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맨인블랙의 리더 윤설찬이 새롭게 꾸리는 프로젝트 밴드 "30 seconds to Mars"의 데뷔 공연, "Diverse Aspects of Love"가 지난 0월 00일 000아트센터에서 열렸다. 동명의 데뷔 앨범 발매 전 팬들과 먼저 만나는 자리로 마련된 공연에서 윤설찬을 필두로 한 30 Seconds to Mars 는 콘서트 제목대로 다양한 사랑의 일면을 보여주며 성공적으로 데뷔 공연을 마쳤다.
맨인블랙의 잠정적 휴식기 선언 이후 돌연 모든 연예 활동을 중단하며 여러 소문에 휩싸였던 윤설찬은 공연 중간 진행된 팬들과의 문답 시간에서 "지난 1년간 다양한 곳을 여행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면서 이를 바탕으로 시작된 앨범이라고 밝혔다.
밴드의 멤버로 참여한 김하늘(베이스, 24), 김명규(기타, 22), 류진욱(드럼, 22)은 윤설찬과 데뷔 이전부터 오랜 지인 관계로 언젠가 같이 연주하면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구상이 발전하여 이번 프로젝트 밴드 활동으로 연결되었다
"동네 친구들끼리 소소하게 일상에 대해 놀아보는 느낌으로 시작했다. 아무래도 20대 남자애들이 모여서 할 수 있는 이야기의 가장 큰 축이 "사랑"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앨범의 곡들도 그렇게 채워지게 된 것" 이라고 밝힌 윤설찬의 설명처럼 30 Seconds to Mars의 데뷔 공연에서 공개된 곡들은 사랑의 첫 떨림부터 이별의 처절함, 과거를 후회하는 쓸쓸함까지 동시대를 살아가는 2030 리스너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다.
소박한 기타 반주와 단순한 가사의 고백송을 부르는 남녀의 그림자로 공연의 시작을 알린 30 Seconds to Mars 는 강렬한 비트로 몰아치는 연주의 "고백", "Play", "It's all about Love" 로 분위기를 뜨겁게 달군 뒤 윤설찬의 처절한 보컬과 현란한 키보드가 돋보였던 "난 너를 사랑해", 기타리스트 김명규의 곡으로 밝혀진 "왜", 잔잔한 피아노 팝 발라드 "긴 시간의 끝" 등을 연달아 공연하며 차분한 가운데서도 관객의 호흡을 놓지 않는 노련한 공연을 선보였다
이후 "Come back to me", "하늘을 날아" 등 현란한 연주가 인상적인 곡들로 관객을 객석에서 모두 기립하게 만든 30 Seconds to Mars는 그동안 팬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담아 윤설찬이 직접 작사했다는 "Dear My Friend"를 부른 뒤 윤설찬의 공연에서 늘 등장하는 "선잠"을 마지막 앵콜 곡으로 부르면서 데뷔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지난 솔로 2집 발매 후 1년 반만에 예상치 못한 프로젝트 밴드로 컴백한 윤설찬은 이날 새롭게 발표된 10곡 중 9곡의 노래를 작곡, 5곡을 작사하면서 자신의 음악적 역량을 극대화하여 뽐냈다
특히 일렉트로닉을 기반으로 한 밴드 음악을 훌륭하게 소화해내면서 자신이 특정 장르에만 얽매이지 않는 작곡가임을 증명하였으며 이전의 정형화된 '아이돌식' 가사에서 벗어나 세밀히 관찰한 일상의 모습에 기반하여 찌질하기까지 한 사랑에 관한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생활 밀착형 가사로 한단계 성숙한 음악 세계를 드러냈다.
콘서트 이후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윤설찬은 "새로운 시도를 팬 여러분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줄지 떨린다" 면서도 "현재를 살아가는 자연인 윤설찬에 가장 가까운 모습이다. 같은 시간을 살고 있는 동년배의 리스너라면 반드시 이 앨범에 공감해주실 것"이라고 은근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콘서트에서 발표된 곡 중 멤버 개인 사정으로 수록되지 못한 오프닝 곡 고백송(무제)를 제외한 9곡은 내달 00일 정규 앨범 "Diverse Aspects of Love"에 수록, 발매될 예정이며, 우선 차주 00월 00일 첫 디지털 싱글 "고백"을 발표하며 활동의 신호탄을 쏘아올릴 예정이다.』
- .... 그러니까 이게 너라고...?
- ... 말씀드렸잖아요.. 지난번에
보도 기사를 읽고 있던 아이패드를 탁,소리가 나게 책상 위에 내려놓는다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선태의 눈길에 선우는 긁적, 멋쩍게 대답한다
- 동네 친구랑 간단히 뭘 한다며, 어?
분명 선우가 지나가는 말로 자신에게 말하긴 했었다
요즘 통 바쁜 것 같길래 뭐 하고 다니는 거냐고 묻자
마치 오늘 저녁 메뉴는 뭐예요, 처럼 일상적인 어조로
그냥 동네 친구랑 간단히 밴드 같은 걸 하고 있다고.
공부나 해야하는 일에 지장을 줄 정도로 할 것 같진 않아서,
자신이 아는 이 녀석은 그럴 놈도 아니어서 그러냐, 나중에 공연하면 불러라
하고 말았는데.. 이건 뭐...
- 넌 이게 간단히냐? 어? 그냥 동네 친구가 윤설찬이야?
- 동네 친구... 맞아요 간단히.. 였고...
조금 억울하다 처음엔 정말 간단히. 였으니까
그저 일년에 한번 정도 공연을 서는 수준으로 연습하고 모이는 정말 동네 밴드였고
그 와중에 가끔 설찬이 키보드로 연습에 끼어드는 정도였을 뿐이다
처음 음반을 내볼까,하는 아이디어도 아마 자연스럽게 떠오른 거였다
이렇게 공연만 하고 흘러보내기 아쉬우니 몇장 찍어서 우리들끼리 소장할까? 하는 낄낄거리는 아이디어 정도
그때 이미 뉴질랜드에 머물고 있던 설찬과 서울에 있던 나머지들 간의 작업은 천천히 진행되었다
서로 홈레코딩을 한 음원의 초기버전을 공유하면 설찬이 이리저리 만져서 붙여보고
그 완성본을 들으며 자기들끼리 즐거워하는 수준이었을 뿐이다
데뷔, 같은 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선우에게는 더더구나 그랬다
예상했던 것 보다 결과물이 괜찮았고,
그래서 본격적으로 해보는 건 어때,라는 의견에까지 발전했을 때도
흥분했던 건 명규, 진심으로 추진하려고 했던 건 설찬.
자신은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발 디딜 생각 같은 건 없었다
모두가 원한다면 도움은 줄게 하지만 내 자리는 아니야. 하는 방관자
그랬는데...
- 근데 김하늘이 너냐? 누구 이름이냐?
- 아.. 제 친구가... 예명으로 쓰려다 만 이름이요
- ... 허허... 참...이렇게까지 해야했냐? 가짜 이름까지 써가면서
도저히 지금 자신 앞에 서있는 단정한 외모의 미소년과
동일 인물이라고 매치가 안되는 짙은 선글라스를 쓴 무표정한 인물의 사진을
몇번이나 비교해서 번갈아 보던 선태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묻는다
- ... 이렇게 해야 제대로 하는 거라서요..
- 뭐?
숨겨뒀던 욕망을 깨달은 건 네 눈을 본 이후
언제까지나 착한 정선우의 세계에 머물러서는
언제든지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는 네게 닿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모든 사람의 기대를 배신하고
내 자신이 바라는 것에만 충실한
나쁜 놈. 으로
예전이라면 널 위해 한 발 물러섰겠지만
내가 원하는 것 같은 건 묻어뒀겠지만,
도망치려고 하는 너의 바람을 들어줄 수 없어 이제
나는 이제 다른 세계에 살기로 결정했으니까
그렇게 너에게로 한 발.
- ... 안 잡혀줄 거 같아서요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한숨쉬는 허탈한 선우의 말에 선태는 고개를 갸우뚱 한다
- 집에서는, 아셔?
- ... 숨길 방법 있나요 .. 일단 알긴 하세요
- 뭐라셔?
- ... 한번일거라고 생각하시는 거 같아요 곧 국시니까.. 인턴도 그렇고
하기사,
선태는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이야 앞으로는
- 열심히 해봐야죠 뭐 그냥
- 국시는?
- 봐야죠 국시도
무덤덤한 선우의 대답에 황당하다는 듯 선태가
화들짝 놀란 제스처를 취하며 뒤로 물러선다
- 이 놈 봐라? 남들은 머리 터지게 공부해도 될까말까인데, 뭐? 국시도 봐야죠?
국시가 무슨 니가 보고 싶다고 하면 봐지는 애 이름이야?
너 같은 놈이 국시 봐서 의사 된다고 그러면 누가 병원 와서 너 같은 놈 믿고 진료를 받겠냐? 어?
- ... 쉽게 얘기하는 건 아닌데
선우가 힘없이 웃는다
- 국시 준비는 쭉 하고 있어요. 형이 Fail 만 안 주시면 졸업은 할 수 있구요
- 어쭈, 협박이냐?
- ... 두 마리 토끼, 잡기로 했거든요 어쩔 수 없어요
- 그래서? 점수 챙기러 온거야 지금?
퉁명스런 선태의 응대에 말없이 복잡한 표정으로 웃기만 한다
저하고 싶은 대로 다하고 있는 주제에
저런 모든 걸 잃은 표정이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툭,하고 핀잔을 준다
- 너 지금 여기서 이렇게 노닥거릴 시간 있어? 안 바쁘냐?
- 그러게요
- 환자는?
- 오겠죠...
- 오겠죠? 연락은?
선우는 그저 고개를 젓는다
- 뭐야? 이렇게 일을 벌려놓고, 연락이 안돼?
- 그러게요
- 일부러 판까지 깔아줬더니 뭐야?
선우가 후후, 하고 웃는다
- 알아요, 판 깔아주신거
- 근데 대체 뭐가 틀어졌는데?
- 그러게요...
- 그놈의 그러게요 소리는 좀 집어치우고!
무덤덤한 선우의 태도에 짜증이 난 선태가 버럭,한다
그제야 무슨 말을 할 듯이 볼을 두어번 살짝 부풀렸던 선우가 천천히 입을 연다
- ... 시간이 필요하대요
- 어?
무대를 마치고,
분명 완벽했다.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무대 뒤로 두근거리며 들어갔을때
마주쳤던 건
어쩔 줄 모르고 그저 나나 옆에 불안하게 선 세이와
그리고
눈물.
무표정한 얼굴에 멈추지 않고 흘러내려서
모두를 당황시켰던 나나의 눈물.
조금이라도 웃어주었다면
그랬다면 이렇게까지 불안하지는 않았을텐데
- 김나나, 괜찮아?
당황해서 묻는 자신을 그제야 알아차린 듯
멍하던 눈에 초점이 돌아온 것도 찰나
순식간에 두려움에 휩싸였다가 떨리듯 일렁이다 다시 멈췄다
- 정선우.
- 응
- ....
대답을 기다렸지만 나나의 입술은 다시 떨어지지 않았다
여전히 시끄러운 무대 위 소음 속에서도 정적이 흐르는 것 같았다
한참 후에야 나나는 그저 고개를 저었다
차마 제 마음에 대한 답같은 건 묻지도 못했다
무슨 말에도 제대로 반응하지 않고 내내 생각에 빠져 멍하니 있던 나나는 그렇게 어떤 답도 주지 않고 돌아갔다
그저
[연락할게]
그 문자 하나에 매달려서 벌써 일주일.
당장 닥친 앨범 녹음에 정신없이 돌아가는 일정 속에서도
혹시나 싶은 생각에 여기 와서 기다리고 있는 자신이 참으로 한심스럽지만.
- ... 하... 부담스러운가봐요
- 하기사 갑자기 세계를 바꾸겠다며 들이대는데 당황하기도 했겠지 너 낌새는 알려주긴 했던 거야?
- 그러게요
- 자꾸 같은 말 반복 할래?
- ... 진짜 그거 말고는 몰라요 저도
- 그걸 그런다고 그냥 보냈어? 너 뭐야?
- 그러게요
- .... 관두자 똑같은 소리,
선태가 진저리를 내며 손을 내젓는다
선우는 고개를 숙이고 프스스 힘없이 웃는다
- 그래서 무슨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고
- ... 정작 잡으려는 토끼가 손에 안 잡히네요
으쓱 하는 어깨가 영 힘이 없다
- 오늘 오기는 오는 거냐?
너는 대답 들을 게 있는 놈이니 기다린다치고
나는 더 못 기다려. 야간 진료 열어주고 기다린 것만도 특별 대우인데
- ... 오긴 올거예요 조금만
똑똑, 하는 노크소리와 함께 살며시 문이 열린다
- 죄송합니다 늦었..
조심스럽게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서던 나나가
선태 건너편에 걸터앉아 있던 선우를 발견하고 멈칫,하더니
이내 무덤덤하게 고개를 까닥여 아는 척을 한다
선우도 멋쩍게 인사를 하고 뒤로 조금 물러선다
- 어서 들어와요, 많이 늦었네
- 아.. 죄송해요...
- 조금만 더 늦게 오면 문 닫고 가려고 했어요 난 누구처럼 인내심이 깊질 않아서
영 뼈가 있는 말에 나나가 움찔한다
뒤에서 그걸 알아챈 선우도 차마 어떻게 끼어들수는 없어서 움찔,하고 만다
그런 둘을 한꺼번에 스캔한 선태가 안되겠다는 듯 짧게 고개를 절레,하더니
표정을 바꿔 상냥하게 묻는다
- 속은 괜찮아요?
- ..네
- 약이 독하거나 하진 않죠? 약은 적당했어요?
- .. 그런 것 같아요
- 최근에 속이 쓰리거나 배가 당기거나 한 적은 없고?
- ..네
- 그래요
나나의 짧은 대답에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고 뭔가 차트에 적던 선태가
계속 차트를 보면서 기습적으로 묻는다
- 그래서, 정선우 선생은 어땠어요?
뭔가 두루뭉실하게 과녁이 정확하지 않은 화살을 받은 것처럼
나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눈치를 본다
그런 나나를 대답을 재촉하듯 보던 선태가 뒤쪽에 초조하게 선 선우에게 버럭한다
- 이거 봐, 환자가 대답 못하는 거. 너 하라는 건 안하고 어디서 쓸데없는 짓을 하고 다니는거야!
- 형.
- 너 의사가 우습게 보여?! 내가 분명히 제대로 안하면 실습 점수 없댔지?!
아니 점수가 아니어도 의사가 환자 우선이어야지 그런 태도로는 절대 안돼 낙제야 너
그렇게 환자에 대해서 책임도 안지는 태도로 무슨 의사가 되겠다고!
환자에 대해서 아무렇게나 생각하는 것도 아니었고
한눈 파느라 그런 것도 아니었고
자신은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갑자기 예고도 없이 불같이 화를 내는 선태의 기세에 눌린 선우는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차마 꺼내지 못한다
약속이라도 한 듯이 침묵하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본 선태는
냉정한 목소리로 선우에게 일침을 가한다
- 그렇게 안일하게 의사되겠지,하는 놈한테는 혜림이 못 맡겨 너 같으면 지금 상태로 혜림이 책임질 수 있겠어?
- 형! 그건...
예상치 못한 공격에 선우가 울컥 해서 항변을 하려다 옆에 선 나나를 의식한 듯 애써 참는다
치밀어오르는 걸 참으려는 듯 꼭 쥔 주먹이 파르르 떨린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격렬한 상황에 당황해서 가만히 서 있던 나나의 눈에
그 떨림이 걸리고, 그제야 작은 목소리로 선태에게 말한다
- ...저기.. 괜찮았어요 선우.
- ....
나나의 말에도 미동 없이 차가운 눈으로 선우를 노려보는 선태에게
다시 한번 말하는 목소리의 첫 마디가 바르르,하고 떨린다
- .... 좋은, 의사였어요 저한테 정말로..
- ...김나나씨가 그렇게 안 봐줘도 되는데, 이 녀석 한 눈 팔고 있는 건 사실이니까
- 선우, 책임 못 질 일은 시작도 안하는 걸요, 잘 할 거예요
- ... 환자분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그제야 선태가 선우를 보며 빙그레 웃는다
그리고는 가만히 나나를 바라본다
처음 봤던 그때처럼 또다시 말없이 싱글싱글 웃기만 하는 선태의
갑작스런 태도에 나나는 그대로 굳어버린다
- 김나나씨.
- ...네?
- 선우가 책임 못 질 일은 시작도 안한다고 했죠?
- .. 네
-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 ..네?
- 정말 그렇게 생각하냐구요
- ...
영문을 모르고 나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인다
어리둥절한 나나의 얼굴을 가만히 보던 선태가 슬쩍 웃으며 덧붙인다
- 그래요, 저 녀석 함부로 일 벌이는 놈 아닌 거, 믿어줘요
알고 있다고 하니까 더는 말 안할게요
조금 당황한 듯 입술을 잘근 씹고 만 나나에게서
역시나 당황한 표정의 선우에게로 시선을 옮긴 선태가 씨익 웃으면서 말한다
- 너 김나나씨 덕분에 실습 패스한 줄이나 알아, 가서 밥 사 비싼 걸로.
입으로는 웃고 있지만 사실은 이글이글 불타고 있는 눈이 대신 말한다
'이렇게까지 깽판 쳐서 껀수 마련해줬는데도
오늘도 대답을 못 듣고 또 그렇게 축 처져서 다니면 너 내 손에 죽는다'
선우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한다
대답을 들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
자박자박
천천히 걸음을 맞춰 걷고 있는 옆을 힐끔 곁눈질로 본다
저녁 내내 최소한의 말 말고는 하지 않던 나나는
여전히 생각에 잠긴 듯 말없이 걷고 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궁금하다
가로등 불빛에 나나의 얼굴이
부드러운 그림자를 그렸다가 서서히 날카로워지기를 반복한다
까만 쇼트 팬츠에 다소 큰 느낌의 검정 셔츠, 조그만 가방을 손에 쥔 나나의 모습이 낯익다
아니, 이 편이 익숙하다.라고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슬쩍 눈을 돌려 자신을 훑어본다
체크 셔츠에 치노 팬츠, 아마도 귀에 걸려있을 뿔테안경
누구라도 '정선우'라고 말할 차림새
나는 이 자리에 너는 그 자리에 또다시.
잠시였던 것 뿐일까
그날, 무대 위의 모습이 마치 꿈이었던 것처럼 아득하다
여전히 멀다.란 느낌에
선우는 내내 애써 무시해왔던 실망이 덮쳐오는 걸 느낀다
시작 단추를 잘못 누른 걸까
답답한 마음에 저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쉰다
그 기척에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 나나가 묻는다
- 혜림이가 누구야?
- 응?
갑작스런 질문에 선우는 조금 당황하지만
나나는 아주 당연한 질문을 했다는 듯 그저 물끄러미 대답을 기다린다
- ... 선태 형 첫 환자..
- .. 근데..
- ... 죽었어 몇 년 전에.
- 아....
그제야 나나의 표정이 조금 흔들린다
이제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선우의 마음 한 켠이 따끔한다
찌릿해오는 바람에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가 금새 숨겨버린다
- 날 많이 따랐거든, 그래서...
- ... 의사가 되겠다고 생각한거야?
- ... 그건 그 전부터.
- ....
- ... 동생이 있었어, 좀 아팠던...
이렇게 너에게 말할 줄은 몰랐지만.
이제는 예전만큼 쓰라리지 않다는 게 더 아픈 그 아이를
이렇게 갑자기 말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 혜림이 처음 만났을 때... 동생인 줄 알았거든.. 내 안에서는 아직도 그 나이여서,
- 응
시선을 멀리 둔 채 책이라도 읽는 것처럼
가만가만히 징검다리 딛어보듯 느릿하게 하는 말에
나나는 더이상 묻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한다
잠깐 침묵이 흐르고,
선우가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듯 짐짓 밝은 어조로 말한다
- 아아, 그런데 선태형 말대로 하면 의사 자격이 없는 건데 말야 지금 나는
- ... 좋은 의사가 될 거야 너.
살짝 살짝 그림자를 밟지 않으려고 발을 딛는 듯 조심스런 말에
선우가 허탈하게 웃는다
- 그러려나...
- 그럴거야
- 노래는?
- 응?
- 노래 쪽은 별로야?
이제야 제 말을 들어주려나 싶어서
선우가 그날, 그때부터 내내 묻고 싶었던 질문을 던진다
- 그날,
- 응
- ... 좋았어 노래들.
그런 상투적인 말 말고
- 무대 위에서 그런 모습일 줄은 몰랐어, 대단하더라
그런 말도 말고
- 김나나.
결국, 불러세우고 만다
더 기다리려고 했는데
네가 원한다면
더 기다려보려고 했는데
부름에 조용히 눈을 든 나나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읽히지 않는다
- 이름이 뭐였어?
- 뭐?
생각지 못한 뜬금없는 말에 선우는 다음 말을 잊어버린다
가만히 눈을 깜빡이며 나나가 덧붙인다
- 동생,
- 아.... 선혜..
- 선혜...
나나는 들은 그 이름을 몇번인가 되뇌어본다
- 선혜...혜림이... 선혜...
입 속으로 잘 들리지 않게 불러보던 나나가
조금 전보다 따스해진 목소리로 중얼,한다
- 예쁘다.. 이름...
- 응?
- 예쁜 여자아이였을 것 같아, 선혜.
사랑 많이 받은 아이인 것 같은 이름이야
그날 처음으로 나나는 슬프게 살짝 웃는다
또다시 눈에 물기가 일렁이는 것 같아서
이게 무슨 맥락인지도 모르고 선우는 또다시 가슴이 답답해진다
- 난, 내 이름이 싫어
나나는 수학공식을 말하듯 그저 외운 것처럼 무심히 뱉어버린다
- 늘 싫었어... 무슨 애완동물 이름처럼 아무렇게나 막 지은 것 같잖아
꼭 내가 태어난 이유가 그런 것처럼, 아무도 원하지 않는데 태어난 것 같아
- ... 예쁜데, 인형 이름 같고.
툭, 끼어든 선우의 무덤덤한 말에 나나는 천천히 고개를 젓는다
- 내 이름에 좋은 일이라곤 없었으니까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를 땐 시비를 걸거나 교무실로 호출하거나 할 때 뿐이었으니까
천덕꾸러기 같은 이름이라고 생각했어 늘
아무렇게나 부르고 아무렇게나 내버려둬도 되는 이름
... 아무도 제대로 불러주지 않는 이름이라고.
어째서인지 나나의 말에 더이상 물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평온한 어조에 오히려 불안해진 선우는 그 자리에 머뭇 걸음을 멈춘다
뒤쳐진 선우를 깨닫고 멈춘 나나가 선우를 돌아본다
가로등을 등지고 있는 나나의 얼굴이 어떤 표정인지 잘 보이지 않아서
선우는 나나에게 한 발, 다가선다
선우를 향해 든 얼굴이 가로등 빛에 드러난다
말없이 물끄러미 선우를 올려다보는 나나의 분위기가 이전과 어딘가 다르단 생각이 든다
그게 불안해야하는지 궁금해야하는지 모르겠다
가만히 흐르는 것 같던 나나의 눈이 어딘가의 빛에 닿은 듯 반짝, 빛난다
채 그 빛을 잡아채기 전에 나나가 살짝 고개를 흔들어 날려보낸다
방금 본 것이 무엇인지 확인해보고픈 충동이 든다
- 김나나
선우의 나직한 부름에 나나가 살풋, 웃는다
- 고마워.
이건 갑자기 무슨 의미일까
선우는 불안해진다
물음표가 떠올랐다가 금새 어두워졌다가 이내 복잡해지는 걸 숨기지 못하는
선우의 얼굴을 보던 나나가 또다시 살며시 웃는다
가로등 불 때문인지 홍조를 띈 듯 빛나는 볼을 하고
수줍다.라고 불러야할 처음 보는 나나의 미소에 선우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 혼란스러워진다
나나는 잠깐, 눈을 감고 톡,하고 숨을 쉰다
- 나 좋아졌어, 내 이름
네가 불러줘서.
마침내 밤하늘처럼 까만 눈동자가 가만히 선우를 올려다본다
나나의 떨림이 고스란히 전해진 것처럼 선우의 손이 바르르 떨린다
- 정선우, 좋아해.
=
그리고 30 Seconds to Mars의 앨범 수록곡 제목들은 Mate의 곡 제목에서 차용... (작명센스는 없어서;;)
+
- 나나야.
세이가 멍하니 앉은 나나에게 가만히 팔을 얹는다
그날 집에 돌아온 이후로는 최소한의 식사와 출퇴근만 반복할 뿐
멍하니 침대에 앉아있기만 한 지가 벌써 일주일 째..
어쩐지 제가 원인 제공을 한 것 같은 생각에
마음이 불편한 세이는 그 며칠 내내 나나를 맴돌고 있는 중이었다
- .... 나나야아..
초점이 흐린 눈을 들어 나나가 세이를 바라본다
그래도 울지는 않으니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잘 되길 바래서 그랬던 건데
선우가 어떤 아이인지 알고 있으니까
그런 마음이라면 틀림없이 나나도 괜찮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대체 왜 이러는 걸까
넋을 놓아버린 것 같은 나나의 모습에
안쓰럽기도 하고 울컥 화도 나서 세이는 울상이 되어버린다
- 왜 그러는데
이것도 며칠째 반복한 질문
역시나 답은 없겠지만
- 응? 왜 그러는거야?
나나가 그저 고개를 젓는다
결국 참지 못하고 울컥, 내질러버린다
- 선우가 그렇게 싫어?
세이가 억지로 참아왔던 선우의 이름을 내뱉어버리자
화살에라도 맞은 듯 움찔한다
- 선우가 너 좋다는 게 싫어?
- .... 아니
세이의 돌직구에 맞기라도 한 것처럼 잠깐 몸을 움츠린 나나가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아주 작게 웅얼거린다
- 근데 왜? 왜 그래?
- ... 무서워
나나의 말에 어이가 없어져서 한마디 쏘아붙이려고 하던 세이는
얹고 있던 팔 아래 진심으로 떨리고 있는 나나의 몸을 느끼고 멈칫 한다
- 뭐가... 뭐가 무서워
안쓰러운 마음에 온 몸으로 나나를 끌어안은 세이에게
나나가 몇번인가 뭔가를 삼키는 듯 하더니
겨우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을 꺼낸다
- 못하겠어 그 마음 받을 수가 없어
- 선우 마음 알잖아 너도. 그런거지?
- ... 알아... 알고 있어... 그래서..
- 근데 뭐가 문제야
- 알아... 그냥...
무대 위의 선우가 떠올라서 지끈 하고 마음이 무너진다
저도 모르게 꾹 참아 누르려 눈을 감아버린다
닿을 수 없는 세계,라고 생각했는데
그저 공통 분모를 가지는 것만으로 만족하려고 했는데
선우는 그게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라도 된 듯이
훌쩍 뛰어넘어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모습으로 제 앞에 서 있었다
설레었던 순간들이 덮쳐온다
상처입은 듯이 흔들리던 선우의 얼굴도
자신에게 일어나서는 안되는 행운이
손을 잘못 닿으면 팡 하고 터져버릴 비눗방울 같아서
눈 앞에 펼쳐진 환한 빛이,
내민 손이
그저 꿈처럼 사라질까봐
나나는 며칠째 망설이고 망설이고 망설이는 중이었다
- 그 마음이 너무 커서.... 너무 큰데.... 근데...
- ... 응?
- ... 정말 내 걸로 믿어도 될까? 내 걸로 해도 될까? 그래도...
말을 다 마무리하지 못하는 나나를 가만히 토닥이던 세이가
나나의 어깨를 꼭 붙들고 눈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 나나야
- ....
- 하나만 생각해봐
무슨? 하고 묻는 나나의 멍한 표정에 대고 세이가 묻는다
- 앞으로 올지도 모르는 괴로운 일 같은 거 말고
머리 아픈 일 같은 거, 불행한 일 같은 거 말고
지금, 선우가, 행복하게 해주는 건 없어?
대답이 없는 대신 나나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린다
때때로 머리를 쓰다듬는 무심한 손길
입을 앙 다물고 연주하는 음악들
거르지 않고 도착하는 세심한 연락들
간혹 알아채고, 착각이 아니길 바랬던 눈빛
그리고
- 김나나
자신을 부르는 그 다정한 목소리
도로록.
나나의 눈에서 또다시 눈물 한줄기가 흘러내린다
당황한 세이가 나나를 가볍게 흔들어 깨운다
- 왜, 왜 그래 나나야
- ... 세이야 어쩌지 나
- 왜, 무슨 일이야 왜
- ... 나 계속 생각했는데 포기가 안 돼 아무리 해도
울먹이는 나나의 말에
어느새 함께 울고 있던 세이가 왈칵 나나를 끌어안는다
- 바보야, 왜 포기를 해 왜
- 하지만
멍하니 울고 있는 나나의 어깨를 꼭 붙들고 눈을 마주한 세이가 단호하게 말한다
- 말해, 망설이지 말고
- ...
- 솔직하게 말하고 나면 그 다음은 어떻게든 될테니까.
- ....
- 정말이야, 대한민국 슈퍼스타랑 사귀고 있는 내 경험이라구
배시시 웃는 세이의 얼굴을
그저 멍하니 보던 나나의 표정이 조금씩 달라진다
- 선우는, 너 좋아해. 그리고, 너도. 그렇잖아
쐐기를 박듯 또박또박한 세이의 말에 잠깐 생각에 잠긴 듯 눈을 감았던
나나는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난다
- 어디가?
- ... 병원, 오늘 예약해놨어
============================================
조금 더 덧붙이는 이야기는,
몬스타를 처음 봤을 때부터, 이상하게 나냔은 나나에게 끌렸어
정말 정말 전형적인 인물들 사이에서도
이보다 더 전형적인 인소 캐릭터 같을수 없는 설정을 갖고 있는 아이인데 근데 그보다 뭔가 더 있을 거 같아서 말이야
그냥 조폭과 텐프로 사이에 태어난 소문 무성한 제멋대로 사는 일짱, 이 아니라
사실은 소녀이고 사실은 어린아이이고 사실은 단단한 틀에 갖혀 숨죽인 듯이 그저 일상을 견디고 있는 그런 김나나,가 자꾸 눈에 밟히더라고
이걸 쓰는 내내 나나,에 대한 내 이미지는 런어웨이 브라이드 - 도망치는 신부 였어
웨딩드레스를 입은 때마저 운동화를 신고 언제든지 도망칠 준비가 되어 있는 아이
행복이 오는 것조차도 두려워서 섣불리 다가가지 못하는
그래서 자신은 언제나 행복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자신이 누군지 알게 되면 당연히 자신을 경멸하고 미워할 거라고 익숙해져버린
아틀란티스 소녀를 선우가 특별하게 생각한다는 걸 알고 몰래 집에서 혼자 CD를 들었을 나나.
그걸 심지어 제대로도 아니고 겨우 집 앞에 던져놓는 걸로 자기마음을 -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마음을 - 표현하는 아이
- 고백조차 제대로 못해본 아이. 상처주는 말에 뺨 한 번 올려붙이지 못하고 그냥 그 자리를 피해버린 나나.
좀더 섬세하게 썼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나냔의 필력의 한계이고 그건...
내내 그렇게 도로록 자기 세계에 틀어박혀서 잘 움직여주지 않던 나나가 그래도 마지막엔 좋아해, 란 말을 꺼내게 되어서 좋아 나는
행복해져라 나나야.
그리고 선우는 - 이 고지식하고 반듯한 소년은
좀 재미있었어 진짜 자로 잰 듯 올바르기만 하고 재미없을 것 같은데 사실은 결핍이 있고 사실은 좀 무모하고 사실 유치하다는 점에서
그리고 왜인지 다정하다는 점에서 스스로를 올바르다고 믿지만 그걸 흔들 줄도 안다는 점에서
그래서 몬스타 보는내내 나나랑 연결되길 바랬건만... -_- 작가 양반 -_- 이래도 되는 것이오?
하여간, 그래서 세이에게 향했던 무모한 돌직구가 나나에게 향하는 걸 보고 싶었던... 개인적인 바람에서.... 이 이야기는 시작되었으니...
솔직히 말하면 조금 질질 끈 것도 있어 - 나나에게 선우가 좀 더 잘 해줬으면 좋겠었거든.
네 이놈 이정도로 나나가 넘어올 거 같아?! 좀더 해! 좀더 하란 말이야! 라고 셀프 채찍질을...
하다보니 결국 자기 세계 전체를 걸게 만들어버렸네...
사실 끝까지 잘 모르겠어. 선우는 음악을 선택.했을까. 의사를 포기.했을까. 아니었을 것 같아서. 선우라면 자기 욕망에 충실한 선택을 하면서도 그렇다고 꿈을 포기했을 것 같진 않아서. 몬스타 인물 소개에는 집에서 정해준대로 의대.라고 했지만 역시나 선우라면 자신이 원해서 의사가 되는 걸 선택했을 것 같아서. 그래서 무리인 걸 알면서도 논리적으로 어떻게 풀어야할지 모르겠으면서도 일단은, 병행하는 걸로 써봤어... 그 와중에 등장하여 뜬금없는 버럭질을 시전해주신 선태형 감사 ㅠ
+
이름이나 제목 짓는 걸 지독하게 못해서 요즘 재미나게 보는 댄싱나인에서 이름 빌려왔어~
선태형...진짜 너무 쫙 달라붙는 이름인거 같아..선태형...
물론 캐릭터랑은 상관없지만 -
'monstar - s&n > c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몬스타][나나x선우] Breeze; Summer (날울리지마 외전) (0) | 2013.09.15 |
---|---|
[몬스타][나나x선우] 날 울리지마. 8(下) (0) | 2013.09.05 |
[몬스타][나나x선우] 날 울리지마. 8(上) (0) | 2013.09.04 |
[몬스타][나나x선우] 날 울리지마. 7 (0) | 2013.09.02 |
[몬스타][나나x선우] 날 울리지마. 6 (1) | 2013.08.31 |