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il-in-paris











"Yes!!!!!" 


괴성을 지르면서 호준이 삐딱하게 앉아 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그렇게 좋아요?" 


아예 소파 위에서 천장에 머리가 닿을 기세로 겅중겅중 뛰면서 좋아하는 호준을 
황당한 표정으로 올려다보던 윤진이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묻는다 


"암만요, 어떻게 이긴 게임인디" 


호준이 흥분을 가라앉히는 듯 숨을 몰아쉬면서 자리에 앉는다 
큰 TV화면에 HOME RUN 이라는 글씨가 번쩍번쩍 움직이고 폭죽 그래픽이 터진다 
9회말 4점 만루 홈런, 역전승이다 


지난 3개월의 지난한 도전 끝의 첫 승인데 감격스럽지 않을 리가 없다 
집에서는 물론이고 회사에서 자투리 시간만 생기면 이 게임을 틀어놓고 연습했다 

'넌 다 지난 게임 붙들고 뭐하는 삽질이야?' 

틈틈이 사무실에 들리는 성균은 다른 게임은 다 집어치우고 심지어 최신판도 아닌 
발매된지 3년도 넘은 게임을 붙들고 고군분투하고 있는 호준이 한심한 듯 잔소리를 해댔지만 
그래도 끈질기게 매달리는 호준이 뭔가 이유가 있어보였는지 퇴근이 늦어지는 저녁, 시간이 되면 종종 대전 상대가 되어주기도 했다 

'옛날 생각난다,' 

마침내 호준이 성균을 이긴 날, 역시나 방방 뛰며 좋아하는 호준을 보며 성균은 중얼거렸다 

'너랑 몇 번 했어 이거, 그때도 니가 이겼고' 

무슨 말이냐 묻는 호준에게 성균은 씁쓸히 웃었다 
지금은 냉정하게 몰아붙이지만, 자신은 기억나지 않는 그 어느 시간에 함께 게임을 했다는 성균이 
어쩌면 저의 생각보다 훨씬 가까운 사이였을지도 모르겠다, 짐작했다 

'삽질하지 말고 공부 좀 해라' 

그때서야 통,하고 내민 공략집을 보고 이 좋은 걸 왜 이제서야 내놓느냐고 툴툴거리느라 금새 잊어버렸지만 
덕분에 성균과 조금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그나저나 회사에서 일 안해요? 게임만 했어요? 갑자기 실력이 너무 늘었는데?" 
"설마요" 


의심스러운 듯 눈을 가늘게 뜨고 올려다보는 윤진의 시선에 뜨끔하지만 무슨 말이냐는 듯 천연덕스럽게 고개를 흔든다 
약간의 업무와 대부분의 게임,인 생활이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이걸 함께 하던 성균과 최근에 복잡해지는 야구 게임을 아예 예전의 야구 카드 게임 수준으로 단순화시켜서 
모바일 게임으로 개발해보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그래서 지금 개발이 진행중이니까 
아주 놀았다고만은 할 수 없다, 오히려 일에 도움이 되었다고 해야할 거다 


한참 개발중일 게임 생각에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호준을 보자 갸우뚱 하면서 윤진이 말한다 


"자, 이겼으니까 말해요, 소원이 뭔데요?" 


윤진의 말에 호준이 씩 웃는다 


소원. 

그놈의 소원 때문에 지금까지 그 공을 들여온 것 아닌가 

처음엔 그저 게임의 흥을 돋우기 위한 장치였다 
아무런 벌칙도 없는 게임은 재미가 없잖아요, 지는 사람이 이긴 사람 소원 들어주기. 라고 간단하게 시작했을 뿐이었는데 
한번, 두번 을 넘어 계속해서 지는 사람은 호준, 이기는 사람은 윤진.으로 정해지다 보니 나중에는 오기가 생겼다 

그렇다고 윤진이 뭔가 굉장한 소원을 말해서 자신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한 건 아니었다 
윤진의 소원은 하나같이 사소하고 하찮은 것 뿐이었다 

예를 들자면 설겆이를 해달라던가 전구를 갈아껴달라던가 하는 사소한 집안일, 이나 
다음번에 올 때는 어느어느 동네에 있는 디저트 가게에서 케익을 사다달라던가 TV에서 본 콩국수 집에서 콩국물을 사다달라던가 하는 
그냥 부탁을 했어도 얼마든지 들어줬을 만한, 굳이 소원이라고 할 것도 없는 항목들. 
소원을 써야할 기회가 생겼으니 소원을 말한다,같은 여상스러운 윤진의 태도에 오히려 승부욕이 불타올랐다 
매주 주말마다 시간만 생기면 도전을 외치며 덤비는 호준을 어이없어하면서도 윤진은 늘 게임기를 꺼내줬고 
그리고 결국 막판에 늘 이기지 못하기를 반복한 게 벌써 3개월이다 
오늘도 자칫하면 말릴 뻔 했는데 겨우 역전 만루 홈런으로 이기게 되었으니 감격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소원이 뭐냐니까요" 


말없이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보기만 하는 호준에게 윤진이 다시 묻는다 
씨익 웃기만 하는 걸 보고 있자니 대체 소원이 무엇이길래 뜸을 들이나 싶어 조금 불안해진 눈치다 

윤진의 말에 대답없이 폴짝 소파에서 뛰어내려 식탁 쪽으로 쪼르르 달려간 호준은 
의자 위에 걸쳐놓았던 자켓 안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돌아온다 


"짠!" 


불안하게 올려다보는 윤진 앞에 앉더니 뒤로 감추고 있던 손을 내민다 
호준이 내민 티켓 두 장을 윤진은 말없이 받아들어 찬찬히 읽는다 
꼭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보는 글씨가 쓰인 난생 처음 보는 물건인 것처럼 아주 천천히 한자 한자 짚는다 


'2008년 플.레.이.오.프. 1차전 두산 대 삼성. 10월 16일 (목)' 


"같이 가요," 


소파 위에 다리를 접고 앉아서 두 손을 모으고 눈을 반짝 반짝하며 윤진을 바라본다 
꼭 먹이를 기다리고 있는 큰 강아지 같단 생각에 윤진은 웃음이 나와버릴 것 같아서 입을 꼭 다문다 


"이거 가고 싶어요?" 
"예!" 


기다렸다는 듯 호준은 고개를 마구 끄덕인다 

윤진과 만난 뒤 저녁 식사로 몇 번 외식을 한 걸 제외하고는 밖에서 만난 적이 없다 
인생이 거대한 연극,이라는 아리송한 말과 함께 거절당한 뒤로도 몇번인가 더 영화관이나 공연을 보러가자고 말해봤지만 
영 내켜하지 않는 곤란한 표정을 보면 꼭 가야겠다고 우길 수가 없었다 
내내 둘만 있는 게 싫었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평소와 다른 일을 하고 싶었다 
야구 게임을 잘하는데다 야구 얘기를 하면 꽤나 길게 - 물론 대부분은 왜 두산이 아니라 기아 여야 하는가에 대한 팽팽한 토론이었지만 - 
얘기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관심이 있는 걸 보면, 기아의 성적을 생각하면 속이 좀 쓰리긴 하지만 
두산팬인 윤진은 두산의 플레이오프 경기라고 하면 가려고 하지 않을까 싶어서 

게임 기술을 연마하고 티켓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리고 드디어 오늘 이긴 건데 


대답 없이 티켓을 찬찬히 살피고 있던 윤진이 살짝 미간을 찌푸린다 


"이거 다음주네요?" 
"... 아.. 시간 안 되요?" 


미묘한 윤진의 반응에 호준은 금새 시무룩해진다 
윤진은 고개를 살랑 젓는다 


"아뇨, 그런 게 아니라, 오늘 졌으면 어쩔라고 그랬대요? 티켓 날짜를 바꿀 수도 없는데" 


윤진의 말에 희망을 되찾은 호준이 반짝 하고 고개를 든다 


"절대로 진다고는 생각 안 혔지라, 사내의 사전에는 오로지 승리만 있을 뿐잉게" 
".. 지금까지 계속 졌으면서..." 
"이번엔 꼭, 이긴다고 생각혔다니까요, 다-아 마음에 달린 문제니께, 그동안은 나가 마음을 넉넉히 쓴거고" 


금새 기분이 좋아졌는지 싱글싱글하며 엉뚱한 소리를 하는 호준을 보다 
윤진은 웃음을 참는 것처럼 입술을 꼭 물더니 쥐고 있던 표를 살랑 흔든다 


"... 나 못 간다고 그러면 어쩔건데요?" 
"... 뭐... 그라믄 또 취소허고 담주에 재도전 해야지요" 


기분이 풀썩 도로 주저앉는게 확연히 보인다 
너무 쉽게 읽히는 호준의 감정 기복에 윤진은 저도 모르게 스륵 웃는다 

또,라고 한다면 이미 몇번이나 그랬다는 건데 
요 몇 주 계속 게임을 하자고 조르고 꼭 소원을 들어줘야한다고 다짐했던 이유가 있었구나, 
이제야 알게 되어서 자꾸 배시시 웃음이 흐르고 만다 


"같이 갈거지요?" 


풀이 죽은 채 눈을 껌뻑이면서 애절하게 보는 호준의 얼굴에 이게 뭐라고 저렇게까지 하나 싶어서 윤진은 조금 마음이 싸,하고 바람이 분다 
윤진은 다시 티켓을 보고 고민하다가 제 대답을 기다리며 저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 호준을 보고 고개를 끄덕한다 
호준의 얼굴에 순식간에 환한 미소가 번진다 
그걸 보고 있던 윤진도 살며시 웃는다 


"진짜, 같이 가는 거지요? 나중에 무르기 없어요?" 
"예" 


신이 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부르르 떠는 호준을 잠시 보던 윤진이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부른다 


"근데" 
"네?" 
"대신 부탁이 있어요" 
"... 뭔데요?" 


어딘가 불안한 듯 보이는 윤진의 얼굴에 좀전까지 신났던 호준도 차분해진다 
잠깐 망설이던 윤진이 결심한 듯 사뭇 비장하게 입을 연다 


"... 거기 가면" 
"....?" 
"손 잡아줄래요?" 


심각한 표정으로 올려다본다 
호준의 얼굴도 덩달아 심각해진다 


"그거믄 되는 거래요?" 


긴장한 듯 약간 갈라진 목소리로 호준이 묻자 윤진은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어느새 살며시 두 손을 모으고 대답을 기다리는 윤진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다 
슬쩍 손을 잡으며 씨익, 하고 웃는다 


"그거야 지금 당장도 할 수 있는디" 


흔들흔들 제 손을 잡고 흔드는 호준의 손을 지그시 보다 눈을 든다 
마주한 윤진의 눈이 일렁이고 있어서 호준은 조금 놀란다 
좀처럼 흔들리지 않던 윤진의 동요가 서늘해서 호준은 오히려 잡은 손을 더 꼭 쥔다 


"이르케 하고 같이 가요? 목요일에?" 
".... 절대 안 놓을 거지요?" 


아직도 조금 떨리는 말끝을 잡아채듯 붙들고 있는 손을 꾹꾹 누른다 


"귀찮다고 혀도 절대 안 놓아줄거니께 후회나 허지 말아요" 









북적북적한 사람들 사이로 익숙한 얼굴을 발견한다 
군중 속에 파묻혀있으니 윤진의 작은 몸이 더 작아보인다 
불안한 표정으로 두 손을 꼭 잡은 채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는 윤진을 향해 단숨에 뛰어간다 


"기다렸어라?" 


헉헉 숨을 고르면서 힘이 든지 무릎을 짚고 올려다보는 호준을 보고 그제야 안심한 듯 생긋 웃는다 


"좀 전에 왔어요" 


고개를 갸웃하는 윤진을 향해 손을 내민다 
머뭇하는 손을 끌어당겨 쏙 잡아넣는다 


"이야, 날씨 좋네요 오늘, 꼭 이겨야할텐데" 


처음부터 그랬다는 듯이 능청스럽게 윤진의 손을 잡고 앞뒤로 흔들면서 괜히 하늘을 보고 감탄한다 
벌써 해가 뉘엿 지려고 하는 하늘엔 구름이 가득이다 
윤진은 당황한 듯 호준을 올려다보다가 풋,하고 웃는다 


"저녁은 먹었어요? 배 안고파요?" 
"아직은 괜찮은디, 좀 있으믄 배가 고플랑가요?" 
".. 그럼 끝나고 먹을까요? 간식은 좀 싸왔는데" 


윤진은 메고 있던 가방을 통,하고 건드린다 
호준의 얼굴이 감탄하듯 확, 밝아진다 
신이 난 듯 고개를 까딱까딱 흔들다가 잡고 있던 윤진의 손을 확 끌어당긴다 


"그럼, 어여 들어가요" 


뒤적뒤적 자켓 주머니에서 표를 꺼내면서 급한 걸음으로 걸어가는 호준 뒤로 종종 걸음으로 겨우 따라간다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자 사람들이 더 많아진다 
복도에 가득한 사람들을 이리저리 피해 걸어가면서 윤진의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게 드러난다 


"아 여기네요" 


두리번거리던 호준이 마침내 자리를 찾았는지 손가락을 가리킨다 
응원단석에서 거리가 있는 외야에 가까운 통로 쪽 자리를 확인하고 미안한 듯 윤진을 돌아본다 


"구한다고 구혔는디, 플레이오프는 자리 구허기가 겁나 어렵더라구요" 
"아녜요, 괜찮어요, 좋아요" 


긴장을 감추고 고개를 끄덕하는 윤진을 한번 보고 얼른 윤진의 자리를 탁탁 털어낸다 
저런 건 또 어디서 배웠나 싶어서 윤진은 저도 모르게 살짝 웃는다 


"어째 지가 경기를 뛰는 것도 아닌디 긴장이 팍 되부리네요" 


자리에 앉은 호준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닦는다 
그러다 고개를 갸웃한다 


"윤진씨, 추워요?" 


바르르 떨고 있는 손을 보고 묻는다 
제 몸에선 열이 나는데 쥐고 있는 윤진의 손에선 차가운 땀이 맺힌다 
호준이 걱정스럽게 바라보자 윤진은 절레 고개를 젓는다 


"아녀요, 그냥 좀, 긴장이 되서" 
"아따, 두산 팬은 팬이구만요 플레이오프 날이라고 긴장을 다허고," 


호준의 말에 그저 생긋 웃는다 
어쩐지 창백해보여서 호준은 아무래도, 라고 생각하며 자켓을 벗어 걸쳐준다 


"저녁되믄 추울지도 모르니께, 걸치고는 있어요" 


잠깐 놀란 눈으로 호준을 봤다가 슬쩍 자켓을 손으로 쓰다듬은 윤진은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내뱉는다 
걱정스럽게 보는 호준을 발견하고는 괜찮다는 듯 살풋 웃는다 


"아, 시작해요" 


아무래도 눈을 떼지 못하는 호준에게 앞을 가리켜보인다 
막 플레이볼이 선언된 그라운드에 투수가 첫번째 공을 던진다 
너무 오랜만에 야구장에 관람을 온 거라 자신이 두산 팬이 아니었다는 것도 잊고 호준은 순간 흥분한다 
윤진은 가만히 의자 위로 무릎을 끌어당겨 앉아 턱을 괴고 경기에 몰입한 호준을 바라본다 


"봤어요?" 


와아하는 함성의 순간마다 흥분한 호준이 돌아보고 윤진은 그때마다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윤진을 잡고 있는 호준의 손은 그 주인이 얼마나 흥분했고 실망했느냐에 따라 
그 안에 가두고 있는 윤진의 손이 빨래라도 된 것처럼 꼭 쥐였다가 스르르 풀렸다가를 반복한다 
그때마다 윤진의 얼굴은 숨이 막혔다가 풀렸다가하며 질식과 해방을 오간다 
몇번인가 견디기 어렵다는 듯 눈에 띄지 않게 가슴을 통통 두드리면서 숨을 몰아쉬던 윤진은 
3회초 무사 만루의 상황에서 적시타를 맞은 투수를 보며 사람들에 섞여 흥분한 듯 소리치는 호준의 어깨를 살짝 두드린다 


"저 잠깐 나갔다 올게요" 


소리치다 말고 의아한 듯 돌아본 호준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거의 창백해진 얼굴을 보고 호준의 눈이 커진다 


"같이 가요?" 


걱정스럽게 묻는 호준에게 고개를 저으며 살짝, 겨우 웃어보인다 


"경기 봐요, 금새 올게요" 


살며시 호준의 손을 놓은 윤진이 자켓을 벗어놓고 스륵 좌석을 빠져나간다 
흔들리는 뒷모습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호준은 따라갈까,하고 들썩 하다가 
마침 터진 삼성의 적시타에 결국 4점이 나고 마는 걸 보면서 흥분해서 경기에 몰입한다 
결국 3회초에 4점을 내준 채 겨우 마무리하고 시작된 두산 3회말의 공격은 득점없이 끝난다 


'어후, 이래서 무슨 한국시리즈를 가겠다고, 두산이 잘하긴 뭘 잘한다는겨' 


괜히 제 승부인 것처럼 흥분해서 벅벅 머리를 긁다가 문득 저에게 두산이 잘한다고 말했던 장본인의 자리가 아직도 비어있는 걸 발견한다 
아무리 3회말 공격이 무의미하게 끝나긴 했지만 잠시 다녀오겠다고 한 사람이 한회가 끝나도록 돌아오지 않는 것에 걱정이 된다 
역시 아까 따라나섰어야했는가보다 생각하면서 막 4회초 삼성의 공격이 시작되려는 자리를 뜬다 

멀리 경기장의 함성이 간간이 들릴 뿐 경기가 시작된 경기장의 복도는 한산하다 
오가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 복도 어디에 윤진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무슨 일 있나' 


문득 마지막으로 보았던 윤진이 창백했던 게 떠올라 불안해진다 
급하게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어본다 
신호만 갈 뿐 대답이 없는 상대를 향해 반복해서 전화를 걸면서 호준은 결국 조금씩 뛰기 시작한다 
쭈뼛거리며 동태를 살폈던 여자화장실부터 외야석까지 복도를 돌면서도 아무런 흔적도 찾지 못한 호준은 
계속해서 신호만 가는 휴대폰을 간절히 붙들고 터벅터벅 경기장 밖으로 걸어나온다 


- 삐릭, 삐릭, 삐릭 


언젠가, 어째서 기본 벨소리만 쓰느냐고 했던 윤진의 전화벨 소리에 번쩍 고개를 든다 
분명 가까이에서 들리는 소리에 급박하게 두리번거리며 계단을 뛰어내려온다 


"윤진씨!"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참에 웅크리고 있는 윤진을 발견한다 
크로스로 메고 있는 가방에서 계속해서 휴대폰 벨소리가 들리는데도 윤진은 알아차리지 못한 것처럼 
몸을 동그랗게 말고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정지해있다 


"괜찮어요? 정신 들어요?"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에 윤진은 간신히 고개를 든다 
제 앞에 있는 호준을 발견하고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괜.. 찮.. 아요" 


말만 했을 뿐 하얗게 질린 윤진의 얼굴에선 비오듯 식은땀이 쏟아지고 꼭 쥐고 있는 두 손은 조금도 쉬지 않고 달달달 떨린다 
숨을 쉬기 어려운 듯 새액 소리를 내며 몰아쉬는 윤진이 억지로 초점을 맞추려고 하다가 도로 고개를 푹 수그리는 걸 본 호준은 
벌떡 일어나 윤진을 안아일으킨다 


"가만 있어요" 


꿈틀,하고 움직이려는 윤진에게 잔뜩 가라앉은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마치 화가 난 것 같은 호준의 목소리에 윤진은 설핏 잠잠해진다 
입을 꾹 다물고 그대로 윤진을 안고 나와 택시를 잡아탄 호준은 윤진의 아파트로 향한다 
택시에서 내려 여전히 비틀거리는 윤진을 부축해 집으로 들어가서 침대에 윤진을 눕힌다 


"... 물... 좀 갖다줄래요?" 


침대에 누워 숨을 고르던 윤진이 한쪽 팔로 눈을 가린 채 희미하게 부탁한다 
힘없이 숨만 쉬고 있는 윤진을 내려다보다 불안하게 내려다보다 호준은 부엌으로 나가 냉장고에서 물을 따라 가져온다 
부축을 받아 겨우 자리에서 일어난 윤진은 침대 옆 서랍을 열어 약통을 꺼내 약을 한 알 집어내 먹는다 
잘 넘어가지 않는 듯 물을 마시는 윤진에게서 약통을 받아든 호준은 약통 앞에 휘갈기듯 써있는 글씨를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슬쩍 읽는다 

 - Alprazolam / panic disorder 

'알프라졸람 패닉 디스오더' 

나중에 찾아봐야겠다 생각하면서 속으로 한번 중얼 해보고 서랍에 다시 약통을 넣는다 
물을 마시고 겨우 정신을 차렸는지 윤진이 조금 전보다 혈색이 돌아온, 그러나 여전히 하얀 얼굴로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 기대혔는데, 다 못 보고 와서 어째요" 
"... 지금 그게 중요헌 게 아닌 거 같은디요, 어디가, 어떻게 안 좋은 거여요" 


심각한 표정의 호준을 물끄러미 보다 살짝 시선을 떨군다 


"... 사람 많은데 가믄 가끔 그려요, 긴장을 많이 혀서 그런다고 그러더만요, 그러다 또 쉬믄 괜찮아지구" 
"... 진짜여라?" 
"예" 


의심스럽게 저를 보는 호준과 눈을 마주치고 힘없이 웃는다 
뭔가 말하려는 듯 하던 호준은 그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라믄 쉬어야것네요 지금" 
"... 네" 


호준은 도로 윤진을 자리에 눕히고 이불을 목 끝까지 올려서 꼼꼼히 덮는다 
베개에 모로 누워서 호준의 하는 양을 보고 있던 윤진은 호준이 기껏 덮어놓은 이불 밖으로 손을 살짝 내민다 


"잡아줄래요?" 
"예?" 
"... 나 잘 때까지만, 그럼 금새 잘 것 같아서요" 


살풋 웃고 있지만 간절해보이는 눈매에 호준은 순순히 이불 밖 윤진의 손을 잡는다 


"... 얼른 자요" 


침대 아래 쪼그리고 앉은 호준은 한 손으로 윤진의 손을 가볍게 잡고 다른 손으로 천천히 이불 위로 토닥인다 
윤진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눈을 감는다 


자장, 자장, 


저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노랫소리에 호준은 속으로 피식 웃는다 
기억하지 못하는게 당연한, 아주 어릴 적 들었던 노래인데도 이럴 때면 기억이 되살아나는 걸까 
잊고 있던 어머니는 어쩌면 무의식에 깊이 새겨있는지도 모른다 

호준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윤진은 낮은 목소리의 자장가 때문인지 토닥이는 손길 때문인지 스륵,하고 잠에 든다 
좀전까지 창백했던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고른 숨을 내쉬며 새근거리기 시작한다 


그저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그저 긴장해서. 라고 하기에는 너무 절박했다 
그 순간 윤진이 사라져버리는 건 아닐까, 저러다 숨을 쉴 수 없게 되는 건 아닐까 호준은 진심으로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기억을 더듬어본다 
경기장에서 처음 만날 때부터 어딘가 불안했던 모습, 
그리고 자리에 앉았을 때 떨고 있던 건 추워서가 아니라 긴장, 쓰러지고 싶은 정도의 긴장 때문, 
아마도 제가 잡고 있던 손에 가득 찼던 땀도 그 끔찍한 긴장 때문. 
어째서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지, 
아니 어째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으면서도 혼자 가도록 내버려두었는지 스스로 자책한다 

제 손에 쥐여진 작은 손을 만지작한다 

절대로 손을 놓지 말라고, 잡아달라고 했는데. 
어째서 이 손을 그저 가도록 놓아줬던 걸까 

호준은 토닥이던 손을 들어 윤진의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살짝 넘겨준다 
자유로운 손으로 핏기가 돌아온 윤진의 뺨을 슬쩍 쓰다듬는다 
간지러운 듯 살짝 고개를 베개 쪽으로 돌려 파묻는 걸 보고 슬쩍 웃는다 


배고프네. 



가만히 윤진이 자고 있는 걸 보고 있자니 긴장이 풀렸는지 그제야 배가 고파온다 
이대로 윤진을 두고 돌아갈 수는 없으니 자는 동안 요기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때까지 쥐고 있던 윤진의 손을 살며시 이불 위에 놓고 살그머니 돌아선다 


"... 가지 말아요" 


한숨처럼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흠칫 놀라 돌아본다 
여전히 잠든 것처럼 눈을 감고 있는 윤진은 꼭 뭔가를 본 사람처럼 얼굴을 실룩거린다 


"... 놓지 않는다고 했잖아...." 


언제나 무표정한 윤진을 웃게 하는 게 즐거웠다 
그렇게나 감정 기복없이 담담한 게 당연히 윤진인 줄 알았다 
서른 넷,의 윤진은 자칭 스무살인 자신을 챙기는 게 당연하다는 듯 때로 누나처럼, 엄마처럼 굴었다 
그래서 윤진은 늘 그런 줄로만 알았다 


"... 가지마 ..." 


누구를 향한 말인건지 알 수 없지만 
그 간절하다 못해 격렬한 감정에 호준의 심장이 욱신한다 

윤진의 감은 눈에서 눈물이 주룩, 흘러내린다 
아픈 것처럼 얼굴이 일그러지고 샘솟듯 눈물이 솟는다 
처음 보는 윤진의 약한 모습에 호준은 도로 자리에 주저앉는다 


"... 가지 말아요 제발..." 


다시 한번 같은 말을 아프게 토해내는 윤진의 손을 잡는다 
온기를 느꼈는지 꿈틀,하고 움직인 작은 손이 꼭 하고 맞잡아 온다 
호준은 잡고 있는 윤진의 손을 천천히 다른 손으로 토닥이며 잠든 윤진에게는 들리지 않을 말을 속삭인다 


"아무데도 안가요, 여기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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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쿠야. 잘 모르면 쓰지 말아야하지만. 이미 이야기를 굴러가고 있으니. 멈추진 못해서. 
혹시나 비슷한 상황이거나 불편한 냔들 있어도 부디 너그럽게. 나냔의 부족함을 이해해줘. 이제 절반 돌았네 하아. 

이 어둑어둑한 이야기를 읽어주고 댓글로 잘 읽고 있다고 말해주는 냔들 고마워 ㅠㅠ 흑 ㅠㅠ 
그 기다림을 나냔이 다 갚아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ㅠㅠ 열심히는 쓰고 있어 ㅠㅠ 용두사미만 안되면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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쏴아.


하고 노랗게 물든 나뭇잎을 쓸고 지나가는 바람소리가 들린다
오도카니 거실 소파에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서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본다
바람 소리에 잎새와 함께 흔들리는 것처럼 천천히 몸이 앞뒤로 움직인다

어느새 가을

높은 층인 탓에 시야에는 보이지 않는 저 잎새들이 지금 들리는 바람에 날려 모두 떨어지고 나면 또다른 겨울이 찾아올 것이다
소파 위의 자신을 제외하고는 조금의 온기도 없는 이 공간 전체가 마치 겨울을 향해 급하게 달려가는 가을인 것처럼 묵직해진다
차가운 공기가 스며드는 느낌에 괜히 입고 있던 가디건 앞자락을 여미고 좀더 가까이 무릎을 끌어안는다
자신의 체온으로 이 공기를 막아보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한동안 창 밖의 바람 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멀리 들려오는 그 소리가 착각이 아닐까 느껴진다
서서히 기우는 태양에 그림자가 길어지는 걸 보며 시간이 꽤나 오래 지나버렸다는 걸 짐작한다


'쉬어야해요, 저녁에 올테니까, 그때까지 푹 쉬고 있어요'


아침에 들었던 말을 가만히 떠올려본다
제 손을 꼭 붙잡고 몇 번이나 당부했던 따스한 음성을

아무것도 먹을 생각도 아무것도 하고 싶은 의욕도 들지 않았지만
그저 고개를 끄덕여 안심시켜주고 싶었던 그 눈빛을


밤새도록 단 한 순간도 제 곁을 떠나지 않았던 그 손의 온기를.


무릎을 끌어안고 있던 손을 천천히 올려들어 펼쳐본다
처음 보는 것처럼 낯설게 
그대가 잡아주기 전까지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듯이
그 온기가 닿기 전엔 차가운 돌처럼 굳어있었던 이 손을


- 띠리리리


고요한 공간에 전화벨 소리가 울린다
화들짝 놀라 벨소리가 울린 전화기 쪽을 바라보고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한다


잠깐 망설이다가 소파에서 일어나 전화기를 집어든다



"네, 여보세요"
- 집에 있었나, 핸드폰 좀 받아라


전화기 너머 목소리를 확인하고 그저 전화기를 들고 소파에 기대 앉는다


"어쩐 일이시대요"
- 니 괘얂나?
"... 안 괜찮을 게 뭐 있나요"
- ... 준이 왔다 갔다


해윤의 말에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쉰다


- 공황장애가 뭔가, 우예야하는가 묻더라, 가 주변에 공황장애로 물어볼 사람 니 밖에 없다 아이가. 니 무슨 일 있었나? 


조급해본적이 없는 듯 느긋한 해윤의 목소리가 사실 지금 매우 걱정하고 있다는 걸 오랜 시간의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보다 호준이 어떻게 병을 알아낸 건지 모르겠다 말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윤진은 잠깐 망설이다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대답한다


"... 인자 괜찮을 줄 알고 야구장에 갔는디, 아직은 쪼매 힘들더만요.. 지는 괜찮은디 그 사람이 좀 놀랐는가봐요"
- 윤진아,
"괜찮어요 지는, 오늘 푹 쉬었고 약도 먹었고"
- 윤진아.


윤진은 저를 부르는 해윤에게 대답하지 않는다
단호하게 부르는 목소리에 지금 해윤이 하려는 말이 제 걱정만이 아니란 걸 알아차린다


- 우얄라고 그라노
"... 뭐가요..."
- 계속 이래 불안하게 살기가


전 아무것도 안했어요
아무것도 안 할 거예요


윤진은 울컥 해오는 말을 애써 삼킨다


"... 지가 뭘 어쨌다고 그러세요"
- 지금 호준이 상태 정상 아닌 거 니가 더 잘 안다 아이가 자가 겉으로는 뻥해보여도 지금 스무살인 상태로 서른 넷을 사느라 죽을 지경일기라 
그 갭 메꾸느라 안간힘으로 버티고 있는 거 니가 모를 리가 없을 긴데, 자 그냥 저래 살게 둘기가,
"....."
- 그라고 니도 지금 그대로는 안된다
"왜 안된대요"


결국 울컥 마음이 흘러나와버린다


"왜 이대로면 안된대요, 돌아오믄 뭐가 달라져요? 지금, 지금 좋으면 되는 거 아녀라?"
- ... 윤진아
"괴롭대잖어요, 돌아가는게 무섭다잖어요, 오빠도 기억하시지요 그때 그 사람이 행복했어라? 아니잖아요"
- ....


수화기 너머의 해윤은 침묵한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더 큰 부정에 윤진은 터질 것 같은 심장을 눌러참는다


- 윤진아
"....."
- 가가 기억 잃은지 일년이 다 되어간다, 어디를 다친 것도 아이고 이상이 있는 것도 아이고 그냥 지 마음을 지가 누르고 있은지가 일년이다
"...."
- 금새라도 스스로 놓아버려도 이상하지 않은 상탠기라, 그만 돌아올 때가 지났다, 니가 좀 도와야 안되겠나
"...."
- 저라다가 영영 부모님도 기억 몬하고 영영 살게 되믄 우얄기고, 기억 찾아야지 이제
"... 돌아가믄요..."


타이르는 듯한 해윤의 말을 듣고 있던 윤진의 뺨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룩 흐른다


"다시 그 사람으로 돌아가믄요,"


애써 감정을 억누른다
이미 수화기 너머에서는 다 알고 있을테지만 적어도 울먹이는 소리만이라도 들키고 싶지 않다는 알량한 자존심.

그저 이 상황을 모두 부정하고 싶다


"저래 웃지도 않을 거고 지 이름 불러주지도 않을 건데, 지가 왜요,"
- .....
"지금 저래된 거 저 때문인데, 돌아오믄 인자 옆에 있지도 못할 건데, 제가 왜 그걸 도와요"


싫어요.


마음으로부터 소리친다


- ... 윤진아


안쓰러움이 가득한 목소리에 가슴이 무너져내린다
이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하루만이라도 더 유예하고 싶은, 그 마음을 다 안다는 듯.
겨우 네 살 많을 뿐이면서 언제나 마치 모두의 어른인 것처럼 굴었던 스물넷의 해윤이
이 시간을 도저히 떠날 수 없다고 우기는 스무살의 저를 타이른다

이제 그만하라고.
돌아올 때가 지났다고.

....


억지부리고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날마다 이 순간이 언제 끝날까 하는 불안감을 놓을 수가 없다
언젠가는 그는 기억을 되찾을 거고
그러면 잠깐 꿈처럼 돌아왔던, 우리의 시간도 끝이 나겠지만, 

그렇지만,


"... 조금만요, 잠시만, 그냥 조금만 더 있다가요, 그러고 나서... 그러면.."
- ... 그라믄 니는, 니는 괜찮것나


걱정어린 목소리에 윤진은 멈칫 한다


- 니 병, 스트레스 받으믄 안된다, 지금도 간신히 버티는거 아이가? 준이도 준인데 내는 니가 더 걱정이다



오빠,


윤진은 생각한다


나 그 사람이랑 있으면 아프지 않아요,

내 손을 잡는 그 사람 손이 그렇게 따뜻했다는 걸 몰랐어요
나를 보는 그 사람의 눈빛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걸 보듯이 빛난 적이 있었다는 걸 잊고 있었어요
바스락 소리만 들려도 놀랄 것처럼 간절하게, 그렇게 나를 원해요 그 사람이,
그 사람이 나와 있으면 아프지 않대요

.... 그래서 나도 그 사람과 있으면 아프지 않아요


아프지만 아프지 않아요
심장이 찢어질 것처럼 아프다가도 그 손을 잡으면 다 괜찮아져요
다 괜찮은 것만 같아요 

지금의 이 시간이 있으면 나는 평생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사람 없이도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 이대로 조금만 더, 


말하지 못하는 윤진의 긴 침묵을 기다리던 해윤은 수화기 건너에서 깊은 한숨을 쉰다


- .... 약은 묵고 있나
"... 네, 걱정 마세요 시간 맞춰 먹고 있으니까"
- 니 불안하고 그라믄 안된다, 스트레스도 받으면 안되는 거 알제, 힘들면 바로 병원 나오고
"... 나중에요, 나중에 갈게요 오빠"


나중에요,
이 모든 시간이 끝나고 나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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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pril_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