경은 이런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애써 기운을 내 다시 하이힐 위로 올라선다
손에 쥔 핸드폰에 카톡 알림 진동이 울린다
[이지훈님 입장하십니다]
[진짜? 어디?]
[어디로 들어와요?]
[어디에 자리 잡았음?]
[완전 잘생겼어 의전하다 떨려 죽겠음 ㅠㅠ]
[지금 어딨어요?]
[좌표 찍어라 담당자]
카톡 그룹 채팅방에 열광적인 반응이 올라오는 걸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휙 둘러본다
발견했다.
지훈이 문으로 들어와 반대편 벽 쪽으로 걸어가고 있다
조금 찌푸린 표정이 피곤해보인다
스크린에서 몇번이나 봐왔던 대로 눈빛이 더 강해진 것 같다
아니 이렇게 멀리에서 눈빛이 보일 리 없지만 꼭 그런 것만 같다
기억보다 좀 더 마르고 기억에 없는 수트를 입은 모습이 까칠하다
고개를 조금 숙이고 살짝 젓는 것이, 뭔가 불편한가보다
사람들이 지훈에게 인사하자 무성의하게 손을 들어 답한다
한 손에 쥐고 있는 잔은 뭘 담고 있을까
아직도 술을 마시지 않을까
아니면 이젠 여유롭게 술 한 잔 정도는 하게 되었을까
무리로부터 살짝 뒤로 물러서 벽에 기대는 지훈이 쓸쓸해 보이는 건
그저 제 바람일지도 모른다
이미 수행 배우 명단에서 지훈의 이름을 보았을 때부터
이곳에서 한번은 보게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반가움보다는
홀의 한쪽 끝과 끝에 있는 너와 내가 이렇게나 멀구나
우리는 이제 이렇게나 다른 세계 이구나
거리를 깨닫는다
차라리 스크린을 통해 볼 때는 이렇게 멀지 않았는데
가끔은 마치 정면의 자신을 향해 웃어주는 듯한 착각도 느꼈는데
멀다
너무 멀다
호텔 한 층을 전부 빌린 듯한 행사장 기둥 근처에 숨듯이 서서
하경은 멍하니 반대편 끝의 지훈을 바라본다
계속해서 카톡 알림이 울리지만 눈을 뗄 수가 없다
왜 여기 서 있는지, 왜 자꾸 자신을 찾는 진동이 울리는지 같은 건 잊어버렸다
하경의 시야 속 지훈은 사람들 사이로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누군가 지나갈 때마다 가려졌다가 다시 보이는 지훈은 이제 무슨 말의 끝인지 웃고 있다
괜히 억울해진다
나는 죽을 힘을 다해 지금까지 왔는데
넌 아무렇지 않다는 게 화가 난다
아니 이전보다 더 좋아보이는게
그게 당연한건데
당연히 그러길 바래왔는데
왜인지 서럽다
마음을 다쳤던 건 저 뿐인 것 같아서
아직도 그 기억을 붙들고 있는 건 저 혼자인 것 같아서
금새라도 눈물이 고일 듯 눈시울이 뜨거워져온다
- 하경씨, 고생 많아
행사 담당자가 속삭이고 지나간다
얼결에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다시 고개를 들자 시야에서 지훈이 사라졌다
자신도 모르게 지훈을 찾기 위해 행사장을 둘러본다
그렇게 빨리 없어질리가 없다 겨우 몇초였는데
조급한 마음에 눈으로 행사장을 뒤지다가 음료수 케이터링 코너 옆에서 지훈을 다시 발견한다
음료수를 집어들면서 제 자리로 돌아가려는 듯 몸을 돌리던 지훈과 순간 눈이 마주친 듯한 기분이 든다
그 멀리서 수많은 사람들에 묻혀있는 저를 알아봤을리가 없지만
그러나, 하경은 정작 그는 모를텐데도, 먼저, 혼자, 고개를 돌려버린다
계속해서 알람이 진동하던 휴대폰에 결국 전화벨이 울린다
하경은 허겁지겁 손에 쥐고 있던 통화 버튼을 누른다
자신을 찾는 매니저의 전화다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며 호텔로 돌아가겠다는 '그녀'의 말을 전한다
하경은 출구 근처로 이동해서 '그녀'에게 나가는 길을 안내한다
이동 차량의 기사에게 전화를 걸어 1층 차량 대기 장소를 확인하면서
다시 한번 행사장 안쪽을 힐끔 돌아보지만 사람들에 섞여버린 그가 어디인지 알 수 없다
사라졌다.
=
시끄러운 음악이 온 몸을 울리던 행사장에서 겨우 빠져나왔다
제대로 대화도 나눌 수 없는데 무슨 친목을 도모하라는 걸까
영화계가 무슨 하나의 회사도 아니고.. 회사라고 해도 사람들끼리 다 친한 것도 아닐텐데
한 공간에 몰아넣고 재미있게 노세요 하는 건 무슨 경우인지 모르겠다
배우들끼리는 다 친할 거라고 생각이라도 한건지
얼굴 한 번 보고 지나친게 다인 사람들과 계속해서 인사하느라 곤욕이었다
지훈은 피곤한 몸을 기대고 멍하니 움직이기 시작한 차창 밖을 바라본다
홍콩의 야경이 그렇게 예쁘다던데....
어디가 그런 건지 잘 모르겠다
서울이나 다름없는 삭막한 빌딩숲
반짝이는 점등과 가로등 빛
간간이 스쳐지나가는 차의 헤드라이트
앞자리서 수행하던 직원이 힐끔 뒷자리의 지훈을 곁눈질하더니 조심스레 말을 붙인다
- 지금 지나는 왼쪽이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이예요
의아하다는 듯 지훈이 눈길을 돌리자 그제야 설명을 덧붙인다
- 장국영이 투신한 곳이요. 아비정전 좋아하신다길래,
장국영.
잊고 있던 이름
이미 저희 세대엔 들어보지도 못했을 오래된 홍콩 영화들을 하경은 그렇게 좋아했었다
관심없어 하는 지훈에게 아비정전 의 DVD를 들이대며
장국영이 연기했던 아비의 대사를 나직이 읊어주기도 했다
『1960년 4월 16일 우리는 1분간 같이 있었어 난 우리가 함께 한 1분을 영원히 잊지 않을거야
이 1분은 지울 수 없어 이미 과거가 되었으니』
- 그 대사 너무 느끼한데..?
닭살스럽다는 듯 영 시큰둥한 지훈의 반응에도 하경은 끈질기게 DVD를 내밀었다
- 영화 정말 좋다니까, 그리구 너랑 좀 닮았어 장국영.
미심쩍기 그지없는 허술한 패키지의 DVD를 받아들고 이리저리 훑어봤다
내용을 모두 압축해서 프린트 한 듯한 뒤 표지에 하경이 말했던 대사가 적혀있었다
1960년,이라니 대체 상상도 안가는 시점에 대한 영화라니
표지의 흐릿한 사진들도 영화에 대한 기대를 떨어트렸다
게다가,
장국영이라니.
이름도 겨우 들어본 적 있나 기억을 더듬어야하는 오래 전 홍콩 배우인데
대체 저랑 어디가 닮았다는 건지
- 이번에도 아저씨냐..? ... 그렇게 좋아?
성시경을 좋아한다고 한 게 떠올랐다
어째 이렇게 제 시대에 맞지 않는 취향을 지녔나 싶어 장난스럽게 지적하자
약간 서글픈 표정으로 대답했다
- 아저씨가 되기 전에 죽었다 뭐.. 그런 거까지 배우 같지 않아? 아련하잖아 마지막까지 신비스럽고
영화 보면 더 그래, 불안정하고 세상에 미련 없는 것처럼 허무한 눈빛이야
배우가 일찍 죽은 것마저 슬플 정도로 그렇게 좋은가...
이 초라한 표지를 한 영화가 그 정도인가 싶어 다시 봤다
하경은 턱을 괴고 꿈꾸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 지나간 1분은 이미 과거가 되었으니 돌이킬 수 없다잖아,
그러니까 너랑 있는 이 시간도 이제 과거가 되서 지울 수 없는 거야
- ... 나랑 있는 건 과거가 아니라 현재인데,
어쩐지 그 말이 장국영의 마지막과 겹쳐서 불길하게 들려서 지훈은 조금 불만스럽게 그 말을 정정했다
하경은 생긋 웃으며 제 말에 수긍했다
- 응, 현재의 1분을 영원히 기억할 거야, 지워지지 않으니까
손가락 끝으로 가슴을 톡톡 치며 말했던 하경의 약속을
지훈은 아직까지 기억했다
하경은 기억하고 있을까
문득 스쳐지나가듯 본 하경과 닮은 얼굴을 떠올린다
깜짝 놀라 다시 제대로 보려고 했을 때는 이미 다른 얼굴들로 가득했다
그래도 요즘엔 하경을 떠올리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이곳에 있을리가 없는 하경을 보았다고 생각하다니
역시 이곳이 홍콩,이어서 그런건지도 모르겠다
하경이 떠나고 몇 년이 지난 후
이사를 가려고 방을 정리하던 중에 구석에 있던 아비정전 DVD를 발견했다
같이 보자고 조르는 하경 때문에 억지로 거의 졸다시피한 상태에서 봤던 그 영화를
몇년만에 상자가 쌓인 방에서 혼자 보면서 지훈은 몇번이나 소리죽여 오열했다
하경은 저에게 장국영 - 아비를 닮았다고 했지만
지훈은 스스로가 아비,보다는
냉정하게 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그를 기다리는 수리진 같았고
이미 죽어버린 아비를 찾아 헤매는 루루 같기도 했고
벨이 울리지만 아무도 받지 않는 텅 빈 거리의 공중전화 같았다
훌쩍 떠나버린 발없는 새, 아비를 빼고는 전부 저인 것 같았다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시간은 지울 수도 없지만 돌아오지도 않는다
그때는 그걸 몰랐다
하경을 위해서 놓아준다, 라고 생각했다
슬프게 웃으면서 제 손을 놓았던 하경은 새장에 갖혔다 자유를 얹은 새처럼 훌쩍 날아가버렸다
그 빈 새장을 바라보며 놓아준 새를 그리워했다
그러나,
새장이 있었다는 사실을 지울 수는 없지만,
언젠가는 새장이 거기 있었다는 걸
새장 안에 한때 새가 있었다는 걸 잊게 될 날도 올거다
아마도 아비정전, 그 기억만 남겠지.
수십번을 돌려봤지만 단 한번도 돌아오지 않았던, 아비처럼 하경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영화의 엔딩이 바뀌는 일은 없다
그러니
문득 하경이 생각나거나
툭,하고 심장이 무너지는 일도 없어질거다
곧.
지훈은 '그'의 마지막 장소를 올려다보며 생각한다
사연을 모르고 본다면 그저 줄지어선 빌딩들 중 하나
당사자에게는 특별하겠지만, 세상에 흔하기 그지 없는 많은 이야기 중 하나
누군가와 누군가가 사랑했다
누군가가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었다
사랑을 잃은 누군가가 생을 버렸다
이름만 바꿔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들
마치 그와 하경의, 지워지지 않는 과거처럼.
=
'그녀'는 마지막까지 제멋대로였다
전날 들여보내기 전에 그렇게 신신당부했건만 로비에 늦게 나타난 걸로도 모자라서
어제의 숙취 때문에 힘들다며 비행기 시간이 임박해가는데도 아메리카노를 꼭 마셔야한다고 버티더니
결국 여권이 없어졌다고 발칵 뒤집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 여권은 결국 커피를 사러간 매니저의 손에 있었다 -
마지막까지 혹시라도 뭐 문제 생겼다고 전화가 오는 게 아닐까하고 비행기 이륙 현황판을 보면서 안절부절 못했다
그녀가 확실하게 비행기에 타서 서울로 출발한 걸 확인한 후에야 하경은 겨우 안심했다
세상에 여배우로 태어난 사람과 아닌 사람이 존재하는 것도 아닐텐데 어쩜 저렇게 다른 걸까, 신세계를 경험한 기분이다
시간을 확인한다
시내를 돌아볼 시간은 겨우... 두세시간 정도 짬을 낼 수 있을 듯하다
그 후에는 지하철역 코인락커에 집어넣어둔 짐을 찾아서 비행기를 타야한다
하경은 홍콩 지도를 보면서 잠시 어디로 갈지 고민한다
위치를 확인한 뒤 지하철을 타고 센트럴로 향한다
한번쯤은 그의 흔적을 찾아보고 싶었다 겨우 이곳까지 왔으니까
유학 시절 언젠가 역시나 유학을 온 중국 학생에게
반가워서 장국영 - 장궈룽 또는 레슬리 청 이라고 해야할 - 의 이야기를 꺼냈다가
그게 누구냐고, 중국에서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충격적인 말을 들었지만
그 유명하다는 마담 투쏘 박물관에서도 어느새 구석으로 자리가 밀려났다지만
그래도 하경에게 홍콩은 여전히 올해로 꼭 20주기를 맞은 장국영의 도시 였다
나이 차이가 나는 오빠의 영향으로 어깨 너머로 봤던 홍콩 영화들은 사실 어린 하경이 즐기기에는 지나치게 피와 총이 난무했다
오빠의 책장 구석에 꽂혀있던 영웅본색이니 첩혈쌍웅 같은 영화는
게다가 오글거리는 대사에 촌스럽고 말도 안되는 액션씬 때문에 뭐 이렇게 시대에 뒤떨어지는 영화가 다 있나 생각했다
그런 중에 해사한 얼굴에 허무한 눈빛을 한 장국영을 만났다
솔직히 말해서 수십번을 다시 본 지금도
무슨 이야기인지 한마디로 요약하라고 하면 딱히 할 말이 없는 '아비정전',
그 산만하기 그지 없는 이야기에 하경은 단숨에 몰입했다
그건 순전히 타이틀롤의 '아비' - 장국영 때문이었다
세상의 모든 일에 무관심한 눈빛을 한 아비.
모두를 사랑했지만 아무도 사랑할 수 없었던 아비.
이 1분을 영원히 기억할 거라는 말로 수리진의 마음을 훔치고 마는 아비.
『1분 얘긴 하지 마세요 1분이 쉽게 지날 줄 알았는데 영원할 수도 있더군요 그가 1분을 가리키면서 영원히 날 기억할거라고 했어요
그 말에 마음이 끌렸어요 하지만 이젠 내 스스로 시계를 보면서 1분 내로 잊겠어요』
하지만, 수리진을 떠난 아비는 돌아오지 않았다
수리진은 그 모든 시간을 1분 내로 잊겠다고 했다
단 한 번의 눈빛, 단 한 순간의 무대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들을 천천히 잃어야했다
당연히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리라고 생각했다
기억같은 건 잊혀진다고
매일에 겹쳐서
시간이 흐르고
그렇게 언젠가는
이 아픔 또한 잊혀지겠지
이 상실의 공허 같은 건 기억도 나지 않겠지
지훈을 보내면서,
한국을 떠나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했던 1분을
그 1분들이 쌓인 시간을, 그 날들을
지훈과의 순간들 전체를
약속을
모두 잊을거라고
1분내로, 잊겠다고
아비를 떠나보낸 수리진의 말처럼
생각했다.
어느샌가, 지훈의 영화를 보러서 가도, TV에 나온 지훈을 우연히 보아도
그저 잠시 따끔할뿐인 심장을 느끼면서, 괜찮다고, 괜찮아 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잊혀지는 거라고, 아마도 그 모든 시간을 잊을 수 있을거라고
곧 아프지 않게 될 거라고
그러나 어제 지훈과 다시 마주치고서,
5년이나 지나서도 여전히 두근거리고 아픈 심장을 느끼면서
알게 되었다
이 상처는 영원히 치유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아니 치유하고 싶지 않은 상처라는 것을.
지훈과 함께 했던 순간들,
그러니까
자신을 향해 부드럽게 웃던 모습과
다정했던 목소리와
열정으로 가득했던 눈빛과
무대 위의 재능넘치는 존재감과
늘 하경을 대할 때면 어찌할바를 모른다는 듯 미묘하게 떨리던 손길.
상처를 치유한다는 건 그 모든 기억을 잃어야한다는 의미.
그리고 하경은 그 기억을 잃고 싶지 않다
홍콩이 자신에게는 여전히 장국영의 도시인 것처럼
그래서 홍콩의 공기가 자신에게는 어딘가 알싸한 고통을 주는 것처럼
아마도 계속해서
지훈을 떠올리면 아플 수 밖에 없지만
그렇지만,
자신의 인생을 둘로 나눈다면,
지훈을 만나기 전과 후로 나뉠테니까
그 시간을 지워버리면 자신의 인생은 희미해져버릴테니까
그러니 계속해서,
마음 한 구석 어딘가는 아픈 채로 둘 수 밖에 없다
하경은 지하철 역을 빠져나온다
광장의 건널목에 서자 건너편으로 '그곳'이 보인다
장국영이 마지막으로 차를 마시고 결국 투신했다는 그 호텔 - 만다린 오리엔탈.
하경은 조용히 카메라를 들어 호텔의 사진을 찍는다
무의미하다는 걸 알지만, 그렇게라도 흔적을 남기고 싶다
광장에는 오가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대부분은 그저 공원에 산책을 나오거나 쇼핑하러 온 사람들 같다
저처럼 장국영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서 들린 사람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20년이나 지난 일이다
잊혀지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이 1분은 적어도 하경에게만큼은 잊혀지지 않는다
내가 기꺼이 아프기로 결정한 그 기억들,
너와 함께 했던 그 1분들처럼.
=
=========================
<그건 너>의 원래 생각했던 엔딩. (8화 이후의 에필로그 느낌)
아마 이렇게 끝냈더라면 거의 두달동안 확장된 그건 너의 어마어마한 세계는 없었겠지...
그리고 해피엔딩으로 끝내기로 생각한 후에 조금 바꿔서 8화와 9화 사이에 엇갈리는 에피소드.로 넣으려고 했지만.. 그때도 애들 엇갈리는 거 쓰다가 그 감정에 내가 죽겠어서 포기...
이후에도 외전으로 써보려고 몇번이나 고치면서 결국 잊고 있다가 장국영 10주기였던 얼마전에... 문득 생각나서 조금 고쳐 올려봐
(따져보니까 얘네가 29살이 되는 해가 장국영 20주기더라고...;;)
<그건 너>의 지훈x하경 커플링이 너무 오~~~~래 전이라.....
이걸 기억하고 그 설정들을 되살려 읽어준 냔들이 있다면... 존경하고 감사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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