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고
아무튼 이래저래 좋았던 거야 예아 ♬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차에서 내린다
어느새 어름인가 싶은 기운이 느껴지는 봄의 마지막이다
세차도 했고 옷도 갈아입었고 햇살도 따스한 것이
뽀송뽀송한 기분이다
기분 좋게 가게문을 열었는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
어리둥절해서 문 앞에 서 있자니
안쪽 주방으로 들어가는 문 앞에 나란히 서서 팔짱을 끼고 있던 남순과 정호가
어색하게 눈짓을 한다
왜?
입모양으로 묻는 이경에게 뭐라고 해야하나 고민하는 듯 말없이
그저 한손을 들어 가게 한쪽을 가리킨다
그제야 고개를 돌려보니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이야기에 열중한 여자 둘의 모습이 보인다
- 진짜?
- 그렇다니까요 진짜 급했나봐요 저 짠돌이가
- 지수씨도 너무 했다 삼십만원이나
- 절박하더라구요 그렇게 부르면 솔직히 안한다 그럴 줄 알았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키득거리고 있다
아주 내 사생활을 다 까발려라 니가 그러고도 내 핏줄이냐!
- 야! 한지수! 너 여기서 뭐해?
버럭 소리지르자 그제야 지수가 뒤돌아본다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나 싶어 화가 난 이경에게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나온다
- 뭐가! 내가 못 올데라도 왔어?
어휴 저 리틀 남경민 같으니
- 너 학교는 안 가?
- 오늘 공휴일이거든? 오빠 바보니? 니네도 그래서 오늘 일찍 끝난다며?
- 그럼 집에 가던가! 여기가 니네 집이냐?
- 이씨, 너 보러 온 거 아니거든 이 빙이경아!
저 싸가지 저거 진짜
이경이 열이 올라서 씩씩 대고 있는 사이
처음 듣는 말에 경민이 의아한 듯 묻는다
- 근데 빙이경이 뭐야?
- 아 그거요? 머리 비었다고 빈이경 그리고 빙신지..
- 야! 너 가! 당장 나와!
지수가 채 말을 마치기도 전에 이경이 질질 끌고 문 밖으로 나가버린다
- 읍.. 윽.. 야 오빠 너 왜 이래! 알았어 간다고! 가! 남순 오빠 담에 봐요!
지수를 문 밖으로 던져놓고 문을 닫아버린다
흥분을 가라앉히려 잠시 숨을 고르고 보니
가게 안에 남아 있던 경민과 나머지들이 황당한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다
괜히 민망하다
- 넌 여기서 뭐하냐?
채 정신이 다 돌아오지 않은 상태로 이 상황을 얼버무리려고
귀찮은 듯 경민에게 퉁명스럽게 한마디 던졌는데
가게 안 분위기가 급격하게 싸늘해진다
경민의 눈빛이 어이없다는 듯이 차가워지는 건 둘째치고
정호와 남순 마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왜? 내가 뭐?
아직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해하는 이경을 보니
저게 저러니 일곱살이나 어린애한테 빙이경 소리나 듣지 싶다
- 니가 오라 그래서 왔거든?
그때껏 한마디도 없던 경민이 한심하다는듯 말한다
아, 그래서 나 집에 가서 옷 갈아입고 왔지....
그제야 정신이 든다
아씨 쪽팔린다
되는 게 없냐 되는 게 오늘은 어째
그런 이경을 바라보던 경민이 한숨을 푹 쉰다
- 왜 오라 그랬는데? 가게에 문제 있는 건 아닐거고
- 어?
- 여기서 일 있는 거 아니지? 나갈 거면 빨리 나와
제 할 말만 마치고는 남순과 정호에게 고개를 까닥 하고 나가버리는 경민의 뒤를 이경이 좇아 나간다
인사도 없이 쪼르르 나가버리는 뒷모습을
아직도 주방 앞에 나란히 서서 보고 있던 남순이 정호에게 묻는다
- 쟤네... 사귀냐?
- ... 아닐 걸...?
=
아무리 작은 규모의 가게이고 매출이고 세금이고 할 게 없다고는 해도
'세금'이라던지 '환급'이라던지 하는 단어와 거리가 멀게 살아온 순수오이지 멤버들은
라면가게의 첫 세금 정산 앞두고 패닉에 빠졌다
그냥 다 내자니 뭔가 손해 보는 것 같고 그렇다고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으니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고
지훈의 사무실을 통해서 하는 방법은 없는지 아니면 세무사를 찾아가야하나 고민하던 때
이경이 경민을 데리고 나타났다
갑자기 주말마다 하루는 쉬어야겠다고 떼를 쓰고
평일에도 저녁 마감만 하면 사라지고는 해서
저게 요즘 연애 중인가 짐작하긴 했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인물의 등장에 둘 사이를 격렬하게 반대했던 정호는 물론이고
이경과 경민의 연애사에 그다지 관여하지 않았던 남순까지 놀라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 뭐냐?
당사자를 앞에 두고 물을 말이 아니란 건 알았지만
그래도 이미 튀어나온 말을 거둘 수는 없었다
안 그래도 새침한 경민의 표정이 더 속을 알 수 없게 차가워졌고
덩달아서 이경의 표정도 굳었다
- 뭐긴 뭐냐 경민이가 세무사니까...
- ... 그건 그렇다치고, 근데 왜 너냐?
퉁명스럽게 사람을 밀어내는 정호의 말에 경민은 조금 울컥했지만
옆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이경이 느껴져서 우선 한번 참기로 한다
경민은 그래도 곱게는 나가지 않는 어조로 정호에게 말했다
- 왜 그러는지는 알겠는데, 일단은 아무 사이 아니거든 이이경이랑 나
- 야!
- 헐
이경이 화들짝 놀라 소리치고 남순은 어이없어 하고 정호는 그럼 그렇지 란 듯이 헛웃음을 날린다
- 너도 내가 싫겠지만 나도 썩 편한 건 아니니까 그냥 세무사 한명 고용해서 쓴다고 생각해
어차피 필요하잖아 그러니까 내가 해준다고
그제야 세명의 남자들은 새삼 깨닫는다
그래 원래 남경민은 따박따박 저 할말 다 하는 인물이었다
심지어는 제가 불리한 순간에도 한마디도 지지 않는.
지금와 생각해보면 짜증은 나도 패기 하나는 인정해야할 것 같다
중간에서 이걸 어떻게 수습해야하나 이경과 남순이 어색해하고 있는데
경민과 서로 한참 노려보고 있던 정호가 픽 웃어버린다
- 대신 공짜로 해줘라 우리 돈 없다
- ... 애초에 기대도 안 했어
퉁명스러운 대화였지만 이정도면 서로 꽤 양보했다는 걸 안다
무슨 일 나는 거 아닌가 싶어 조마조마했던 남순이 바로
그동안 정리하다가 포기해버린 서류 뭉치를 들고 왔고
이걸 왜 이런 식으로 정리해놨냐고 경민이 잔소리를 하는 것으로
그렇게 경민이 이경의 세계에 도로 편입되는 것을 인정받았다
이경과의 관계가 아니었으면 사실 다시 만나거나 세계가 겹칠 일은 없던 경민을
작은 규모 덕에 썩 복잡하지는 않았던 세무 작업 동안 접하면서
정호와 남순은 의외의 점을 몇가지 발견했다
우선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꼼꼼하고 일을 잘한다는 점 - 덕분에 세금 환급받았다 -
싸가지가 없다고 생각했던게 알고보면 훨씬 솔직하지 못하게 다정해서 생긴 오해이기도 하다는 것
그리고 맺고 끊는게 얼음장처럼 명확하면서도 의외로 우유부단하기도 하다는 것
그러니까 예를 들자면, 그들을 가장 의아하게 했던 점이기도 한데,
처음 '우리는 아무 사이 아니다' 라고 선언했던 것과 달리
이경이 연락을 하면 정말 굉장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 한 아무 말 없이 꼬박꼬박 경민이 찾아왔다
그렇다고 이경이 뭐 대단하게 매달리는 것 같지도 않은데
경민은 늘 같은 새침한 표정으로 라면 가게에 와서 이경을 기다리곤 했고
기억하는 한 한번인가 두번인가 경민이 일 때문에 오지 못했을 때는
나눠먹어, 라면서 평소보다 더 딱딱하게 굳은 태도로
누가봐도 직접 구운 어딘가 삐뚤한 모양의 과자라던가 초콜렛을 한 상자 내놓아 모두를 놀래키기도 했다
그러니 오늘처럼 이경이 근무를 잽싸게 마치고 어디로 사라지면
아, 경민을 만나기로 했나보다 - 라고 자연스럽게 경민을 위한 커피 한잔을 내리는 게 그새 당연해질 정도였다
그런데 더 이해가 안되는 건
여전히 그들이 그 '아무 사이도 아닌' 사이였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만나서 소위 '데이트'를 가긴 가는데
아직도 - 가게 근처에서만 그러는 건지도 모르지만 - 한발짝 떨어져서 걸었고 대화도 온통 독설 투성이였다
대체 둘은 무슨 관계인 건지 남순과 정호는 오늘도 이해가 되지 않아서 머리가 아프다
이경은 분명 마음이 있는 것 같고 경민도 썩 없진 않은 것 같은데
저 어색한 관계를 대체 언제까지 끌고 가려는 걸까
복잡하기가 이미 포기한 채 듣는 수학 수업보다 더하다
- 진짜 사귀는 거 아닌 거 맞지?
- ..... 내가 들은 것만도 까인 횟수가 두 손가락이 넘는다
- ... 근데 저거 뭐냐...
- .... 빙이경?
니네가 혹시라도 잘되면.....
이이경 니가 잡혀 산다는데 내가 오백원 건다...
=
- 봤어?
- 너도 봤어?
무심하게 영화관 로비 의자에 앉아 팜플렛을 뒤적이는데
갑자기 한떼의 여자애들이 소곤소곤거리며 지나간다
.... 흘리고 다니지 말라니까 진짜...
안봐도 누구 때문인지 알겠다
경민은 괜히 마음이 불편해진다
고개를 들어보니 아니나다를까
한손에 팝콘을 한손에는 콜라 두잔을 든 이경이 걸어오고 있다
진짜 뭘 믿고 그렇게 생긴거니 짜증나게
그냥 물빠진 회색 청바지에 팔을 걷은 흰 셔츠 차림인데도
팝콘을 들고 걷는 게 무슨 광고 속 같다
아씨... 내가 저런 옷 좋아하는 건 또 어떻게 안 거야...
이경이 그걸 알아서 입었을리는 없지만 괜히 취향 저격당한 것 같아서 또 억울해진다
아 진짜 남자 얼굴 보고 안 만나려고 했는데 이젠
괜한 생각에 뾰로통해진 경민은 다가온 이경이 건넨 콜라를 성의없이 받아든다
잠시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뚱한 표정으로 성의 없이 읽지도 않는 것 같은 팜플렛만 뒤적이는 경민의 눈치를 본다
대체 무슨 이유인지 예측이나 되면 기분을 풀어주기라도 할텐데
이렇게 갑자기 훅 가라앉으면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이경은 눈치를 슬쩍 보다가 경민에게 속삭인다
- 야 쟤네 봐라 너 쳐다보고 가는 거
뭐가, 싶어서 고개를 들어보니 저를 쳐다보고 가는 남자 둘이 보인다
사실 저를 쳐다본 건지 그냥 저희 쪽을 바라본건지 모르겠다
경민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이경이 다시 속삭인다
- 너 오늘 되게 예쁜가보다 쟤네 나 부러워하는거 같지 않냐? 너 진짜 이쁘게 하고 있는거 보면 기절하겠다
제 기분을 풀어주려고 너스레 떠는 걸 아는데도
경민은 어쩐지 썩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다
... 너 쳐다보고 있는 쟤네는 안 보이냐 이 멍청아
그리고 보통은 질투를 하는 거잖아! 자랑스러워하는 게 아니구!
이 바보야! 싶어서 째려보려고 고개를 돌렸는데
저를 정말로 예쁘다는 듯 보고 있는 이경의 눈과 딱 마주친다
괜히 부끄러워져서 아무 말 없이 콜라를 집어 들고 쪽쪽 빤다
뭐라고 말이라도 하지 아무 말도 없으니 어색하다
힐끔 고개를 드니 저를 뚫어지게 보고 있는 이경과
그 뒤로 이경을 보고 지나가는 여자들이 보인다
니네가 아무리 그래도
쟤는 나만 보거든?
부럽지?
쓸데없는데서 괜히 뿌듯해진다
그 눈빛을 보니 마음이 사락 풀린다
아 난 진짜 갈대같은 여자였나봐
한참이 지나도 이경이 저에게서 눈을 떼질 않는다
시선이 느껴져서 조금 얼굴이 달아오르려고 한다
얘가 오늘 왜 이런대 싶어 시선을 피하면서 퉁명스럽게 묻는다
- 왜
- 사귀자
- 싫어
하여간 변한 게 하나도 없다
갑자기 이렇게 들이대는 것부터
- 영화 몇 시 시작이냐?
거절당해도 바로 덤덤하게 일상적인 대화로 돌아가는 것까지
8년 전과 똑같다
이제는 달라졌다는 걸 아는데도
머리로는 아는데도
이럴 때마다 경민은 문득 불안해진다
시작이 같으면 끝도 같아서
시간이 지나면 그때처럼 저를 떠나버릴까봐
멈칫 다가서려는 마음을 멈춰버리게 된다
경민은 애써 불안한 마음을 감추고 시간을 확인한다
- 5분 남았네
- 들어가자 그럼
제 핸드백을 먼저 들고 일어서는 이경을 말없이 간절히 바라보자
이경이 왜? 란 표정으로 싱긋 웃으며 시선을 맞춰온다
네 눈빛은 진심인데
말해줘 제발
눈으로는 아무것도 전달되지 않는다
경민은 이내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고개를 젓는다
- 아냐, 가자
=
- 경민..
채 이름을 다 부르지 못하고 말을 줄인다
갑자기 조용해지길래 그런가보다 했는데
창문 쪽으로 머리를 푹 숙이고 자고 있는 경민을 발견한다
요즘 일이 많다고 지나가듯 한마디 하더니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다
이렇게 차에서 잠든 일은 처음이다
이경은 잠시 고민하다가 시계를 보고 아직은 괜찮겠지 생각한다
경민의 머리를 조심히 제자리에 돌려 놓고
뒷자리에 두었던 가디건을 집어들어 덮어준다
약간 불편한지 꿈틀한 경민은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든다
혹시 깨운 건가 싶어 움찔 놀랐던 이경은
경민이 편안해진 걸 보고나서야 비로소 숨을 쉰다
이렇게 가만히 있는 모습은 참 오랜만인 것 같다
눈을 감고 새근새근 잠든 경민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경은
손을 들어 조심스레 경민의 얼굴을 따라 선을 그려본다
볼록 튀어나온 이마
차분히 감긴 눈
그림처럼 오똑 솟은 코
도톰한 입술
귀엽게 드러난 턱
하얀 피부를 쓰다듬고 싶어져서 손을 대려다
으음 - 하고 뒤척이는 바람에 멈칫한다
대체 뭐가 문제일까
이경은 평온히 잠든 경민을 앞에 두고 두려워진다
최선을 다해보리라 다짐했다
전처럼 실수하지 않고 제 마음대로 하지 않고
경민의 마음을 얻을 때까지 최선 다해 노력해보리라
그런 제가 내민 손을 거절하지 않는 경민은
다만, 마지막 말은 해주지 않았다
장난처럼 말했지만 장난은 아니었던 자신의 고백에만은
늘 단호하게 싫어.라고 받아주지 않았다
만나자는 말에 거절을 한 적도 없었고
자신의 서툰 말들에 자주 웃기도 했고
가끔 스치는 손길에 설레기도 했다
아주 가끔 있는 일이긴 했지만 자신이 좀 피곤해하는 날이면
제법 나긋나긋하게 자신의 마음을 풀어주기도 했다
제 마음은 이미 여러번 말했으니 알고 있을테고
경민의 마음도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런데 왜 그 말에만 유독 그렇게 잔인하게 구는지
이경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나란히 걷고 있지만,
이전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이전과 같이 좋아하는 곳에 가고
이전과 같이 시간을 보내고
이전처럼 눈빛을 주고 받지만
그것만으로는 불안했다
이런 얘기를 하면 아마 친구들은
그게 사귀는 거지 뭘 그렇게 그 말에 집착하느냐,고 구박할테지만
이경은 경민으로부터 직접 그래 좋아.란 말을 듣기 전에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이미 한번 돌아와 시작된 관계라 그런지
지금은 괜찮아.라는 확인은 꼭 받아야만 할 것 같았다
뭔가 모자란 건가
문득 다이아몬드 일 캐럿,을 떠올린다
설마 그게 이유는 아니겠지만,
그 이후로 경민이 그 이야기를 다시 꺼낸 적은 없지만
자신이 뭔가 부족한건가 그래서 받아주지 않는 건가 싶어 불안해진다
벌써 6개월 째다
이렇게 애를 태운지가
이경은 인내심의 한계가 오는 중이었다
처음에도 이렇게 경민이 애를 태웠던 지라
이번에도 그러는 건가, 한달이면 되려나 했더니 벌써 반년이라니
그 시간 동안 매달리고 있는 저도 대단하지만 그걸 버텨내고 있는 경민도 지독하다
이 기집애야, 누구 말라죽는 거 보고 싶냐
전처럼 한 대 얹어맞을 각오 하고 그냥 확 덮쳐버릴까 싶다
그러면 어떻게든 결론이 나겠지
설마 쳐죽이기야 하겠냐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로 결심한 이경이
아직도 눈을 감고 있는 경민의 입술에 가까이 다가가면서 스륵 눈을 감는데
갑자기 뭔가 이마에 딱 걸려서 더 움직일 수가 없다
이상한 느낌에 눈을 뜨자
너 지금 뭐하냐? 란 식으로 큰 눈을 깜빡거리고 있는 경민이
이경의 이마를 검지 손가락으로 딱 버티고 있다
- 뭔데 지금
- 아.. 그게..
차가운 경민의 목소리에 변명을 하려다 이경은 문득 화가 난다
내가 뭐 못할 짓을 한 것도 아니고! 예전에도 다 했던 건데! 누가 무방비하게 자고 있으래?!
- 내가 뭐 어쨌는데
오히려 불퉁해진 목소리로 시선을 피하는 이경에게
황당하다는 듯 경민이 쏘아붙인다
- 지금 키스하려고 했잖아!
- 그래! 했다! 왜!
- 누가 허락했다고! 니 맘대로!
- 그러니까 사귀자고!
- 싫다니까!
차 안에서 귀가 멍멍할 정도로 서로 소리를 지르다 지쳐서
씩씩거리며 감정을 추스린다
그동안은 이러고도 아무렇지 않은 듯 넘어갔지만 오늘은 섭섭하다
- ... 왜 싫은데
이경이 심각한 목소리로 묻지만
경민은 토라진 듯 팽 돌아 앉는다
이 기집애야 말을 해야 알 거 아냐 말을 해야
이경은 속상하고 화가 나서 쌓였던 감정을 내뱉고 만다
- 내가 그렇게 싫으면 만나러는 왜 나오는데
그래 내가 너보다 많이 모자라는 건 아는데
대학도 안 나오고 돈도 없고 뭐 그런 거 다 알겠는데
... 너 다이아 일캐럿 얘기 한거 때문에 그런 건 아니지? 내가 그거 못 사줄거 같아서?
그제야 확 돌아보는 경민의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하다
돌아볼 땐 금새라도 한대 칠 기세더니만
꽉 다문 입술을 바들바들 떠는 게 당장 울어버릴 것 같아서 덜컥 겁이 난다
울고 싶은 건 전데 왜 경민이 그러는지 모르겠다
- ... 내가 당장 다이아는 못 사주지만 ... 진짜 잘 할게
남경민 너 딱 지금처럼 이쁘게 내가 아껴줄게
그러니까 나랑 사귀자고 어?
나름대로 진심을 담아 진지하게 한 말인데
경민의 굳은 표정이 풀릴 줄을 모른다
- ...싫어.
그래도 이번엔, 다르겠지 기대하고
진심을 다해 말한 건데 또 같은 대답에 맥이 풀린다
- ... 넌 대체 내가 왜 싫은 건데
- ... 그러는 넌 나랑 왜 사귀려고 하는 건데
진짜 저가 싫어서 저러는 거면 최선이고 자시고 그만 접어야겠다 싶어서
심각하게 물어본 건데 경민은 오히려 황당한 질문을 한다
이제 와서 저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 그걸 몰라서 묻냐?
말을 돌리려는 건가 싶어서 퉁명스럽게 대답하니
경민이 이글이글한 눈으로 금새라도 울 것처럼 쏘아붙인다
- 그래! 몰라서 그런다! 말을 안 하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
그동안 저가 보여준 행동들은 다 모르겠다는 건가 싶어 울컥한다
말을 내뱉고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 씩씩거리고 있는 경민에게
이경도 버럭 내지르고 만다
- 그걸 뭘 말로 하냐! 당연히 널 좋아하니까 그러지!
꼭 말을 해야알아? 어? 그래! 내가 너 좋아한다고! 이이경이 남경민 사랑한다! 됐냐?
제 맘을 몰라주는게 화가 났어도 하고 보니 별말을 다 해버렸다 싶어 쪽팔리고 이걸 어떻게 수습해야하나 싶다
그런데 갑자기 경민이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린다
그렇게 대판 싸우고 헤어질 때도 눈물은 안 보였던 경민이라
이경은 경민의 눈물을 보자마자 순식간에 화가 났던 건 잊고 어쩔 줄 몰라 한다
- ..왜? 왜 울어 응? 내가 소리 질러서 그래? 어? 야 내가 잘못했어 응?
- ... 어떻게 그 말을 하는데 육개월이 걸리냐...?
- 어?
예상치 못한 말에 이경이 어벙벙 해있는데
경민은 여전히 흘리고 있는 눈물을 손으로 대강 닦으면서 원망스럽다는 듯 중얼거린다
- ... 사랑한다는 말 듣는데 반년이나 걸린 여자는 세상에 나밖에 없을거야...
아니다.. 8년인가... 아씨... 진짜... 억울해....
훌쩍이면서 중얼중얼하는 경민의 말을 듣고서야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다
저가 불안한 것만 생각했지 경민도 불안해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자신에게 경민의 확신이 필요했듯이 경민에게도 자신의 확인이 필요했던 걸 이제 알겠다
이경은 아직도 자꾸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는 경민을 가만히 끌어안는다
- ... 이거 놔
- 안돼 못 놔
몸을 비틀어 빠져나가려고 하는 경민을 더 꼭 끌어안는다
자꾸만 벗어나려고 하는 경민을 그제야 이해한다
이 솔직하지 못한 여자가 자신만큼이나 두려워하고 있다는 걸
아니 두렵기 때문에 솔직하지 못하다는 걸
그걸 알아차리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다
너도 나도 서로 앞으로 참 피곤하겠다
피식 웃은 이경은 경민에게 다정하게 속삭인다
- ... 경민아 사랑해
매일 말해줄게 네가 듣고 싶은 만큼 언제든지
네가 지겨워서 다시는 듣고 싶지 않다고 하는 날이 와도, 그래도 널 사랑해
처음에는 어떻게 시작했는지 몰라도 이젠 나는 네가 없으면 안돼
그러니까, 날 받아줘. 좋아. 라고 말해줘 어서
내게도 네 말이 필요해
다정한 속삭임에 절박한 마음이 묻어나와
경민은 자신도 모르게 소름이 돋는다
그토록 듣고 싶었던 그 말을 들었는데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꼭 목소리를 잃어버린 것처럼 소리가 나오질 않아 대답을 하기 위해 억지로 성대와 혀를 움직인다
- ... 응... 좋아...
언젠가처럼 제 목소리가 아닌 것 같은 소리
개구리라도 삼킨 건가 싶어서 혼자 창피해졌는데
저를 안고 있는 이경이 푸스스 웃는 게 느껴진다
- ...왜
조금 부끄러워서 퉁명스럽게 물으니 이경이 그제야 안고 있던 팔을 풀고
경민의 얼굴을 조심스레 들어 한 손으로 눈물을 닦는다
- 너 우니까 좀 못 생겼다
이경의 웃음 섞인 말에 경민의 얼굴이 더 붉어진다
오늘 마스카라 뭐 발랐더라? 워터프루프였나? 나 울면 코 빨개지는데 눈화장 번졌겠지?
당황해서 허둥지둥 고개를 숙이고 핸드백을 집어들려는데
이경이 재빨리 경민의 얼굴을 도로 감싸고는 꼼꼼하게 셔츠 끝으로 눈물 자욱들을 닦아낸다
- 거기 묻으면 안 지워져
- 괜찮아
말리는 말은 아랑곳 않고 한참 동안 경민의 얼굴에만 집중한다
- ... 자 됐다
- ... 아 고마워...
저를 또렷이 보고 있는 이경의 시선에 부끄러워져서 고개를 돌리려는데
이경이 놓아주지 않는다
그리고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왜?
눈짓으로 물으니 이경이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씩 웃는다
- 그러니까 이제 우리 사귀는 거 맞지?
- ...뭐... 그렇지...
얘는 왜 이렇게 창피한 질문을 하면서 고개도 못 돌리게 하는 걸까
그동안 아무렇지도 않았던 차 안이 너무 비좁고 어색하다
경민이 벗어나보려고 꼼지락거리는데도 아랑곳 않고 이경이 말을 잇는다
- 근데 너 아직도 좀 못 생긴거 같아
아씨 뭐 어쩌라고!
복수하는 것도 아니고!
금새 발끈해서 표정이 변하는 경민을 가만히 보던 이경의 눈이 순간 깊어지더니
스윽 가볍게 경민에게 입맞춘다
경민은 저도 모르게 눈을 감는다
쪽.
가볍게 입술을 떼고는 감은 경민의 두 눈에 키스한다
- .. 이제 울지 말고
대답을 바라지 않는 낮은 목소리가 경민에게 들린다
그래도 뭔가 대답해야할 것 같아 입을 여는데 그대로 이경이 파고든다
거칠었다가 다시 부드럽게 자신을 리드하는 이경에게 응하려다가 경민은 순간 시간을 잃어버린다
한참 시간이 흐르고 이경이 부드럽게 경민의 입술을 마지막으로 가볍게 깨물고는 놓아준다
그때서야 경민은 제대로 쉬지 못했던 숨을 내뱉는다
숨이 돌아오고 나니 저는 이경에게 팔을 두르고 매달리다시피한 자세이고
그런 제 허리를 감싸고 있는 이경의 눈이 반짝거리고 있다
- 너 진짜 너무 예쁘다 지금
민망해져서 스윽 고개를 돌리는데 이경이 말한다
- 사랑해 남경민
- ... 나도 사랑해 이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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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투경은 행쇼! 마지막은 대망의 로코로 마무리!
7화 쓰고 나서 몸이 안 좋아서 뻗었다가 오늘 정신 차려서 쓴 건데 그래서인지 약간... 캐붕의 느낌이 든다고 한다;;; 심하진 않지...?;;;
나냔이 생각한 건 여기까지...야 마음에 들길 바래
+ 많은 냔들이 찬경이 좋아해줘서 기뻤어 ㅠ 나냔도 찬경이에게 좀 애정을 가지고 썼거든 나냔이 좋아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감정을 설득력있게 쓸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정말 멋진 남자이길 바랬어 무작정 못되게만 구는게 아니라 이왕이면 인정해줄 만한 호적수였으면 하고
언젠가는 찬경이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기회가 된다면 말이야
++ 언젠가 결말을 납득을 해줄지 모르겠다고 썼는데... 찬경이의 행동이 너무 보살처럼 보이지 않을까 또 한편으로는 너무 이기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걱정이 됐거든 이경이나 경민이도 그렇고
+++ 그리고 아마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을거라고 생각하지만 정호*나리 편 어딘가에 보면 강주가 이경에게 경민이 말고 기억나는 여자애가 있냐고 하니까 이경이가 그 얘기가 여기서 왜 나오냐며 짜증내거든 - 그 말에서부터 시작했어 이 모든 이야기는. 라면가게에서까지 뭔가 있구나, 강주가 알정도로 아직도 뭔가 있는 사이인 투경, 이란 느낌으로 설정을 쌓아가다보니 여기까지 ...
쨌든 즐겁게 봐줘~ 즐겁게 봐주면 그걸로 됐어 난! 읽어주는 냔들, 댓글 달아주는 냔들 고마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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