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il-in-paris




(본편과 상관 전혀 없음 주의 / 캐붕 주의) 



Forget Me Not. Prologue 






딸랑. 



문 위에 달려있는 종이 경쾌한 소리를 낸다 
카운터 뒤에서 뭔가 정리하고 있었던지 뒤통수만 보이던 여자가 소리를 듣고 문 쪽을 돌아본다 


"안녕하세요" 


여자는 대답 대신 저도 모르게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한다 
오후 4시 30분. 
한산한 오후. 
언제나 같은 시간에 나타나는 남자는 대답없는 여자가 불안한 듯 새삼스럽게 양복 자켓 끝자락을 만지작한다 


"어서오세요" 


여자는 낮고 목소리로 작게 대답한다 
눈을 마주치지 않고 카운터 너머에서 뭔가를 묶어놓는 듯이 
손만 분주하게 움직이는 여자를 멀뚱히 보던 남자가 
짐짓 목소리를 높여 천진하게 묻는다 


"오늘은, 어떤 게 좋아요?" 


남자의 질문에 재빠르게 움직이던 손이 멈춘다 
찰나의 정지, 
그리고 여자는 무표정하게 앞치마에 손을 닦으면서 카운터 밖으로 걸어나온다 
자박자박 걸어온 여자가 남자가 서있던 자리 옆에 놓인 커다란 쇼케이스 안을 들여다본다 


"수국이 좋네요 오늘은, 선물하실거믄 장미도. 오늘 들어온 핑크 장미, 싱싱해요" 


쇼케이스를 열고 안쪽으로 몸을 집어넣어 중간 쯤에 놓인 박스에서 장미 한송이를 끄집어낸다 
여자의 조곤조곤한 설명이 계속되는 동안 남자는 그저 제 어깨에도 미치지 않을 것 같은 작은 키의 여자가 
자그마한 몸을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는 장면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여자의 말에 남자는 퍼뜩 정신을 차린다 
손에 핑크색 장미 한송이를 들고 있는 여자가 말끄러미 올려다본다 


"그걸로, 할게요" 
"몇송이나." 
"적당히 알아서 해주세요" 


성의없는 남자의 대답에 잠깐 고민하는 것 같던 여자는 남자의 차림새를 한번 훑어보고 
결심한 듯 장미 여섯송이를 더 뽑아내서는 카운터로 돌아가 장미 손질을 시작한다 

음악 소리도 없는 꽃집 안에 정적이 흐른다 
다만 여자가 장미 손질을 하느라 가시를 잘라내고 길이를 맞추는 가위 소리만 똑,똑,하고 들릴 뿐이다 
어색하게 한 쪽 구석에 서있던 남자가 새삼스럽게 궁금하다는 듯 묻는다 


"전라도에서 왔어요?" 


여자의 손놀림이 잠깐 멈춘다 
동요하는 듯이 보였던 떨림이 금새 사라진다 
가타부타 대답이 없는데도 남자는 자신이 맞췄다는 생각에 배시시 웃는다 


"이름이... 뭐예요?" 


여자는 묵묵히 포장 비닐을 잘라내서 손질한 장미를 싸고 손으로 펴서 모양을 잡는다 
막 리본을 잘라 묶기 시작하는 걸 보다가 못 참겠다는 듯 남자가 카운터로 다가선다 


"한번은, 대답해줘도 되잖어요. 초면도 아닌데 우리." 
"... 오는 손님들이랑 다 구면이면 나가 서울 시민 절반을 알겠네요" 


눈도 마주치지 않고 중얼, 대답 아닌 대답을 하면서 능숙하게 리본의 모양을 잡는다 
남자가 여자의 대답을 듣고 고개를 갸우뚱한다 


"우리 초면 아니예요" 
"..." 
"기억 안 나요? 우리 전에도 만난 적 있는데, 여그서 보기 전에" 
"..." 
"정말인데," 


남자의 말이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리본을 다 묶어버리고 
탁탁,하고 마지막 모양을 잡는 여자를 보다가 지쳤다는 듯 남자가 중얼한다 


"... 자기가 정대만인 줄 아나... 포기를 모르긴..." 


이번엔 정말로 손이 멈춰버린다 
남자에게로 시선을 든 여자의 눈이 잠깐 물기 젖은 듯이 흔들린다 
자신이 뭔가 해서는 안될 말이라도 했나 싶어서 남자는 멈칫,한다 

여자는 뭔가를 찾는 듯이 물끄러미 남자를 바라본다 
아주 오래 전의 기억을 더듬는 것처럼 아련하게 
몇번인가는 눈을 깜빡이고 금새라도 한숨을 내쉴 듯이 숨막히는 표정으로 
가만히 남자를 바라보던 여자가 간신히 음절과 음절을 이어낸다 


"어디서요?" 


날 어디서, 대체 언제 어디에서 봤다는 거죠. 
당신이 기억을 할 리가 없는데. 


낮고 허스키한 여자의 목소리에 남자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어째서 기억을 하지 못하느냐는 듯 오히려 의문 가득한 제스쳐 


"병원에서, 맞죠? 상담실에서 같이 기다렸잖아요." 


여자의 표정이 막막해진다 
남자는 영문을 모르고 어리둥절해진다 


"그때 분명 이름도 들었는데, 기억이 잘 안나서 그래요. 이름이... 윤..."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는 것처럼 천정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제 입에 붙는 음절을 찾아내려고 애쓰는 남자를 
막막한 얼굴로 올려다보던 여자가 입술을 한번 깨물고, 조용히 읊조린다 


"... 윤진이요, 조윤진." 


윤진의 대답을 들은 남자의 표정이 밝아진다 
생각하느라 잔뜩 찌푸리고 있던 미간을 펴고 윤진을 바라보며 반갑다는 듯 배시시 웃는다 


"그래요, 윤진, 조윤진." 


윤진의 이름을 잊지 않겠다는 듯이 몇번인가 되뇌인다 
이미 서른 중반은 되었을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소년처럼 웃는 남자를 보는 윤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버린다 
심장이 쥐어뜯기는 것처럼 아파서 눈을 감고 싶어지는 걸 간신히 참는다 


"반가워요 윤진씨" 


남자가 악수를 청하듯 손을 내민다 
잠깐 그 커다란 손과 저를 보는 반짝이는 눈을 번갈아 보다가 그저 무심하게 카운터 위에 올려진 장미 다발을 건넨다 


"삼만 칠천원입니다" 


눈을 들어 확인하지 않아도 남자의 표정이 어떻게 변했을지 알고 있다 
윤진은 애써 시선을 남자의 양복 자켓 중간 언저리쯤에 고정한 채 
고집스럽게 아직까지 남자가 건네받지 않은 꽃다발을 한 손으로 쑥 내밀고 버틴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 남자가 조용히 장미다발을 받는다 
그리고 양복 안쪽 지갑에서 현금으로 4만원을 꺼내 카운터 위에 올려놓는다 
기계적으로 캐셔를 열려고 하자 나직하게 제지한다 


"거스름돈은 됐어요, 내일 다시 올테니까" 


내일 이라는 말에 윤진이 놀라 고개를 들기 전에 남자는 성큼성큼 문을 열고 나가버린다 
멍하니 유리창 밖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사라지고 나서도 한참이나 더 오랫동안 멈춰있던 윤진은 그대로 천천히 무너진다 
내내 고여있던 눈물이 주룩,하고 흘러내린다 



떠나지 못했던 건 내 탓이지만 그렇게 갔으면 돌아오지도 말았어야지 
스무살, 스물한살의 가장 빛나던 시절의 얼굴을 하고서 나타나지 말았어야지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버렸는데 여전히 세상에 희망을 품은 소년처럼 웃지마 
하염없이 기다렸던 나를 기억해내지 마 


나를, 

기억하지 말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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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부터 떠올랐던 이야기였는데, 그래도 태만이 잠잠해지고 있는 이제와 굳이 쓰기 뭐해서 잊어버리려고 했는데 
..... 어제 방송을 보고 나서.... 멜로... 하자 해태야 나는 너에게 멜로를 시켜야쓰것다. 하는 충동에 우선 프롤로그만 날리고 사라짐... 
이 이야기는 아마 본편과는 매우매우 상관없을 듯. 그냥 해태에게 멜로 한번 시켜보고 싶었던 나냔의 욕망폭발글. 
생각보다 거대한(그동안 써왔던 얘기들보다) 이야기가 될지도 몰라서.. 제대로 쓸 수 있을지 좀 걱정이 되긴 하지만 그냥 시작해봐.. 
비밀을 끝내고 났더니 짠내나는 글이 또 쓰고 싶어졌나봄-_-;; 인생이 다크한 냔이야 나는 정말 

혹시라도 이런 글도 재미있어해주는 냔이 있다면 감사^^;; 그리고 너무 캐붕이라 불편한 냔이 있다면 미리 미안.. 
되도록이면 재미있어 해주길 바라지만







Posted by april_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